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정간보 및 오음약보의 창안
우리 나라 최초의 유량악보인 정간보는 1행의 井間수에 따라서 32정간보와 16정간보로 구분된다. 32정간보는 세종 때 창안되었고, 16정간보는 세조 때 창안되었는데, 정간을 사용한 기보법이라는 점에서 서로 공통적이다. 정간보의 악보가 우물 井자처럼 생긴 정간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정간보라는 명칭이 생겼다.
32정간보가 율자보와 함께 사용된 실례는≪세종실록악보≫에서 발견된다.578) 율자보에 의해서 음의 높낮이가 표시되었고, 32정간보에 의해서 그 음의 시가가 표시되었다. 32정간보의 시가 표시방법이 불합리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32정간보는 세종 이후에는 더 사용되지 않았고, 세조대에 이르러 16정간보로 개선되었다.
세조 때 창안된 16정간보는 주로 오음약보와 함께 기보되었는데, 그 실례가 ≪세조실록악보≫579) 또는≪시용향악보≫나≪대악후보≫에서 발견된다. 16정간보의 1행은 6大綱에 의해서 세분되었는데, 6대강은 3·2·3·3·2·3정간으로 구분하기 위해서 그은 여섯 개의 굵은 줄을 뜻한다. 그런데 16정간보 및 32정간보의 시가 해석에 관한 연구들이580) 여럿 있지만,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16정간보와 함께 세조 때 창안된 오음약보는 5음음계의 향악을 기보하기 위하여 창안된 기보법이었다. 이 기보법의 명칭이 뜻한 바대로 생략된 다섯글자로 음의 높낮이를 표시했는데, 중심음인 宮보다 높은 음들은 상1·상2·상3·상4·상5로 표시했고, 궁보다 낮은 음들은 하1·하2·하3·하4·하5로 표시한 기보법이었다. 이 기보법은 음의 높낮이를 눈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장점을 지녔지만, 두 가지 단점을 갖고 있다. 하나는 궁의 높이를 표시할 수 없다는 단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음과 음 사이의 음정을 표시할 수 없다는 단점이었다.581)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황종궁 또는 협종궁으로 표시함으로써 궁의 높낮이를 보완했고, 평조 또는 계면조라는 선법명을 악곡의 앞 부분에 표시함으로써 음정관계를 알 수 있도록 보완하였다.≪세조실록악보≫중 종묘영신의 희문지악 바로 아래에 적힌 淸黃鍾調 및 黃鍾爲徵라는 글이582) 바로 오음약보의 두가지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즉 청황종조란 궁의 높이가 청황종이라는 뜻이고, 황종위치는 황종을 중심음으로 삼은 徵調 곧 평조 선법의 다른 말이다. 그리고 평조 선법과 계면조 선법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때 오음약보와 율자보를 함께 사용한583) 이유도 모두 오음약보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오음약보는 본래 5음음계의 향악을 기보하기 위해서 창안되었기 때문에, 7음음계의 당악이나 아악의 기보에는 적합하지 않은 기보법이었다. 당악이나 아악을 오음약보로 기보할 때에는 工尺譜나 율자보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오음약보에 공척보가 함께 사용된 실례는≪세조실록악보≫중 풍안지악584)에서 발견되고, 율자보가 함께 사용된 보기는≪대악후보≫권 6의 보허자585)에서 발견된다.
578) | ≪世宗實錄≫권 138, 樂譜 定大業之舞樂譜. 보례는 宋芳松, 앞의 책(1984), 357쪽의<악보 11>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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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 | ≪世祖實錄≫권 48, 樂譜 新製略定樂譜. 보례는 宋芳松, 위의 책, 357쪽의<악보 12>참조. |
580) | Jonathan Condit, Source for Korean Music, 1450∼1600, Ph.D.Diss., Cam-bridge University, 1976. Hong Jung-soo, Die Fruhe Chonggan-Notation, Ph.D.Diss. Freien Universitat(Berlin, 1981). 全仁平,<井間譜에 關한 硏究>(≪韓國音樂學論文集≫,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143∼189쪽. 李惠求,≪井間譜의 井間 大綱 및 長短≫(세광음악출판사, 1987), 6∼249쪽. |
581) | 李惠求, 위의 책, 6∼8쪽. |
582) | 보례는 宋芳松, 앞의 책(1984), 357쪽의<악보 12>참조. |
583) | ≪世祖實錄≫권 48, 樂譜. 번역은 宋芳松, 앞의 책(1984), 360쪽 참조. |
584) | ≪世祖實錄≫권 48, 新製略定樂譜 進饌 豊安之樂. 豊安之樂에서 공척보의 凡자와 一자가 쓰였다. |
585) | ≪大樂後譜≫권 6, 步虛子에서 율자보의 무역이 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