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Ⅱ. 기술3. 군사기술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1. 전통적 자연관
          • 1) 재이현상으로 본 전통적 자연관
            • (1) 가뭄으로 본 재이
            • (2) 그 밖의 재이 몇 가지
          • 2) 풍수지리로 본 자연관
            • (1) 한양 천도의 논리
            • (2) 태종의 음양지리
            • (3) 세종대의 논의
            • (4) 이지함과 남사고의 유산
          • 3) 유학사상을 통해 본 자연관-유교정치와 자연
            • (1) 일식과 태양 관련의 자연현상
            • (2) 연산군의 정치 천문학
            • (3) 중종대 암탉의 수탉 되기
        • 2. 천문 기상학
          • 1) 서운관·관상감의 설치와 그 기능
            • (1) 관장업무와 직제
            • (2) 관아와 관측규정
          • 2)<천상열차분야지도>
            • (1) 그 성립과 구성
            • (2) 관측연대와 조선 천문도
          • 3) 천문대와 관측기기
            • (1) 간의대의 설치
            • (2) 간의대의 관측기기
          • 4) 해시계와 물시계의 제작
            • (1) 세종대의 해시계
            • (2) 자격루와 옥루
          • 5) 천문학 서적의 간행
            • (1)≪칠정산내외편≫과 역학서의 편찬
            • (2)≪제가역상집≫과≪천문유초≫
          • 6) 측우기의 발명과 농업기상학의 발달
            • (1) 측우기와 수표의 발명
            • (2) 농업기상학의 발달
        • 3. 물리학과 물리기술
          • 1) 도량형과 자기의 이론
          • 2) 자석과 자기의 이론
          • 3) 수리기술과 기계장치
          • 4) 화약과 화기의 제조
        • 4. 의약과 약학
          • 1) 의약정책
            • (1) 고려 의학의 계승
            • (2) 향약 장려정책
            • (3) 중국 약의 이식과 재배
            • (4) 약재의 무역
            • (5)≪신주무원록≫의 편찬
          • 2)≪향약집성방≫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 배경과 과정
            • (2) 특징과 의의
          • 3)≪의방유취≫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과정과 편집방식
            • (2) 인용문헌
            • (3) 오늘날 전하는≪의방유취≫
          • 4) 의서의 편찬과 간행
            • (1) 중국의서의 수입과 간행
            • (2) 국내 의서의 편찬과 간행
            • (3) 허준의 의서 편찬
            • (4) 의서의 언해
          • 5)≪동의보감≫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배경과 저술과정
            • (2) 내용과 편집체계
            • (3) 특징과 의학사적 의의
            • (4) 간본
          • 6) 다원적인 의료상황
            • (1) 의학의 분화
            • (2) 온천·냉천 및 한증욕의 발달
            • (3) 양생술의 유행
            • (4) 종교적 의료
      • Ⅱ. 기술
        • 1. 농업과 농업기술
          • 1) 농업과 그 환경
            • (1) 자연환경
            • (2) 인구와 농업노동력
            • (3) 노동수단
            • (4) 노동대상
          • 2) 농업기술
            • (1) 수전농법
            • (2) 한전농법
            • (3) 서지법
            • (4) 시비법
            • (5) 경법과 쟁기
            • (6) 농구체계
          • 3) 농업기술의 성격
        • 2. 인쇄기술
          • 1) 금속활자의 주조 및 조판인쇄
            • (1) 관주활자
            • (2) 민간활자
          • 2) 목활자의 제작 및 조판인쇄
          • 3) 목판의 판각 및 인쇄
          • 4) 서적의 인쇄
            • (1) 관판본
            • (2) 국왕 및 왕실판본
            • (3) 사찰판본
            • (4) 서원판본
            • (5) 사가판본
        • 3. 군사기술
          • 1) 화약과 화기의 전래
          • 2) 화약의 제조
          • 3) 화기제작기술의 부침
            • (1) 화기발달의 시초(태종대)
