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려 시대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Ⅱ. 문화의 발달5. 미술4) 공예(1) 도자공예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1. 불교사상의 변화와 동향
          • 1) 무신정권기 불교계의 변화와 조계종의 대두
            • (1) 무신정권기 불교계의 현황
            • (2) 무신정권과 선종
            • (3) 조계종의 대두
          • 2) 지눌의 사상
            • (1) 선·교갈등의 문제
            • (2) 지눌의 생애
            • (3) 심성론
            • (4) 수행론
            • (5) 간화선
          • 3) 수선사의 성립과 전개
            • (1) 정혜결사의 취지와 창립 과정
            • (2) 최씨무신정권의 후원과 결사이념의 변화
            • (3) 원의 간섭과 수선사의 친원불교화
          • 4) 백련사의 성립과 전개
            • (1) 백련사 결사운동의 성립과 불교관
            • (2) 백련사 결사의 사회적 기반
            • (3) 백련사 결사운동의 전개와 추이
          • 5) 원의 정치간섭과 불교
            • (1) 고려와 원과의 관계
            • (2) 불교계의 동향
          • 6) 임제종의 수입과 불교계의 동향
            • (1) 임제종 수입과 그 배경
            • (2) 임제선풍의 전개
            • (3) 그 후의 불교계
          • 7) 대장도감과 고려대장경판
            • (1) 대장경이란 무엇인가
            • (2) 고려대장경의 구성
            • (3) 고려대장경의 판각
            • (4) 대장경판의 해인사 전래와 유통
            • (5) 고려대장경의 위치
        • 2. 성리학의 전래와 수용
          • 1) 신유학의 전래와 고려 사상계의 동향
            • (1) 송대 신유학의 성립과 고려 유학계의 대응
            • (2) 고려 불교계의 변화와 새로운 유학사상
            • (3) 신진관료의 대두와 새로운 사풍의 전개
          • 2) 주자성리학의 수용과 특징
            • (1) 주자성리학의 수용
            • (2) 성리학 수용과정에서의 특징
          • 3) 불교와의 관계
            • (1) 성리학 전래 이전의 불교와 유학
            • (2) 불교배척운동과 새로운 유불관계의 형성
        • 3. 풍수·도참사상 및 민속종교
          • 1) 풍수·도참사상
            • (1) 풍수·도참사상의 변모
            • (2) 풍수타락의 원인과 지기론
            • (3) 남경천도설
          • 2) 민속종교
            • (1) 무격의 성격과 역할
            • (2) 무고
            • (3) 무격에 대한 열광적 신앙
            • (4) 무격배척과 금압
      • Ⅱ. 문화의 발달
        • 1. 과학과 기술
          • 1) 천문학
            • (1) 천문관측기구와 제도
            • (2) 관측활동과 그 기록들
            • (3) 역법의 정비
          • 2) 지리학과 지도
            • (1) 지도의 제작
            • (2) 풍수지리학
          • 3) 인쇄술과 제지기술
            • (1) 고려의 목판인쇄
            • (2) 청동활자 인쇄술의 발명
            • (3) 제지기술
          • 4) 무기제조와 조선
            • (1) 화약과 화포의 전래
            • (2) 화통도감과 화기의 제조
            • (3) 고려의 배
          • 5) 그 밖의 산업기술
            • (1) 도량형
            • (2) 물레바퀴
            • (3) 금속공예기술
            • (4) 목면의 재배와 무명의 등장
            • (5) 새로운 청자기술의 개발
          • 6) 의약학과 생물학
            • (1) 고려의학의 자주적 발전
            • (2) 고려의약학의 체계적 전개
            • (3) 의약의 교류
            • (4) 의료제도의 변천
            • (5) 동물의 사육
        • 2. 문자와 언어
          • 1) 문자
          • 2) 언어
        • 3. 문학
          • 1) 설화와 민간전승
          • 2) 속악가사
          • 3) 경기체가·시조·어부가·가사
          • 4) 불교문학
        • 4. 역사학
          • 1) 각훈의≪해동고승전≫
            • (1)≪해동고승전≫의 편찬
