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진군과 국방체제
(1) 양계의 주진과 주진군
兩界는 북방민족과의 국경지대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들이 침략해오는 길목에 위치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양계는 군사적 성격을 강하게 지닌 특수한 지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양계를 구성하였던 행정단위는 州·鎭·縣 등이었다. 그 중에서 현은 그 수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兩界에서는 어느 정도 후방 지역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淸川江 및 元山灣 이남에 위치하고 있었다. 반면 가장 수가 많았고, 주로 전방 지역에 위치하였던 것은 防禦使와 鎭將(使)이 임명되는 주와 진이었다. 결국 양계 행정조직의 기본 단위는 5道의 주현과는 달리 주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양계 주진은 성곽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高麗史≫兵志 城堡條에 나오는 축성 기록의 거의 대부분은 양계의 그것이다. 그러므로 축성은 곧 주진의 설치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諸州鎭은 諸城이라고도 불리웠다. 다음의<표 4>와<표 5>에서 볼 수 있듯이 고려의 공식문서인 「式目形止案」에도 각 주진이 某城으로, 제주진이 제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와 같이 행정도시가 아니라 무장도시였던 양계의 제주진은 각각 하나의 독립된 전투단위를 형성하고 있었다. 따라서 5도의 제현과는 달리 屬縣을 거느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0800) 그리고 양계의 제주진은 安北(北界)·安邊(東界)의 두 都護府에 의해 관할되었다. 도호부는 국방을 위한 군사 기지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도 양계 주진이 군사적 성격이 강한 행정단위였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0801)
≪高麗史≫兵志 州縣軍條에는 地方軍 모두를 주현군이라고 하고 있지만 州鎭의 지방군이 州縣의 그것에 선행되어 기록되어 있다. 한편≪高麗史≫地理志에서는 5道에 이어 兩界가 취급되고 있음에 비교한다면 이는 주진에 배치된 지방군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고려시대에도 역시 그렇게 인식되었을 법하다. 그리고 주진의 지방군에 대해서는 지휘계통을 비롯하여 다양한 부대들의 지방별, 부대별 인원 수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주현의 지방군에 대해서는 단순히 지방별·부대별 인원 수만을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양계의 군사적 중요성으로 인하여 주진의 지방군이 주현의 그것보다 조직적이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0802) 이와 같은 까닭에 5도의 주현에 배치된 지방군을 주현군이라고 한다면 양계의 주진의 그것은 州鎭軍이라고 구별하여 파악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