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Ⅳ. 예술2. 건축4) 사전의 건축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1. 전통적 자연관
          • 1) 재이현상으로 본 전통적 자연관
            • (1) 가뭄으로 본 재이
            • (2) 그 밖의 재이 몇 가지
          • 2) 풍수지리로 본 자연관
            • (1) 한양 천도의 논리
            • (2) 태종의 음양지리
            • (3) 세종대의 논의
            • (4) 이지함과 남사고의 유산
          • 3) 유학사상을 통해 본 자연관-유교정치와 자연
            • (1) 일식과 태양 관련의 자연현상
            • (2) 연산군의 정치 천문학
            • (3) 중종대 암탉의 수탉 되기
        • 2. 천문 기상학
          • 1) 서운관·관상감의 설치와 그 기능
            • (1) 관장업무와 직제
            • (2) 관아와 관측규정
          • 2)<천상열차분야지도>
            • (1) 그 성립과 구성
            • (2) 관측연대와 조선 천문도
          • 3) 천문대와 관측기기
            • (1) 간의대의 설치
            • (2) 간의대의 관측기기
          • 4) 해시계와 물시계의 제작
            • (1) 세종대의 해시계
            • (2) 자격루와 옥루
          • 5) 천문학 서적의 간행
            • (1)≪칠정산내외편≫과 역학서의 편찬
            • (2)≪제가역상집≫과≪천문유초≫
          • 6) 측우기의 발명과 농업기상학의 발달
            • (1) 측우기와 수표의 발명
            • (2) 농업기상학의 발달
        • 3. 물리학과 물리기술
          • 1) 도량형과 자기의 이론
          • 2) 자석과 자기의 이론
          • 3) 수리기술과 기계장치
          • 4) 화약과 화기의 제조
        • 4. 의약과 약학
          • 1) 의약정책
            • (1) 고려 의학의 계승
            • (2) 향약 장려정책
            • (3) 중국 약의 이식과 재배
            • (4) 약재의 무역
            • (5)≪신주무원록≫의 편찬
          • 2)≪향약집성방≫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 배경과 과정
            • (2) 특징과 의의
          • 3)≪의방유취≫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과정과 편집방식
            • (2) 인용문헌
            • (3) 오늘날 전하는≪의방유취≫
          • 4) 의서의 편찬과 간행
            • (1) 중국의서의 수입과 간행
            • (2) 국내 의서의 편찬과 간행
            • (3) 허준의 의서 편찬
            • (4) 의서의 언해
          • 5)≪동의보감≫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배경과 저술과정
            • (2) 내용과 편집체계
            • (3) 특징과 의학사적 의의
            • (4) 간본
          • 6) 다원적인 의료상황
            • (1) 의학의 분화
            • (2) 온천·냉천 및 한증욕의 발달
            • (3) 양생술의 유행
            • (4) 종교적 의료
      • Ⅱ. 기술
        • 1. 농업과 농업기술
          • 1) 농업과 그 환경
            • (1) 자연환경
            • (2) 인구와 농업노동력
            • (3) 노동수단
            • (4) 노동대상
          • 2) 농업기술
            • (1) 수전농법
            • (2) 한전농법
            • (3) 서지법
            • (4) 시비법
            • (5) 경법과 쟁기
            • (6) 농구체계
          • 3) 농업기술의 성격
        • 2. 인쇄기술
          • 1) 금속활자의 주조 및 조판인쇄
            • (1) 관주활자
            • (2) 민간활자
          • 2) 목활자의 제작 및 조판인쇄
          • 3) 목판의 판각 및 인쇄
          • 4) 서적의 인쇄
            • (1) 관판본
            • (2) 국왕 및 왕실판본
            • (3) 사찰판본
            • (4) 서원판본
            • (5) 사가판본
        • 3. 군사기술
          • 1) 화약과 화기의 전래
          • 2) 화약의 제조
          • 3) 화기제작기술의 부침
            • (1) 화기발달의 시초(태종대)
