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려 시대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Ⅰ. 사상계의 변화1. 불교사상의 변화와 동향1) 무신정권기 불교계의 변화와 조계종의 대두
    • 01권 한국사의 전개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08권 삼국의 문화
    • 09권 통일신라
    • 10권 발해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1. 불교사상의 변화와 동향
          • 1) 무신정권기 불교계의 변화와 조계종의 대두
            • (1) 무신정권기 불교계의 현황
            • (2) 무신정권과 선종
            • (3) 조계종의 대두
          • 2) 지눌의 사상
            • (1) 선·교갈등의 문제
            • (2) 지눌의 생애
            • (3) 심성론
            • (4) 수행론
            • (5) 간화선
          • 3) 수선사의 성립과 전개
            • (1) 정혜결사의 취지와 창립 과정
            • (2) 최씨무신정권의 후원과 결사이념의 변화
            • (3) 원의 간섭과 수선사의 친원불교화
          • 4) 백련사의 성립과 전개
            • (1) 백련사 결사운동의 성립과 불교관
            • (2) 백련사 결사의 사회적 기반
            • (3) 백련사 결사운동의 전개와 추이
          • 5) 원의 정치간섭과 불교
            • (1) 고려와 원과의 관계
            • (2) 불교계의 동향
          • 6) 임제종의 수입과 불교계의 동향
            • (1) 임제종 수입과 그 배경
              • 가. 사상적 배경
              • 나. 임제선의 도입
            • (2) 임제선풍의 전개
              • 가. 보우의 선풍과 현실참여
              • 나. 혜근의 임제선 선양
              • 다. 경한의 무심선풍
            • (3) 그 후의 불교계
          • 7) 대장도감과 고려대장경판
            • (1) 대장경이란 무엇인가
            • (2) 고려대장경의 구성
            • (3) 고려대장경의 판각
              • 가. 고려대장경의 조조동기와 판각시기
              • 나. 대장도감 설치와 판각장소
            • (4) 대장경판의 해인사 전래와 유통
              • 가. 해인사에의 전래
              • 나. 고려대장경 판본의 유통
            • (5) 고려대장경의 위치
        • 2. 성리학의 전래와 수용
          • 1) 신유학의 전래와 고려 사상계의 동향
            • (1) 송대 신유학의 성립과 고려 유학계의 대응
            • (2) 고려 불교계의 변화와 새로운 유학사상
            • (3) 신진관료의 대두와 새로운 사풍의 전개
          • 2) 주자성리학의 수용과 특징
            • (1) 주자성리학의 수용
            • (2) 성리학 수용과정에서의 특징
          • 3) 불교와의 관계
            • (1) 성리학 전래 이전의 불교와 유학
            • (2) 불교배척운동과 새로운 유불관계의 형성
        • 3. 풍수·도참사상 및 민속종교
          • 1) 풍수·도참사상
            • (1) 풍수·도참사상의 변모
            • (2) 풍수타락의 원인과 지기론
            • (3) 남경천도설
          • 2) 민속종교
            • (1) 무격의 성격과 역할
              • 가. 강신무와 세습무
              • 나. 무격의 종교적 역할
            • (2) 무고
            • (3) 무격에 대한 열광적 신앙
            • (4) 무격배척과 금압
      • Ⅱ. 문화의 발달
        • 1. 과학과 기술
          • 1) 천문학
            • (1) 천문관측기구와 제도
            • (2) 관측활동과 그 기록들
            • (3) 역법의 정비
          • 2) 지리학과 지도
            • (1) 지도의 제작
            • (2) 풍수지리학
          • 3) 인쇄술과 제지기술
            • (1) 고려의 목판인쇄
            • (2) 청동활자 인쇄술의 발명
            • (3) 제지기술
          • 4) 무기제조와 조선
            • (1) 화약과 화포의 전래
            • (2) 화통도감과 화기의 제조
            • (3) 고려의 배
          • 5) 그 밖의 산업기술
            • (1) 도량형
            • (2) 물레바퀴
            • (3) 금속공예기술
            • (4) 목면의 재배와 무명의 등장
