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Ⅲ. 문학2. 국문학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1. 전통적 자연관
          • 1) 재이현상으로 본 전통적 자연관
            • (1) 가뭄으로 본 재이
            • (2) 그 밖의 재이 몇 가지
          • 2) 풍수지리로 본 자연관
            • (1) 한양 천도의 논리
            • (2) 태종의 음양지리
            • (3) 세종대의 논의
            • (4) 이지함과 남사고의 유산
          • 3) 유학사상을 통해 본 자연관-유교정치와 자연
            • (1) 일식과 태양 관련의 자연현상
            • (2) 연산군의 정치 천문학
            • (3) 중종대 암탉의 수탉 되기
        • 2. 천문 기상학
          • 1) 서운관·관상감의 설치와 그 기능
            • (1) 관장업무와 직제
            • (2) 관아와 관측규정
          • 2)<천상열차분야지도>
            • (1) 그 성립과 구성
            • (2) 관측연대와 조선 천문도
          • 3) 천문대와 관측기기
            • (1) 간의대의 설치
            • (2) 간의대의 관측기기
          • 4) 해시계와 물시계의 제작
            • (1) 세종대의 해시계
            • (2) 자격루와 옥루
          • 5) 천문학 서적의 간행
            • (1)≪칠정산내외편≫과 역학서의 편찬
            • (2)≪제가역상집≫과≪천문유초≫
          • 6) 측우기의 발명과 농업기상학의 발달
            • (1) 측우기와 수표의 발명
            • (2) 농업기상학의 발달
        • 3. 물리학과 물리기술
          • 1) 도량형과 자기의 이론
          • 2) 자석과 자기의 이론
          • 3) 수리기술과 기계장치
          • 4) 화약과 화기의 제조
        • 4. 의약과 약학
          • 1) 의약정책
            • (1) 고려 의학의 계승
            • (2) 향약 장려정책
            • (3) 중국 약의 이식과 재배
            • (4) 약재의 무역
            • (5)≪신주무원록≫의 편찬
          • 2)≪향약집성방≫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 배경과 과정
            • (2) 특징과 의의
          • 3)≪의방유취≫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과정과 편집방식
            • (2) 인용문헌
            • (3) 오늘날 전하는≪의방유취≫
          • 4) 의서의 편찬과 간행
            • (1) 중국의서의 수입과 간행
            • (2) 국내 의서의 편찬과 간행
            • (3) 허준의 의서 편찬
            • (4) 의서의 언해
          • 5)≪동의보감≫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배경과 저술과정
            • (2) 내용과 편집체계
            • (3) 특징과 의학사적 의의
            • (4) 간본
          • 6) 다원적인 의료상황
            • (1) 의학의 분화
            • (2) 온천·냉천 및 한증욕의 발달
            • (3) 양생술의 유행
            • (4) 종교적 의료
      • Ⅱ. 기술
        • 1. 농업과 농업기술
          • 1) 농업과 그 환경
            • (1) 자연환경
            • (2) 인구와 농업노동력
            • (3) 노동수단
            • (4) 노동대상
          • 2) 농업기술
            • (1) 수전농법
            • (2) 한전농법
            • (3) 서지법
            • (4) 시비법
            • (5) 경법과 쟁기
            • (6) 농구체계
          • 3) 농업기술의 성격
        • 2. 인쇄기술
          • 1) 금속활자의 주조 및 조판인쇄
            • (1) 관주활자
            • (2) 민간활자
          • 2) 목활자의 제작 및 조판인쇄
          • 3) 목판의 판각 및 인쇄
          • 4) 서적의 인쇄
            • (1) 관판본
            • (2) 국왕 및 왕실판본
            • (3) 사찰판본
            • (4) 서원판본
            • (5) 사가판본
        • 3. 군사기술
          • 1) 화약과 화기의 전래
          • 2) 화약의 제조
          • 3) 화기제작기술의 부침
            • (1) 화기발달의 시초(태종대)
