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Ⅰ. 과학3. 물리학과 물리기술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1. 전통적 자연관
          • 1) 재이현상으로 본 전통적 자연관
            • (1) 가뭄으로 본 재이
            • (2) 그 밖의 재이 몇 가지
          • 2) 풍수지리로 본 자연관
            • (1) 한양 천도의 논리
            • (2) 태종의 음양지리
            • (3) 세종대의 논의
            • (4) 이지함과 남사고의 유산
          • 3) 유학사상을 통해 본 자연관-유교정치와 자연
            • (1) 일식과 태양 관련의 자연현상
            • (2) 연산군의 정치 천문학
            • (3) 중종대 암탉의 수탉 되기
        • 2. 천문 기상학
          • 1) 서운관·관상감의 설치와 그 기능
            • (1) 관장업무와 직제
            • (2) 관아와 관측규정
          • 2)<천상열차분야지도>
            • (1) 그 성립과 구성
            • (2) 관측연대와 조선 천문도
          • 3) 천문대와 관측기기
            • (1) 간의대의 설치
            • (2) 간의대의 관측기기
          • 4) 해시계와 물시계의 제작
            • (1) 세종대의 해시계
            • (2) 자격루와 옥루
          • 5) 천문학 서적의 간행
            • (1)≪칠정산내외편≫과 역학서의 편찬
            • (2)≪제가역상집≫과≪천문유초≫
          • 6) 측우기의 발명과 농업기상학의 발달
            • (1) 측우기와 수표의 발명
            • (2) 농업기상학의 발달
        • 3. 물리학과 물리기술
          • 1) 도량형과 자기의 이론
          • 2) 자석과 자기의 이론
          • 3) 수리기술과 기계장치
          • 4) 화약과 화기의 제조
        • 4. 의약과 약학
          • 1) 의약정책
            • (1) 고려 의학의 계승
            • (2) 향약 장려정책
            • (3) 중국 약의 이식과 재배
            • (4) 약재의 무역
            • (5)≪신주무원록≫의 편찬
          • 2)≪향약집성방≫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 배경과 과정
            • (2) 특징과 의의
          • 3)≪의방유취≫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과정과 편집방식
            • (2) 인용문헌
            • (3) 오늘날 전하는≪의방유취≫
          • 4) 의서의 편찬과 간행
            • (1) 중국의서의 수입과 간행
            • (2) 국내 의서의 편찬과 간행
            • (3) 허준의 의서 편찬
            • (4) 의서의 언해
          • 5)≪동의보감≫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배경과 저술과정
            • (2) 내용과 편집체계
            • (3) 특징과 의학사적 의의
            • (4) 간본
          • 6) 다원적인 의료상황
            • (1) 의학의 분화
            • (2) 온천·냉천 및 한증욕의 발달
            • (3) 양생술의 유행
            • (4) 종교적 의료
      • Ⅱ. 기술
        • 1. 농업과 농업기술
          • 1) 농업과 그 환경
            • (1) 자연환경
            • (2) 인구와 농업노동력
            • (3) 노동수단
            • (4) 노동대상
          • 2) 농업기술
            • (1) 수전농법
            • (2) 한전농법
            • (3) 서지법
            • (4) 시비법
            • (5) 경법과 쟁기
            • (6) 농구체계
          • 3) 농업기술의 성격
        • 2. 인쇄기술
          • 1) 금속활자의 주조 및 조판인쇄
            • (1) 관주활자
            • (2) 민간활자
          • 2) 목활자의 제작 및 조판인쇄
          • 3) 목판의 판각 및 인쇄
          • 4) 서적의 인쇄
            • (1) 관판본
            • (2) 국왕 및 왕실판본
            • (3) 사찰판본
            • (4) 서원판본
            • (5) 사가판본
        • 3. 군사기술
          • 1) 화약과 화기의 전래
          • 2) 화약의 제조
          • 3) 화기제작기술의 부침
            • (1) 화기발달의 시초(태종대)
            • (2) 화기발달의 진전(세종 전기)
          • 4) 조선 중기의 화기
            • (1) 총통
            • (2) 발사물
            • (3) 화약무기의 특징
      • Ⅲ. 문학
        • 1. 한문학
          • 1) 한문학의 맥락
            • (1) 조선왕조 개국과 한문학
            • (2)≪동문선≫과 조선문학
            • (3) 문이재도론의 전개
          • 2) 사림파의 한문학
            • (1) 목릉성세와 성정미학
            • (2) 사림파의 품격론
            • (3) 사림파의 음영성정
        • 2. 국문학
          • 1) 훈민정음 창제와 국문학
          • 2)≪용비어천가≫와≪월인천강지곡≫
          • 3) 악장과 경기체가
          • 4) 시조와 가사
          • 5) 설화와 소학지희
        • 3. 언어
          • 1) 문자생활
            • (1) 한자와 한글
            • (2) 한글의 사용과 보급
          • 2) 언어
            • (1) 한글문헌과 그 언어
            • (2) 음운
            • (3) 문법
            • (4) 어휘
      • Ⅳ. 예술
        • 1. 음악
          • 1) 왕립음악기관의 역사적 변천과 활동범위
            • (1) 왕립음악기관의 역사적 변천
            • (2) 장악원의 직제와 활동범위
          • 2) 아악의 부흥
            • (1) 건국 초기의 악가제정
            • (2) 세종대의 율관제작과 악기제조
            • (3) 세종대의 아악제정과 박연
            • (4) 아악이론과 음악양식
          • 3) 향악과 향악정재
            • (1) 향악기와 향악곡
            • (2) 향악의 음악양식
            • (3) 향악정재와 민속악
          • 4) 당악과 고취악
            • (1) 당악과 당악정재
            • (2) 당악의 향악화와 음악양식
            • (3) 고취악
          • 5) 악서와 기보법
            • (1) 악보와 악서편찬
            • (2) 새 기보법의 창안
        • 2. 건축
          • 1) 건축기법과 특징
          • 2) 도성의 건설
            • (1) 도성건설의 개요
            • (2) 태조의 도성건설
            • (3) 태종의 도성건설
            • (4) 세종과 그 이후의 도성건설
          • 3) 읍성의 축조와 관아시설
            • (1) 읍성의 축조
            • (2) 관아의 시설
          • 4) 사전의 건축
            • (1) 사단의 조영
            • (2) 사묘 건축
            • (3) 학교 건축
          • 5) 사원의 건축
          • 6) 민가의 건축
        • 3. 도자
          • 1) 분청사기와 조선청자
            • (1) 분청사기
            • (2) 조선청자
          • 2) 조선백자
            • (1) 세계도자사와 조선백자
            • (2) 조선백자의 시작과 확산
            • (3) 조선백자의 변천
          • 3) 청화백자
          • 4) 조선백자의 문양
          • 5) 사옹원과 분원
            • (1) 사옹원
            • (2) 분원
            • (3) 분원의 운영개요
        • 4. 회화
          • 1) 고려전통의 계승과 중국화풍의 수용
            • (1) 고려전통의 수용
            • (2) 중국화풍의 수용
          • 2) 왕공·사대부와 회화
          • 3) 도화서와 화원
          • 4) 회화의 제경향
            • (1) 안견의 화풍
            • (2) 강희안과 강희맹의 화풍
            • (3) 이상좌의 화풍
            • (4) 이장손·최숙창·서문보의 화풍
            • (5) 이암·신사임당의 화풍
          • 5) 일본 무로마찌시대 회화에 미친 영향
        • 5. 서예
          • 1) 송설체의 유행
          • 2) 왕희지체의 전통
          • 3) 금석과 사경의 서풍
          • 4) 한글서체의 필사화
        • 6. 공예
          • 1) 금속공예
            • (1) 범종
            • (2) 사리장엄구
            • (3) 향로
            • (4) 청동운판과 대발
            • (5) 도검
            • (6) 생활용구와 장신구
          • 2) 목칠공예
            • (1) 목공예
            • (2) 칠공예
        • 7. 조각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수리기술과 기계장치

