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Ⅲ. 문학1. 한문학2) 사림파의 한문학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1. 전통적 자연관
          • 1) 재이현상으로 본 전통적 자연관
            • (1) 가뭄으로 본 재이
            • (2) 그 밖의 재이 몇 가지
          • 2) 풍수지리로 본 자연관
            • (1) 한양 천도의 논리
            • (2) 태종의 음양지리
            • (3) 세종대의 논의
            • (4) 이지함과 남사고의 유산
          • 3) 유학사상을 통해 본 자연관-유교정치와 자연
            • (1) 일식과 태양 관련의 자연현상
            • (2) 연산군의 정치 천문학
            • (3) 중종대 암탉의 수탉 되기
        • 2. 천문 기상학
          • 1) 서운관·관상감의 설치와 그 기능
            • (1) 관장업무와 직제
            • (2) 관아와 관측규정
          • 2)<천상열차분야지도>
            • (1) 그 성립과 구성
            • (2) 관측연대와 조선 천문도
          • 3) 천문대와 관측기기
            • (1) 간의대의 설치
            • (2) 간의대의 관측기기
          • 4) 해시계와 물시계의 제작
            • (1) 세종대의 해시계
            • (2) 자격루와 옥루
          • 5) 천문학 서적의 간행
            • (1)≪칠정산내외편≫과 역학서의 편찬
            • (2)≪제가역상집≫과≪천문유초≫
          • 6) 측우기의 발명과 농업기상학의 발달
            • (1) 측우기와 수표의 발명
            • (2) 농업기상학의 발달
        • 3. 물리학과 물리기술
          • 1) 도량형과 자기의 이론
          • 2) 자석과 자기의 이론
          • 3) 수리기술과 기계장치
          • 4) 화약과 화기의 제조
        • 4. 의약과 약학
          • 1) 의약정책
            • (1) 고려 의학의 계승
            • (2) 향약 장려정책
            • (3) 중국 약의 이식과 재배
            • (4) 약재의 무역
            • (5)≪신주무원록≫의 편찬
          • 2)≪향약집성방≫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 배경과 과정
            • (2) 특징과 의의
          • 3)≪의방유취≫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과정과 편집방식
            • (2) 인용문헌
            • (3) 오늘날 전하는≪의방유취≫
          • 4) 의서의 편찬과 간행
            • (1) 중국의서의 수입과 간행
            • (2) 국내 의서의 편찬과 간행
            • (3) 허준의 의서 편찬
            • (4) 의서의 언해
          • 5)≪동의보감≫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배경과 저술과정
            • (2) 내용과 편집체계
            • (3) 특징과 의학사적 의의
            • (4) 간본
          • 6) 다원적인 의료상황
            • (1) 의학의 분화
            • (2) 온천·냉천 및 한증욕의 발달
            • (3) 양생술의 유행
            • (4) 종교적 의료
      • Ⅱ. 기술
        • 1. 농업과 농업기술
          • 1) 농업과 그 환경
            • (1) 자연환경
            • (2) 인구와 농업노동력
            • (3) 노동수단
            • (4) 노동대상
          • 2) 농업기술
            • (1) 수전농법
            • (2) 한전농법
            • (3) 서지법
            • (4) 시비법
            • (5) 경법과 쟁기
            • (6) 농구체계
          • 3) 농업기술의 성격
        • 2. 인쇄기술
          • 1) 금속활자의 주조 및 조판인쇄
            • (1) 관주활자
            • (2) 민간활자
          • 2) 목활자의 제작 및 조판인쇄
          • 3) 목판의 판각 및 인쇄
          • 4) 서적의 인쇄
            • (1) 관판본
            • (2) 국왕 및 왕실판본
            • (3) 사찰판본
            • (4) 서원판본
            • (5) 사가판본
        • 3. 군사기술
          • 1) 화약과 화기의 전래
          • 2) 화약의 제조
          • 3) 화기제작기술의 부침
            • (1) 화기발달의 시초(태종대)
