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성종대의≪악학궤범≫편찬
조선초 악서편찬의 대표적인 실례는 성종 24년(1493)에 편찬된≪악학궤범≫이다. 장악원 提調 柳子光, 예조판서 成俔, 장악원 主簿 申末平, 전악 朴棍과 金福根이 성종의 명을 받들어 조선왕조 건국 초기의 음악문화를 집대성한≪악학궤범≫은 전래된 儀軌와 악보를 바탕으로 삼아 많은 중국문헌들을 참고해서574) 편찬한 음악이론서이다.
≪악학궤범≫권 1에는 60조 이론을 비롯한 중국음악이론 및 향악·당악·아악의 이론이 정리되었고, 권 2에는 성종 당시의 제향·조회·연향에 따른 악기 陳設法이 포함되었으며,≪고려사≫악지에 전하는 당악정재와 향악정재가 권 3에 전한다. 성종 당시의 당악정재는 권 4에 도설되어 있고, 성종 때의 향악정재는 권 5에 도설되었으며, 권 6에는 아악기가 도설되었다. 당악기와 향악기의 도설은 권 7에 실려있고, 권 8에는 정재복식과 의물도설이 있으며, 음악인의 복식도설은 권 9에 실려 있다.
음악사적 관점에서 보아≪악학궤범≫의 중요성이 두 각도에서 조명될 수 있는데, 첫째 조선왕조 500여년 동안 궁중음악의 부흥에 길잡이 구실을 했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음악사 이외 국어국문학사·무용사·복식사·의물사 연구에 필수적인 문헌이라는 사실이다.575) 이러한 사실은≪악학궤범≫의 처음 간행된 이후, 임진왜란 직후인 광해군 2년(1610)에 처음 복간되었고, 병자호란 이후인 효종 6년(1655)에 두번째로 복간되었으며, 영조 19년(1743) 아악재건에 힘 쓸 당시에 세번째로 복간되었음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공연예술과 관련된 여러 사료들을 싣고 있어≪악학궤범≫이 조선시대 문화사연구에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