            • (2) 화기발달의 진전(세종 전기)
          • 4) 조선 중기의 화기
            • (1) 총통
            • (2) 발사물
            • (3) 화약무기의 특징
      • Ⅲ. 문학
        • 1. 한문학
          • 1) 한문학의 맥락
            • (1) 조선왕조 개국과 한문학
            • (2)≪동문선≫과 조선문학
            • (3) 문이재도론의 전개
          • 2) 사림파의 한문학
            • (1) 목릉성세와 성정미학
            • (2) 사림파의 품격론
            • (3) 사림파의 음영성정
        • 2. 국문학
          • 1) 훈민정음 창제와 국문학
          • 2)≪용비어천가≫와≪월인천강지곡≫
          • 3) 악장과 경기체가
          • 4) 시조와 가사
          • 5) 설화와 소학지희
        • 3. 언어
          • 1) 문자생활
            • (1) 한자와 한글
            • (2) 한글의 사용과 보급
          • 2) 언어
            • (1) 한글문헌과 그 언어
            • (2) 음운
            • (3) 문법
            • (4) 어휘
      • Ⅳ. 예술
        • 1. 음악
          • 1) 왕립음악기관의 역사적 변천과 활동범위
            • (1) 왕립음악기관의 역사적 변천
            • (2) 장악원의 직제와 활동범위
          • 2) 아악의 부흥
            • (1) 건국 초기의 악가제정
            • (2) 세종대의 율관제작과 악기제조
            • (3) 세종대의 아악제정과 박연
            • (4) 아악이론과 음악양식
          • 3) 향악과 향악정재
            • (1) 향악기와 향악곡
            • (2) 향악의 음악양식
            • (3) 향악정재와 민속악
          • 4) 당악과 고취악
            • (1) 당악과 당악정재
            • (2) 당악의 향악화와 음악양식
            • (3) 고취악
          • 5) 악서와 기보법
            • (1) 악보와 악서편찬
            • (2) 새 기보법의 창안
        • 2. 건축
          • 1) 건축기법과 특징
          • 2) 도성의 건설
            • (1) 도성건설의 개요
            • (2) 태조의 도성건설
            • (3) 태종의 도성건설
            • (4) 세종과 그 이후의 도성건설
          • 3) 읍성의 축조와 관아시설
            • (1) 읍성의 축조
            • (2) 관아의 시설
          • 4) 사전의 건축
            • (1) 사단의 조영
            • (2) 사묘 건축
            • (3) 학교 건축
          • 5) 사원의 건축
          • 6) 민가의 건축
        • 3. 도자
          • 1) 분청사기와 조선청자
            • (1) 분청사기
            • (2) 조선청자
          • 2) 조선백자
            • (1) 세계도자사와 조선백자
            • (2) 조선백자의 시작과 확산
            • (3) 조선백자의 변천
          • 3) 청화백자
          • 4) 조선백자의 문양
          • 5) 사옹원과 분원
            • (1) 사옹원
            • (2) 분원
            • (3) 분원의 운영개요
        • 4. 회화
          • 1) 고려전통의 계승과 중국화풍의 수용
            • (1) 고려전통의 수용
            • (2) 중국화풍의 수용
          • 2) 왕공·사대부와 회화
          • 3) 도화서와 화원
          • 4) 회화의 제경향
            • (1) 안견의 화풍
            • (2) 강희안과 강희맹의 화풍
            • (3) 이상좌의 화풍
            • (4) 이장손·최숙창·서문보의 화풍
            • (5) 이암·신사임당의 화풍
          • 5) 일본 무로마찌시대 회화에 미친 영향
        • 5. 서예
          • 1) 송설체의 유행
          • 2) 왕희지체의 전통
          • 3) 금석과 사경의 서풍
          • 4) 한글서체의 필사화
        • 6. 공예
          • 1) 금속공예
            • (1) 범종
            • (2) 사리장엄구
            • (3) 향로
            • (4) 청동운판과 대발
            • (5) 도검
            • (6) 생활용구와 장신구
          • 2) 목칠공예
            • (1) 목공예
            • (2) 칠공예
        • 7. 조각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학교 건축

