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Ⅰ. 임진왜란4. 왜란중의 사회상1) 군량미 조달과 농민의 실상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1. 왜란 전의 정세
          • 1) 교린정책과 왜변
          • 2) 일본의 국내정세
          • 3) 조선의 국내정세와 군사준비 실태
        • 2. 왜란의 발발과 경과
          • 1) 왜란의 발발
          • 2) 의병의 봉기
          • 3) 수군의 승첩
            • (1) 임란 전의 해방체제와 전라좌수군
            • (2) 초기 해전의 승첩과 전과
            • (3) 조선 수군의 승리 요인
          • 4) 명군의 참전과 전세의 변화
            • (1) 참전의 배경
            • (2) 제1차 평양성전투와 그 영향
          • 5) 조·명군의 반격과 전국의 추이
            • (1) 조선 관·의병의 활약
            • (2) 명군의 평양승첩과 전후의 행동
        • 3. 강화회담의 결렬과 일본의 재침
          • 1) 강화회담의 진행과 결렬
            • (1) 평양수복 전 조·명과 일본의 교섭
            • (2) 평양수복 후 명과 일본의 교섭
          • 3) 정유재란의 발발
            • (1) 조선의 일본재침에 대한 대비
            • (2) 일본의 재침
          • 3) 조·명군의 활약
            • (1) 조·명군의 활동상
            • (2) 조선 수군의 활약
            • (3) 조·명군의 추격전
          • 4) 일본군의 패퇴
            • (1) 조·명연합군의 반격전
            • (2) 조·명연합군의 4로 총공격
            • (3) 일본군의 패퇴
          • 5) 일본의 통교요청과 기유약조
            • (1) 일본의 통교요청
            • (2) 기유약조
        • 4. 왜란중의 사회상
          • 1) 군량미 조달과 농민의 실상
            • (1) 난초의 양식실태
            • (2) 명군 내원 이후의 군량조달
            • (3) 민중의 실상
          • 2) 송유진·이몽학 등의 난
            • (1) 송유진의 난
            • (2) 이몽학의 난
            • (3) 기타 민간반란
            • (4) 반란의 성격
          • 3) 항왜와 부왜·부로
            • (1) 항왜
            • (2) 부왜·부로
        • 5. 왜군 격퇴의 전략·전술
          • 1) 육전
            • (1) 관군의 군령·군사지휘권
            • (2) 전란초의 방어체제
            • (3) 관방설치와 청야책
            • (4) 의병의 지휘권과 전략·전술
            • (5) 훈련도감의 신설과 신병법
          • 2) 해전
            • (1) 해전의 전개
            • (2) 수군의 전승요인
      • Ⅱ. 정묘·병자호란
        • 1. 호란 전의 정세
          • 1) 후금의 흥기와 조선의 대응
          • 2) 숭명정책과 중립 양단외교
        • 2. 정묘호란
          • 1) 후금의 침입과 조선의 대응
          • 2) 강화 성립
          • 3) 의병의 활약
        • 3. 병자호란
          • 1) 재침 전의 조·만관계
            • (1) 정묘화약에 대한 양국의 시각
            • (2) 모문룡과 동강진문제
            • (3) 범월쇄환의 시비
            • (4) 개시와 양국간의 마찰
            • (5) 후금의 압력과 조선의 태도
          • 2) 청의 침입과 조선의 대응
          • 3) 남한산성 수어와 화전양론
          • 4) 의병의 봉기
            • (1) 호남의병
            • (2) 다른 지역의 의병
          • 5) 강화 실함과 남한산성
            • (1) 강화 실함
            • (2) 인조의 남한출성
          • 6) 전후처리와 조·청관계
            • (1) 전후처리문제
            • (2) 반청의식의 고조
            • (3) 피로인 쇄환문제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민중의 실상

