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Ⅰ. 과학2. 천문 기상학4) 해시계와 물시계의 제작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1. 전통적 자연관
          • 1) 재이현상으로 본 전통적 자연관
            • (1) 가뭄으로 본 재이
            • (2) 그 밖의 재이 몇 가지
          • 2) 풍수지리로 본 자연관
            • (1) 한양 천도의 논리
            • (2) 태종의 음양지리
            • (3) 세종대의 논의
            • (4) 이지함과 남사고의 유산
          • 3) 유학사상을 통해 본 자연관-유교정치와 자연
            • (1) 일식과 태양 관련의 자연현상
            • (2) 연산군의 정치 천문학
            • (3) 중종대 암탉의 수탉 되기
        • 2. 천문 기상학
          • 1) 서운관·관상감의 설치와 그 기능
            • (1) 관장업무와 직제
            • (2) 관아와 관측규정
          • 2)<천상열차분야지도>
            • (1) 그 성립과 구성
            • (2) 관측연대와 조선 천문도
          • 3) 천문대와 관측기기
            • (1) 간의대의 설치
            • (2) 간의대의 관측기기
          • 4) 해시계와 물시계의 제작
            • (1) 세종대의 해시계
            • (2) 자격루와 옥루
          • 5) 천문학 서적의 간행
            • (1)≪칠정산내외편≫과 역학서의 편찬
            • (2)≪제가역상집≫과≪천문유초≫
          • 6) 측우기의 발명과 농업기상학의 발달
            • (1) 측우기와 수표의 발명
            • (2) 농업기상학의 발달
        • 3. 물리학과 물리기술
          • 1) 도량형과 자기의 이론
          • 2) 자석과 자기의 이론
          • 3) 수리기술과 기계장치
          • 4) 화약과 화기의 제조
        • 4. 의약과 약학
          • 1) 의약정책
            • (1) 고려 의학의 계승
            • (2) 향약 장려정책
            • (3) 중국 약의 이식과 재배
            • (4) 약재의 무역
            • (5)≪신주무원록≫의 편찬
          • 2)≪향약집성방≫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 배경과 과정
            • (2) 특징과 의의
          • 3)≪의방유취≫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과정과 편집방식
            • (2) 인용문헌
            • (3) 오늘날 전하는≪의방유취≫
          • 4) 의서의 편찬과 간행
            • (1) 중국의서의 수입과 간행
            • (2) 국내 의서의 편찬과 간행
            • (3) 허준의 의서 편찬
            • (4) 의서의 언해
          • 5)≪동의보감≫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배경과 저술과정
            • (2) 내용과 편집체계
            • (3) 특징과 의학사적 의의
            • (4) 간본
          • 6) 다원적인 의료상황
            • (1) 의학의 분화
            • (2) 온천·냉천 및 한증욕의 발달
            • (3) 양생술의 유행
            • (4) 종교적 의료
      • Ⅱ. 기술
        • 1. 농업과 농업기술
          • 1) 농업과 그 환경
            • (1) 자연환경
            • (2) 인구와 농업노동력
            • (3) 노동수단
            • (4) 노동대상
          • 2) 농업기술
            • (1) 수전농법
            • (2) 한전농법
            • (3) 서지법
            • (4) 시비법
            • (5) 경법과 쟁기
            • (6) 농구체계
          • 3) 농업기술의 성격
        • 2. 인쇄기술
          • 1) 금속활자의 주조 및 조판인쇄
            • (1) 관주활자
            • (2) 민간활자
          • 2) 목활자의 제작 및 조판인쇄
          • 3) 목판의 판각 및 인쇄
          • 4) 서적의 인쇄
            • (1) 관판본
            • (2) 국왕 및 왕실판본
            • (3) 사찰판본
            • (4) 서원판본
            • (5) 사가판본
        • 3. 군사기술
          • 1) 화약과 화기의 전래
          • 2) 화약의 제조
          • 3) 화기제작기술의 부침
            • (1) 화기발달의 시초(태종대)
