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려 시대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2.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1) 권문세족의 성립과 그 성격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1. 정치조직의 변화
          • 1) 중앙 통치체제의 변화
            • (1) 도평의사사
            • (2) 충렬왕대의 관제격하
            • (3) 충선왕대의 관제개혁
            • (4) 공민왕대의 관제개혁
            • (5) 고려 후기 정치체제의 성격
          • 2) 지방 통치체제의 변화
            • (1) 감무제의 확산과 농촌사회의 변화
            • (2) 문무교차제의 시행과 외관간의 갈등
          • 3) 관리 등용제도의 변질
            • (1) 인사행정의 문란과 관원의 숫적 증가
            • (2) 과거제와 음서제 등의 변질
            • (3) 첨설직제와 납속보관제의 신설
          • 4) 군제의 개편
            • (1) 원간섭기의 군제
            • (2) 군역체계의 변화
            • (3) 중앙군제의 개편
            • (4) 지방군제의 재편
        • 2.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
          • 1) 권문세족의 성립과 그 성격
            • (1) 세족층의 형성과 그 특징
            • (2) 고려 후기 권력구조와 세족
            • (3) 고려 후기 사회모순의 심화와 세족층의 동향
            • (4) 고려 후기 세족의 역사적 성격
          • 2) 신진사대부의 대두와 그 성격
            • (1) 신진사대부의 대두 배경
            • (2) 사대부의 성격과 용어에 대한 논의
            • (3) 사대부의 성격과 시기구분
          • 3) 개혁정치의 추진과 신진사대부의 성장
            • (1) 개혁정치의 추진
            • (2) 개혁정치의 성격
            • (3) 신진사대부의 성장
        • 3. 고려왕조의 멸망
          • 1) 고려왕조 멸망의 배경
            • (1) 이인임 정권의 한계와 무장세력의 대두
            • (2) 이인임 정권 내부의 갈등과 최영의 집권
            • (3) 요동정벌과 위화도회군
          • 2) 이성계의 집권과 고려왕조의 멸망
            • (1) 이성계 집정체제 강화를 위한 개혁
            • (2) 공양왕 옹립과 이성계의 실권 장악
            • (3) 정몽주 살해와 이성계의 왕권찬탈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1. 농장의 성립과 그 구조
          • 1) 전시과체제의 붕괴
          • 2) 농장의 발달과 그 구조
            • (1) 수조지집적형 농장
            • (2) 사적 소유지형 농장
          • 3) 녹과전의 설치
          • 4) 사전·농장의 혁파
        • 2. 수취제도의 변화
          • 1) 조세
          • 2) 공부와 요역
            • (1) 공부
            • (2) 토목공사에서의 부역실태
            • (3) 수취기준의 변화
        • 3. 농업기술의 발전
          • 1) 농법의 발전
          • 2) 목면의 재배
        • 4. 수공업과 염업
          • 1) 수공업
            • (1) 관청수공업
            • (2) 소 수공업
            • (3) 사원수공업
            • (4) 민간수공업
          • 2) 염업
            • (1) 고려 전기 소금의 생산과 유통
            • (2) 고려 후기 소금 전매제의 실시
        • 5. 상업과 화폐
          • 1) 국내상업
            • (1) 도시상업
            • (2) 지방상업
            • (3) 고려 후기 상업의 발달과 신분제의 변동
          • 2) 대외무역
            • (1) 원과의 무역
            • (2) 다른 지역과의 교역
          • 3) 화폐의 유통
            • (1) 포화
            • (2) 은병과 소은병
            • (3) 쇄은과 은전
            • (4) 원의 보초
            • (5) 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고려 후기 권력구조와 세족