 서당은 사설의 초급 교육기관으로 인근 자제들이 모여 훈장에게 초보교육을 받았다.701) 일정한 교과과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校舍가 따로 설치되지도 않았다. 살림집의 일부 시설을 활용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서당에서 초보교육을 이수하면 서울에서는 四學, 지방에서는 鄕校에 들어가 수학을 계속하였다. 小科에 합격하면 생원·진사의 칭호를 얻고 성균관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다.

 4학·향교·성균관은 국가설립 교육기관이며, 4학·성균관은 중앙정부에서, 향교는 지방관청의 지원을 받았다. 이들은 대부분 소정의 교육시설을 구비하였므로, 명륜당을 비롯한 제반 교육시설과 함께 文廟가 구내에 병설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성현의 가르침에 따라 성심껏 연찬한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사설학교 설립이 증대되어 중기 이후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書院이 사설학교의 중심이 되었다. 저명한 학자와 덕망있는 자를 배향하기 위한 사당을 짓고, 그 일곽내에 서원을 건설하였다. 廟學의 제도에 따른 것이다. 교육시설로 쓰일 여러 채의 건축물이 일곽내에 경영되었다.

 조선시대 서원은 豊基郡守 周世鵬이 처음으로 설립하였다. 그는 부임지 順興이 고려시대 유학자 安珦의 고향이었으므로, 文成公廟를 개설하였다. 신라시대의 절인 宿水寺가 마침 폐사의 지경에 있었으므로 이를 이용하였다. 중종 38년(1543)에 유생들의 교육을 목표로 서원을 열고 ‘白雲洞書院’이라 하였다. 그 때문에 최초의 서원에는 불교가람의 우뚝한 당간지주와 석조물들이 함께 하게 되었다.702)

 주세붕에 이어 풍기군수로 부임한 李滉은 정부에 건의하여 ‘紹修書院’이라는 사액을 받고 서원의 재정 뒷받침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로 인하여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은 기반을 굳히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그 유구가 남아 있다. 소나무가 잘 자란 숲 속에 자리한 소수서원에는 강당을 비롯한 서원의 교육시설과 안향의 사묘, 중종 39년에 추배된 문정공 安軸과 문경공 安輔, 그리고 인조 11년(1633)에 주세붕을 배향한 사당이 들어섰다. 이들 건물은 대부분 중기 이후에 들어선 것이지만 강당 등은 숙수사 당시의 법당이었다는 구전이 있고 강당이 동향인데 비하여 후대에 건축된 사당과 서원건축물들이 남향으로 당초의 형상을 잘 지니고 있다.

 이황은 예안에서 易東書院을 주도적으로 설립하고, 그 밖에 10여 곳의 서원건립에 참여하였다. 이로부터 서원 설립이 성행하여 중종 때에 4개소, 명종 때에 18개소, 선조 때 63개소나 되었다. 이런 추세는 숙종대에 이르러 166개소가 신설되는 폭발적인 증가 양상을 보여 모두 약 417개소가 개설되기에 이르렀다. 이 밖에 祠宇의 명칭으로 서원과 유사한 기능을 지닌 것이 492개소 더 생겨났다. 이들 중 서원은 200여 개소, 사우는 70여 개소가 사액을 받고 공인되었다.

 이들 중에는 고종 때의 서원철폐령에서 존속하도록 허가된 47개소에 포함된 것들도 있다. 따라서 그 중 일부는 지금도 건축물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으므로 옛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그 중에 陶山서원·玉山서원·筆巖서원·藍溪서원·西嶽서원 등이 유명하다.

 도산서원은 선조 7년(1574)에 이황의 제자와 유림들에 의하여 창건역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이황이 명종 10년(1555)에 향리에서 돌아갔을 때 지은 陶山書堂을 중요시하였고 이황을 배향할 尙德祠를 지었다. 보물 제211호인 상덕사 일곽은 낮은 담장과 신문이 있고 상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家廟 유형의 담박한 작은 건물이다. 앞쪽의 반 칸을 퇴로 개방하였고 팔작의 기와지붕이며 홑처마 구성이다.

 강당인 典敎堂(보물 제210호)이 서원의 중심에서 높은 댓돌 위에 위풍당당하게 위치하였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인데 그 중 閑存齋라 편액한 2칸의 방을 제외하고는 마루깐 대청으로 기둥간살이가 개방되어 있다. 역시 홑처마이며 팔작의 기와지붕이다. 앞뜰 좌우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동서재가 있는데 동편에 博約齋, 서편에 弘毅齋라 편액하였다. 陶山歌가 있어 유명할 뿐만 아니라 豹菴 姜世滉이 강가에서 멀리 서원을 바라다보며 그린 陶山圖가 있어 당대의 서원 전경을 엿볼 수 있다.

 옥산서원은 경주 安康面 옥산리에 있으며 李彦迪을 배향하였다. 선조 5년 이언적의 고택인 獨樂堂(보물 제413호) 이웃에서 서원건설이 착수되어 일단락되자 선조 7년에 ‘옥산서원’이라 사액하였다.

 대문 亦樂門에 이어 無邊樓가 섰는데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구조가 특이해서 가적지붕의 예도 볼 수 있다. 무변루에서 건너다보면 마당 저쪽에 강당인 求仁堂이 있는데 커다란 ‘옥산서원’의 현판이 걸렸다. 당 앞뜰 동서로 敏求·闇修齋가 있고 구인당 뒷뜰에 사당 體仁廟가 있다. 외곽에 文集板閣이라 편액한 版庫가 있다. 마루를 바닥에서 띄운 京의 형태인데 판벽을 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의 건물로 통풍을 고려해서 지은 것이다. 여기에는 李彦迪이 저술한≪大學章句補遺≫·≪學續或問≫·≪求仁錄≫·≪晦齋集≫ 등을 판각하여 간행한 판본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 밖에 서원에는≪禮記≫ 등 약 230여 종의 2,000권이 넘는 서적이 보존되어 있다.