 조선초까지도 수리기술의 대종을 이루는 것은 둑을 쌓거나 다스리는 수준에 머물렀다. 태종 15년(1415) 벽골제를 다시 쌓는 데에는 9월에서 10월까지 1만 명을 동원했는데, 그 둘레가 77,406步, 길이가 60,843尺이며, 뚝의 아래 넓이가 70자, 위넓이는 30자, 높이는 17자였다. 수문 5개는 각기 13자인데, 이로 인해 9,840結의 논에 물을 댈 수 있었다.105) 전래의 가장 확실한 수리시설은 둑을 쌓고 관리·보수하는 일이었고, 이를 잘 해내기 위해 堤堰司가 있었다. 제언사의 보고에 의하면 중종 18년(1523) 현재 남쪽 지방의 제언수는 대략 전라도 900, 경상도 800, 충청도 500개소 이상이라고 되어 있다.106)

 수리를 위해 어떤 기계장치를 이용한다는 의식은 그리 발달해 있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세종 때 庾順道는 ‘渴烏激水’의 방법을 써서 가뭄에 물을 끌어 올리는 실험을 실시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기록이 있다. ‘갈오’란 스포이드 같은 장치를 뜻하는 것으로, 즉 구부러진 관을 써서 낮은 곳의 물을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리려던 것으로 보인다. 세종 13년(1431) 5월 유순도는 임금에게 건의해서 이 실험을 실시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는 임금에게 자기가 작은 대나무로 만들었을 때는 성공했는데, 이번에는 되지 않는다고 보고하였다. 모세관 현상을 잘못 오해해서 큰 관을 써도 물이 위로 올라올 것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107) 태조 5년(1396) 문과에 급제한 유순도는 세종 3년에는 중국에 서장관으로 다녀온 일도 있고, 일찍이 태종 때에는 왕명으로 중국에까지 가서 공부하고 돌아온 자로서 천문학, 의학분야에서 당대의 최고 권위자였다. 그러나 아직 모세관 현상에 대한 이해는 없었음을 알 수 있다.

