신편 한국사고려 시대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2. 왕권의 확립과정과 호족4) 호족 연합정권설의 문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1. 고려의 건국과 호족
          • 1) 호족세력의 동향
            • (1) 호족의 개념과 성격
            • (2) 신라 말기 호족의 동향 모
          • 2) 왕건의 즉위와 후삼국의 통일
            • (1) 궁예의 몰락과 왕건의 즉위
            • (2) 왕건 즉위 초 호족의 동향
            • (3) 후삼국의 통일
          • 3) 태조의 여러 시책
            • (1) 대내정책
            • (2) 대외정책
          • 4) 태조의 정치이념과 사상
            • (1) 고구려 계승이념
            • (2) 불교사상
            • (3) 풍수지리사상
            • (4) 유교사상
        • 2. 왕권의 확립과정과 호족
          • 1) 혜종대의 호족과 왕권
          • 2) 정종의 왕위계승과 왕권의 동향
          • 3) 광종과 경종의 왕권강화책
            • (1) 광종대의 왕권강화
            • (2) 경종대의 정치와 호족
          • 4) 호족 연합정권설의 문제
            • (1) 호족 연합정권설과 그 비판
            • (2) 호족 연합정권의 개념
            • (3) 고려 초기의 정치형태
        • 3. 고려 귀족사회의 성립
          • 1) 성종대 지배체제의 정비
          • 2) 중앙집권적 귀족정치의 이념과 최승로의 시무책
          • 3) 정치적 지배세력의 상황과 성격
        • 4. 고려사회 지배세력의 성격론
          • 1) 관료제 및 가산관료제설과 그에 대한 비판
          • 2) 귀족·귀족제의 개념
          • 3) 귀족제사회설의 논거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 시련의 극복과 체제의 정비
          • 1) 목종·현종대의 시련과 정비
          • 2) 문종의 체제정비와 전성
            • (1) 전시과의 갱정과 녹봉제
            • (2) 개성부와 경기 및 귀족중심 사회
            • (3) 법제와 경제유통
            • (4) 불교의 흥성
            • (5) 유교와 사학 및 도서출판
            • (6) 풍수지리 사상과 현실작용
            • (7) 대외문물 교류
        • 2. 귀족사회의 전개와 동요
          • 1) 이자의의 난과 숙종의 즉위
            • (1) 이자의의 난과 그 사상
            • (2) 숙종의 즉위 과정과 그 성격
            • (3) 왕권강화 정책과 그 의의
          • 2) 귀족사회 내의 갈등과 이자겸의 난
            • (1) 예종대 정국의 추이
            • (2) 인종의 즉위와 이자겸의 난
          • 3) 서경천도 운동과 묘청의 난
            • (1) 이자겸의 난 이후 정국의 추이
            • (2) 서경천도 논의의 전개와 묘청의 난
          • 4) 의종대의 정치혼란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호족 연합정권의 개념

무엇을 호족이라고 하는가 하는「豪族」의 개념부터 알아 보자. 호족이란 용어의 사용은 일찍이 중국에서 시작되었다.≪後漢書≫의 곳곳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豪」는 원래 모양은 돼지 같으나 붓대와 같이 억센 털을 가진 짐승의 이름이었다. 그러다가「豪」는 길고 질좋은 짐승의 털을 의미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고 우수한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런 의미의「豪」에 친족집단을 뜻하는「族」이 붙어 豪族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호족은 뛰어나고 우수한 친족집단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역사 용어로서의 호족은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의미로서 쓰이고 있다. 中國史에 있어서의 호족은 주로 漢代와 魏晋南北朝時代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중앙의 귀족과 대비되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호족은 지방의 토착세력으로서 그 지역의 실력자나 그 친족집단을 지칭하는 의미로 보통 사용되었던 것이다.252)

