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의 당악은 고려시대와 비교해서 쇠퇴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아악부흥에 있다. 조선초 아악부흥으로 말미암아 아악이 장악원의 좌방을 차지하게 되자, 본래 좌방에 소속되었던 당악은 우방의 향악과 함께 통폐합되었기 때문이다. 당악이 향악과 함께 우방에 소속됨으로써, 향악화의 길을 걷는 일은 시간문제였고,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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