            • (2) 화기발달의 진전(세종 전기)
          • 4) 조선 중기의 화기
            • (1) 총통
            • (2) 발사물
            • (3) 화약무기의 특징
      • Ⅲ. 문학
        • 1. 한문학
          • 1) 한문학의 맥락
            • (1) 조선왕조 개국과 한문학
            • (2)≪동문선≫과 조선문학
            • (3) 문이재도론의 전개
          • 2) 사림파의 한문학
            • (1) 목릉성세와 성정미학
            • (2) 사림파의 품격론
            • (3) 사림파의 음영성정
        • 2. 국문학
          • 1) 훈민정음 창제와 국문학
          • 2)≪용비어천가≫와≪월인천강지곡≫
          • 3) 악장과 경기체가
          • 4) 시조와 가사
          • 5) 설화와 소학지희
        • 3. 언어
          • 1) 문자생활
            • (1) 한자와 한글
            • (2) 한글의 사용과 보급
          • 2) 언어
            • (1) 한글문헌과 그 언어
            • (2) 음운
            • (3) 문법
            • (4) 어휘
      • Ⅳ. 예술
        • 1. 음악
          • 1) 왕립음악기관의 역사적 변천과 활동범위
            • (1) 왕립음악기관의 역사적 변천
            • (2) 장악원의 직제와 활동범위
          • 2) 아악의 부흥
            • (1) 건국 초기의 악가제정
            • (2) 세종대의 율관제작과 악기제조
            • (3) 세종대의 아악제정과 박연
            • (4) 아악이론과 음악양식
          • 3) 향악과 향악정재
            • (1) 향악기와 향악곡
            • (2) 향악의 음악양식
            • (3) 향악정재와 민속악
          • 4) 당악과 고취악
            • (1) 당악과 당악정재
            • (2) 당악의 향악화와 음악양식
            • (3) 고취악
          • 5) 악서와 기보법
            • (1) 악보와 악서편찬
            • (2) 새 기보법의 창안
        • 2. 건축
          • 1) 건축기법과 특징
          • 2) 도성의 건설
            • (1) 도성건설의 개요
            • (2) 태조의 도성건설
            • (3) 태종의 도성건설
            • (4) 세종과 그 이후의 도성건설
          • 3) 읍성의 축조와 관아시설
            • (1) 읍성의 축조
            • (2) 관아의 시설
          • 4) 사전의 건축
            • (1) 사단의 조영
            • (2) 사묘 건축
            • (3) 학교 건축
          • 5) 사원의 건축
          • 6) 민가의 건축
        • 3. 도자
          • 1) 분청사기와 조선청자
            • (1) 분청사기
            • (2) 조선청자
          • 2) 조선백자
            • (1) 세계도자사와 조선백자
            • (2) 조선백자의 시작과 확산
            • (3) 조선백자의 변천
          • 3) 청화백자
          • 4) 조선백자의 문양
          • 5) 사옹원과 분원
            • (1) 사옹원
            • (2) 분원
            • (3) 분원의 운영개요
        • 4. 회화
          • 1) 고려전통의 계승과 중국화풍의 수용
            • (1) 고려전통의 수용
            • (2) 중국화풍의 수용
          • 2) 왕공·사대부와 회화
          • 3) 도화서와 화원
          • 4) 회화의 제경향
            • (1) 안견의 화풍
            • (2) 강희안과 강희맹의 화풍
            • (3) 이상좌의 화풍
            • (4) 이장손·최숙창·서문보의 화풍
            • (5) 이암·신사임당의 화풍
          • 5) 일본 무로마찌시대 회화에 미친 영향
        • 5. 서예
          • 1) 송설체의 유행
          • 2) 왕희지체의 전통
          • 3) 금석과 사경의 서풍
          • 4) 한글서체의 필사화
        • 6. 공예
          • 1) 금속공예
            • (1) 범종
            • (2) 사리장엄구
            • (3) 향로
            • (4) 청동운판과 대발
            • (5) 도검
            • (6) 생활용구와 장신구
          • 2) 목칠공예
            • (1) 목공예
            • (2) 칠공예
        • 7. 조각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화약의 제조