 서원의 구조는 중심축을 설정하고 대문에서 사당에 이르는 중요 건물을 축선상에 배치하고 그 이외의 건물들은 좌우로 벌려서 늘어 놓는 법도에 따라 건설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더러는 지형에 맞추어 비교적 자유스럽게 배치하기도 하였다. 사당은 따로 담장을 두르고 神門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조영되었고, ‘後廟前學’ 즉 뒤에 사당을 두고 앞에 講學하는 건물을 두는 규범을 따르는 것이 보통이다.

 향교도 대략 흡사하여 樓門(風化樓 등)을 들어서면 마당에 동·서재가 있고 그 중심에 명륜당이 섰는데 前學의 일곽이다. 명륜당 뒷마당에 東西廡가 있고 그 북쪽에 大聖殿(또는 大成殿)이 있는데, 이는 대를 높여 담장으로 두르고 三門형의 신문을 내는 별도의 일곽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보편적인 배치법과 다른 예도 있다. 밀양향교는 문묘와 좌우로 병렬되어 있다. 또 대성전이 앞에, 명륜당이 뒤편을 차지한 예도 있다. 이런 중심곽에 祭器庫나 廚舍 등의 부속건물들이 따로 부설되는 수도 적지 않다.

 향교는 으레 지금도 옛고을마다 남아 있다. 牙山郡의 경우는 溫陽·아산·新昌縣이 합병한 것이어서 온양향교·아산향교·신창향교가 잔존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다른 유형의 건물들이 거의 사라진 현재의 입장으로 보면, 향교와 문묘는 특이한 예를 이루고 있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에 중건·이건·개건·변경된 건물들이므로, 초기의 형상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것은 아주 드물다. 겨우 몇몇이 손꼽히고 있을 뿐인데 문묘건물 중에서는 강릉 문묘 대성전이 대표적이라 할 만하다.

 강릉시 교동에 있는 문묘 대성전은 15세기 말엽에 조영되었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에 창건된 花浮山 아래의 학교건물이 낡게 되자 성종 3년(1472) 과거시험에 급제한 이 학교 출신들이 주동이 되고 유력인사의 도움을 얻어 성종 17년에 공사를 시작하였다. 대성전과 동서무가 먼저 이룩되고 이듬해에 명륜당·동서재·전사청·제기고·敎授衙·有司房 등이 완성되었다. 이듬해 南樓와 前廊이 준공되어 70여 칸의 일곽이 형성되었다. 인조 22년(1644)에 중수되었고 그 중 12칸은 개건되었는데 대성전은 성종 17년에 이룩된 이후로 제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홑처마이고 맞배의 기와지붕이다. 구조는 아주 간결하면서도 활달하며 花栱을 써서 구조하였다(보물 제214호).≪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고려 때에는 문묘를 둔 학교가 없었는데 강릉에 문묘를 둔 학교가 충렬왕 때 세워지면서부터 여러 고을에서 잇따라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703)

 조선시대 학교건물의 대표는 한양의 성균관과 문묘로, 지방 향교나 서원의 모범이 되었다. 廟庭碑에 의하면 성균관은 태조 6년(1397) 3월에 축조되기 시작하여 7년 7월에 개학하였다. 그 터는 서울 동북부에서 산이 그치고 평지를 이루며 냇물이 돌아흐르는 곳이고 陽을 面한 자리였다고 한다.

 聖哲의 廟宇는 높은 곳에 자리잡고 學은 문묘 뒤에 있다. 학의 중앙건물은 명륜당이고 좌우에 협실이 있으며 그 남쪽에 행랑이 있다. 규모가 매우 큰데 대소 건물이 96칸이었다고 碑文은 설명하고 있다. 성균관은 정종 2년(1400)에 불에 타 태종 7년(1407) 3월에 재건되었다. 옛 터에 따라 중건하되 문묘 서쪽에 神廚와 西廡 아래에 동서문을 증건하였으며 이직과 박자청이 감역하였다.704) 이 때 재건된 내용을 기록한 묘정비가 다시 섰으며 변계량이 비문을 지었다.705)