            • (2) 화기발달의 진전(세종 전기)
          • 4) 조선 중기의 화기
            • (1) 총통
            • (2) 발사물
            • (3) 화약무기의 특징
      • Ⅲ. 문학
        • 1. 한문학
          • 1) 한문학의 맥락
            • (1) 조선왕조 개국과 한문학
            • (2)≪동문선≫과 조선문학
            • (3) 문이재도론의 전개
          • 2) 사림파의 한문학
            • (1) 목릉성세와 성정미학
            • (2) 사림파의 품격론
            • (3) 사림파의 음영성정
        • 2. 국문학
          • 1) 훈민정음 창제와 국문학
          • 2)≪용비어천가≫와≪월인천강지곡≫
          • 3) 악장과 경기체가
          • 4) 시조와 가사
          • 5) 설화와 소학지희
        • 3. 언어
          • 1) 문자생활
            • (1) 한자와 한글
            • (2) 한글의 사용과 보급
          • 2) 언어
            • (1) 한글문헌과 그 언어
            • (2) 음운
            • (3) 문법
            • (4) 어휘
      • Ⅳ. 예술
        • 1. 음악
          • 1) 왕립음악기관의 역사적 변천과 활동범위
            • (1) 왕립음악기관의 역사적 변천
            • (2) 장악원의 직제와 활동범위
          • 2) 아악의 부흥
            • (1) 건국 초기의 악가제정
            • (2) 세종대의 율관제작과 악기제조
            • (3) 세종대의 아악제정과 박연
            • (4) 아악이론과 음악양식
          • 3) 향악과 향악정재
            • (1) 향악기와 향악곡
            • (2) 향악의 음악양식
            • (3) 향악정재와 민속악
          • 4) 당악과 고취악
            • (1) 당악과 당악정재
            • (2) 당악의 향악화와 음악양식
            • (3) 고취악
          • 5) 악서와 기보법
            • (1) 악보와 악서편찬
            • (2) 새 기보법의 창안
        • 2. 건축
          • 1) 건축기법과 특징
          • 2) 도성의 건설
            • (1) 도성건설의 개요
            • (2) 태조의 도성건설
            • (3) 태종의 도성건설
            • (4) 세종과 그 이후의 도성건설
          • 3) 읍성의 축조와 관아시설
            • (1) 읍성의 축조
            • (2) 관아의 시설
          • 4) 사전의 건축
            • (1) 사단의 조영
            • (2) 사묘 건축
            • (3) 학교 건축
          • 5) 사원의 건축
          • 6) 민가의 건축
        • 3. 도자
          • 1) 분청사기와 조선청자
            • (1) 분청사기
            • (2) 조선청자
          • 2) 조선백자
            • (1) 세계도자사와 조선백자
            • (2) 조선백자의 시작과 확산
            • (3) 조선백자의 변천
          • 3) 청화백자
          • 4) 조선백자의 문양
          • 5) 사옹원과 분원
            • (1) 사옹원
            • (2) 분원
            • (3) 분원의 운영개요
        • 4. 회화
          • 1) 고려전통의 계승과 중국화풍의 수용
            • (1) 고려전통의 수용
            • (2) 중국화풍의 수용
          • 2) 왕공·사대부와 회화
          • 3) 도화서와 화원
          • 4) 회화의 제경향
            • (1) 안견의 화풍
            • (2) 강희안과 강희맹의 화풍
            • (3) 이상좌의 화풍
            • (4) 이장손·최숙창·서문보의 화풍
            • (5) 이암·신사임당의 화풍
          • 5) 일본 무로마찌시대 회화에 미친 영향
        • 5. 서예
          • 1) 송설체의 유행
          • 2) 왕희지체의 전통
          • 3) 금석과 사경의 서풍
          • 4) 한글서체의 필사화
        • 6. 공예
          • 1) 금속공예
            • (1) 범종
            • (2) 사리장엄구
            • (3) 향로
            • (4) 청동운판과 대발
            • (5) 도검
            • (6) 생활용구와 장신구
          • 2) 목칠공예
            • (1) 목공예
            • (2) 칠공예
        • 7. 조각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4) 해시계와 물시계의 제작

