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1. 사족의 향촌지배조직 정비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1. 16세기 사족의 향촌지배
          • 1) 사족지배체제의 형성과 그 의미
          • 2) 재지세력의 변화
          • 3) 사족지배체제와 수령권
          • 4) 향촌기구의 여러 양상
            • (1) 향약의 도입과 정착
            • (2) 유향소의 기능
            • (3) 향교와 사마소
        • 2. 향촌자치조직의 발달
          • 1) 향촌자치조직의 발달 배경
          • 2) 향촌자치조직의 내용과 성격
            • (1) 유향소와 경재소
            • (2) 향약과 향규
            • (3) 동계와 동약
          • 3) 향촌자치조직의 변질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1. 사족의 향촌지배조직 정비
          • 1) 난후의 향촌실정
          • 2) 향촌지배조직의 복구와 정비
            • (1) 경재소의 혁파와 향촌지배조직의 정비
            • (2) 동계·동약의 중수와 상하합계
        • 2. 사족의 향촌지배와 서원의 발달
          • 1) 사족 중심의 향촌운영
          • 2) 서원의 증설과 역할의 증대
          • 3) 서원정책의 추이
        • 3. 사족의 향권과 수령권
          • 1) 조선 중기 향권의 의미
          • 2) 사족의 향권의 내용
          • 3) 수령권 강화와 사족의 향권 상실
          • 4) 조선 후기 향권의 추이
        • 4. 사족지배체제하의 신분질서
          • 1) 사족 중심 신분질서의 확립
          • 2) 양란중의 신분 혼효와 정리
          • 3) 각 신분의 존재 양상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1. 예학의 발달
          • 1) 가례의 연구와 집성
            • (1)≪주자가례≫에 대한 학문적 관심
            • (2)≪주자가례≫의 주석과 언해
            • (3)≪주가가례≫연구의 심화
          • 2) 고전 예서의 연구
          • 3) 예학의 경향과 전례 논쟁
            • (1) 예학의 두 경향
            • (2) 전례 논쟁의 배경
            • (3) 인종의 문소전 부묘 논의와 공의전의 복제 논쟁
            • (4) 공빈의 추숭 논란
            • (5) 원종(정원군) 추숭의 전례 논쟁
        • 2. 종법제의 보급과 가족제도의 변화
          • 1) 종법제의 원리
          • 2) 종법과 가족제
          • 3) 제사와 상속
          • 4) 족보의 보급과 동성마을의 형성
        • 3. 유교문화와 농민사회
          • 1) 유교문화 원리의 보급
          • 2) 교육기구의 운용과 의례의 수용
          • 3) 의례변화의 제양상
            • (1) 관혼례의 변화
            • (2) 상제례의 변화
          • 4) 농민사회의 예속 변화의 몇 문제
        • 4. 순국·순절자의 포정
          • 1) 사림의 정표운동
          • 2) 국가의 정표정책
      • Ⅳ. 학문과 종교
        • 1. 성리학의 발달
          • 1) 학파의 분화
          • 2) 이기철학의 발달과 전승
          • 3) 17세기 성리학의 추세
            • (1) 율곡학파
            • (2) 퇴계학파
            • (3) 퇴율절충론
            • (4) 탈주자학적 유학사상
          • 4) 존주론과 명분주의
        • 2. 양명학의 전래와 연구
          • 1) 양명학의 전래와 초기 수용형태
          • 2) 양명학의 비판과 수용의 문제
          • 3) 초기 양명학 수용자들의 현실 인식
        • 3. 서양문물의 전래와 반응
          • 1) 서양문물 도입의 주역
            • (1) 내도 양인의 문화적 의의
            • (2) 접촉과 재래의 주역 연행사행원들
          • 2) 17세기 서양문물의 도입
          • 3) 조선사회의 서양문물에 대한 반응
            • (1) 곤여만국전도와≪직방외기≫
            • (2)≪천주실의≫와≪교우론≫
            • (3) 서양기기
            • (4) 한역 천문서와 역산서
          • 4) 서양문물의 실용적 채용
          • 5) 17세기 서양문물 전래의 역사성
        • 4. 실학의 태동
          • 1) 실학의 성립과 그 개념
          • 2) 초기 실학의 계보와 성격
        • 5. 국문 보급과 국어 연구
          • 1) 시대적 특성과 경향
          • 2) 국문 보급과 언문자모
          • 3) 음운학 연구의 전개
          • 4) 어휘 정리와 고증적 해석
        • 6. 역사학
          • 1) 역사학의 사상적 배경