            • (5) 새로운 청자기술의 개발
          • 6) 의약학과 생물학
            • (1) 고려의학의 자주적 발전
            • (2) 고려의약학의 체계적 전개
            • (3) 의약의 교류
            • (4) 의료제도의 변천
            • (5) 동물의 사육
        • 2. 문자와 언어
          • 1) 문자
          • 2) 언어
        • 3. 문학
          • 1) 설화와 민간전승
          • 2) 속악가사
          • 3) 경기체가·시조·어부가·가사
          • 4) 불교문학
        • 4. 역사학
          • 1) 각훈의≪해동고승전≫
            • (1)≪해동고승전≫의 편찬
            • (2) 각훈의 생애와 편찬배경
            • (3)≪해동고승전≫의 특징과 문제
            • (4) 각훈의 역사인식
          • 2)<동명왕편>의 역사인식
            • (1)<동명왕편> 저술의 배경
            • (2)<동명왕편>에 나타난 역사의식
              • 가. 전통적 신이사관의 추구
            • (3) 고구려 계승의식의 표방
          • 3) 일연과≪삼국유사≫
            • (1) 일연의 생애와 사상적 경향
            • (2)≪삼국유사≫의 찬술기반
          • 4)≪제왕운기≫의 편찬
            • (1)≪제왕운기≫편찬의 배경과 동기
            • (2)≪제왕운기≫에 반영된 역사관
          • 5) 민지의≪본조편년강목≫
            • (1)≪본조편년강목≫의 편찬과 그 성격
            • (2) 민지의 생애와 기타 저술
            • (3) 민지의 사학사적 위치
          • 6) 이제현의≪국사≫
            • (1)≪국사≫의 편찬과 그 성격
            • (2) 이제현의 생애와 기타 사서
            • (3) 이제현의 역사서술과 그 인식
          • 7) 기타 역사서의 편찬
            • (1) 실록의 편찬
            • (2) 기타의 역사서
          • 8) 고려 후기 역사서술의 특징
            • (1) 무신집권기 사학의 위축
            • (2) 역사서술에 대한 원의 간섭
            • (3) 고려 말 사관제도의 보강
            • (4) 고려 당대사의 정리
            • (5) 역사의 문학적 표현
        • 5. 미술
          • 1) 건축
            • (1) 건축활동
            • (2) 강화궁궐 및 성곽
            • (3) 목조건축
              • 가. 주심포양식
              • 나. 다포양식
              • 다. 건물유구
          • 2) 석조물과 조각
            • (1) 석조물
              • 가. 석탑
              • 나. 석조부도
              • 다. 석등
              • 라. 석비
              • 마. 당간과 지주
            • (2) 조각
              • 가. 석불상
              • 나. 금동불상
              • 다. 철불상
              • 라. 소조불상
              • 마. 협저칠불상
              • 바. 목조불상
              • 사. 능묘조각
          • 3) 서화
            • (1) 회화
              • 가. 일반회화
              • 나. 불교회화
            • (2) 서예
          • 4) 공예
            • (1) 도자공예
              • 가. 12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전반-절정기
              • 나. 13세기 후반 이후-쇠퇴기
            • (2) 금속공예
            • (3) 목칠공예
        • 6. 음악
          • 1) 왕립음악기관의 제도와 활동범위
            • (1) 대악서·관현방·아악서의 유래와 체제
            • (2) 왕립음악기관의 음악인과 활동범위
          • 2) 향악
            • (1) 향악과 향악정재
              • 가. 신라향악의 전통과 그 방향
              • 나. 고려의 향악 및 향악정재의 등장
              • 다. 향악의 악조와 음악양식
            • (2) 향악기와 향악활동
              • 가. 향악기
              • 나. 향악활동
          • 3) 당악과 당악정재
            • (1) 송의 교방악사와 당악정재
              • 가. 송나라 교방악사의 등장
              • 나. 고려의 당악정재
            • (2) 고려의 당악과 당악기
              • 가.≪고려사≫ 악지의 당악곡
              • 나. 고려시대의 당악기