(1) 세종대의 해시계

 조선시대 해시계 제작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세종실록≫에서 처음으로 발견된다. 仰釜日晷·懸珠日晷·天平日晷·定南日晷 등이 그것이다. 세종 19년(1437) 4월에 끝난 일련의 천문기기 제작사업에서 만들어 낸 해시계들이다. 짧은 기간에 이렇게 여러 가지 해시계들이 제작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며, 해시계에 대한 자세한 구조가 공식 기록으로 설명된 일도 이례적인 것이다. 세종 때의 해시계 제작은 그만큼 史官들의 주목을 받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해시계들 중에서 앙부일구는 특히 우리 나라 최초의 공중시계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세종 16년 10월에 ‘우매한 백성들’도 보고 시간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이 해시계는 그 모양과 구조가 독특한 점에서도 특히 돋보이는 것이다.≪세종실록≫에는 이 해시계가≪원사≫에 기재된 곽수경의 법에 따라 만들었다고 하고, 金墩의 仰釜日晷銘을 인용하여 그 구조와 제작의의를 설명하고 있다.

처음으로 앙부일구를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하여 해그림자를 관측하다. 집현전 직제학 김돈이 명을 짓기를, ‘모든 시설에서 시간에 관한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는데, 밤에는 更漏가 있으나 낮에는 알기 어렵다. 구리를 부어서 그릇을 만들었는데, 모양이 가마솥과 같다. 지름에는 둥근 송곳을 설치하여 북에서 남으로 마주 대하게 했고, 움푹 패인 곳에서 (선이) 휘어서 돌게 했으며, 점을 깨알같이 찍었는데, 그 속에 度를 새겨서 半周天을 그렸다. (時)神의 모양을 그린 것은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것으로, 시각이 정확하고, 해그림자가 명확하다. 길가에 설치한 것은 보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백성도 이것을 만들 줄 알게 되었다’라고 하였다(≪世宗實錄≫권 66, 세종 16년 10월 기사).

 김돈이 설명한 앙부일구의 구조는 지금 남아 있는 조선 중기에 제작된 청동제 앙부일구와 그 이후에 제작된 여러 개의 앙부일구와 기본적으로 같다. 앙부일구란 가마솥 또는 대접 모양의 그릇이 위를 향해 있는 모양을 한 해시계라는데서 붙은 이름이다. 그 半球形의 대접과 같은 모양의 時盤에는 동지에서 하지에 이르는 24절기를 13선의 緯線을 그려서 절기를 나타냈고, 이에 수직으로 시각선(자오선)을 그었다. 그리고 時標는 북극을 향하여 비스듬이 세워졌다. 다만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해서 그 시에 해당하는 동물의 형상을 그려 넣었을 뿐이다. 지금 탑골공원에 남아 있는 앙부일구대로 미루어 볼 때, 종묘 앞과 혜정교에 설치했던 앙부일구는 비교적 큰 공중 해시계였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김돈이 쓴대로 그 때부터 백성도 그런 해시계를 만들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앙부일구의 제작이 많아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남아 있는 앙부일구 중에 자기로 만든 것이 여러 개가 있다는 사실은, 조선 초기 이후의 도자기 생산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여러 가마에서 앙부일구를 만들어 보급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앙부일구는 원의 곽수경이 만든 仰儀에서 그 원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세종 때의 학자들이 쓴 그대로일 것이다. 그러나 해시계로서의 앙부일구는 세종 때 천문학자들과 이천·장영실 등의 창조적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해시계는 중국에서는 더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조선에서는 세종 때 이후 조선의 대표적 해시계로 정착되어, 조선 후기까지 계속 제작 사용되었다. 그리고 휴대용 앙부일구로까지 발전하여 양반들에게 사랑받는 해시계가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江戶시대의 일본 지배층에서도 그것을 모방해서 만든 휴대용 해시계가 사용되었다.