          • 2) 고려 이전의 역사에 대한 서술
            • (1) 사략형 사서의 유행
            • (2) 기자에 대한 사료의 수집
            • (3) 강목형 사서의 출현
            • (4) 역사지리학 연구의 심화
            • (5) 해동악부체 시가의 출현과 그 발전
          • 3) 당대사의 편찬
            • (1) 실록의 편찬과 보관
            • (2)≪비변사등록≫등 연대기 기록의 편찬
            • (3) 야사형 사서의 편찬
            • (4) 사찬 지리서의 편찬
            • (5) 일기의 작성
          • 4) 역사학과 사학사상의 특징
        • 7. 불교계의 동향
          • 1) 산중승단
          • 2) 산승의 법통
          • 3) 불교신앙의 제형태
            • (1) 정토신앙
            • (2) 밀교신앙
            • (3) 미륵신앙
            • (4) 기타 신앙 및 도교·민속과의 습합
          • 4) 의승군의 조직과 활동
        • 8. 도교와 민간신앙
          • 1) 도교
            • (1) 과의도교
            • (2) 수련도교
            • (3) 도교적 양생론과 의약 연구
            • (4) 수경신(경신수야)
          • 2) 민간신앙
            • (1) 선서와 관제신앙
            • (2) 도인들의 비밀집단
            • (3) 지리도참
      • Ⅴ. 문학과 예술
        • 1. 문학
          • 1) 시가문학
          • 2) 소설과 판소리
          • 3) 한문학
        • 2. 미술
          • 1) 회화
            • (1) 산수화의 제경향
            • (2) 인물화의 경향
            • (3) 동물화와 화조화의 경향
            • (4) 사군자화와 묵포도화의 경향
          • 2) 서예
            • (1) 고법으로의 복귀
            • (2) 석봉체의 유행
            • (3) 초서와 전예의 명가
            • (4) 필적 간행과 금석 수집
            • (5) 한글서체의 필사화
          • 3) 조각
          • 4) 공예
            • (1) 도자공예
            • (2) 금속공예
          • 5) 건축
            • (1) 일반건축양식
            • (2) 도성과 궁궐
            • (3) 읍성과 관아, 객사
            • (4) 유교건축
            • (5) 사찰건축
            • (6) 주택
            • (7) 석탑·부도
        • 3. 음악
          • 1) 궁정음악의 전승과 변화
            • (1) 보태평과 정대업
            • (2) 여민락
            • (3) 보허자와 낙양춘
            • (4) 영산회상
            • (5) 정읍과 동동
            • (6) 유황곡과 정동방곡
            • (7) 생가요량과 쌍화곡
            • (8) 제향아악
          • 2) 단가의 발생과 전개
            • (1) 대엽
            • (2) 만대엽
            • (3) 북전
            • (4) 중대엽
            • (5) 삭대엽
          • 3) 기악풍류의 성립과 발달
            • (1) 다스름
            • (2) 영산회상
            • (3) 보허자
            • (4) 여민락
          • 4) 향악조
            • (1) 향악조의 궁
            • (2) 계면조의 음계변화
          • 5) 음악유산
        • 4. 민속
        • 5. 무용·체육
          • 1) 무용
            • (1) 정재무
            • (2) 일무
            • (3) 나례희와 처용무
            • (4) 광대 소학지희
            • (5) 나례우인
          • 2) 체육
            • (1) 성균관에서의 대사례
            • (2) 향교의 향사례
            • (3) 방희
            • (4) 격구
        • 6. 의식주 생활
          • 1) 의생활
            • (1) 시대배경 및 의생활
            • (2) 의생활 변모의 3단계
            • (3)≪국조오례의≫와≪경국대전≫의 복식
            • (4) 일반 편복 구조
          • 2) 식생활
            • (1) 의례음식의 규범 정립
            • (2) 가정 상비식품의 발달
            • (3) 향토음식의 발달
          • 3) 주생활
            • (1) 주거의 계층적 특성
            • (2) 유교적 생활문화의 확산과 주거 공간의 분화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1. 사족의 향촌지배조직 정비