 원간섭기의 전개와 함께 고려 후기 정치체제는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이 통합되어 僉議府로 개편되고, 6부가 典理·版圖·軍簿·典法司 등 4사로 통폐합되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 충렬왕 5년(1279)에 都兵馬使가 都評議使司로 개편된 것도0194) 정치체제상의 뚜렷한 변화의 하나였다. 이는 단순히 명칭의 변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조와 기능의 변화 등 개편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었다. 도평의사사는 도병마사에 비하여 그 구성이나 기능, 절차에 있어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도병마사가 필요에 따라 간헐적으로 개최되고 그 기능도 주로 군사관계에 한정되는 제한적인 범위내의 것이었다면, 도평의사사는 상설의 合坐기구로서 당시 중대 사안들이 이 기구에서 논의되었다.0195)

 도평의사사에는 僉議府·密直司의 재추와 三司의 判事·左右使가 참여하고 있었다. 도병마사 시절에는 그 구성원이 이른바 5宰·7樞에 국한되었던 것에 비하면 그 참여 범위가 확대된 셈이다. 더욱이 고려 후기에는 재추의 수가 증가함으로써 도평의사사에서 합좌하는 인원 수는 계속 늘어났다. 원간섭기만 하더라도 매 시기 재추의 수는 20∼30여 명을 헤아리고 있었고, 여말에 가서는 더욱 늘어나 60∼70명이 都堂에서 국정을 논의할 정도였다.0196) 고려 후기 재추급 인물들은 세족출신이 많았다.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충선왕 2년(1310)의 인사에서는 19명의 재추 가운데 12명이 세족출신이었다.0197) 그러므로 고려 후기 도평의사사의 활동은 세족출신 관료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도평의사사는 고려 후기 정치체제상에 중요한 정치기구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도평의사사의 이러한 기능과 지위가 최고 권력기구로서의 성격을 갖는 것이고, 이 때문에 왕권도 제약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0198) 이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고려 후기 권력구조의 특성상 오히려 도평의사사의 권한을 제약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았기 때문이다.

 고려 후기에는 도평의사사와는 별도로 일부의 특정 인물들로 구성된 必闍赤[필자적;비칙치]과 같은 국왕 측근기구와 征東行省·萬戶府 등 원간섭기구가 권력기구로 등장하고 있었다. 필자적은 충렬왕 4년(1278), 재추의 수가 많아서 정책을 논의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구실로 설치되었다.0199) 이 기구에는 일부의 재추를 비롯하여 특정 인물들만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別廳宰樞’라고도 하였다. 이 때 설치된 필자적은 단순히 직임의 의미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통치기구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특히 그 구성원이 궁중에 모여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기구는 충렬왕의 왕권강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국왕 측근기구로서의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0200) 그러므로 필자적이 권력기구로 남아 있는 한, 도평의사사가 그 기능과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필자적과 같은 권력기구는 원간섭기에는 물론 공민왕대와 우왕대에도 ‘內相’·‘內宰樞’로 지칭되면서 존속되고 있었다.0201) 원의 간섭에서 벗어났으면서도 내재추와 같은 국왕 측근기구가 여전히 권력기구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는 국왕의 왕권강화나 특정세력의 권력독점 등 당시 정치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이다. 즉, 공민왕대는 신돈집권기에 왕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우왕대에는 林堅味 등 권력층이 왕명의 출납을 장악하는 등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내재추제가 필요했던 것이다. 내재추는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궁중에서 국가 중대사를 처리하는 등 권력을 장악하면서 도평의사사의 권한을 제약하고 축소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0202)

 충렬왕대에 원의 종속구조가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되면서부터 국내에는 원의 간섭기구가 설치되는가 하면 원과의 관계개선을 통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부류들이 나타나게 된다. 원은 부마관계를 통해 고려국왕을 원의 지배에 순응시키면서 국왕을 매개로 하여 고려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0203) 이러한 지배방식에 따라 征東行省과 萬戶府가 대표적인 간섭기구로 자리잡고 있었다. 정동행성은 시기마다 그 활동내용에 차이가 있고 원의 공적 연락 기관으로서 그리고 내정 간섭기구로서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었지만, 고려국왕이 그 책임자인 丞相에 임명되는 등 국왕을 매개로 하여 이를 관철시키고 있었다. 만호부는 원의 군사적인 요구를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었던 군사조직이었다. 이 기구 역시 고려와 원 양측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설치되었고 고려국왕에 의해 만호에 임명될 인물이 선정되는 등,0204) 원의 만호부를 통한 군사적 통제 역시 고려국왕을 매개로 하고 있었다.