            • (2) 각훈의 생애와 편찬배경
            • (3)≪해동고승전≫의 특징과 문제
            • (4) 각훈의 역사인식
          • 2)<동명왕편>의 역사인식
            • (1)<동명왕편> 저술의 배경
            • (2)<동명왕편>에 나타난 역사의식
            • (3) 고구려 계승의식의 표방
          • 3) 일연과≪삼국유사≫
            • (1) 일연의 생애와 사상적 경향
            • (2)≪삼국유사≫의 찬술기반
          • 4)≪제왕운기≫의 편찬
            • (1)≪제왕운기≫편찬의 배경과 동기
            • (2)≪제왕운기≫에 반영된 역사관
          • 5) 민지의≪본조편년강목≫
            • (1)≪본조편년강목≫의 편찬과 그 성격
            • (2) 민지의 생애와 기타 저술
            • (3) 민지의 사학사적 위치
          • 6) 이제현의≪국사≫
            • (1)≪국사≫의 편찬과 그 성격
            • (2) 이제현의 생애와 기타 사서
            • (3) 이제현의 역사서술과 그 인식
          • 7) 기타 역사서의 편찬
            • (1) 실록의 편찬
            • (2) 기타의 역사서
          • 8) 고려 후기 역사서술의 특징
            • (1) 무신집권기 사학의 위축
            • (2) 역사서술에 대한 원의 간섭
            • (3) 고려 말 사관제도의 보강
            • (4) 고려 당대사의 정리
            • (5) 역사의 문학적 표현
        • 5. 미술
          • 1) 건축
            • (1) 건축활동
            • (2) 강화궁궐 및 성곽
            • (3) 목조건축
          • 2) 석조물과 조각
            • (1) 석조물
            • (2) 조각
          • 3) 서화
            • (1) 회화
            • (2) 서예
          • 4) 공예
            • (1) 도자공예
            • (2) 금속공예
            • (3) 목칠공예
        • 6. 음악
          • 1) 왕립음악기관의 제도와 활동범위
            • (1) 대악서·관현방·아악서의 유래와 체제
            • (2) 왕립음악기관의 음악인과 활동범위
          • 2) 향악
            • (1) 향악과 향악정재
            • (2) 향악기와 향악활동
          • 3) 당악과 당악정재
            • (1) 송의 교방악사와 당악정재
            • (2) 고려의 당악과 당악기
          • 4) 대성아악의 등장과 그 향방
            • (1) 대성아악의 아악기와 악현
            • (2) 대성아악의 역사적 변천
          • 5) 고취악과 기악
            • (1) 고취악과 연주형태
            • (2) 기악과 잡기
        • 7. 무용과 연극
          • 1) 산대잡극
            • (1) 연등회·팔관회와 백희
            • (2) 교방가무희
          • 2) 나희
          • 3) 조희
          • 4) 재인과 광대
        • 8. 체육
          • 1) 격구
          • 2) 궁사
          • 3) 투호
          • 4) 마상재(마술)
          • 5) 축국
          • 6) 수박
          • 7) 각저
        • 9. 민속
          • 1) 세시풍속
            • (1) 봄철의 세시풍속
            • (2) 여름철의 세시풍속
            • (3) 가을철의 세시풍속
            • (4) 겨울철의 세시풍속
          • 2) 민속놀이
            • (1) 예능적 내용
            • (2) 경기적 내용
            • (3) 유희적 내용
            • (4) 오락적 내용
        • 10. 의식주생활
          • 1) 의생활
            • (1) 개관
            • (2) 복제의 정비
            • (3) 몽고복식의 영향
            • (4) 고려 후기의 복식
          • 2) 식생활
            • (1) 곡물의 증산과 병과류의 기술증진
            • (2) 숭불환경과 차·채소음식·조면의 발달
            • (3) 고기음식과 유즙, 기타 찬물류
            • (4) 고려의 대외교류와 식생활
          • 3) 주생활
            • (1) 백성의 살림
            • (2) 제택의 규모와 생활
            • (3) 살림집의 성향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나. 13세기 후반 이후-쇠퇴기