1) 난후의 향촌실정

 임진왜란은 승패에 관계없이 조선왕조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막대한 인명과 재산의 손실로 요약될 수 있다. 왜적은 주요 거점을 장악하여 북상하면서 주위의 지역을 분탕하고 인명을 살상하고 창고를 약탈하며 관아와 각종 시설물을 불태워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더욱이 전황이 교착되면서는 그들이 장악하고 있던 거점을 중심으로 먼 지역에 이르기까지 노략질하여 그 피해는 전라도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이러한 사정에서 오는 인명의 손실은 실로 막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명의 손실은 왜적의 침략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 못지않게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였다. 난초부터 계속된 흉년으로 인한 기근과 선조 26년(1593) 초부터 크게 번진 전염병에 의해 영남의 경우 문경 이하부터 밀양에 이르기까지 수백 리가 텅비었다고 표현되기도 하였다.0066)

 여기에 明軍의 주둔과 이에 따른 군량미의 공급, 그리고 이들의 침탈은 이러한 사정을 더욱 악화시켜 당시의 향촌사회를 극도로 피폐하게 하였다.0067) 이러한 사정에서 왜적의 직접적인 침략을 당하였던 지역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던 곳에서조차 난리를 당한 지역과 마찬가지 모습이었다.

 이러한 사정에서 생존의 문제는 사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지만, 하층민에게 있어서는 더욱 심각한 문제였다. 하층민은 생존을 위하여 倭賊化하거나, 土賊이 되었다. 하층민은 난초부터 적의 嚮徒가 되거나 왜적화하여 지배층에 저항하고 있었다. 의병의 조직은 한편에서는 바로 이들에 대한 방어이기도 하였다. 토적은 왜적화한 백성들과는 달리 왜적이 물러가고 명군이 진주한 이후에 주로 그들의 생활거주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것은 명군의 침학과 이들에 대한 군량공급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이에 대한 민중적 저항이기도 하였다.

 명군의 침학과 그들에 대한 군량공급 문제는 심각하여 굶주려 죽는 자가 속출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의병 역시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0068) 의병에 가담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이제 그들의 생계를 개별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그러나 하층민의 경우에는 이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정에서 의병에 참여하였던 많은 하층민은 토적으로 재편성되기도 하였다. 곧, “군량미가 없어서 군사가 한 번 흩어지면 강자는 敵中에 투신하고, 약자는 구렁에서 죽거나 아니면 흩어져 토적이 된다”0069) 거나, “토적은 의병활동을 하던 자가 기근을 이기지 못해서 된 것이다”0070)라는 것은 그 구체적인 예가 된다. 이러한 토적은 곳곳에서 봉기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이 극심하였다.

 조정에서는 토적의 괴수를 잡는 자에게는 堂上·守令이면 嘉善을, 士人이면 6品敍用을, 雜人私賤에게도 禁軍을 제수하는 剿捕事目을 반포하는 등0071)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였으나, 토적은 날마다 끊이지 않아 감옥에 가득하여 백성들은 결국 왜적에 죽고, 질병에 죽고, 감옥에서 죽는 처참한 상황이었다. 柳成龍은 이러한 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굶주림이 심하고 군량을 운반하는데 피곤하여 늙은 이는 쓰러져 죽고, 장정들은 도적이 되었으며, 더욱이 거듭되는 전염병으로 인하여 거의 다 죽어 없어졌다. 심지어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柳成龍,≪懲毖錄≫1593년 10월 車駕還都).