            • (2) 화기발달의 진전(세종 전기)
          • 4) 조선 중기의 화기
            • (1) 총통
            • (2) 발사물
            • (3) 화약무기의 특징
      • Ⅲ. 문학
        • 1. 한문학
          • 1) 한문학의 맥락
            • (1) 조선왕조 개국과 한문학
            • (2)≪동문선≫과 조선문학
            • (3) 문이재도론의 전개
          • 2) 사림파의 한문학
            • (1) 목릉성세와 성정미학
            • (2) 사림파의 품격론
            • (3) 사림파의 음영성정
        • 2. 국문학
          • 1) 훈민정음 창제와 국문학
          • 2)≪용비어천가≫와≪월인천강지곡≫
          • 3) 악장과 경기체가
          • 4) 시조와 가사
          • 5) 설화와 소학지희
        • 3. 언어
          • 1) 문자생활
            • (1) 한자와 한글
            • (2) 한글의 사용과 보급
          • 2) 언어
            • (1) 한글문헌과 그 언어
            • (2) 음운
            • (3) 문법
            • (4) 어휘
      • Ⅳ. 예술
        • 1. 음악
          • 1) 왕립음악기관의 역사적 변천과 활동범위
            • (1) 왕립음악기관의 역사적 변천
            • (2) 장악원의 직제와 활동범위
          • 2) 아악의 부흥
            • (1) 건국 초기의 악가제정
            • (2) 세종대의 율관제작과 악기제조
            • (3) 세종대의 아악제정과 박연
            • (4) 아악이론과 음악양식
          • 3) 향악과 향악정재
            • (1) 향악기와 향악곡
            • (2) 향악의 음악양식
            • (3) 향악정재와 민속악
          • 4) 당악과 고취악
            • (1) 당악과 당악정재
            • (2) 당악의 향악화와 음악양식
            • (3) 고취악
          • 5) 악서와 기보법
            • (1) 악보와 악서편찬
            • (2) 새 기보법의 창안
        • 2. 건축
          • 1) 건축기법과 특징
          • 2) 도성의 건설
            • (1) 도성건설의 개요
            • (2) 태조의 도성건설
            • (3) 태종의 도성건설
            • (4) 세종과 그 이후의 도성건설
          • 3) 읍성의 축조와 관아시설
            • (1) 읍성의 축조
            • (2) 관아의 시설
          • 4) 사전의 건축
            • (1) 사단의 조영
            • (2) 사묘 건축
            • (3) 학교 건축
          • 5) 사원의 건축
          • 6) 민가의 건축
        • 3. 도자
          • 1) 분청사기와 조선청자
            • (1) 분청사기
            • (2) 조선청자
          • 2) 조선백자
            • (1) 세계도자사와 조선백자
            • (2) 조선백자의 시작과 확산
            • (3) 조선백자의 변천
          • 3) 청화백자
          • 4) 조선백자의 문양
          • 5) 사옹원과 분원
            • (1) 사옹원
            • (2) 분원
            • (3) 분원의 운영개요
        • 4. 회화
          • 1) 고려전통의 계승과 중국화풍의 수용
            • (1) 고려전통의 수용
            • (2) 중국화풍의 수용
          • 2) 왕공·사대부와 회화
          • 3) 도화서와 화원
          • 4) 회화의 제경향
            • (1) 안견의 화풍
            • (2) 강희안과 강희맹의 화풍
            • (3) 이상좌의 화풍
            • (4) 이장손·최숙창·서문보의 화풍
            • (5) 이암·신사임당의 화풍
          • 5) 일본 무로마찌시대 회화에 미친 영향
        • 5. 서예
          • 1) 송설체의 유행
          • 2) 왕희지체의 전통
          • 3) 금석과 사경의 서풍
          • 4) 한글서체의 필사화
        • 6. 공예
          • 1) 금속공예
            • (1) 범종
            • (2) 사리장엄구
            • (3) 향로
            • (4) 청동운판과 대발
            • (5) 도검
            • (6) 생활용구와 장신구
          • 2) 목칠공예
            • (1) 목공예
            • (2) 칠공예
        • 7. 조각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사림파의 한문학