 민중의 생활은 평시에도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궁색한 살림을 꾸려가면서 그런대로 가정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왜란을 당하면서부터 전화에 휩싸여 많은 인명이 살상을 당하고 장정들은 관군으로 동원되던가 의병에 가담하여 싸움터에 임하였기 때문에 노동력이 급속히 감소되었다. 왜란 전에 170만 결이던 전국의 경지면적이 난 후에 54만 결로 감소된 것도 난중 노동력 감소에 큰 원인이 있다. 노동력이 부족하여 버려진 경작지가 늘어나서 황폐화됨으로써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줄어든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재정이나 농민의 소득도 그만큼 줄어들게 되었다.

 왜란을 당하여 농민들의 생활이 극도로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왜란이 일어난 다음해부터였다. 호남지방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난이 일어난 이후 2년간 폐농하게 되어 민가에 비축되었던 미곡도 남은 것이 없었다. 선조 26 년(1593) 2월에 경기지방 士民들이 굶주림으로 땅에 쓰러져 죽어 있는 자가 가득하였다고 한다. 민정시찰차 나갔던 유성룡이 굶어 죽은 어미의 젖을 빨며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고‘天愁地慘’이라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으로 당시의 정황을 짐작할 수 있다.169)

 선조 26년 4월 19일 왜군이 서울을 철수한 직후 도성의 참상은 더욱 비참했던 것 같다. 유성룡이 “나도 명나라 군사를 따라 도성에 들어왔다. 성안에 남아 있던 백성들을 보니, 백 사람 중에 한 사람 생존해 있을까말까 하고, 생존해 있는 사람들도 모두 굶주리고 피폐하여 얼굴빛이 귀신이나 다름없었다”170) 라고 한 것을 보면, 도성민의 실상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알 만하다. 도성의 참상은 그 후 악순환을 거듭하였던 것 같다. 동년 9월 대사헌 金應南이 실제 눈으로 보고 선조에게 보고한 내용을 보면 그러하다.

창고에는 남은 양곡이 없어 비록 賑濟하기 위해 장소를 차린다 해도 굶주리는 사람들을 두루 구제할 수 없어 하루에 죽어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이고, 쓰러져 죽은 사람이 길에 가득하고 썩어가는 人肉이 하천을 막을 정도로 살아 있는 자라 해도 모두 모습이 도깨비다.… 서울을 둘러싼 수백 리는 초목금수의 장소로 변했으며, 혹 살아 있는 백성들이 돌아와 파괴된 壁間에 의지해도 明軍의 支供과 빈번히 오는 사신을 접대하다 보니 기름이 다하고 피가 말라서 살 방도가 없으며 원망하고 울부짖으며 하늘에 외쳐대며 죽여달라고 하나 얻지 못하여 혹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거나 또는 말 앞에 엎드려 짓밟혀 죽는데 民生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국세를 가히 알 만하다(≪宣祖實錄≫권 42, 선조 26년 9월 계축).

 선조 27년에 들어서서 굶주림이 전국적으로 심해졌고, 특히 서울과 삼남지 방이 더욱 그러했다. 草根木皮도 다하여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인간의 가장 처참한 비극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극한상황에 이르렀는데도 무사나 군공으로 수령이 된 자들은 오로지 剝歛을 일삼았다.

饑饉이 극심한 것으로 해서 사람고기를 먹기에 이르렀는데,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여 괴이함을 알지 못한다 … 비단 길바닥에 굶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베어 먹어 완전히 살이 붙어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혹은 산 사람을 도살하여 腸胃腦髓도 살과 함께 씹어 먹는다 … 도성 안에서 이와 같은 끔직한 변이 있는데도 형조에서는 기민 무뢰배를 버려둔 채 늦장을 부리며 그 장소에서 붙잡아 금지하지 못하고 붙잡힌 자 또한 엄히 다스리지 않았다(≪宣祖實錄≫권 47, 선조 27년 정월 병신).