 이러한 임란 중의 사정은 말할 것도 없이 난 이후의 인구감소라는 현상을 필연적으로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난 직후에 편찬된≪咸州誌≫의 편찬자는 함안지역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우리 고을은 비록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져 있기는 하지만 인물이 풍성하였다. 우리 山翼 한 마을을 예로 들어 말하면 당시 호구에 등재된 자가 850여 명이나 되었는데 지금 한 사람도 돌아오는 자가 없다. 한 모퉁이가 이러니 전국을 알만하다”0072)라 하여 난 이후 인구이산의 실상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에서 난 이후의 인구가 전국적인 규모에서는 난전의 6, 7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도 하였다.0073)

 이런 상황에서 전답 또한 제대로 경작될 리 없었다. 이것은 전쟁이 끝난 10여 년 뒤 조사된 전국의 田結數에서도 확인된다. 곧 임란전 전결수는 1,608,000결이었던 것이 광해군 3년(1611)에는 541,000결에 불과하여 6, 70%나 감소하였다. 그 중에서도 경상도가 가장 극심하여 난전의 43만 결에서 7만 결로 격감하였고, 전란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던 전라도 또한 75%나 감소하였다.0074) 전라도의 경우는 전란의 직접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募兵과 군량의 독촉이 상대적으로 심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수백 명의 노비를 소유하였던 사족의 경우에도 난후 피난에서 돌아왔을 때는 집터에는 쑥대만 무성하고 노복은 모두 죽어 겨우 몇 명만이 살아남아 있을 뿐이었다.0075)

 수백 명의 노비 중 몇 명만이 남게 된 것은 물론 전란으로 인한 노비의 사망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한편에서는 노비의 도망에서 오는 것이었다. 16세기에 있어서도 노비들은 도망을 통해 소극적으로 저항하고 있었지만, 임란을 통해서 그들의 저항은 보다 적극적이고 광범한 것이어서 재지사족에게 심각한 경제적인 손실을 주고 있었다.

 재지사족은 이제 노비를 不忠·不勤한 존재로 표현하거나, 또는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토지 경영을 주로 노비노동에 의존하고 있던 재지사족에 있어서 노비의 사망·도망은 그들 소유의 토지에 대한 파악마져 어렵게 하였다. 이러한 사정은 임란 후에 작성된 사족가문의 分財記에 여실히 반영되고 있었다.

 난후 막대한 인명의 상실과 전답의 황폐화는 사족 또는 사족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이것은 결국 국가적인 문제였으나, 촌락을 단위로 한 공동체적인 삶을 오랫동안 영위하여 왔던 향촌사회에는 보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공동체적인 삶 자체가 위협받는 것이었다.

辰巳(1592∼1593) 이후 인물이 소진하여 한 고을의 사람이 수 십 명도 채 되지 않으며, 한 마을의 사람 또한 2, 3인에 불과하여 외롭고 쓸쓸하기 그지 없다. 族親 중에 재력이 있다 하여도 이웃의 도움을 받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만약 疎遠함을 친밀하게 하고 마을을 합하여 한 洞으로 하여 서로 돕지 않는다면 외롭고 쓸쓸하여 살아서는 누구와 더불어 노래하며 죽어서는 어느 누가 곡하리오(徐思遠,≪樂齋先生文集≫권 7, 河東里社契約序).

 이러한 사정에서 洞里간의 合洞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군현이 통폐합되기도 하였다. 가령 진주의 경우에는 난전 112개 里坊이 난후에 53개 리방으로 통폐합되었으며,0076) 단성현의 경우에는 산청에 합속되기도 하였다.