당시의 호족은 대토지 소유자로서 토지 경영을 위하여 다수의 노비와 소작인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노비에 의한 노동의 비중은 크지 않았고 대부분 소작인에 의한 생산이 주류를 이루었고 막대한 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호족들은 舍人·賓客이라 일컬어지는 비혈연자들도 기식시켰다. 그런데 이 빈객들의 대부분은 遊俠의 무리들로 군사력의 핵심을 이루었다. 이들은 또 각 군현의 관리가 되어 때때로 중앙 관직으로 진출하기도 하였다. 이밖에도 호족들은 문화의 독점적 향수자이기도 하였다. 특히 그들 사이에 애호되었던 유학은 호족생활의 윤리적 체계화 뿐 아니라 정치의 원리로서 중시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중국사에 나타난 호족은 대토지 소유자라는 재력을 기본으로 하고 吏員이나 관직자로서의 권력, 그리고 族人이나 빈객으로 형성된 무력까지 갖춘 지방의 친족집단이거나 세력가였다. 또 그들은 문화적인 독점력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호족은 한대의 왕조 말기부터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고 위진남북조는 물론 수·당시대에 이른바 문벌귀족의 근간을 이루는 사회계층이었다.253)

그렇다면 韓國史에 있어서의 호족은 어떻게 규정되어 왔는가. 신라 말에 흥기한 호족도 대토지 소유라는 재력을 갖고 있었다. 寺田 및 屯田의 私領化, 丁田의 私田化 등의 추세에 의하여 그 지반을 마련하게 되었다.254) 그리고 귀족·관료들에게 지급되었던 食邑·祿邑도 수취체제의 혼란으로 호족들의 田莊으로 되었으며, 그들은 莊頭라는 관리인까지 파견하기도 했던 것이다.255)

호족들은 私兵을 중심으로 한 무력도 가지고 있었다. 지방호족들의 사병은 같은 친족들도 있었겠지만 주로 유민이나 일정한 지역의 주민이 모집 내지 징집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들 사병과는 擬制家族的인 관계가 유지되었으리라 추측된다. 기록에 보면「族」「黨」등으로 표현된 자들이 사병에 해당된다고 하겠다.256)

한편 그들은 중앙과 비슷한 관부 조직을 가지고 지역민들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들은 堂大等·大等이란 직함을 가지고 兵部·倉部와 같이 중앙과 동일한 명칭의 부서까지 갖추고 있었다.257) 이와 같은 통치기구는 일률적인 것이 아니고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랐을 뿐만 아니라 신라시대의 州治나 小京의 일부에는「學院」이 설치 운영되고 있었다.258) 따라서 이들 지역에 유력한 호족들이 많이 있었던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중국의 경우와 같이 나말려초의 호족도 경제력은 물론 권력·무력을 갖추고 문화의 독점력까지 누리고 있는 존재였다. 즉 지방의 유력한 族團이거나 실력자였다.

이러한 호족은 나말에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여 고려왕조를 성립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왕조 성립 후 호족들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하나는 중앙으로 진출하여 문벌귀족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지방에 남아 있으면서 왕권 강화와 더불어 향리화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지방에 남아있던 향리들도 과거나 천거를 통해 중앙관리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중앙에서 고위 관직에 오르는 데에도 별다른 제약은 없었다. 고려시대 문벌귀족의 저변에도 호족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향리의 세계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호족의 역사적 성격도 중국의 경우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 하겠다.

요컨대 중국사나 한국사를 막론하고 호족은 대토지 소유라는 경제력을 근간으로하여 권력이나 무력, 그리고 문화의 독점력까지 갖춘 지방의 유력한 족단이나 그 일원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하겠다. 한편 호족은 고대사회 속에서 왕권과 대립하는 일면 타협하기도 하는 존재였다. 그러다가 중앙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새로운 사회의 건설에 큰 역할을 하였다. 새롭게 재편된 왕조체제 속에서도 문벌귀족의 저변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호족의 개념과 성격이 대략 이렇다고 할 때 나말려초의 사회상황을 논하는데 호족이란 용어의 사용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논자에 따라서는 이 용어의 사용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호족이란 존재는 주로 고대사회를 설명할 때 언급되는 것이므로 고려시대에 호족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는 것이다.259) 또 나말려초 사회 변동의 담당자층을 호족 대신에「豪富層」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경우도 있었다. 그 이유는 호족에 대한 종래의 내용 규정들이 소위 족단이라는 혈연적인 기반, 정치적으로는 낙향한 귀족이나 촌주 등 과거 수장층과의 계보적 연결,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공동체원에 대한 공납제적 지배라는 면에 중점을 두어 사용해 옴으로써 새 시대를 향한 변혁세력으로서의 성격보다는 오히려 구시대적인 성격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호족이라는 일종의 단체 개념보다는 豪富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개별적인 존재로 수렴되고 다양한 사회경제적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라 하고 있다.260) 그밖에도 당시의 지방분권세력은 호족이라 하는 것 보다는「鄕豪」라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견해도 있었다. 이 용어는 태조의 아들로서 왕위에 즉위한 광종대의 명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 지방분권적 성향을 가진 재지 향촌세력을 「鄕豪」라 하고 이들이 중앙으로 진출하여 집권층을 형성한 중앙 권세가를「權豪」「豪强」이라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261)