          • 4) 대성아악의 등장과 그 향방
            • (1) 대성아악의 아악기와 악현
              • 가. 아악기의 등장
              • 나. 아악의 악현과 연주절차
            • (2) 대성아악의 역사적 변천
          • 5) 고취악과 기악
            • (1) 고취악과 연주형태
            • (2) 기악과 잡기
              • 가. 기악과 잡기의 전통
              • 나. 잡기의 창우와 경시서의 여기
        • 7. 무용과 연극
          • 1) 산대잡극
            • (1) 연등회·팔관회와 백희
            • (2) 교방가무희
          • 2) 나희
          • 3) 조희
          • 4) 재인과 광대
        • 8. 체육
          • 1) 격구
          • 2) 궁사
          • 3) 투호
          • 4) 마상재(마술)
          • 5) 축국
          • 6) 수박
          • 7) 각저
        • 9. 민속
          • 1) 세시풍속
            • (1) 봄철의 세시풍속
              • 가. 원단
              • 나. 입춘
              • 다. 인일
              • 라. 자오일
              • 마. 상원
              • 바. 연등회
              • 사. 2월 초하루
              • 아. 석전
              • 자. 개빙
              • 차. 한식
              • 카. 상사
            • (2) 여름철의 세시풍속
              • 가. 불탄일
              • 나. 단오
              • 다. 유두
            • (3) 가을철의 세시풍속
              • 가. 칠석
              • 나. 백중
              • 다. 추석
              • 라. 중구
            • (4) 겨울철의 세시풍속
              • 가. 지신제
              • 나. 팔관회
              • 다. 동지
              • 라. 수세
          • 2) 민속놀이
            • (1) 예능적 내용
              • 가. 처용희
              • 나. 나희
              • 다. 산대잡희
              • 라. 수희
            • (2) 경기적 내용
              • 가. 격구
              • 나. 수박희
              • 다. 각저희
              • 라. 석전희
            • (3) 유희적 내용
              • 가. 추천희
              • 나. 지연희
              • 다. 호기희
              • 라. 척초희·초인희
              • 마. 농환희
              • 바. 장간희
              • 사. 죽마희
              • 사. 투란희
            • (4) 오락적 내용
              • 가. 위기
              • 나. 투호
              • 다. 저포희
              • 라. 쌍륙
        • 10. 의식주생활
          • 1) 의생활
            • (1) 개관
            • (2) 복제의 정비
            • (3) 몽고복식의 영향
            • (4) 고려 후기의 복식
          • 2) 식생활
            • (1) 곡물의 증산과 병과류의 기술증진
              • 가. 미곡의 증산
              • 나. 떡의 보급
              • 다. 유밀과의 성행과 다식
            • (2) 숭불환경과 차·채소음식·조면의 발달
              • 가. 차의 성행과 진다례·다정
              • 나. 청담한 채소요리의 발달
              • 다. 사원에서의 조면과 양주업
            • (3) 고기음식과 유즙, 기타 찬물류
              • 가. 고기음식과 우유
              • 나. 장류와 젓갈
              • 다. 기타 찬물류
            • (4) 고려의 대외교류와 식생활
              • 가. 원·객관·주식점의 개설과 접객양식
              • 나. 대외무역식품과 음식의 교류
              • 다. 연회와 제향음식
          • 3) 주생활
            • (1) 백성의 살림
            • (2) 제택의 규모와 생활
            • (3) 살림집의 성향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42권 대한제국
    • 43권 국권회복운동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46권 신문화운동 Ⅱ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Ⅰ. 사상계의 변화

