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려 시대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Ⅱ. 대외관계의 전개4. 홍건적과 왜구1) 홍건적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1. 신분제의 동요
          • 1) 신분제 동요의 배경
          • 2) 양인·천인의 신분이동
            • (1) 양인·천인의 신분상승
            • (2) 양인의 신분하락
            • (3) 이성계 일파의 집권과 양인·천인의 신분고정
          • 3) 향리 및 양반귀족의 신분동요
            • (1) 향리의 신분동요
            • (2) 양반귀족의 신분동요
        • 2. 농민·천민의 봉기
          • 1) 농민·천민봉기의 배경
            • (1) 중앙 통치체제의 문란
            • (2) 지방관의 탐학
            • (3) 대토지겸병의 확대
            • (4) 신분제의 동요
          • 2) 무신정권 성립기의 농민·천민봉기
            • (1) 서북지역의 농민봉기
            • (2) 공주 명학소민의 봉기
            • (3) 관성·부성·전주 등에서의 농민봉기
            • (4) 제주민의 항쟁
            • (5) 운문·초전민의 봉기
          • 3) 무신정권 확립기의 농민·천민봉기
            • (1) 만적의 난
            • (2) 진주민의 항쟁
            • (3) 경주민의 항쟁
          • 4) 외세침입기의 농민·천민봉기
            • (1) 거란침입기의 농민·천민봉기
            • (2) 몽고 1∼3차 침입기의 농민·천민봉기
            • (3) 몽고 6·7차 침입기의 농민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1. 몽고 침입에 대한 항쟁
          • 1) 몽고족의 흥기와 여·몽관계의 성립
            • (1) 13세기 몽고족의 흥기
            • (2) 몽고군의 고려 입경
            • (3) 강동성 전투와 여·몽관계의 성립
          • 2) 몽고의 고려 침입
            • (1) 몽고의 침략
            • (2) 최씨정권의 강화천도
            • (3) 몽고의 2·3차 침입
            • (4) 여·몽전쟁의 장기화
          • 3) 몽고의 침략에 대한 항전
            • (1) 살례탑군에 대한 항전
            • (2) 당고군에 대한 항전
            • (3) 야굴군에 대한 항전
            • (4) 차라대군에 대한 항전
            • (5) 고려의 입보책과 지방민의 항전
          • 4) 삼별초의 대몽항전
            • (1) 몽고와의 강화
            • (2) 삼별초의 봉기
            • (3) 삼별초의 진도 항전
            • (4) 삼별초군의 제주도항전
        • 2. 여·원관계의 전개
          • 1) 원의 간섭과 자주성의 시련
            • (1) 몽고제국 지배체제로의 편입과정
            • (2) 몽고제국 지배체제하의 고려왕조
            • (3) 여·원 양국간의 인적·물적 교류
          • 2) 북방문제
            • (1) 심양로의 심왕
            • (2) 동녕부
            • (3) 쌍성총관부
        • 3. 고려 말의 정국과 원·명 관계
          • 1) 원의 쇠퇴와 공민왕의 반원정책
          • 2) 공민왕의 개혁정치 실패와 명의 흥기
          • 3) 친원파와 친명파의 대립과 요동정벌
        • 4. 홍건적과 왜구
          • 1) 홍건적
            • (1) 원의 쇠퇴와 홍건적의 대두
            • (2) 홍건적의 침입
          • 2) 왜구
            • (1) 왜구의 성격과 규모
            • (2) 왜구의 침구목적
            • (3) 왜구의 침입
            • (4) 왜구에 대한 대책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4. 홍건적과 왜구

1) 홍건적

(1) 원의 쇠퇴와 홍건적의 대두

 元은 成宗(1294∼1306) 이후 황족사이에 제위다툼과 권신들의 전횡이 계속되었으며, 건국이래로 전쟁을 일삼아온 결과 재정의 궁핍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충하고자 각종의 잡세를 부과하였으며 交鈔의 남발로 물가가 앙등하였다. 또한 천재와 기근이 빈번하였고 더구나 통치자인 順帝(1333∼1367)의 무절제한 궁중생활은 재정난을 가속화시켰다.575)

 이러한 계속되는 어려운 상황들은 蒙古의 통치아래서 차별대우와 압박을 받아오던 漢族에게 자극을 주어 민족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그 결과 중국 각 지방에서 난이 일어났는데, 순제 즉위 초(고려 충숙왕 복위 6년;1337)부터 시작되었다. 朱光卿은 廣東에서 일어나 국호를 大金이라 하였으며, 方國珍은 浙江의 台州에서 일어났고 徐壽輝는 安徽·湖北에서 난을 일으켜 국호를 天完이라 하고 황제를 칭하였다. 江蘇지방에서는 張士誠이 일어나 高郵에 웅거하여 국호를 大周라 하고 誠王이라 칭하였으며, 郭子興은 안휘의 북부에서 일어났는데 그 부하에 朱元璋(뒷날 명 태조)이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河南지방에서 봉기한 무리들이 紅巾賊이었다.