 水車를 이용하자는 제안에 대한 처음 기록은 고려말 白文寶의 경우에서 찾을 수 있다. 공민왕 11년(1362) 密直提學 백문보는 중국에서는 수차를 써서 가뭄에도 쉽게 물을 대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그 이익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며 수차 보급을 강력히 주장했다.108) 태종 7년(1407)에 이르러 사헌부의 지방 수령에 대한 권장 사항의 하나로 수차 보급을 들고 있다. 농민에게 수차를 제조케 하거나 만들어 보급한 성과를 수령의 공적으로 치라는 것이었다.109)

 세종 11년(1429) 12월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朴瑞生은 귀국보고에서 일본의 수차에 대해 보고하고, 그것을 대략 만들어 올려 보급하기를 권했다. 일본의 수차는 급류에 설치하면 저절로 움직이지만 물살이 느린 곳에서는 저절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력으로 운동을 도우면 될 것이라며 倭水車 보급을 주장했던 것이다.110) 세종은 수차의 개량 보급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수차가 작동 즉시 물이 새어 관개 효과가 없음을 보고받자, 세종 13년 5월에 왕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모두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수차가 왜 우리 나라에서만 사용되지 못하느냐고 묻고 관계자를 각 도에 파견하여 수차를 관리하게 하였다.111)

 다음달 박서생은 전에 이미 보고했던 일본에서의 수차 이용의 예를 들면서 그 동안 수차의 제작이 잘못되어 사용되지 못했다고 지적하였다. 공조참의였던 그는 일본통신사로 갔을 때 그를 따라가 수차를 연구하고 온 金愼에게 수차 제작을 감독하게 하라고 건의했다. 그는 수차 제작의 네 가지 요체는 수차의 크기, 격수판의 크기, 물통의 크기와 간격, 물살을 세게 만드는 기술 등에 달렸다고 설명하였다. 설치한 지역에 따라 수차의 모양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 해 6월 이 건의를 받아들여 세종은 김신에게 수차를 만들어 시험해 보라고 명했다.112)

 이렇게 만들어진 수차는 10월에 시험되었고, 그 결과가 기록되어 남아 있다. 왜수차와 吳致善이 만든 수차를 시험해 본 결과 왜수차는 관개용으로 사용할 만하지만, 오치선의 수차는 우물물을 길어올리는 데에나 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보급을 권고받은 세종은 각 도에서 그 모양을 보고 스스로 만들어 내년 농사에 쓸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또 그 해 11월에는 왜수차와 함께 唐水車도 제작하도록 지시한 일도 있다. 세종 때 일본과 중국의 수차를 국내에 보급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연말에는 두 가지 수차의 제조 기술자가 경기·충청도에 1명, 전라·경상도에 1명씩 파견되었다.113)

 세종 16년 6월 왕은 세 왕자와 도승지 安崇善에게 藏義門 밖에 설치되어 있는 자격수차를 구경하고 오라고 지시했다. 안숭선이 좋다고 보고하자 임금은 자기도 한번 가 보겠다고 다짐했다.114) 그러나 세종의 이런 노력은 그리 좋은 성과를 올리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1년 뒤인 세종 17년 여름에 여러 도에 설치했던 수차를 없애라고 명한 것이다. 그 이유로는 하루에 길어올리는 물의 양이 너무 적고, 멀리 끌어올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관리들의 닥달로 농민들의 원성을 사기 때문이라고 밝혀져 있다. 임금은 자원하는 곳에서만 없애지 말라고 지시했다.115) 세종은 이런 실패가 백성들이 옛 것을 그대로 지키려고만 하지 새 것을 싫어하는 습성 때문이라고 못마땅히 여겼던 것 같다. 세종은 수차나 제언이 모두 농사에 긴요함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런‘守舊厭新’의 태도 때문에 보급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116)

 문종 역시 수차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으나, 그 결과는 그리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117) 성종 19년(1488)에는 중국까지 표류했다가 돌아온 崔溥가 중국식 수차를 소개하고, 이를 감독해 직접 만들었으며, 연산군 2년(1496)에는 지방에 가서 수차 제작기술을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118)