 원종과 충렬왕에 의해 다스려지던 13세기 후반은 격동기로 100여 년간의 무신정권(1170∼1270)이 붕괴되고 몽고와의 화의가 성립하여, 그에 반대하는 三別抄에 의해 원종 11년부터 14년까지 항쟁이 계속된다. 그 이후 몽고의 간섭하에 들어간 고려는 원종 15년(1274)과 충렬왕 7년(1281) 일본원정에 참여한다. 그리고 충렬왕 원년부터는 원의 강요에 따라 전반적인 중앙관제의 개정을 보게 되고 그 이후 원의 경제적 수탈과 몽고식의 습속·언어가 유행하게 된다. 원의 세력에 배경을 둔 권문세족에 의한 고려의 신지배층의 성장은 고려도자에 있어서 원대 도자의 기형·문양이 반영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사진 3>靑瓷陽刻蓮瓣紋銅彩瓢形주전자     + 참고이미지
湖巖美術館 소장

 이 시기에 기준이 되는 도자자료는 고종 44년(1257)에 죽은 최항의 묘지와 함께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靑瓷陽刻蓮瓣紋銅彩瓢形주전자(호암미술관 소장,<사진 3>)와,≪고려사≫의 기록에 나타나는 畵金靑瓷에 관한 자료이다. 이 청자주전자는 표주박모양의 몸통에 외면은 연꽃잎을 양각하였고, 동자와 연줄기를 중간에 부착시켰으며 연꽃잎에 붉은 銅彩를 설채하였다. 그리고 점토가 섞인 耐火土받침으로 받쳐 구운 것으로 기벽이 두껍다. 이 주전자에서 주목되는 것은 고종 44년경까지도 상형의 주전자가 적정한 비례로 만들어졌고, 동채를 설채한 구체적인 예이며, 그리고 유색은 녹색이 짙게 시유되었다는 점이다.

 한편 화금청자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① 仁規가 일찍이 畵金磁器를 (황제께) 바친 일이 있었다. 世祖가 “금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릇이 견고해지라고 하는 것인가”를 물었다. 조인규가 “다만 채색하는 것 뿐입니다”라고 답하였다. 또 “그 금을 다시 쓸 수 있느냐”라고 묻자, “자기란 것은 쉽게 깨어지므로 금도 역시 그에 따라서 파괴되고 맙니다. 어찌 다시 쓸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세조가 그 대답을 좋게 여겨 지금부터는 자기에 금으로 그림을 그리지 말고 진헌하지 말라고 명하였다(≪高麗史≫권 105, 列傳 18, 趙仁規).

② 郎將 黃瑞를 元에 보내어 金畵甕器·野雉와 耽羅의 소고기를 바쳤다(≪高麗史≫ 권 31, 世家 31, 충렬왕 23년 정월 임오).

 ①②의 기록으로 보아 조인규가 원의 세조를 만난 것으로 추정되는 충렬왕 15년(1289)부터 충렬왕 23년 사이에 화금자기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이에 부합되는 화금자기로는 개성 만월대 궁터에서 발견된 靑瓷象嵌猿兎紋畵金扁壺(<사진 4>)와 靑瓷象嵌牡丹唐草紋畵金대접을 들 수 있다.

<사진 4>靑瓷象嵌猿兎紋畵金扁壺     + 참고이미지
國立中央博物館 소장

 이 화금청자편호는 마름모꼴의 문양대를 구획한 것과 편호의 형태 그리고 양쪽 옆면에 해바라기꽃 모양의 寶相唐草紋의 등장과, 담청색으로 바뀌고 있는 유색, 두꺼워진 기벽 등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예로 보아 1290년대를 전후로 하여 원대 도자의 기형과 문양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특히 충렬왕은 사치와 유락을 좋아하던 왕으로서 화금청자 등 특이한 도자가 많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충선왕·충숙왕에 의해 다스려지던 14세기 전반은 원나라 세력에 배경을 둔 권문세족에 의해 이끌어지던 시기였다. 무신정권이 붕괴된 후 대두한 이들은 고려 후기의 지배세력으로서 높은 관직을 차지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하였으며 경제적으로는 광대한 농장을 소유하는 대토지소유자였다. 또한 이 시기에 고려와 원과의 긴밀한 관계는 왕실과 상류층을 중심으로 원의 법속·의복·변발·혼인 등을 통해 깊어졌으며, 성리학이 수용되고 새로운 불교(라마교)가 받아들여진다. 귀족들의 불교신앙의 한 형태로서 이 시기에 뛰어난 高麗佛畵가 제작되고 寫經이 성행하여 널리 알려진 대로 오늘날 국내외에 많은 예가 남아 있다.0708) 이처럼 권문세족에 의해 고려불화의 제작과 사경이 성행하는 화려한 일면을 간직한 이 시기에 고려도자에도 원나라 도자의 기형과 문양이 널리 반영되기 시작한다. 원의 靑華白瓷에 흔히 보이는 쌍봉문·보상당초문·파도문·용문·어문 등이 고려청자에 나타나며,0709) 吉州窯産도자에 보이는 굵은 음각선으로 간결한 문양을 나타낸 후 鐵釉가 시유되는 철유자기 등이 제작된다.