(1) 목릉성세와 성정미학

 士林派는 勳舊士人에 대항하여 등장한 지식인 집단이다. 이들은 주자학을 이념으로 지닌 士人들이다. 당시 중국의 학계에 비하여 그들은 중국의 지식인들을 능가하는 존재로 확신했다. 사림파가 활동하던 穆陵盛世423)의 조선학계는 세계 최고의 학문수준을 구가하고 있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앞선 학문적 수준을 지녔다는 우월감은 寒岡 鄭逑의 다음과 같은 주장에서 확인된다.

지역에는 遠近이 없고 道에는 內外(中國·朝鮮;필자)가 없다. 退陶선생은 평생동안 우리 朱夫子의 학문에 潛心하여, 그를 흠모한 吟詠의 작품이 많은 터에 오히려 元·明의 諸子의 반열에 들지 못한 사실은 잘못이다(鄭逑,≪寒岡先生文集≫권 10, 武夷志跋).

 정구의 이 주장은 武夷櫂歌 和韻을 두고 한 것이긴 하나, 문맥 속에는 원·명의 지식인들보다 앞서 있다는 자긍이 담겨 있다. 그런데 철학인 주자학과 문학의 접맥은 문학의 입장에서 많은 위험이 따른다. 왜냐하면 철학의 매체나 도구로 전락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황과 이이가 도산서원과 은병정사에서 강의를 하고 시를 지었던 16세기 조선 사단의 경우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들은 문학, 즉 시가 지닌 탁월한 가치를 인정하여 문학이 철학의 예속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16세기에 들어와 성리학은 이론적으로 발전하여 主理論·主氣論 또는 이의 절충이 나타났다. 주리파와 주기파는 확연하게 구획지울 수 없지만, 그들이 창출한 문학의 양상은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주리·주기론의 분파적 전개는 당대 형이상학의 고도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人性과 物性의 상호 연관에 관한 인식에서 理發과 氣發의 논리가 형성된다. 문학은 이발·기발의 원인이 되는 外物의 有我的 형상과 無我的 형상 또는 외물에서 象을 취하느냐 義를 취하느냐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진다. 유아적 형상은 주관적, 무아적 형상은 객관적인 묘사로 알려져 있다. 성리학적 시각으로 말한다면 유아는 私요, 무아는 公이다.

 性情美學은 사를 배제하고 공을 근간으로 하며 유아를 배척하고 무아를 闡揚한다. 공은 외물과 內我가 간격이 없이 하나가 된 이른바 物我一體를 의미하고, 사는 人欲에 가리워져 天理가 흐르지 못하여 利와 惡에 의해 大公의 도리가 폐색된 것이다. 공과 사의 나뉘어짐은 티끌 정도의 간격이지만, 그 그 진행의 결과는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 넓어진다. 유아로 나아가게 하는 인욕은 인성이 외물과 접촉할 때 나타나는 것이고, 이목구비가 향수하는 聲色臭味는 인욕의 발동으로 말미암는 것인데, 인욕의 발동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공이 아닌 사로 전락한 경우로 이해했다.424) 그러므로 사림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外物認識을 갖는 것이었다. 외물과 내아가 물아일체가 되자면 유아를 버리고 무아가 되어야 한다. 무아의 경지에서는 天理가 流行한다. 천리는 물성과 인성이 하나가 되어야만 자연스럽게 유행한다. 이렇게 될 경우 仁·義·禮·智·信의 五性이 갖추어진다고 했다. 성정미학은 5성의 문학적 구현을 근본 목적으로 삼고 감성과 정감을 배제한다. 성정미학에서 배제한 감성과 정감은 절도에 부합되지 않은 情을 지칭한 것이다. 정은 원래 선한 것인데, 私(有我)에 의해 법도를 벗어난 이른바 橫發된 정을 뜻한다. 정이 절도에 어긋난 이유는 외물(사물)과 내아의 잘못된 접촉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조선의 한문학을 검토함에 있어서 성리학의 용어가 지닌 意味網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性과 情, 志와 意, 心과 命 등의 철학적 어휘들이 지닌 뜻을 밝혀내야 한다. 이들을 규명하지 못할 경우 특히 조선 전기 한문학의 고찰은 변죽만 울리고 말 위험이 따른다. 이 시대의 한문학 작가들 모두가 성리학자였다. 이 점은 15세기보다 16세기가 더욱 두드러졌다. 15세기의 작가들은 성리학을 이념으로 향유하지는 않았으나 16세기의 작가들은 성리학을 철저하게 이념으로 향수했다. 따라서 15세기의 한문학과 16세기의 한문학은 그 양상의 차이가 있었다. 이른바 성정미학은 16세기 작가들에게는 공통의 미학이었다.425) 성정미학의 잣대를 활용하면 16세기 사림파 한문학의 거의 전부가 밝혀진다. 물론 성정미학과 거리가 있는 작가나 작품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미미한 지류일 따름이다. 조선 전기의 한문학은 성정미학에 근거하여 전개되었기 때문에 전세계로 확대시켜 놓고 보아도 독특한 광휘를 발하는 독보적인 문학이었을 뿐 아니라, 중국문학의 영향권에서도 벗어나 중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조선 특유의 조선문학을 창출한 것이다.