 공민왕 즉위년(1351)에 韓山童·劉福通 등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홍건적의 내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산동은 그의 조부이래로 白蓮敎를 신봉하여 주로 우매한 하층민들을 선동하여“천하가 크게 어지러우므로 彌勒佛이 下生하였다”고 자칭하면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한다며 많은 무리를 끌어 모았다. 그의 부하인 유복통은 한산동을“宋 徽宗의 8世孫으로 중국에 군림할 것이라”고 선전하였다. 뒤에 한산동은 관군에게 잡혔으나 유복통은 군사를 일으켜 紅巾으로써 표식을 하고 각지를 공격하고 다니니, 그의 무리는 거의 10만에 달할 정도였다. 이 무리들을 紅巾賊 또는 紅頭賊 혹은 紅賊이라 하였다. 至正 15년(1355) 2월에 유복통은 毫州(安徽)에 웅거하여 한산동의 아들인 韓林兒를 영입하여 황제를 삼고 국호를 宋이라 하였다. 특히 송 휘종의 후손으로 황제를 삼아 국호를 송이라 함으로써 몽고족에 대한 한족의 적개심을 이용하였고, 몽고족인 원을 몰아내고 중화를 회복하자는 민족주의적 기치를 표방하였던 것이다.

 한편 원 조정에서는 순제 지정 12년(1352)부터 승상 脫脫이 군사를 이끌고 남하하여 각지를 토벌하였다. 특히 지정 14년에 大軍을 동원하여 고우의 장사성을 토벌할 때는 고려에 원병을 요청하였다. 이 당시 원이 고려에 대하여 구원병을 요청한 것은 앞서 賀千秋節使로 원에 건너갔던 蔡河中의 건의가 한 원인이 되었는데,576) 이 요구에 따라 같은 해 7월 柳濯·廉悌臣 등 40여 명의 장수들이 군사 2,000명을 거느리고 참전하였다.577)

 원에 원병으로 참전하였던 고려군은 당시 반란군의 실세와 원의 실정을 더욱 분명히 볼 수 있었고, 귀국한 뒤 이들이 보고한 내용은 고려의 국내외 정책 추진에 많은 자극을 주게 되었다.578) 특히 북중국과 요동일대에서 크게 위세를 떨치고 있던 홍건적에 대하여는 고려에 침입할 가능성을 크게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고려는 공민왕 6년에 樞密院直學士 金得培를 西北面都巡問使兼西京尹上萬戶로 임명하고, 前戶部上書 金元鳳을 西北面紅頭軍 및 倭賊防禦指揮兼副萬戶에 임명하여 서북면지방의 방어태세를 강화하였다.579) 당시 홍건적에 대하여 고려조정에서 크게 신경을 쓰고 있던 것은 다음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공민왕 7년 3월에 靜州副使 朱永世와 全羅道萬戶 姜仲祥이 상경하여 왕을 알현하였는데, 왕이 매우 노하여‘서쪽에는 홍두적의 근심이 있고 동쪽에는 왜적의 재화가 있어’백성들이 편안히 살지 못하는데 마음대로 관할지를 떠났다는 이유로 그들을 옥에 가두었다. 또 서울 外城의 수축을 명령하였다.580) 이처럼 근무지를 이탈한 관리를 엄하게 다스리고 성곽을 수축하는 등 홍건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고려조정에서 당시 급변하는 중국의 상황을 직시하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한편 공민왕 8년(1359) 11월에는 홍건적의 반란으로 어수선한 遼東과 瀋陽지방으로부터 2,300여 호가 귀화하여 오자, 고려조정에서는 이들을 서북의 각 군과 현에 나누어 정주시키고 양곡을 주었다. 그리고 고려 사람으로 압록강을 건너가 살고 있던 자들도 병란으로 스스로 돌아왔다.581) 고려에서는 이들을 구제함과 아울러 서북면 일대에 나누어 살게함으로써 홍건적에 대한 방어력의 보강도 함께 꾀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같은 달 무오일에 홍건적 3,000명이 압록강을 건너와 약탈한 뒤 돌아갔는데 도지휘사 김원봉이 이것을 감추고 보고하지 않았으므로 호부시랑 鄭之祥을 파견하여 엄중히 견책한 일이 있다.582) 이 사건이 홍건적 침입의 시발탄이었던 것이다.

575)≪元史≫권 41, 本紀 41, 順帝 至正 3년 6월 임자. 한편≪元史≫권 51, 志 3下, 五行 2, 稼穡不成條에 의하면 순제가 즉위한 이후 매년 흉년이 들어 길가에는 죽은 사람이 가득하고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또≪新元史≫권 25, 至正 14년 12월 기유조에서도 수도에서조차 혈육지간인 부자끼리도 서로 잡아먹을 지경에 이를 정도였다고 하였다.
576)≪高麗史≫권 125, 列傳 38, 姦臣 1, 蔡河中.
577)≪高麗史節要≫권 26, 공민왕 3년 7월.
578) 金昊鍾,<恭愍王의 安東蒙塵에 관한 一硏究>(≪安東文化―人文社會科學―≫1, 1980), 2쪽.
579)≪高麗史≫권 39, 世家 39, 공민왕 6년 11월.
580)≪高麗史≫권 39, 世家 39, 공민왕 7년 3월.
581)≪高麗史≫권 39, 世家 39, 공민왕 8년 11월.
582) 위와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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