 태종 13년 9월에는 예조판서 黃喜가 동서재가 좁아 생도들이 병에 걸리므로 개수해야겠다고 건의하였고 식당을 새로 짓는 일도 윤허받았다.706) 학생은 재에 기숙하면서 巾服을 갖추고 아침 저녁으로 식당에 모여 나란히 앉아 회식하면서 到記에 기록하는 것이 당시의 제도였으므로,707) 식당은 중요한 건물이었다. 또 생도들이 아프자 세종은 동서재 각 5칸에 구들을 들여 온돌방을 만들어 주었다.708) 세종 15년(1433)에 동서무 4칸씩을 증축하고, 25년에는 묘정비각을, 성종 3년(1472)에는 전사청을 신축하였으며, 6년에 泮水를 개탁하고, 존경각을 지었으며, 21년에는 향관청을 지었다.

 이들은 임진왜란 때 모두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 지금의 건물들은 전란 후 중건한 것들이다. 대성전은 선조 35년(1602) 7월에 준공되었고 명륜당 일곽은 선조 39년에 완성되었다. 지금 보물 제141호로 지정된 것은 이 때 중건한 문묘 대성전이다. 옛 자리에 다시 세워서 규모에는 변동이 없었겠지만 대성전의 공포가 다포계로 조성된 점은 혹시 중건시의 시대성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대성전 앞에 배례청이 있다. 명륜당도 그전대로 세 건물이 나란히 있되 가운데의 명륜당 좌우에 협실이 있는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공포가 익공계이다. 이 점도 중건시의 시대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초기의 건물과 달라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도성 안에는 四學이 있었다. 태종 11년(1411) 10월에 남부학당의 校舍가 남부 誠明坊에 건설되었다. 중부학당의 교사는 세종 4년에 북부 觀光坊에 신축되었고 서부학당의 교사는 세종 17년에 서부 餘慶坊에 마련되었다. 동부학당도 사찰을 이용하다가 독립된 건물을 확보하였는데, 세종 20년에 교사가 北平館으로 전용되어 동부 창선방 乳牛所의 건물로 옮겼다. 이들 학교의 교사가 어떤 정도의 규모였는지에 대한 자료는 찾기가 어렵다.

 도성 안에는 특수학교도 있었다. 종친들만 수학하는 宗學도 그 중 하나였다. 세종 9년 대군 이하 왕의 8촌까지의 종친과 부마를 훈육하기 위하여 창설하였는데 교사는 경복궁 건춘문 밖에 있었다.709)

 譯學·醫學·陰陽學·算學·律學·畵學·道學·樂學 등은 각각 소관 아문에서 교육하였으므로 이들을 위한 교사는 따로 건립되지 않았다. 역학은 司譯院에서, 의학은 典醫監과 惠民署, 음양학은 觀象監, 산학은 호조, 율학은 형조, 화학은 圖畵書, 도학은 昭格署, 악학은 掌樂院에서 가르쳤다.

 세종 때 賜暇讀書制가 실시되자 독서당의 건립이 필요해졌다. 처음에는 각자 집에서 글을 읽게 하였으나 번잡하여 정진하기 어려우므로 절에서 숙식하며 글을 읽었다. 그러나 명분상 문제가 있어 독립된 독서당의 건립이 요망되었다. 그리하여 성종 24년 5월 南湖讀書堂의 別搆一堂 건물이 이룩되었고 중종 때에는 한강가 豆毛浦에 湖堂을 짓고 연구소로 사용하게 하였다. 이 독서당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독서당은 일종의 도서관 기능을 지녔으므로 조선 초기는 각급 학교시설과 함께 소규모이나 도서관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701)≪增補文獻備考≫ 권 209, 學校考 8, 鄕學.
702) 보물 제59호인 높이 3.65m의 당간지주가 서있고, 경내외에는 절에 사용되던 불상대좌나 석등의 잔재들이 있다. 1953년도에 25구의 불상이 출토된 바도 있다.
703)≪增補文獻備考≫ 권 209, 學校考 8, 鄕學.
704)≪太宗實錄≫ 권 13, 태종 7년 2월 기해·3월 을해.
705)≪太宗實錄≫ 권 20, 태종 10년 9월 계사.
706)≪太宗實錄≫ 권 26, 태종 13년 9월 기묘.
707)≪增補文獻備考≫ 권 208, 學校考 7, 雜考 食堂.
708)≪世宗實錄≫ 권 29, 세종 7년 7월 병술.
709)≪世宗實錄≫ 권 37, 세종 9년 9월 을축 및 권 41, 세종 10년 7월 임술.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