            • (2) 화기발달의 진전(세종 전기)
          • 4) 조선 중기의 화기
            • (1) 총통
            • (2) 발사물
            • (3) 화약무기의 특징
      • Ⅲ. 문학
        • 1. 한문학
          • 1) 한문학의 맥락
            • (1) 조선왕조 개국과 한문학
            • (2)≪동문선≫과 조선문학
            • (3) 문이재도론의 전개
          • 2) 사림파의 한문학
            • (1) 목릉성세와 성정미학
            • (2) 사림파의 품격론
            • (3) 사림파의 음영성정
        • 2. 국문학
          • 1) 훈민정음 창제와 국문학
          • 2)≪용비어천가≫와≪월인천강지곡≫
          • 3) 악장과 경기체가
          • 4) 시조와 가사
          • 5) 설화와 소학지희
        • 3. 언어
          • 1) 문자생활
            • (1) 한자와 한글
            • (2) 한글의 사용과 보급
          • 2) 언어
            • (1) 한글문헌과 그 언어
            • (2) 음운
            • (3) 문법
            • (4) 어휘
      • Ⅳ. 예술
        • 1. 음악
          • 1) 왕립음악기관의 역사적 변천과 활동범위
            • (1) 왕립음악기관의 역사적 변천
            • (2) 장악원의 직제와 활동범위
          • 2) 아악의 부흥
            • (1) 건국 초기의 악가제정
            • (2) 세종대의 율관제작과 악기제조
            • (3) 세종대의 아악제정과 박연
            • (4) 아악이론과 음악양식
          • 3) 향악과 향악정재
            • (1) 향악기와 향악곡
            • (2) 향악의 음악양식
            • (3) 향악정재와 민속악
          • 4) 당악과 고취악
            • (1) 당악과 당악정재
            • (2) 당악의 향악화와 음악양식
            • (3) 고취악
          • 5) 악서와 기보법
            • (1) 악보와 악서편찬
            • (2) 새 기보법의 창안
        • 2. 건축
          • 1) 건축기법과 특징
          • 2) 도성의 건설
            • (1) 도성건설의 개요
            • (2) 태조의 도성건설
            • (3) 태종의 도성건설
            • (4) 세종과 그 이후의 도성건설
          • 3) 읍성의 축조와 관아시설
            • (1) 읍성의 축조
            • (2) 관아의 시설
          • 4) 사전의 건축
            • (1) 사단의 조영
            • (2) 사묘 건축
            • (3) 학교 건축
          • 5) 사원의 건축
          • 6) 민가의 건축
        • 3. 도자
          • 1) 분청사기와 조선청자
            • (1) 분청사기
            • (2) 조선청자
          • 2) 조선백자
            • (1) 세계도자사와 조선백자
            • (2) 조선백자의 시작과 확산
            • (3) 조선백자의 변천
          • 3) 청화백자
          • 4) 조선백자의 문양
          • 5) 사옹원과 분원
            • (1) 사옹원
            • (2) 분원
            • (3) 분원의 운영개요
        • 4. 회화
          • 1) 고려전통의 계승과 중국화풍의 수용
            • (1) 고려전통의 수용
            • (2) 중국화풍의 수용
          • 2) 왕공·사대부와 회화
          • 3) 도화서와 화원
          • 4) 회화의 제경향
            • (1) 안견의 화풍
            • (2) 강희안과 강희맹의 화풍
            • (3) 이상좌의 화풍
            • (4) 이장손·최숙창·서문보의 화풍
            • (5) 이암·신사임당의 화풍
          • 5) 일본 무로마찌시대 회화에 미친 영향
        • 5. 서예
          • 1) 송설체의 유행
          • 2) 왕희지체의 전통
          • 3) 금석과 사경의 서풍
          • 4) 한글서체의 필사화
        • 6. 공예
          • 1) 금속공예
            • (1) 범종
            • (2) 사리장엄구
            • (3) 향로
            • (4) 청동운판과 대발
            • (5) 도검
            • (6) 생활용구와 장신구
          • 2) 목칠공예
            • (1) 목공예
            • (2) 칠공예
        • 7. 조각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국문학