이러한 견해는 일면 타당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호족이란 용어의 사용이 아주 부적절한 것은 아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호족이란 용어가 사용된 예가 있기 때문이다.262) 따라서 호족이란 용어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별문제지만 그렇지 않은 한에 있어서는 호족 용어의 사용이 부적당한 것은 아니라 하겠다. 더욱이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사용해 온 용어를 정당한 이유없이 임의로 바꾸어 사용하는 것은 혼란만을 초래할 뿐이라 생각한다. 또 호족이란 용어는 중국사와 일본사에도 사용되고 있어 비교사학적인 측면에서도 유용한 일이라 하겠다. 다만 호족의 개념과 비슷한 용어가 다수 쓰이고 있음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冠族·大族·右族·望族·大家·豪家·大姓·著姓·鄕豪·土豪·豪右·豪黨·豪强 등은 표현 방식에 따라 조금씩 상이한 느낌을 주지만 대체로 호족과 비슷한 개념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263)

그러면 이제「「聯合政權」의 개념에 대해 알아보자. 연합이란 일정한 목적 아래 둘 이상의 개별적인 조직체가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서로 어울려 하나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은 연합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이고 이것이 정치학 용어로 쓰일 때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즉 연합정권 또는 연합정부는 이미 정치학에서는 개념 정립이 이루어진 용어라는 것이다.

현대의 정치적 용법에 있어「Confederation」(국가연합이라 번역할 수 있다)은 국가결합의 한 형태로 외부와 관련된 공통의 행동을 위한 몇몇 독립국(주권국)들의 영구적인 결합을 뜻한다. 다시 말해 국가연합은 조약에 기반을 둔 여러 국가 간의 평등한 결합관계를 말한다. 이러한 결합관계가 더욱 강화되면 중앙정부의 강력한 통제력으로 인해 구성국은 국제법상의 능력을 상실하게 되어「Federation」(國家聯邦)이 되는 것이다. 현재의 미국이나 소련(독립국가연합 이전)이 그 예이다.

독립국(주권국)들의 연합체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근본적인 특징과 공통적인 운영 원리를 갖는다. 첫째, 연합관계는 성문법 즉 영속적인 계약에 의해서 성립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권력의 분산과 정치적 체계의 분산 등을 규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둘째는 철저한 지방분권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지방정부들은 중앙의 통치행위에 동등한 상대자로서 참여할 수 있고 연합정부의 헌법에 보장된 대로 고도의 자치권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셋째, 권력에 대한 지역적인 분배라는 특징을 갖는다. 그리하여 영역적 민주주의라고도 불리우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제도와 장치가 마련된다. 먼저 성문법에 규정된 연대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시민들과 지방정부·중앙정부 사이에 연락체계를 둔다. 시민들은 자신들에게 봉사할 대표를 뽑아 지방정부나 중앙정부에 보내는 것이다. 반면 지방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 지방정부의 지배 영역이 거의 영속적으로 보장된다. 만약 변경될 때에는 각 지방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각 지방정부의 독자적인 행정·입법·사법제도의 설치가 보장된다. 또 지방분권적인 정당체계의 존재가 인정된다.264)

위와 같은 특징과 제도를 가진 국가결합의 한 양태를 국가연합(Confederation)이라 하고 이렇게 탄생된 국가를 연합국가 내지 연합정권이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종래의 호족 연합정권설이 이러한 정치학적 개념 검토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중국 후한시대에 적용되었던 용어를 별 비판없이 빌려 쓴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의 호족 연합정권설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 갈 필요가 있다.