1. 불교사상의 변화와 동향

1) 무신정권기 불교계의 변화와 조계종의 대두

(1) 무신정권기 불교계의 현황

 고려 귀족사회는 인종대 이후 제모순으로 말미암아 李資謙亂과 妙淸亂이 일어나고 뒤이어 무신란이 일어나 정치적·사회적 갈등이 노출되었고, 또한 고구려·백제·신라 등 삼국의 부흥운동까지 겪게 된다.0001) 의종 24년(1170)에 일어난 무신란은 무신간에 격렬한 갈등을 겪다가 최씨정권이 들어서면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 후 무신정권은 일찍이 없었던 몽고침략을 겪으면서도 원종 11년(1270)까지 1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이와 같은 무신집권하에서는 종래 귀족사회체제가 송두리째 무너졌으며, 불교계도 새로운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무신란이 일어나기 이전 고려 중기의 불교계는 華嚴宗·法相宗 등 교종이 귀족문벌과 결합하여 일세를 풍미했지만, 논리의 관념화와 풍부한 사원경제에 안주하여 대중과는 먼 거리에 있었다. 이러한 불교계를 개혁할 인물이 등장했으니 그가 義天(1055∼1101)이었다. 그는 본래 승려로 교학의 측면에서 性相의 兼學을 내세워 법상종에 대해 우위를 주장했고, 실천의 측면에서는 敎觀幷修를 주장하여 觀行이 결여된 기존 화엄종을 신랄히 비판하였다.0002) 그 결과 그는 天台宗을 창립하여 선종의 승려를 규합해 고려 중기의 불교계를 이끌어가는 중심적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무신란은 기존 불교계를 장악하고 있던 교종세력에게는 큰 변혁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 동안 교종세력은 귀족세력과 결합하여 사회·경제·정치적으로 특권을 누려왔지만, 무신란이 일어나면서 종래의 귀족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교종세력 또한 그들과 운명을 같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종세력은 문신귀족들과 결탁하여 무신정권에 저항하였는데, 이것은 무신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큰 위협이기도 하였다.0003) 무신정권이 안정기에 들어서기 전에는 부분적으로 저항했지만, 최씨무신정권이 들어서면서 위압과 폭력으로 강압정치를 실시하자 교종사찰이 조직적으로 항전태세를 갖추고 도전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0004)

 명종 4년(1174) 정월에 歸法寺 승려 100여 명이 봉기한 사건은 최씨정권이 들어서기 전의 불교계에 있었던 反武臣政權을 대표할 만한 사례이다. 이 사건으로 李義方이 동원한 1,000여 명의 군대로부터 수십 명의 승려들이 희생을 당하였다. 즉 귀법사 승려의 죽음으로 인해 重光寺·弘護寺 등 여러 절의 승려 2,000여 명이 李義方 형제를 죽이기 위해 다시 성문 앞에 집결하자, 이의방은 府兵을 모아 중광사·홍호사·龍興寺·妙智寺·福興寺 등의 절을 파괴하였으며 쌍방간에 많은 인명의 손실을 초래하였다.0005)

 명종 26년 崔忠獻이 李義旼을 제거하면서 무신 상호간에 벌어졌던 26년간의 정쟁은 마감됐지만, 최충헌이 집권하면서 사원세력이 조직적으로 무신정권에 반대하는 움직임에 가담하게 되었다. 명종 27년 9월 興王寺의 승려 寥一의 움직임과 大禪師 淵湛 등 10여 명의 승려가 中書令 杜景升, 樞密院副使 柳得義, 上將軍 高安祐, 大將軍 白富公, 親從將軍 周元迪, 將軍 石城柱, 侍郞 李尙敦, 郞中 宋韙·廉克鬈, 御史 申光漢 등과 함께 영남으로 유배된 것도 反崔忠獻運動을 도모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0006) 신종 5년(1202) 10월에 符仁寺·桐華寺 승려들이 淸道 雲門山의 농민과 함께 일으킨 반란이라든가,0007) 신종 6년 9월에 浮石寺·符仁寺·雙岩寺 승려들이 일으킨 난은0008) 지방의 경우이기는 하나 무신정권으로서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최충헌에게 도전한 사원세력 가운데 가장 심각했던 사건은 고종 4년(1217) 개경 근처의 사찰에서 발생하였다. 개경 가까이 접근해 온 거란군사를 물리치기 위해 동원된 興王寺·弘圓寺·景福寺·王輪寺·安養寺·修理寺 등의 승려들이 최충헌을 죽이기 위해 성안으로 들이닥쳐 최충헌의 家兵과 싸우다가 승군 300명이 희생되었다. 뒤이어 최충헌이 성문을 닫고 도망간 승군을 찾아 모두 죽이니 때마침 내린 비에 씻긴 피가 냇물을 이루었으며, 또다시 300명을 南溪寺 냇가에서 죽이니 이 사건에 연루되어 죽은 사람은 거의 800명이나 되었다.0009)

