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악학과 관습도감
음악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樂學은 공양왕 원년(1389)에 최초로 설립되었으나, 고려왕조의 멸망과 함께 없어졌다가 태종 6년에 다시 설립되었다. 十學의 하나로 설립된 악학에 提調官을 두었고, 세종대에 이르러 제조·提擧·別坐의 관직을 두었다. 악학의 관리들은 과거에 급제한 사람 중에서 선발되었으므로, 전악서나 아악서의 체아직 녹관들과 구별되었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악서와 악보의 편찬, 음악이론과 역사 연구, 의례고증 및 율관제작 감독 등이었다.459)
관습도감은 고려 우왕 때 최초로 설립되는데, 아악서나 전악서의 경우처럼 조선왕조로 계승되었다. 관습도감은 제조·判事 등의 당상관과 부판사·使·副使·판관·녹사 등의 당하관을 거느렸는데, 이들의 임무는 악공이나 管絃盲人 및 女妓의 習樂을 관장하는 것이었다. 관현맹인의 관현반주 및 여기의 노래는 대체로 궁중잔치에서 연주되었던 향악과 당악이었으므로, 관현맹인과 여기에 의한 향악과 당악의 습악이 관습도감의 주된 임무였다.460)
음악이론의 연구를 담당했던 악학 및 관현맹인·여기의 습악을 맡았던 관습도감은 조선 건국 초기부터 반세기 가량 음악행정에 관한 업무를 관장했다. 그러나 세조 3년에 이르러 악학과 관습도감은 樂學都監으로 통폐합되는 역사적 변천과정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