 연산군 8년에는 金益慶이 수차를 만들었지만 역시 크게 환영받지 못하였다. 승지가 김익경의 수차가 정교하게 만들어졌으니 이를 본떠 보급하자고 건의하자 임금은 백성들이 쉽게 만들 수 없을 뿐 아니라 가뭄에 수차가 어찌 크게 쓸모가 있겠느냐면서 가까운 지역에서나 실시해 보라고 했고, 결국 경기·충청 지역에서만 시험삼아 해 보도록 결정했다. 그 후 시험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조선초부터 계속 시험만 반복하였을 뿐이지 어떤 모델도 크게 성공했다는 증거가 없다.119)

 명종 원년(1546) 4월에도 비슷한 노력이 있었다. 경연자리에서 시독관이 제주도 사람으로 琉球에 표류했다가 중국에 들어가 福建 지방의 수차를 배워 돌아온 사람의 경우를 들어 그 수차를 제작해 보급하자고 나섰던 것이다. 나흘 뒤 호조에서는 크고 작은 수차를 만들었는데 서울에는 알맞는 물이 없으니 盤松池에서 시험할 것을 건의하여 허락받았다. 다시 이틀 뒤에는 호조판서가 작은 수차를 만들어 전국에 보급할 것을 건의하여 허락받았다.120)

 이처럼 조선 초기를 통해 수차는 끊임없이 제작되고 또 보급도 시도된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실제로 그 효과가 대단하지 못했던 것은 여러 예에서 알 수가 있다. 어느 경우도 수차의 제작 보급 결과가 어떠하였다는 기록이 없다. 그리고 언제나 수차의 제작 보급이 새삼스럽게 시작된 것처럼 기록은 전한다. 수차 보급과 사용이 실제로는 별로 성공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수차 실패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조선 초기의 수차는 그저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산발적으로 전수되고 실시되었을 뿐이어서 당시로서는 거의 사회경제적 의의가 없었다고 생각될 지경이다.121) 또는 가난 때문에 농민들이 수차를 만들 여유가 없었고, 우리 나라의 지세와 자연조건 및 토양이 대체로 자연수로 만족할 만했으며, 가물 때는 어차피 수차를 쓸 수도 없을 정도였다는 등의 원인을 들기도 한다. 또 수차에 사용할 알맞는 목재가 부족했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122) 여하튼 조선 전기 동안 수차에 대한 기술상의 변화는 별로 일어난 일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수차기술은 농업 기술로써 대단히 중요할 뿐 아니라 어떤 사회의 기계기술, 자료기술, 그리고 그 바탕이 되는 물리적 지식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에서 조선사회는 별로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세종 때 蔣英實이 만든 自擊漏와 玉漏는 물시계 내지 천문시계장치로서 중요한 것이지만, 그 기계적 특징에서 보자면 기계장치의 중요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자격루의 기본 장치는 말하자면 자동제어 시스템이어서 그 구조와 작동이 아주 복잡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비슷한 유물·유적이 남아 있지 않고, 작동을 설명하는 상세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은 오늘날 그 상세한 구조와 작동원리는 지금 전혀 짐작하기 어려운 형편이다.123)

105)≪增補文獻備考≫권 146, 田賦考 6, 提堰.
106)≪中宗實錄≫권 46, 중종 18년 정월 경술.
107)≪世宗實錄≫권 52, 세종 11년 12월 을미.
108)≪高麗史≫권 79, 志 33, 食貨 2.
109)≪太宗實錄≫권 12, 태종 6년 12월 을사.
110)≪世宗實錄≫권 46, 세종 11년 12월 을미.
111)≪世宗實錄≫권 52, 세종 13년 5월 경진.
112)≪世宗實錄≫권 52, 세종 13년 6월 을미.
113)≪世宗實錄≫권 54, 세종 13년 10월 신유·11월 기묘·12월 병진.
114)≪世宗實錄≫권 64, 세종 16년 6월 임자.
115)≪世宗實錄≫권 68, 세종 17년 6월 정미.
116)≪世宗實錄≫권 69, 세종 17년 9월 경진.
117)≪文宗實錄≫권 10, 문종 원년 11월 임자.
118)≪成宗實錄≫권 217, 성종 19년 6월 병진 및 권 219, 성종 19년 8월 을미.

≪增補文獻備考≫권 146, 田賦考 6, 堤堰.
119)≪燕山君日記≫권 43, 연산군 8년 3월 을해·병자.
120)≪明宗實錄≫권 3, 명종 원년 4월 기유·계축·을묘.
121) 李光麟,≪李朝水利史硏究≫(韓國硏究圖書館, 1961), 93쪽.
122) 全相運, 앞의 책, 176∼177쪽.
123) 남문현,<세종 자격루의 보시 시스템에 관한 연구>(≪한국과학사학회지≫11, 1989), 19∼38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