 임란은 이렇듯 인구의 감소와 전답의 황폐화뿐만 아니라 향촌지배세력인 재지사족에게는 또다른 문제를 안겨주었다. 즉, 향촌사회의 피폐와 함께 그들의 향촌지배 근간이었던 留鄕所(鄕廳)와 鄕案이 임란의 와중에 소실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사족 역시 생명의 보존조차 어려웠던 상황은 그들의 향촌지배의 기반을 일시에 와해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임란의 극복은 도리어 재지사족의 영향력을 향촌사회에서 증대시키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임란으로 인한 피폐는 전국적인 현상이었고, 재지사족 또한 그 참화를 모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보다 결정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전국적인 범위에 토지와 노비를 소유하고 있던 중앙관료였다. 토지의 황폐화와 노비의 사망 또는 도망에서 오는 경제적인 몰락은 더 이상 그들을 정치주도세력으로 존재할 수 없게 하였다. 재지사족 역시 이러한 사정은 마찬가지였지만, 난중에는 의병활동을 난후에는 신속한 복구작업을 통하여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임란 의병의 활동은 거의 전국적인 것이었고, 의병을 주도하였던 것은 다름 아닌 재지사족이었다. 의병은 재지사족이 그들의 난전 향촌지배조직과 상호간의 혈연적·지연적 연대를 바탕으로 官兵과 일반농민, 弓手 등 하층민과 연합함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재지사족은 의병활동을 통하여 그들의 경제적 기반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서는 향촌사회 하층민을 직접 지배함과 아울러 중앙권력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시킬 수 있었다. 재지사족의 이러한 영향력의 확대는 곧바로 관직의 제수라는 형태로 현실화하고 있었다.

 의병의 활동이 활발하던 시기인 선조 25년(1592) 10월에는 군공이 많아서 軍器侍正 30, 副正 50, 舍正·判官·主簿 각 80, 禮賓侍直長·奉事·參奉 각 100 등 일거에 620여 職宦이 가설되고 있었고,0077) 난후의 宣武原從功臣錄의 9,000여 명에 달하는 숫자 중 상당수는 재지사족에 대한 논공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내용은 이후에 작성되는 각 읍지의 인물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임란을 통해 지방 사족은 자기성장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며, 이것은 결국 난후의 향촌질서를 그들 중심으로 재확립할 수 있게 한 배경이 되었다.0078)

 임란을 경과한 향촌사회는 막대한 인명의 손실, 전답의 상실, 토적의 봉기, 노비의 도망 등에서 온 사회·경제적 혼란에 대한 전후 복구와 향촌질서의 재확립이 절실한 문제였고, 그리고 새로운 향촌질서의 확립은 향촌지배라는 차원에서 재지사족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이러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향사당·향안의 중수, 동계·동약의 실시 등 난전 재지사족의 향촌지배조직의 정비와 서원의 건립 등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0066)柳成龍,≪懲毖錄≫, 辰巳錄.
0067)趙 靖,≪壬亂日記≫권 3, 계사 7월 28일·8월 23일.
0068)鄭震英,<壬亂前後 尙州地方 士族의 動向>(≪民族文化論叢≫8, 嶺南大, 1987).
0069)≪宣祖實錄≫권 59, 선조 28년 정월 정유.
0070)≪宣祖實錄≫권 59, 선조 28년 정월 을해.
0071)≪宣祖實錄≫권 58, 선조 27년 12월 을사.
0072)≪咸州誌≫.
0073)≪仁祖實錄≫권 13, 인조 4년 윤6월 정미.
0074)≪增補文獻備考≫권 148, 田賦考 8 (광해군 3년).
0075)趙 靖,≪壬亂日記≫권 3, 계사 8월 22일.
0076)李海濬,<17世紀初 晉州地方 里坊再編과 士族>(≪奎章閣≫6, 1982).
0077)≪宣祖實錄≫권 32, 선조 25년 11월 경신.
0078)정진영,<16, 17세기 재지사족의 향촌지배와 그 성격>(≪역사와 현실≫3, 1990).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