 16세기 사림파의 한문학이 조선 특유의 한문학일 수 있는 기저는 세계 모든 문학과 변별되는 성정미학적 문학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정미학을 부각시킴으로써 조선 전기 한문학의 독특한 위상을 밝히고자 한다. 성정미학은 剌詩보다 美詩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림파는 문학의 주제영역에서 자시 계열의 현실비판 분야를 배제했다. 긍정적인 주제를 형상시켜 인성을 순화하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나 소설에 있어서 작가의 객관적 묘사가 필요한 것 못지않게 한문학 연구에도 객관성이 필요하다. 객관적 연구 시각은 성정미학에서 요구하는 이른바 유아적 시각을 삼가고 무아적 외물인식을 요구하는 것과 동일하다. 유아와 무아에서 유아와 관계없이 ‘我’는 개입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아는 사에 이끌려 공을 밀어낸 감성적 주관과 관계가 있다. 사림파의 한문학은 무아를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서정성과는 차이가 있다. 무아는 虛心과 직결되어 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유아적 사심을 버리는 것이다. 허심에서 무아가 나오고 무아의 경지에서 以物觀物의 정당한 외물인식이 형성된다. 李睟光은≪性理大全≫에 근거하여 허심에 관해서 주목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聖人의 마음 속에는 만물이 구비되어 있지만, 마음 안에는 하나의 외물도 없다. 무릇 마음 속에 아무것도 없는 까닭으로 능히 외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대개 외물을 쫓는 자는 외물에 의해 가리워지고, 마음 속에 외물을 배제한 사람은 족히 외물의 물성을 파악할 수 있다(李睟光,≪芝峯類說≫권 5, 心學).