 정동행성은 그 하부기관으로 左右司·儒學提擧司·理問所·都鎭撫司 등을 두고 대원외교의 사무에 복무하는 한편, 국왕의 인정 하에 국내의 田民·사법·조세 등 대내적인 문제에까지 참여하여 내정을 간섭하였다.0205) 비록 절차상으로는 행성의 업무를 도평의사사에 보고하여 시행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행성은 오히려 도평의사사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그 활동을 전개해 나가기도 하였던 것이다.0206) 만호부만 하더라도 원간섭기에 권력기구로서 존재했을 것이다. 그 기능이 왕권의 유지 및 원의 지배정책과 관련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러하다. 특히 순군만호부는 정보와 무력을 장악하여 현실 비판적인 재추나 대간을 왕명에 따라 체포·수감·국문하는 등0207) 권력기구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이처럼 원간섭 이후 고려 국가기구 가운데에는 왕권의 유지 및 강화, 그리고 원의 지배정책과 관련된 기구들이 권력기구로 등장하고 있었다. 원간섭기 동안은 필자적·정동행성·만호부가, 공민왕대 이후에는 내재추가 권력기구로 존속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같은 권력기구가 존재하는 한, 도평의사사는 그 권한과 기능을 행사하는 데 제약당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고려 후기에는 이와 같은 권력기구의 존재와 함께 가문배경에 관계없이 막대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던 권력층이 시기마다 등장하고 있었다. 이들 권력층은 국가기구의 기능과 권한을 무력하게 하고 토지겸병 등을 통해 경제력을 집중시킴으로써 당시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었다. 권문층으로 규정할 만한 이들은 당시의 사정을 전해주는 기록들에서 ‘權門’·‘權貴’·‘權勢之家’ 등으로 지칭되고 있었다.0208)

 무신란 이후 권력은 무신 중심, 그것도 집정무인을 정점으로 행사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무신집권기 동안에 권문층은 바로 이들이었다. 무신들은 비록 정권의 유지를 위하여 국왕의 권위를 인정하고 왕실과 혼인하기도 하지만0209) 그들의 권력은 왕권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원간섭기 권문층은 국왕 측근세력들이었다. 국왕 측근세력은 응방 관계자, 몽고어 역관, 내료, 환관, 겁령구나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폐행 인물들과 원에 국왕을 시종했던 인물들이 그 구성원이 되고 있었다.0210)

 폐행은 국왕에 대하여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등 충성을 다하였고, 국왕은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이들에게 상당한 권력을 부여해주었다.0211) 이들은 왕권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위 교체에 따라 파멸의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그러나 왕위가 유지되고 그 지원이 계속되는 한 ‘권력이 한 나라를 기울게 했다’고 표현될0212)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원의 지배정책에 따라 원간섭기 고려의 국왕은 즉위 전부터 원에서 宿衛의 절차를 거쳐야 했고, 즉위 후에는 원의 요청이나 현안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자주 入朝하였다. 특히 충선왕의 경우는 즉위한 후에도 원에 계속 체류하면서 왕권을 행사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종신은 국왕의 측근세력이 되어 왕권을 배경으로 상당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예컨대 충선왕대에는 權漢功·崔誠之·李光逢 등이, 충숙왕대에는 崔安道 등이 시종신이 되어 권력층으로 군림하였다.0213)