 현주일구와 천평일구는 휴대용 해시계였다. 이에 대한≪세종실록≫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또 현주일구를 만들었다. 밑바침은 네모나게 했고 그 길이는 6촌 3푼이다. 밑바침 북쪽에는 기둥을 세우고 남쪽에는 못을 팠다. 북쪽 (기둥 앞에는) +字를 그리고 그 기둥 머리에 추를 달아매서 (그 추가) 십자와 서로 닿게 하여 水準을 보지 않아도 자연히 수평이 되게 하였다. 그리고 작은 바퀴(원반)에 1백각을 그려 넣었는데, 바퀴의 지름은 3촌 2푼 (바퀴에 붙은) 자루가 비스듬히 기둥에 꿰어져 있다. 그 바퀴의 중심에 구멍이 있어 한 가닥 가는 줄을 꿰어 위는 기둥 끝에 매고 아래는 밑바침의 남쪽에 매어, 그 줄의 그림자 위치로 시각을 알게 되어 있다.

천평일구는 그 제도가 현주일구와 거의 같은데, 단지 밑바탕의 남쪽과 북쪽에 못을 파고, 그 중심에 기둥을 세워 노끈을 기둥 머리에 꿰고 이것을 들어서(기둥을 세워서) 남쪽을 가리키게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세종실록≫권 77, 세종 19년 4월 갑술).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의 휴대용 해시계 제작에 대한 첫 공식 기록이다. 그리고 이 기록은 이 해시계의 구조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현주일구는 적도식 해시계이다. 100각의 시반을 받침대에 수직으로 세운 기둥에 적도와 평행하게 끼어 고정하고 시반의 중심과 기둥의 윗 끝, 그리고 받침대의 한 끝을 잇는 실을 시표로 해서 해그림자를 측정하는 장치인 것이다. ‘현주’라는 이름은 시표와 시반을 지지하는 기둥이 수직으로 세워지게 하기 위해서 구슬을 매달아 일정한 위치에 드리우게 한 장치를 특징으로 한데서 지어졌다. 그리고 천평일구는 평면 해시계이다. 이동할 때 언제라도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받침대에 2개의 못을 만들어 거기에 물을 부어 시반의 수평을 제대로 잡기 위한 장치를 특징으로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시표는 수직으로 세운 막대 끝과 밑받침대를 잇는 끈으로 된 삼각시표의 원형이었다. 아마도 이 해시계들은 세종 때 관료 과학자들이 처음으로 만들어 낸 휴대용 해시계였다고 생각된다. 조선정부는 이 두 휴대용 해시계를 다른 시간 측정기기와 함께 함길·평안도 도절제사 營과 경원·회령·종성·온성 등의 변방에도 보내서 시간을 측정하는데 쓰게 했다. 그리고 그 일부를 서운관에도 두었다고 했다. 여러 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세종실록≫은 또 말을 타고 가다가 시간을 알고 싶을 때에도 쓰기 위해서 이들 휴대용 해시계를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이것은 시간 측정기기의 제작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 창조적인 작품이었다.