 詩文의 제재로서 나타난 외물을 보는 內我의 인식각도에 대한 설명이다. 내아에는 공과 사가 공존해 있다. 사림파에 있어서 내아의 개념 속에는 사가 배척되었다. 사를 배척함으로써 허심이 되고 허심의 상태에서 물아일체가 이룩된다. 물아일체의 상태에서 외물과 접촉된 내아는 性情之正에 도달한다. 성인의 마음 속에는 삼라만상이 구비되어 있지만 그것은 전부 공인 까닭으로 기실 사적으로 소유한 것은 하나도 없다. 성정미학은 성정지정만을 포용한다. 성정지정이 아닌 모든 인욕은 거부한다. 따라서 성정미학에 입각하여 창출된 작품에는 격정도 애욕도 분노도 애상도 없는 까닭으로 독자에게 외면당할 소지가 많다. 이것은 조선의 한문학계에서 가장 큰 광맥의 하나인 사림파의 한문학이 별로 주목받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다. 외물을 사적인 정감으로 인식할 경우, 눈물과 웃음과 탄식과 흥분이 있다. 외물을 자기의 사적인 소유로 했을 때 발현되는 것은 이른바 인욕이다. 盧守愼은 인욕의 구체적 하위 사항을 여섯으로 분류하고 이를 ‘六訓’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誼·利·善·惡·公·私’가 그것이다. 이 중 ‘人欲之私’에서 나온 것은 ‘이·악·사’이고, 天理가 流行하여 발현된 순수하고 無妄한 것이 ‘선’이고, 외물과 내아가 兼照하여 사사로움이 없는 것이 ‘공’이며, 저절로 되어서 천리에 부합된 것이 ‘의’라고 규정했다. 소위 성정지정의 구체적 사안을 적시한다면 노수신이 규정한 의와 선과 공이 될 것이다.426) 노수신은 양명학에도 조예가 깊어 주자학자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위에 열거한 字訓은 성정미학의 포용된 성리학적 관용어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물아일체에서 성정지정이 나오고, 물아일체가 되자면 허심을 해야 하며, 허심이 되어야만 외물을 절도에 맞게 인식할 수 있다. 성정지정은 무엇보다 외물과의 정당한 접촉을 강조한다. 趙翼은 외물과 정당한 접촉을 하려면 役物을 해야 한다고 했다.427) 외물에 대해서 허심과 역물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조선 5백년 동안 그처럼 집요하게 추구했던 물아일체는 어떤 양상의 외물인식에서 얻어지는 경지인가. 조익은 인성이 외물에 사역되어서는(役於物) 안되고, 외물을 사역해야(役物) 물아일체에 이른다고 했다. 외물을 부린다는 것은 나쁜 인욕에 가리워지지 않고 인성이 지닌 본래의 純善이 외물이 향유한 理를 터득하는 동인을 뜻한다. 외물이 지닌 物性을 왜곡시켜 ‘이·악·사’ 등의 인욕을 유발시켜서는 안되다는 주장이다. 송대의 蘇軾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君子는 가히 외물에 寓意는 할지언정 외물에 留意를 해서는 안된다. 외물에 우의를 하면 비록 보잘것 없는 미물일지라도 기쁨을 얻고, 비록 고약한 물건이라도 족히 병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외물에 유의를 하면 미물이라도 병통이 되고 훌륭한 물건일지라도 기쁨을 얻지 못한다. 老子가 이르기를 ‘五色은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멀게 하고, 五音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하며, 五味는 사람의 입을 어그러지게 하며, 들판을 달리며 사냥질을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한다’라고 했다. 그런데도 성인이 위의 네 가지를 폐하지 않는 것은 우의로써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蘇軾,≪蘇東坡集≫前集, 권 32, 寶繪堂記).

 寓意는 托物寓意의 준말이다. 외물과 접촉했을 때 內我는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의 문제는 성리학자들에게 심각한 사안이었다. 조익의 견해를 빌린다면 우의는 역물적 외물인식이라야만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외물의 범주는 방대하다. 事와 物이 함께 포괄된다. 事物認識이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지만 先人들이 외물을 즐겨 사용한 까닭으로 외물인식이라 했다.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제반 사건들은 사에 포함되고 물에는 해와 달을 비롯해서 한줌의 재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해당된다. 성리학자들은 땅바닥에 딩구는 돌멩이 하나에도 理가 있어서, 그 리를 제대로 파악하면 지극한 교훈이 된다고 믿었다.428) 외물에서 그것이 지닌 리는 어떻게 하면 터득되는가에 대하여 조익은 역물적 외물인식을 거론했고, 이이는 內外無閒을 들었다.