 고려말 화약병기의 전래와 제조는 왜구 격퇴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화약제조에 최초로 성공한 자는 최무선343)인데, 그는 왜구 격퇴에 화기의 위력이 절대적임을 간파하고 오랫동안의 노력 끝에 李元344)이라는 자로부터 焰硝煮取術을 배워서 家僮 몇 사람으로 하여금 이를 습득하게 하였다. 그 후 수년 동안 주위의 몰이해와 비방을 무릅쓰고 마침내 국가의 공식 화약제조소인 火㷁都監을 설치하게 하였다.

 화기의 발달에서는 화기보다는 화약이 문제였고 화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염초의 확보가 가장 큰 난관이었다. 흑색 화약의 3요소(염초·유황·목탄) 중 목탄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유황은 희귀하기는 하나 일종의 광물이므로 비법이 있을 수 없고, 염초의 획득이 가장 문제였다. 3요소를 합하여 화약으로 劑合하는 기술과 더불어 塵土 중에서 염초를 煮取해내는 비법이야말로 화기발달의 관건이었는데, 焰硝匠 이원에게서 염초를 구워 쓸 기술을 배웠던 것이다. 또 그가 염초자취법, 즉 화약제조법을 습득한 시기는 우왕 3년(1377)의 화통도감 설치보다 수년이나 앞섰던 것이다.

 화통도감의 구성과 규모 등에 대해서는 고찰할 실마리가 전혀 없지만, 도감의 설치 이후 화약은 급속도로 발달해갔다. 도감 설치 이후 大將軍砲·二將軍砲 등 20여 종의 화기가 제조되었고 그 위력은 보는 사람들이 경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할 정도였다.345) 그리고 우왕 4년 4월에는 개경과 지방의 各寺에 火㷁放射軍을 정하였는데, 大寺에 3명, 中寺에 2명, 小寺에 1명으로 하였다.346) 즉 화기발사의 전문부대로 보여지는 화통방사군이 중앙과 지방의 각 시에 편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후 화기사용에 관한 기사를≪고려사≫에서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즉 화포를 증강하여 水戰에 대비하고, 擊毬와 더불어 화포희를 즐기며, 火箭으로써 적의 樹柵을 불살라 왜구를 격퇴하였는데, 그 절정은 우왕 6년의 전라도 鎭浦전투에서였다. 즉≪고려사≫의 邊安烈과 羅世傳에 의하면, 진포로 다가오는 왜선 500척을 화포로 완전히 궤멸시켜 큰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우왕 9년에는 珍島에서 화포로 적선 7척을 불태운 鄭地 將軍이 “일찍이 오늘과 같은 통쾌한 승리를 맛본 일은 없다”고 스스로 감탄하였다.

庚申年(우왕 6년) 가을에 왜선 3백여 척이 전라도 鎭浦에 침입했을 때 조정에서 崔茂宣의 화약을 시험해 보고자 하여, (무선을) 副元帥에 임명하고 都元帥 沈德符·上元帥 羅世와 함께 배를 타고 火具를 실어 바로 진포에 이르렀다. 왜구가 화약이 있는 줄 모르고 배를 한 곳에 집결시켜 힘을 다하여 싸우려고 했으므로, 무선이 화포를 발사하여 그 배를 다 태워버렸다. 배를 잃은 왜구는 육지에 올라와서 전라도와 경상도까지 노략질하고 도로 雲峰에 모였는데, 이 때 태조가 兵馬都元帥로서 여러 장수들과 함께 왜구를 (한 놈도) 빠짐없이 섬멸하였다. 이로부터 왜구가 점점 덜해지고 항복하는 자가 서로 잇따라 나타나서, 바닷가의 백성들이 생업을 회복하게 되었다(≪太祖實錄≫권 7, 태조 4년 4월 임오).

지금 왜구와 우리 수군이 감히 배를 타고 승부를 겨루지 못하는 것은 앞서 鎭浦전투가 있었고, 뒤에는 남해의 승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마음을 고쳐 정성을 바치는 것은 비록 전하께서 펴신 교화에 의한 것이나, 처음부터 火㷁과 火砲로써 우레와 벼락같이 떨쳐서, 그들의 혼을 빼앗고 간담을 서늘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면, 그 완악하고 사나운 것을 쉽게 굴복시키지 못했을 것이다(≪新增東國輿地勝覽≫권 22, 京都 下, 軍器寺).

 위의 자료에 의하면 왜선이 우리 선박과 승부를 겨루지 못하게 됨에 따라 여말 30년간의 치열한 賊勢를 물리치고 태평세월을 유지하게 되었음은 오로지 화약병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화약은 國威를 선양하고 포학하고 난종하는 자를 제거하여 태평시대를 유지하게 하는 큰 물건이었다. 그리고 왜구 섬멸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李成桂의 정치적 세력확충에 획기적 계기를 이룬 운봉대첩도 역시 화기의 위력에서 연유하였음을 새로이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화기가 왜구 격퇴에 유효하였는데도 화통도감은 설치된 지 10여 년 만인 창왕 원년(1389)에 혁파되어 군기시에 合屬되었다.347) 화통도감이 군기시에 합속되었다 하여 화기가 발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독립기구에서 다른 기관에 부속되었다고 함은 아무래도 그 비중이 줄어든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고, 또 이후 화기사용에 관한 기록이 현저히 희소해짐은 우연의 일치가 아닌 듯하다.