 이렇게 형성된 권문층은 다양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가문배경과 관계없이 권문층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이 고려 후기 권력구조의 특징이기도 하다. 비록 천한 신분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무인집정이 되거나 국왕 측근세력이 되면 권력층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세족출신 관료들은 재추직 등 고위직에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권문층이 되는 데에도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서원 염씨 廉承益이나 황려 민씨 閔渙, 안동 권씨 權適과 같이 국왕의 폐행이 되어 권문으로 등장한 부류도 있었다.0214)

 이처럼 권력기구가 등장하고 권문층이 형성됨으로써 도평의사사와 이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재추들은 위축당할 수밖에 없었다. 충렬왕의 폐행이었던 환관 崔世延은 장군직만 갖고 있으면서도 상당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관료의 승진과 강등이 모두 그의 손에 달려 있었고, 재상이라도 그의 뜻을 거슬리지 못할 정도였다.0215) 최세연과 같은 권문의 존재때문에 세족출신의 재추들도 그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원간섭기에 활동했던 李齊賢은 당시 도평의사사에 참여하고 있는 재추들이 겨우 부부간의 사사로운 일이나 개인적인 이해관계만을 얘기할 정도라고 혹평한 바 있다.0216) 무신정권 하에서 당시 재상들이 공작새나 모란꽃에 관한 이야기로 소일한 것보다 더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현은 그 원인을 재추의 수가 많은 데서 찾고 있는데, 그도 그렇지만 당시 재추가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은 도평의사사가 국가 정책의 결정이나 행정운영에 있어 그 위상에 걸맞는 실질적인 권한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말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왕대의 재상이었던 金續命은 자신은 도당에서 허수아비와 같다고 토로하면서 도평의사사가 약화되고 있음을 비판하다가 李仁任 등의 사주를 받은 대간의 탄핵으로 유배된 바 있다.0217) 역시 세족출신인 정당문학 許完과 동지밀직사사 尹邦晏은 내재추인 林堅味·都吉敷를 비판하다가 오히려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였다.0218)

 물론 도평의사사는 여말까지 계속 존속하면서 정치체제의 중추기구로 자리하고 있었다. 비록 내재추와 같은 권력기구와 권문층의 존재로 도평의사사가 권력기구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지 못했다 하더라도 정치운영에 있어 갖는 상징적 지위는 매우 컸다. 그것은 권력기구나 권문층의 지나친 권력독점으로 정치과정이 왜곡될 때마다 도평의사사의 기능 회복을 강조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즉 지방에 발송되는 왕의 교지를 도평의사사를 경유하게 해야 된다고 요구한다든지0219) 정동행성에서 지방에 공문을 보낼 때에도 도평의사사에 보고해야 함을 강조하고, 국가의 여러 정책이 도평의사사에서 결정되야 함을 촉구하면서0220) 그 기능과 권한을 유지하려 하고 있었다.

 특히 개혁정치가 추진되었던 시기에는 도평의사사가 그 기능과 권한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예컨대 충선왕대 개혁정치 시기에는 왕명에 의해 도평의사사가 공무를 맡아 처리하고, 지방관을 감찰하기도 하였다.0221) 충목왕대에는 도평의사사가 녹과전의 설치를 건의하는 한편, 賜給田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수조권 분급체제의 정비를 주장하는 등0222) 사회모순의 해결에 관심을 보인 바 있다. 공민왕대에도 개혁정치 기간 동안에 도평의사사가 왕명에 따라 양전사업을 주관하는 등0223) 정치운영의 중추기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도평의사사의 위상은 이 기구가 권력기구로서 존재했느냐의 여부를 떠나서 항상 정치운영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활동하고 있던 세족출신의 재추들은 이를 매개로 그들의 정치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가문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신장시킬 수 있었다.