 최충헌은 반기를 든 사원세력 등에 대해 물샐틈없는 경비를 강화하였다.0010) 수많은 승려의 살상은 최씨정권이 불교계에 대해 새로운 대책을 수립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불교계를 등지고 정권을 공고히 한다는 것은 고려 사회체제에서는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최충헌은 집권 첫해인 명종 26년(1196)에 朝臣을 많이 살상했으므로 인심이 흉흉하자 使者를 여러 도에 보내 위무한 적이 있듯이,0011) 불교계의 환심을 사기 위한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아들을 조계종의 승려로 만들고0012) 고승에게 僧階를 후하게 내리는 선심을 보였다.0013) 최충헌이 선종을 선택한 것은 정권을 확고히 하는 과정에서 교종세력과 치열한 전투를 한 데서도 기인하는 것인데, 선종을 회생시키는 데 최충헌의 공헌은 절대적이었다.0014)

 최씨정권의 제2대 인물인 崔怡는 가장 오랜 30년간 정권을 장악한 인물로, 아버지 못지 않게 정권유지를 위해 불교계와 깊은 관련을 맺었다. 그 자신의 집권과정이 순탄치 못했기 때문에0015) 정권안정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아들 萬宗과 萬全(뒷날 沆)을 松廣寺에 보내 승려로 만들고 禪師의 승계를 내렸다.0016) 또한 修禪社 2세 眞覺國師 慧諶(1158∼1234)을 개경으로 불러들이려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자 두 아들에게 佛事에 필요한 물건을 보내 환심을 사고자 노력하였다.0017) 이 때 최이가 사자를 보내 답장을 요구하자, 혜심은 마지못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주었다.

야윈 학 고요히 소나무 꼭대기 달 위에 섰나니

한가로운 구름은 고갯마루 바람을 가벼이 좇네

그 가운데 면목은 천 리가 같거니

어찌 다시 한 통의 편지를 희롱하리

 (冲止,<謝崔怡送茶香韻>,≪圓鑑國師歌頌≫;≪韓國佛敎全書≫6, 395쪽).0018)

 이 시를 통해 수선사(송광사)를 장악하고자 하는 최이의 저의를 꿰뚫어 보는 혜심의 형안을 엿볼 수 있다. 최이는 불교계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않고, 고종 10년(1223)에 반발이 가장 심했던 흥왕사에 무려 황금 200근으로 만든 13층탑과 화병을 보내기도 하였으며,0019) 고종 17년에는 사원세력 장악을 시도하여 선교사원의 창건 연월과 실제의 상황을 조사해 장적을 만들기도 하였다.0020) 더 나아가 최이는 무신정권의 정신적 지주기능을 담당했던 禪源社(수선사의 분사)를 고종 32년에 창건하였다. 선원사가 창건되자 眞明國師 混元을 낙성회에 主盟으로 초청하고 수선사 제4세로 자리를 잇도록 조치하여0021) 사실상 선종을 장악하였다. 또 고종 18년에는 몽고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한 大藏經 조판이나 불경 간행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여기에는 최이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0022) 최씨정권은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수많은 인명 피해로 인한 정치적 불안을 불교를 통해 해소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무신정권하에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江華遷都로 개경 중심의 사찰은 약화되고 지방의 사찰들이 새로운 중심무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수선사나 白蓮社 같은 사찰이 대표적으로, 그 결과 불교의 성격이나 내용에도 질적인 변화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불교계의 지도자도 왕실이나 중앙귀족에서 지방향리나 독서층 출신으로 바뀌게 되었다.