후한의 호족 연합정권설에 대한 핵심은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후한을 세운 光武帝 劉秀가 처음 거병했을 때의 군대가 종래 豪族內婚制를 통해 결합되어 있던 南陽豪族의 연합군이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상황이 유수의 황제 즉위 이후에도 계속되어 연합적 성격을 띤 남양 호족들이 정계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265)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대해 상당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근본적인 사실 파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즉 유수가 처음 거병했을 때 남양 호족은 물론 다른 지역의 호족들도 거의 참여치 않았다는 것이다. 호족들이 유수 집단에 참여한 것은 유수가 河北 지방의 王郎 집단을 토벌하여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한 이후라는 것이다. 유수가 황제의 지위에 오른 후 정권을 잡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 32공신 중 남양 출신은 13명에 불과한 반면 다른 지역 출신이 19명이나 된다. 이같은 상황은 유수의 초기 군사집단이 남양의 호족 연합군이었으며 후한제국 성립 이후에 남양 호족이 정계의 주도권을 잡았다는 호족 연합정권설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266) 따라서 후한에 적용되었던 호족 연합정권의 개념을 가지고 고려 초기의 상황을 논하는 것도 불합리한 일이라 하겠다.

또 한편으로는 정치학에서 정의된 연합정권의 개념을 굳이 역사학에도 그대로 적용시켜야 하느냐 하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역사학 나름대로의 개념을 정립하여 사용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언어는 약속이기 때문에 그러한 말에도 일리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역사학이라고 해서 그것이 역사학자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모든 인간들의 공유물인 것이다. 평범한 사람은 물론이고 정치학자가 역사를 읽을 때에도 그것을 이해하도록 써야 한다. 정치학자가 역사를 읽으면서 호족 연합정권이란 용어를 접할 때는 이미 정립된 정치학적 개념을 가지고 대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개념이 맞지 않으면 혼란만을 초래할 것이다. 요즈음처럼 학문 간의 연계성이 강조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하겠다. 결국 우리는 정치학적으로 개념이 정립된 연합정권이란 용어에 유의하면서 호족 연합정권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豪族聯合政權」이란 개념을 정치학적으로 살펴 본다면 독자성을 가진 호족들이 상호간의 조약이나 합의를 통해 창출한 정권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호족들의 지배 영역이 하나의 독립국처럼 되어 있고 지방과 중앙과의 관계가 거의 평등하여야 한다. 그리고 지방과 중앙과의 사이에 연락체계가 존재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학적인 호족 연합정권의 개념인 것이다.

252)金甲童, 앞의 책, 248∼253쪽.
253)宇都宮淸吉,<漢代の豪族>(≪歷史敎育≫94, 1961;≪中國古代中世史硏究≫, 東京, 創文社, 1977, 381∼384쪽).
254)白南雲,≪朝鮮封建社會經濟史≫上(改造社, 1937), 13∼16쪽.
255)姜晋哲,<豪族의 土地支配>(≪高麗土地制度史 硏究≫, 高大出版部, 1980), 20쪽.
256)李基白,<新羅 私兵考>(≪歷史學報≫9, 1957 ;≪新羅政治社會史硏究≫, 一潮閣, 1974).
257)李基白, 위의 글, 266∼267쪽.
258)金光洙,<羅末麗初의 地方學校問題>(≪韓國史硏究≫7, 1972).
259)李純根,<羅末麗初「豪族」용어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聖心女大論文集≫19, 1987).
260)蔡雄錫,<高麗前期 社會構造와 本貫制>(≪高麗史의 諸問題≫, 三英社, 1986), 341쪽의 註 20 참조.
261)文暻鉉,<豪族論>(≪高麗太祖의 後三國統一 硏究≫, 螢雪出版社, 1987), 165∼168쪽.
262)≪祖堂集≫권 17, 雙峰和尙 道允條에 ‘累葉豪族’이란 용어가 보이며≪高麗史≫권 21, 世家 21, 신종 및≪高麗史節要≫권 14, 신종 3년 8월에「豪族」이 보이고 있다.
263)金甲童, 앞의 책, 258∼261쪽.
264)金甲童, 위의 책, 263∼265쪽.
265)宇都宮淸吉,<劉秀と南陽>(≪漢代社會經濟史硏究≫, 弘文堂, 1954), 393∼394쪽.
266)矢野主稅,<後漢光武帝集團の性格>(≪門閥社會成立史≫, 國書刊行會, 1976), 424∼440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