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고려왕조의 멸망
고려왕조는 우왕 14년(1388) 5월, 요동원정군에 의한 군사반란, 즉 威化島回軍을 계기로 멸망하였다.0531) 그런데 반란을 주도한 李成桂와 그의 추종세력들에 의해 왕권이 탈취되어 조선왕조가 건국되기까지는 만 4년의 기간을 거쳐야 했다. 따라서 고려왕조의 멸망과정은 위화도회군 이후 이성계에 의한 권력장악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그 순서라 하겠다.
그러나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단행하여 그것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우왕대의 정치형태를 살펴보는 작업 또한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왜냐하면 비록 崔瑩에 의해 주도된 측면이 강하다 할지라도 遼東征伐은 엄연히 우왕의 승인하에 국초 태조 왕건에서부터 시작된 北進政策(고토회복)의 일환으로 단행된 것이었다. 그런데 일개 신흥무장 이성계가 이러한 國是를 무시한 채 회군을 단행하고, 그것이 여러 元帥들의 지지하에 최영이 이끄는 관군을 힘들이지 않고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우왕대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이러한 반란적 행동을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병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려왕조의 멸망 배경은 고려말의 정치·경제·군사적 측면의 변질과정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일련의 개혁이 실패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 책의 다른 항목에서 고려 후기에 나타난 정치·군사체제의 변질, 농장과 사전의 확대에 따른 수취체제의 문란상 등이 더 이상 ‘世族’ 중심의 고려사회를 지탱해 줄 수 없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위화도회군을 가능케 한 우왕대 심화된 파행적인 정치상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즉 이 시기 이성계 등의 조선 건국세력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정치의 중심에 대두되었으며, 나아가 그들의 군사반란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고려왕조의 멸망 배경에 대신하고자 한다.
0531) | 韓永愚,<朝鮮建國의 政治·經濟基盤>(≪한국사≫9, 국사편찬위원회, 1973 ;≪朝鮮前期社會經濟史硏究≫, 乙酉文化社, 198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