0194)≪高麗史節要≫권 20, 충렬왕 5년 3월.
0195)고려 후기 도평의사사의 성립과 그 기능에 대해서는 이 책 Ⅰ편 1장 1절<중앙 통치체제의 변화>참조.
0196)≪高麗史節要≫권 33, 신우 14년 8월.
0197)≪高麗史≫권 33, 世家 33, 충선왕 2년 9월 을유.
0198)閔賢九, 앞의 글(1977), 34∼39쪽.

邊太燮,<高麗의 政治體制와 權力構造>(≪韓國學報≫4, 1976), 33∼38쪽.
0199)≪高麗史節要≫권 20, 충렬왕 4년 10월.
0200)金光哲,<高麗 忠烈王代 政治勢力의 動向-忠烈王 初期 政治勢力의 變化를 중심으로->(≪論文集≫7­1, 昌原大, 1985), 160쪽.

李益柱, 앞의 글(1988), 208∼210쪽.

朴龍雲,<高麗後期 必闍赤에 대한 검토>(≪李基白先生古稀紀念 韓國史學論叢≫, 一潮閣, 1994), 868∼872쪽.
0201)≪高麗史≫권 114, 列傳 27, 吳仁澤 및 권 126, 列傳 39, 姦臣 2, 林堅味.
0202)閔賢九,<辛旽의 執權과 그 政治的 性格(上)>(≪歷史學報≫38, 1968), 78∼84쪽.
0203)李益柱, 앞의 글(1988), 176쪽.
0204)邊東明,<高麗 忠烈王代의 萬戶>(≪歷史學報≫121, 1989), 134쪽.
0205)張東翼,<征東行省의 硏究>(≪東方學志≫67, 1990), 83쪽.
0206)≪高麗史≫권 84, 志 38, 刑法 1, 職制.
0207)韓㳓劤,<麗末鮮初 巡軍硏究>(≪震檀學報≫22, 1961), 30∼34쪽.
0208)金光哲, 앞의 책(1991), 19∼34쪽. 당시 권력층에 대한 지칭은 이외에도 權臣·權豪·勢家·豪强·豪勢家·豪猾之徒·權姦·巨室 등이 있다.
0209)金塘澤,<崔氏政權과 國王>(앞의 책), 173∼174쪽.
0210)李益柱, 앞의 글(1988), 188∼203쪽.

金光哲, 앞의 책(1991), 144∼152쪽.

鄭希仙,<高麗 忠肅王代 政治勢力의 性格>(≪史學硏究≫42, 1990), 34∼37쪽.

朴宰佑,<高麗 忠宣王代 政治運營과 政治勢力의 動向>(≪韓國史論≫29, 서울大, 1993), 17∼22쪽.
0211)洪承基,<元의 干涉期에 있어서의 奴婢出身 人物들의 政治的 進出>(≪韓國史學≫4,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3), 122쪽.
0212)≪高麗史≫권 123, 列傳 36, 嬖幸 1, 廉承益·印侯.
0213)≪高麗史≫권 124, 列傳 37, 嬖幸 2, 崔安道 및 권 125, 列傳 38, 姦臣 1, 權漢功.
0214)≪高麗史≫권 123, 列傳 36, 嬖幸 1, 廉承益 및 권 124, 列傳 37, 嬖幸 2, 閔渙.
0215)≪高麗史≫권 122, 列傳 35, 宦者 崔世延.
0216)李齊賢,≪櫟翁稗說≫前集 1.
0217)≪高麗史≫권 111, 列傳 24, 金續命.
0218)≪高麗史節要≫권 31, 신우 5년 9월.
0219)≪高麗史節要≫권 21, 충렬왕 22년 2월.
0220)≪高麗史≫권 84, 志 38, 刑法 1, 職制.
0221)≪高麗史≫권 33, 世家 33, 충선왕 원년 10월 기묘.
0222)≪高麗史≫권 78, 志 32, 食貨 1, 田制 祿科田.
0223)≪高麗史≫권 78, 志 32, 食貨 1, 田制 經理.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