1) 훈민정음 창제와 국문학

 세종 25년(1443)에 창제되고, 세종 28년에 반포된 訓民正音은 우리말을 정확하게 표기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는, 세계 문자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가지는 문자이다.

 훈민정음이 사용되면서 문학사에서 큰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훈민정음은 먼저 한문을 대신하는 글이고, 한자에 의한 국어 借字表記를 대신하는 국문이라는 두 가지 의의가 있다. 이전의 문학사는 기록문화의 성장에서 한문학이 등장한 첫번째 시기와 차자표기 문학이 시작된 두번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본격적인 국문문학의 등장이라는 문학사의 세번째 시대를 여는 구실을 했다. 그러나 한문 및 한자 차자표기에 맞서서 국문이 관장 영역을 확대하고 마침내 그 둘을 퇴장시키기까지는 여러 단계에 걸쳐 많은 진통을 겪어야 했다. 훈민정음의 창제에서 한문학에 대한 국문문학의 승리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실상대로 파악하는 역사 이해의 관점이 긴요하다.

 훈민정음 창제의 직접적인 의도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훈민정음은 창제 당시에, 지배층인 사대부를 위한 문자는 아니었다. 사대부는 한문으로 높은 수준의 문자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더러 불편을 느낀다 하더라도 새로운 문자를 창제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한문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것은 사대부와 일반 백성을 갈라놓는 기준이므로 상하층이 함께 사용하는 문자가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 뒤에도 사대부는 한문을 계속 사용했으며, 한문을 쓰느냐 아니면 언문을 쓰느냐에 따라서 문화적인 자격에 의한 지체 판가름이 지속되었다. 중세적인 사회관계와 사고방식이 이어지는 한 한문을 버릴 수 없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펴내면서 한자음을 바로잡아≪東國正韻≫을 편찬하는 사업도 아울러 진행했으며, 그 일이 긴요하다는 것을 몇 차례 강조한 바 있다. 그렇다면 훈민정음은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한 발음부호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자음을 바로잡자는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훈민정음은 한자의 발음을 표기하고, 한문해독을 도와주는 구실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러한 기능은 우리말을 전면적으로 표기할 수 있게 되었기에 얻을 수 있었던 부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한자의 발음부호를 제정하기 위해서 우리말의 음운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뜨기까지 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訓民正音≫ 서문에서 세종은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어리석은 백성’은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자기 뜻을 능히 펴지 못할 사람이 많다고 하고, 그런 형편을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 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로 쓰는 데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라고 창작동기를 설명했다. 즉 훈민정음은 한문을 모르는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문자임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그러나 훈민정음을 단순히 백성들의 편의만을 위한 문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하는 주장이 일어나자, 吏讀[이두]가 서리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으나 불완전해서 재판을 하는 데 억울한 일이 많은데, 새 문자를 사용하면 그런 일을 시정할 수 있다고 했다. 뜻을 펴지 못하는 형편을 가엾게 여긴다는 것은 특히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임을 짐작할 수 있다. 곧 훈민정음은 먼저, 다스림을 받는 백성의 뜻을 위로 전하는 데 쓰이도록 창안한 문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기능은 위의 뜻을 아래로 펴는 데 있었다.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는 崔萬理가,≪三綱行實≫을 반포한 뒤에도 충신·효자·열녀가 배출되지 않았다 하고, 행하고 행하지 않음은 사람의 자질에 달렸으므로 언문을 사용한다 해도 윤리의 교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으리라고 하자, 세종은 훈민을 강조하는 儒者의 이치를 들어 그를 반박했다. 새 왕조가 강조하는 新儒學에 입각한 윤리규범에서 아랫사람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아랫사람도 읽을 수 있는 문자인 훈민정음이 필요했던 것이다.≪삼강행실≫은 한문으로만 되어 있었기에 뜻을 이룰 수 없었고, 거기다 그림을 그려 넣어도 자세한 사연을 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조선왕조는 백성을 통치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새롭게 모색하는 것이 역사적인 임무임을 깊이 자각해야만 했다. 고려 후기 무신란과 몽고 지배를 겪은 다음에 하층 민중이 지배질서에 항거하는 움직임이 계속 일어나, 마침내 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새로운 왕조창업이 불가피하게 되었던 것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새 왕조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나마 민중에게 양보를 해서 생업을 안정시키는 한편 민중을 이념적으로 순화시켜 지배질서에 순응하도록 하는 방침을 택했는데, 그러한 방침이 훈민이고, 훈민을 위한 문자가 바로 훈민정음이었다. 농사기술이나 질병 치료법도 가르쳐야 했지만, 더욱 긴요한 과제는 이념교화였기에 훈민정음을 그 방면의 책을 펴내는 데 더욱 힘써 이용하고, 임금의 말을 알리는 敎書나 綸音도 훈민정음으로 적어 펴내야 했다.

 하지만 서리들에게 이두 대신에 훈민정음을 사용하게 하자는 뜻은 그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서리는 한문과 언문 사이에서 이두라는 또 하나의 표기 수단이 계속 쓰여야만 자기네의 배타적인 구실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재판기록을 위시한 각종 문서에 언문이 사용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편 어리석은 백성이 새로운 문자를 익혀서 뜻을 펼 수 있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겠으나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는 일찍부터 나타났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3년 후에 벌써 대신들을 비방하는 諺文壁書가 나왔고, 연산군대에는 그런 것이 자주 보여, 언문을 아는 사람들을 잡아 필적을 대조하고, 언문 책을 불사르고, 언문 사용을 금지하라는 명령이 내리기도 했다. 그 전에 단종 때에는 궁중의 나인이 별감에게 諺簡을 보낸 것이 발각된 일이 있었다 한다. 벽서와 언간은 한문이 아닌 언문으로 뜻을 전하는 두 가지 긴요한 방식이었다.