 그러면 화통도감이 혁파된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趙浚은 “무릇 도감은 일이 발생하면 설치하고,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폐지하는 것이 예이다”라고 혁파의 직접 동기를 내세웠으나, 그 동안에 왜구가 줄어들었다고는 볼 수 없다. 이는 표면상의 이유이고 다른 정책적인 배려가 작용하였을 터인데, 우선 冗官淘汰에 의한 경비절약과 官紀確立이 논의되고 있었다. 또 이면적으로 도감혁파의 주장은 조준과 이성계의 관계를 고려할 때, 田制 및 兵制의 개혁과 아울러 새로이 정권을 장악한 이성계일파의 시책으로 보인다. 화기이용에 따른 적대세력의 출현, 다시 말해서 이로 인한 병력의 분산을 방지하고자 하는 권력의 통일 내지 유지를 위한 방책이었던 듯하다. 아직 확고한 기초 위에 서지 못한 신흥세력에게는 고도의 군사력을 가진 화약병기의 발달은, 언제 갑자기 자파의 세력을 뒤엎을지도 모르는 결정적 요소로 경계와 억제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었을 것이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조선왕조의 개창 후에도 태조나 세조가 그들 자신은 뛰어난 무인이었는데도 화기발달에 대하여는 도리어 소극적인 태도 내지 억제하는 시책을 베푼 점과 관련지어 생각하면 이해될 듯하다.

 당시에 쓰여진 화기의 종류로는 銃筒·火箭·火筒·火㷁·火砲 등을≪고려사≫에서 찾아볼 수 있고,≪太祖實錄≫에는 大將軍砲·二將軍砲·三將軍砲·六花·石砲·火砲·信砲·火㷁·火箭·鐵翎箭·皮翎箭·蒺藜砲·鐵彈子·穿山·五龍箭·流火·走火·觸天火 등 18종이 나온다. 크게 보아 화포·화통 등 발사화기와 화전·철탄자 등 발사물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으나, 이들 화기가 각각 어떻게 다른지는 잘 알 수 없다.348)

 당시의 화기의 성능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직접적 사료는 없으나 후세의 것과 같이 탄환 종류를 발사하여 적을 살상하거나 파괴하는 능력은 아직 발달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대신 矢箭을 발사하여 목적물을 태우는 데 큰 효능이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화살이나 탄환에 맞았다는 표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뿐더러, 대량 파괴에 따른 심한 轟動을 나타내는 문구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인력이나 물리적 장치(弩)가 아닌, 화약의 폭발력으로 발사물을 발사한다는 점과 화전 등과 같이 발사물 자체에도 油類아닌 화약을 장치한 점에서 종래의 화공기와는 엄격히 구별된다. 발사물의 종류도 시전류에만 그치지 않고 금속제 탄환류의 출현까지 유추할 수 있는데≪태조실록≫에 보이는 철탄자가 바로 그것이다. 끝으로 발사물의 사정거리 역시 어느 정도였는지 전혀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나 그다지 멀지 않은 200보 내외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343)≪高麗史≫권 133, 列傳 46, 辛禑.

≪太祖實錄≫권 7, 태조 4년 4월 임오.

≪新增東國輿地勝覽≫권 2, 京都(下) 軍器寺.

柳成龍,≪西厓文集≫권 16, 雜著, 記火砲之始.
344) 李元이 원나라 사람인지, 중국 강남으로부터 온 상인 즉 명나라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최무선이 원에 들어가서 배워왔다는 주장도 있지만 최무선의 아들로 그 비법을 혼자 전수하여 이후 화약을 발전시킨 崔海山이 입원설을 말하고 있지 않은 이상(≪新增東國輿地勝覽≫권 2, 京都(下) 軍器寺 火藥庫記), 최무선은 고려에 온 중국인으로부터 비법을 습득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최무선의 입원설은 화약병기의 전래라든지, 그 근원이 되는 중원에 있어서의 유통식 화기의 출현 등을 연구하는 데 참고해야 할 것이다.
345)≪太祖實錄≫권 7, 태조 4년 4월 임오.
346)≪高麗史≫권 81, 志 35, 兵 1.
347)≪高麗史≫권 77, 志 31, 百官 2, 諸司都監各色 火㷁都監 및 권 118, 列傳 31, 趙浚.
348)≪고려사≫에 보이는 화포·화전·화통 등은 포괄적 명사로≪태조실록≫에 보이는 대장군 이하 각종이 모두 이 속에 포괄된다고도 볼 수 있으나 정확히는 알 수 없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