 위의 기록은 사헌부에서 아뢴 내용인데, 이와 비슷한 내용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물며‘人相殺食’에서 더 나아가 “부자·형제간에도 서로 잡아먹는 일이 있다”171)고 하였으니, 인간의 삶의 발버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산 사람을 잡아먹는 판국이고 보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먹는 것은 더욱 용이하였을 것이다. “근래에 기민이 사망하는 일이 더욱 많아졌는데, 그 살점을 베어 먹고 단지 백골만이 성 밖에 쌓여 있다”172)라고 한 것으로 알 만하다.

 선조 27년 5월에 이르러‘인상살식’은 더욱 심하여 졌다고 한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먹을 수 있는 것이면 어느 것이나 가리지 않았다. “趙慶男이 城中에 들어갔을 때 마침 명나라 군인이 술을 잔뜩 먹고 가다가 길 가운데 구토하는 것을 보았는데, 천 백의 기민이 한꺼번에 달려와서 머리를 땅에 박고 핥아 먹었는데, 약해서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밀려나서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173)고 한 것은, 그 하나의 실례이다. 명나라 장수 劉綎은 굶주려 죽은 시체가 쌓여 있는 것을 보다 못해서 동문 밖에 賑濟所를 차려 놓고 기민들을 구제하려 하였다. 기민들이 천 백으로 몰려들었으나 그것을 얻어 먹고 목숨을 조금 연장시켰을 뿐이고 그 뒤에 모두 그 곁에서 죽었다고 하니 그 참상을 짐작할 만하다. 조선정부에서도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자 진제대책을 마련하기는 하였으나 기근인원에 비하여 賑濟穀의 양이 적었고 관리자의 비리 때문에 올바른 급식이 시행되지 못했다. 또한 흉년이 겹치는 데다가 명나라 군사에게 군량제공과 그들의 약탈행위로 민중은 생계를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이와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모속을 하기 위한 관원의 무질서한 파견은 민중을 더욱 괴롭혔다. “난리가 일어난 이래 官號가 너무 많다. 열명의 관원이 호 칭은 다르지만 관장하는 일은 하나 이어서 백성 한 사람은 피해를 열 사람에게서 받는다”174)고 한 것으로 보아 모속과정에서 민폐가 컸음을 알 수 있다. 민폐는 모속과정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무리한 마필을 징발하였고 농우도 헐값에 명군진영으로 팔려갔다. “소나 말을 가진 자는 명군에게 팔려갔으며 명나라 군사가 하루에 잡아먹는 소가 1백 필이나 되어 사방에 소나 말 그리고 닭과 개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175)고 하였으니, 민중의 실상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 명군들은 화의가 진행되는 기간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서울에 있는 여인들에게 남자의 의복을 입혀 남자로 가장하고 납치해 가기도 하였다. 조선정부는 그들의 만행에 대해 명나라 經略에게 금지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였지만176) 실효를 거두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민중에게 큰 피해를 주었던 것은 명군보다 왜군이었다. 그들은 침략 초기에는 온갖 회유책을 펼치면서 조선인을 설득하려 하였으나, 싸움이 불리해져 남쪽으로 퇴각하면서부터 만행이 노골화되었다. 이에 관해서는 뒤에서 언급하기로 하겠다.

169)≪宣祖修正實錄≫권 27, 선조 26년 2월.
170) 柳成龍,≪懲毖錄≫권 2, 계사 4월.
171)≪宣祖實錄≫권 49, 선조 27년 3월 무술.
172)≪宣祖實錄≫권 49, 선조 27년 3월 무술.
173) 趙慶男,≪亂中雜錄≫권 2, 갑오 5월.
174)≪宣祖實錄≫권 95, 선조 30년 12월 병신.
175) 趙慶男,≪亂中雜錄≫권 2, 갑오 6월.
176)≪宣祖實錄≫권 41, 선조 26년 8월 정해.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