0001) 閔賢九,<高麗中期 三國復興運動의 역사적 의미>(≪韓國史 市民講座≫5, 一潮閣, 1989) 참조.
0002) 崔柄憲,<東洋佛敎史上의 韓國佛敎>(≪韓國史 市民講座≫4, 1989), 35∼39쪽.
0003) 金鍾國,<高麗武臣政權と僧徒の對立抗爭に關する一考察>(≪朝鮮學報≫21·22, 1961).
0004) 閔賢九,<月南寺址 眞覺國師碑의 陰記에 대한 一考察>(≪震檀學報≫36, 1973), 30∼31쪽.
0005)≪高麗史節要≫권 12, 명종 4년 정월.
0006)≪高麗史節要≫권 13, 명종 27년 9월.

≪高麗史≫권 129, 列傳 42, 崔忠獻.
0007)≪高麗史節要≫권 14, 신종 5년 10월.
0008)≪高麗史節要≫권 14, 신종 6년 9월.
0009)≪高麗史節要≫권 15, 고종 4년 정월.
0010)≪高麗史≫권 129, 列傳 42, 崔忠獻.
0011)≪高麗史節要≫권 13, 명종 26년 5월.
0012)<崔忠獻墓誌>(≪朝鮮金石總覽≫상, 朝鮮總督府, 1919, 445쪽)에 의하면 靜和宅主가 낳은 둘째 아들을 출가시켜 조계종에 속하게 했다. 그리고 李奎報의<故華藏寺住持王師定印大禪師追封靜覺國師碑銘>(≪東國李相國集≫권 35)에서도 아들을 출가시켰음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순수한 종교심의 발로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李奎報의<捨子削髮齋疏>(≪東國李相國集≫권 41)에 의하면 사랑하는 자식을 출가시켜 나라의 기틀이 견고해지고 王業이 오랫동안 이어지기를 바랐음을 엿볼 수 있다.
0013) 李奎報의<第二世故斷俗寺住持(略)眞覺國師碑銘>(≪東國李相國集≫권 35)에서 慧諶이 選試를 거치지 않고 大禪師 僧階를 제수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최씨무신정권이 그 정당성을 얻기 위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비문에 나타난 그의 고결한 인격과 승속이 우러러보는 인품도 감안되었을 것이다.
0014) 李奎報,<昌福寺談禪牓>(≪東國李相國集≫권 25)에 의하면 고려시대 왕족이나 귀족들이 사찰을 세운다거나 重創하는 것은 흔한 예이나, 崔忠獻이 선종 부흥에 기여한 공은 유별난 의미가 있다. 특히 談禪法會는 본래 禪을 강론하는 자리지만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복을 비는 목적의식을 갖는다. 이 점에서 최충헌의 지원은 자신의 정권을 강화하는 데 일정한 기능을 담당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0015)≪高麗史≫권 129, 列傳 42, 崔忠獻 附 怡.
0016) 위와 같음. 崔怡가 두 아들을 출가시킨 것은 亂을 도모할까 두려워 출가시켰다고 했지만, 불교계 그것도 당시 가장 주목받던 송광사에 보낸 것은 불교계에 대한 심정적 동정과 앞으로 선종의 대표적 사찰 송광사를 장악하기 위한 예비적 포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0017) 李奎報,≪東國李相國集≫전집 권 35, 碑銘·墓誌<曹溪山第二世故斷俗寺住持修禪社主贈諡眞覺國師碑銘幷序>.
0018) 圓鑑國師 冲止(1226∼1293)의 저서에 이 시가 수록되어 있으나 실은 慧諶의 시로 보고 있다(秦星圭,<眞覺國師 慧諶의 現實認識>,≪又仁金龍德博士停年紀念史學論叢≫, 1988, 91쪽).
0019)≪高麗史節要≫권 15, 고종 10년 8월.
0020)≪三國遺事≫권 4, 義解 5, 寶壤梨木.
0021) 金 坵,<臥龍山慈雲寺王師贈諡眞明國師碑銘幷序>(≪止浦集≫권 3 ;≪東文選≫권 117).
0022) 李奎報,≪東國李相國集≫전집 권 25, 記·牓文·雜著 大藏刻板君臣祈告文.

崔凡述,<海印寺寺刊鏤板目錄>(≪東方學志≫11, 延世大, 1970).

朴相國 編,≪全國寺刹所藏木板集≫(文化財管理局,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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