 이 시기 도자의 모습을 보면, 기형에서는 梅甁이 줄어들고 측면이 편평한 廣口壺 등이 많이 만들어지며, 대접은 저부가 깊어지고 각이 진 조그만 접시류들이 많아지며, 口部가 내만된 기형이 많아진다. 기벽은 두꺼워지고 유색은 담청색·회청색계로 바뀌고 있다. 상감의 무늬는 산만한 구도로 되거나 필치가 조잡해지고, 같은 문양의 반복 사용으로 도안화되기 시작하여, 종속되는 문양에는 이미 印花技法으로 문양을 시문하는 방법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다. 포류수금문·운학문·여지문·국화문 등이 그대로 쓰이고 있으나 간략해지고 운학문의 경우 雨點紋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굽다리는 두껍고 굽 안바닥에 규석받침이나 모래받침으로 받쳐 구워진다.

<사진 5>靑瓷象嵌蒲柳水禽紋「己巳」銘대접     + 참고이미지
國立中央博物館 소장

 이 시기로 추정되는 干支의 명문이 있는 대접·접시의 예를 보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靑瓷象嵌蒲柳水禽紋「己巳」銘대접은 내만된 낮은 대접이다(<사진 5>). 그런데 대접 안바닥에 흑상감으로 표기하고 그 주위에 二重緣帶와 如意頭紋帶를, 내측면에는 대칭으로 연못가의 버드나무와 갈대·오리를 포치하였고, 외면에는 두 겹의 원 안에 국화를 네 곳에 배치하고, 그 외면을 당초문대로, 위아래 면에는 草紋帶와 蓮瓣紋帶를 간결하게 나타냈다. 유색은 회청색계의 청자유가 얇게 시유되었으며, 이러한 대접 외에도 안바닥이 움푹 파인 반원형의 대접, 각이 진 접시, 잔 등에 이러한 干支銘靑瓷가 나타난다. 己巳銘은 충숙왕 16년(1329), 庚午銘은 충숙왕 17년, 壬申銘은 충숙왕 복위 1년(1332), 癸酉銘은 충숙왕 복위 2년, 甲戌銘은 충숙왕 복위 3년, 壬午銘은 충혜왕 복위 3년(1342), 丁亥銘은 충목왕 3년(1347)으로 추정된다. 특히 강진 사당리요지에서 이러한 간지명의 청자가 거의 대부분 출토되었으며, 至正(1341∼1367)銘과 함께 정해명대접편이 출토되었는데 문양의 포치가 다른 간지명편과 유사하다.0710)

 굽다리에는 커진 규석받침과 모래받침으로 받쳐 구워졌으며 胎土에 모래가 섞이고 거칠어진다. 문양에 있어 특이한 보상당초문이 이어져 꽉차게 채워진 壺·盒·鉢·甁 등이 보이며, 운봉문·용문·어문 등이 널리 쓰이고 있다.

 공민왕·우왕으로 이어지는 14세기 후반은 전환의 시기였다. 원·명의 교체가 이루어진 이 시기에 지배세력인 권문세족에 도전하는 새로운 사회세력이 대두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신흥사대부였다. 신흥사대부들은 권문세족의 정치권력 독점과 농장확대에 따른 정치·경제·사회적 혼란을 시정하기 위해 개혁정치를 주장하였다. 이들은 지방의 鄕吏 출신이 많았으며 점차 중소지주로 성장하고 과거를 통하여 중앙의 관리로 진출하여 왕권강화를 꾀하는 공민왕 때에 그들의 개혁정치를 추진해 갔으며, 결국 신흥무인들의 협력으로 고려에 대신하여 조선왕조를 세우게 되는 것이었다. 이 시기 40여 년간에 걸친 왜구들의 극심한 침략과 홍건적의 침입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해안가 50리 안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 때문에 해상의 조운이 끊겨 정부는 재정이 곤란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바닷가의 농민들은 계속된 약탈 속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모습이 이 시기의 고려도자에 반영되게 된다.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등장하는 신흥사대부들의 요구에 따라 도자도 실생활에 널리 쓰여질 수 있도록 튼튼하고 실용적인 그릇의 다량생산이 필요해지기 시작한다. 신흥사대부들은 성리학을 그들의 생활이념으로 삼으면서 검소하고 실용적이며 합리적인 생활을 추구하게 된다. 또한 그들은 전국적인 세력분포를 보이고 있었다.