 외물이 함유한 리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天理이다. 천리는 天命이 유행하여 저절로 稟受된 것으로, 자연계의 모든 사물과 인간에게도 함께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천리가 인간에게 품수되면 그것이 바로 ‘仁·義·禮·智·信’의 五常이다. 외물에 깃든 理에는 ‘表裏精粗’와 ‘淸濁輕重’이 있는데, 성정미학에서 취하는 것은 이것들이 지닌 것 중에서 긍정적인 분야에 한정된다. 소동파는 외물에서 眞樂을 얻자면 留意를 해서 안되고 寓意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의와 우의의 대립이다. 외물에 뜻을 留한다는 것은 사심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외물을 公이 아닌 利나 私의 시각에서 인식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喪志로 나아가 마음의 병이 생긴다는 의미다. 반대로 우의의 경우는 외물을 공정하고 善하고 誼하게 인식하는 상태라고 하였다. 이같은 외물인식은 범인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용이하지 않다는 사실을 士林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지한 자세로 그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성정미학은 지선지고의 이성을 바탕으로 했다. 그러므로 성정미학의 진가를 완벽하게 터득한 사람은 드물었지만 16세기는 거의 모든 士人이 성리학에 심취했던 만큼 성정미학은 당시의 보편적 문예의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托物寓意는 고려시대부터 논의되고 있었다. 고려시대의 意와 조선시대의 의는 그 개념이 달랐다. 조선시대의 托意는 성리학적 性情論과 관계가 짙다. 반면 고려시대의 의의 개념은 외물에 자신의 정감을 붙이는 오늘날의 감정이입과 비슷하다. 일찍이 李仁老는 승려 白雲子와 林椿의<聞鶯詩>를 대비하면서 이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백운자와 임춘은 봄날에 우는 꾀꼬리 소리에 의탁하여 자신의 정감을 읊었다. 사림들이 이 두 수의 시를 본다면, 無我가 아닌 有我의 以我觀物的 외물인식에서 형상된 작품으로 인정할 것이다.429) 이 시는 꾀꼬리를 매체로 하여 悽惋의 정감을 붙였다는 평을 받았다. 荒村과 田家를 배경으로 녹수에 우는 꾀꼬리 소리에 처완의 정감을 붙였는 바, 이는 성리학적 성정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서정일 뿐이다. 사림파의 경우는 이같은 서정시를 吟風咏月이라 하여 높은 시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사림파에 있어서 탁의적 미의식은 성리학적 성정론과 직결되어 있다.

 성정미학에서는 음풍영월과 鳥蟲篆刻的 문장의 꾸밈을 배척했다. 음풍영월은 이아관물의 유아적이고 분방한 서정과 관련이 있다. 사림들은 외물의 표피적 현상만을 작품 속에 형상시키면, 외물이 지닌 이면의 천리를 간과하게 되어 내아와 외물이 하나가 되지 못해 吟咏性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같은 사림파의 서정양상은 오늘날의 詩論으로서는 도저히 해득할 수 없는 부문이다. 따라서 조선 전기, 특히 16세기의 문학을 성정미학으로 풀려고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성정이 작품 속에 형상하는 데는 일정한 틀과 구도가 있었다. 성정이 오늘날의 서정시에서 말하는 정감과는 확실히 분별되는 것이라고 앞서도 말한 바 있다. 성정미학은 작품활동에 있어서 기본 골격이긴 하지만, 그것은 아직 추상에 가깝다. 실제로 창작활동을 할 경우 보다 구체화된 척도가 요구된다. 그 중요한 척도의 하나로 品格論이 제기되는 것이다.

423) 金台俊,≪朝鮮漢文學史≫(朝鮮語文學會, 1931), 133쪽에서 선조대를 ‘穆陵盛世’라고 칭했다.
424) 公·私·人欲·天理의 개념은 盧守愼,≪穌齋集≫內集 下篇(≪文集叢刊≫35, 1981, 480쪽)의 일부를 요약했다. 이하 性·情 등의 개념은 노수신의 정의를 따른다. 그가 비교적 간명하게 요약했기 때문이다.
425) 李敏弘,<性情美學과 山水詩>(≪韓國漢文學硏究≫15, 1992).
426) 盧守愼,≪穌齋集≫內集, 下篇, 養正錄 丙一 字訓.
427) 李敏弘,<性理學的 外物認識과 形象思維>(≪국어국문학≫105, 1991)에서 役物과 役於物에 대해서 논한 바 있다.
428) 李珥,≪栗谷全書≫권 13, 洪恥齋仁祐遊楓嶽錄跋.
429) 李仁老,≪破閑集≫권 下, 白雲子.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