 훈민정음으로 국문문학의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龍飛御天歌≫와≪月印千江之曲≫이 창제 직후에 이루어진 것을 보아 처음부터 의도했던 바라고 할 수 있다.≪용비어천가≫와≪월인천강지곡≫은 단순히 훈민에 필요하기 때문에 한글로 지어진 것은 아니다. 노래는 가락을 붙여 부르고, 또 부르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이기에 한문으로 옮기면 그러한 기능이 마멸된다. 그러므로 신라 때부터 향찰·이두의 차자표기를 해서라도 원래의 말을 표기하고자 하였고, 훈민정음에 와서 그 소망이 달성되었던 것이다.

 사대부가 한문을 버리지 않고 한문학을 자기네 문학으로 지키면서 시가문학에서는 한시와 함께 국문시가를 즐겨 지으며 시조와 가사를 발전시킨 것은 시가는 노래부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李滉은<陶山十二曲>을 지으면서 남긴 跋文에서 그런 사정을 잘 설명했다. 한편 사대부 부녀자들은 한문을 익히기 어려웠기에 국문을 일상생활에 널리 썼고 이는 국문소설의 발달을 가능하게 하는 한 가지 조건이 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서민을 위시한 하층 민중이 문자생활을 국문으로 하고 현실인식과 흥미를 아울러 갖춘 문학을 요구하게 되자, 국문문학이 한문학과 맞서서 크게 성장했다. 그러다가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가 끝나자 국문만 사용하고, 문학은 국문문학이라고 하는데 이르렀다. 이처럼 국문 사용의 확대와 국문문학의 성장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의도나 계산과 관계없이 문자생활을 둘러싼 상하층의 경쟁, 중세와 근대의 대결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렇게 해서 국문은 시대마다 다시 태어났던 것이다.

 국문 사용의 저변 확대를 잘 알 수 있게 하는 자료는 국문편지이다. 지금까지 남은 국문편지의 가장 오랜 예는 선조 4년(1571)에 鄭澈의 어머니 竹山安氏가 시묘살이를 하고 있는 아들 형제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런데 최근에 蔡無易(1537∼1594)의 아내 順天金氏의 무덤을 이장하다가 발견한 편지 다발은 백여 쪽이나 되며, 그보다 먼저 쓴 것도 있어 커다란 화제거리가 되고 있다. 채무이의 후처가 되었다가 40대쯤의 나이로 병사한 순천 김씨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겨, 친정 어머니, 친정 아버지, 그리고 외처에 나갔던 남편이 써 보낸 편지를 시신과 함께 매장했으며, 장모가 사위에게 보낸 편지도 있다. 연대가 가장 오랜 것은 선조 2년으로 판명되었다. 순천 김씨는 임진왜란 전에 남편보다 먼저 죽었으리라고 짐작된다. 노령의 어머니가 앓고 있는 딸에게 써서 보낸 사연이 애절하고, 남편이 아내에게 한 편지는 ‘하게’형의 다정한 말씨로 이루어져 있다. 채무이는 생원시를 거쳐 6품 관직에 나아갔던 사람이다. 이 자료는 사대부 가문에서 여인네를 발신자 또는 수신자로 한 국문편지가 착실하게 정착되었으며, 그 문체가 우아한 품위를 갖추게 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445)

 安敏學(1542∼1601)은 사대부 가문에서 태어나 유학에 힘쓰고 천거를 얻어 벼슬길에 나아갔던 사람이며, 한문학의 작가로도 다소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선조 9년에 부인 곽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국문으로 제문을 지어 입관을 하면서 함께 넣었던 것이 발견되었다. 어려운 시절에 부인이 자기에게 시집을 와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고생을 하며 지내던 일을 말하고, 부부로서의 정을 마음껏 펴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죽어 이별을 하는 서러움을 하소연하는 사연이 절실하며 표현은 말을 하듯 자연스럽다. 남자의 글이지만 부녀자들의 문체를 따랐으리라고 생각된다.446)

445) 趙健相,<淸州出版遺物 諺簡에 대한 연구>(≪忠北大學校論文集≫ 17, 1979)에서 자료를 소개했다.
446) 具壽榮,<安敏學의 哀悼文考>(≪百濟硏究≫ 10, 忠北大學校 百濟文化硏究所, 1979)에서 자료를 소개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