 定南日晷는 또 다른 특징을 가진 해시계였다. 지남침을 쓰지 않아도 남북이 스스로 정해질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정남일구라는 이름이 붙었다.≪세종실록≫에는 그 구조와 크기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밑바탕의 길이가 1척 2촌 5푼의 이 해시계는 수평을 정확하게 잡기 위해서 물도랑과 둥근 못을 만들어 놓았다. 받침대의 양쪽에 기둥이 있고 거기에 地平環과 四遊環을 설치했다. 사유환에는 규형이 있고, 지평환에는 아래 쪽에 半周天環을 설치했다. 그리고 북쪽 축의 한 끝에 추를 매달아 기둥의 수직을 잡을 수 있게 했다. 그러니까 정남일구는 현주·천평일구의 특징과 간의의 일부를 하나로 해서, 그것으로 관측하면 자연히 남북이 정해지면서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만든 매우 정밀한 해시계이다. 말하자면 간단한 간의가 달린 해시계인 것이다. 15개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이들 3가지 해시계는≪세종실록≫에 자세한 구조설명이 기술되어 있고, 그것들이 원의 곽수경 천문기기 중에서 본떠 만들었다는 기록도 없는 것으로 보아 세종 때 천문학자들의 발명품이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곽수경이 제작한 천문기기 중에 이러한 해시계는 없다. 새로운 해시계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맑은 날이 많아서 해시계에 의한 낮시간의 측정이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는 우리 나라 날씨의 특징을 세종 때의 천문학자들이 효과적으로 이용하려고 시도한 결과였다. 이렇게 해서 시간의 측정은 훨씬 쉬워지고 보편화되었다. 적어도 낮시간은 많은 사람들이 여러 곳에서 언제라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시계의 보급이 크게 늘어난 것은 조선 초기 사람들의 규칙적인 생활과 관료사회의 통제에서 시간에 의한 규범이 설정되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해시계는 서울에서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시간에 의한 규칙적인 생활규범을 자리잡게 했다.

 세종 때에 만들어진 또 다른 시계 중에 日星定時儀가 있다. 이것은 태양시와 항성시를 측정하는 이른바 ‘밤낮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기기’라는 색다른 시계이다. 시계라기 보다는 관측기기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 시계는 세종 때의 천문학자들이 매우 중요한 천문기기로 여겼던 것 같다.≪세종실록≫의 기사는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종 때에 만든 일련의 천문기기 제작사업의 완성을 말하는 세종 19년(1437) 4월 15일의 공식 기록은 일성정시의의 완성을 보고하는 글로 시작하고 있다. 이어서 김돈이 지은 序와 銘을 인용하면서 그 제작 경위와 의의, 그리고 구조에 대한 설명을 매우 자세하게 쓰고 있다. 또 이례적으로 “≪元史≫에도 별로써 시각을 정하는 말이 있으나 그 측정하는 방법은 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에 밤낮으로 시각을 재는 기기를 만들 것을 명하여 그 이름을 ‘일성정시의’로 하였다”고 말해, 곽수경의 星晷定時儀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일성정시의는 적도와 평행하게 설치한 직경 2척의 원반에 周天度를 새긴 고리, 100각을 새긴 해시계 시반의 고리와 100각을 새긴 별시계 시반의 고리 등으로 이루어진 3개의 고리로 구성된 관측기기이다. 그래서 ‘밤낮으로 시간을 아는 기기’라고 했다. 곽수경의 성귀정시의를 밤낮으로 다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시계로 탈바꿈해 놓은 것이다. 여기에는 밑받침대의 수평을 정확히 잡기 위한 물도랑과 못, 그리고 시표를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서 기둥의 수직을 잡는 구슬추 장치 등이 만들어졌다. 거기에 경복궁에 설치한 궁정용 일성정시의는 구름과 용을 장식하여 궁정 관측기기로서의 위용을 갖추기까지 했다. 용을 장식한 관측기기는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모두 4벌을 만들어 하나는 경복궁의 안 뜰에, 나머지는 서운관 관측용으로, 또 함길·평안 두 도의 절제사 營에서 ‘군중의 경비하는 일’에 쓰게 했다.086)

 일성정시의는 세종 때 이후에도 몇 차례 더 만들어 서운관에서 관측용으로 사용되었고, 각 도 감사의 청사에서 시간 측정용으로 쓰이게 했다. 또 휴대용으로 ‘小定時儀’라고 부른 축소된 모델도 만들어 시간 측정기기로 활용되었다. 지방에서는 이것을 써서 물시계의 오차를 교정하기도 했다.

086)≪世宗實錄≫권 77, 세종 19년 4월 갑술.

Needham, J. et.al, 앞의 책(1986), 44∼64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