 유기 대신 사기·목기를 전용하라는≪고려사≫의 기록처럼0711) 실용적 도자기의 다량생산이 요구되었다. 때마침 왜구의 침략으로 해안가에서 사람이 살 수 없고 조운을 통해 개경으로 운반되던 稅船이 왜구의 습격을 받아 조운이 막히게 되었으므로 육로를 통한 육운이 요청되던 때였다.0712) 강진·부안의 해안가에 위치해 있던 이 시기의 가마들은 왜구의 침략으로 파괴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들 새로운 지배세력의 요구와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필요성에 따라 전국적으로 내륙지방 곳곳에 가마가 설치되고 도자기생산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의 기반이 확대되어 나타난 것이 조선 세종 6년(1424)부터 세종 14년에 걸쳐 조사되어≪世宗實錄地理志≫에 수록된 324개소에 달하는 陶瓷所의 가마들이다.0713)

 이 시기의 도자로 알려진 것은 강진 사당리요지에서 至正銘과 함께 출토된 靑瓷象嵌柳蓮紋梅甁片과 공민왕 14년(1365)에 사망한 공민왕비의 능인「正陵」銘의 청자상감대접 그리고 강원도 원주 令傳寺址三層石塔내에서 우왕 14년(1388) 洪武銘의 석판과 함께 발견된 靑瓷象嵌重圈紋대접, 金剛山 月出峰 출토의 공양왕 3년(1391) 洪武銘의 白瓷鉢·白瓷香爐 등의 자료가 있다.

 1350년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靑磁象嵌柳蓮紋梅甁은 잘록한 모습의 홀쭉한 매병으로 구부는 外反되었고, 胴上部에는 간략해진 유문과 연화를 대칭으로 나타내고, 위 아래에는 큼직한 연판문대를 두르고 있다. 유색은 암녹색으로 변하였으며 釉面은 거칠다.0714) 이와 같은 14세기 후반의 매병은 15세기 전반 粉靑瓷梅甁의 모체가 된다.「정릉」명 청자상감대접은 간지명의 청자보다 간략해졌으며 특히 중심되는 문양으로 특이한 모란당초문을 내측면 네 곳에 포치시킨 형태로, 이후의 대접문양의 주류를 이루게 되며 이러한 모란당초문은 14세기 전반의 문양이 간략하게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우왕 14년의 청자상감중권문대접은 간략해진 상감문양의 대접으로 굵은 모래받침으로 받쳐 구운 것이 주목되는데, 14세기 말의 수많은 가마에서 주로 이러한 예가 발견되고 있어 그 추이를 짐작케 해준다. 백자발의 경우는, 공양왕 3년 홍무명의 것이 15세기 백자발의 원형을 보여주는데, 14세기 말에 硬質의 백자가 존재한다는 점과 담청을 머금은 白瓷釉가 거친 태토 위에 시유된 조선 초기의 백자와 비슷한 것이 특징이다.

 이 시기는 도자에 있어 새로운 전환의 시기로, 이 때에 촉진된 도자의 실생활화는 뚜렷한 변화의 조짐이었다. 따라서 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폐쇄된 강진·부안요를 대신하여 수많은 실용적인 도자를 제작하는 가마들이 전국의 내륙지방에 세워졌으며 대량생산의 기반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기반 위에 15세기 전반의 세종연간에 도자가 그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 구체적인 증거로≪세종실록지리지≫에 실린 324개소에 달하는 도자소는 곧 이은 조선시대 분청자·백자제작의 모체가 되었던 것이다.

0708) 安輝濬,≪韓國繪畵史≫(一志社, 1980), 75∼80쪽.
0709) 中野徹,<元·明靑華白磁の文樣>(≪陶磁講座≫ 7, 雄山閣, 1973).
0710) 尹龍二,<干支銘 象嵌靑瓷의 製作時期에 관하여>(≪海剛陶磁美術館圖錄≫2, 1991), 114∼118쪽.
0711)≪高麗史≫ 권 85, 志 3, 刑法 2.
0712) 羅鐘宇,<高麗末期의 麗日關係 -倭寇를 中心으로->(≪全北史學≫ 4, 1980).
0713) 尹龍二,<粉靑瓷窯址의 分布와 特色>(≪梨大博物館圖錄≫13 : 粉靑沙器, 1984), 112∼116쪽.
0714) 鄭良謨, 앞의 책.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