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Ⅳ. 학문과 종교1. 성리학의 발달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1. 16세기 사족의 향촌지배
          • 1) 사족지배체제의 형성과 그 의미
          • 2) 재지세력의 변화
          • 3) 사족지배체제와 수령권
          • 4) 향촌기구의 여러 양상
            • (1) 향약의 도입과 정착
            • (2) 유향소의 기능
            • (3) 향교와 사마소
        • 2. 향촌자치조직의 발달
          • 1) 향촌자치조직의 발달 배경
          • 2) 향촌자치조직의 내용과 성격
            • (1) 유향소와 경재소
            • (2) 향약과 향규
            • (3) 동계와 동약
          • 3) 향촌자치조직의 변질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1. 사족의 향촌지배조직 정비
          • 1) 난후의 향촌실정
          • 2) 향촌지배조직의 복구와 정비
            • (1) 경재소의 혁파와 향촌지배조직의 정비
            • (2) 동계·동약의 중수와 상하합계
        • 2. 사족의 향촌지배와 서원의 발달
          • 1) 사족 중심의 향촌운영
          • 2) 서원의 증설과 역할의 증대
          • 3) 서원정책의 추이
        • 3. 사족의 향권과 수령권
          • 1) 조선 중기 향권의 의미
          • 2) 사족의 향권의 내용
          • 3) 수령권 강화와 사족의 향권 상실
          • 4) 조선 후기 향권의 추이
        • 4. 사족지배체제하의 신분질서
          • 1) 사족 중심 신분질서의 확립
          • 2) 양란중의 신분 혼효와 정리
          • 3) 각 신분의 존재 양상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1. 예학의 발달
          • 1) 가례의 연구와 집성
            • (1)≪주자가례≫에 대한 학문적 관심
            • (2)≪주자가례≫의 주석과 언해
            • (3)≪주가가례≫연구의 심화
          • 2) 고전 예서의 연구
          • 3) 예학의 경향과 전례 논쟁
            • (1) 예학의 두 경향
            • (2) 전례 논쟁의 배경
            • (3) 인종의 문소전 부묘 논의와 공의전의 복제 논쟁
            • (4) 공빈의 추숭 논란
            • (5) 원종(정원군) 추숭의 전례 논쟁
        • 2. 종법제의 보급과 가족제도의 변화
          • 1) 종법제의 원리
          • 2) 종법과 가족제
          • 3) 제사와 상속
          • 4) 족보의 보급과 동성마을의 형성
        • 3. 유교문화와 농민사회
          • 1) 유교문화 원리의 보급
          • 2) 교육기구의 운용과 의례의 수용
          • 3) 의례변화의 제양상
            • (1) 관혼례의 변화
            • (2) 상제례의 변화
          • 4) 농민사회의 예속 변화의 몇 문제
        • 4. 순국·순절자의 포정
          • 1) 사림의 정표운동
          • 2) 국가의 정표정책
      • Ⅳ. 학문과 종교
        • 1. 성리학의 발달
          • 1) 학파의 분화
          • 2) 이기철학의 발달과 전승
          • 3) 17세기 성리학의 추세
            • (1) 율곡학파
            • (2) 퇴계학파
            • (3) 퇴율절충론
            • (4) 탈주자학적 유학사상
          • 4) 존주론과 명분주의
        • 2. 양명학의 전래와 연구
          • 1) 양명학의 전래와 초기 수용형태
          • 2) 양명학의 비판과 수용의 문제
          • 3) 초기 양명학 수용자들의 현실 인식
        • 3. 서양문물의 전래와 반응
          • 1) 서양문물 도입의 주역
            • (1) 내도 양인의 문화적 의의
            • (2) 접촉과 재래의 주역 연행사행원들
          • 2) 17세기 서양문물의 도입
          • 3) 조선사회의 서양문물에 대한 반응
            • (1) 곤여만국전도와≪직방외기≫
            • (2)≪천주실의≫와≪교우론≫
            • (3) 서양기기
            • (4) 한역 천문서와 역산서
          • 4) 서양문물의 실용적 채용
          • 5) 17세기 서양문물 전래의 역사성
        • 4. 실학의 태동
          • 1) 실학의 성립과 그 개념
          • 2) 초기 실학의 계보와 성격
        • 5. 국문 보급과 국어 연구
          • 1) 시대적 특성과 경향
          • 2) 국문 보급과 언문자모
          • 3) 음운학 연구의 전개
          • 4) 어휘 정리와 고증적 해석
        • 6. 역사학
          • 1) 역사학의 사상적 배경
          • 2) 고려 이전의 역사에 대한 서술
            • (1) 사략형 사서의 유행
            • (2) 기자에 대한 사료의 수집
            • (3) 강목형 사서의 출현
            • (4) 역사지리학 연구의 심화
            • (5) 해동악부체 시가의 출현과 그 발전
          • 3) 당대사의 편찬
            • (1) 실록의 편찬과 보관
            • (2)≪비변사등록≫등 연대기 기록의 편찬
            • (3) 야사형 사서의 편찬
            • (4) 사찬 지리서의 편찬
            • (5) 일기의 작성
          • 4) 역사학과 사학사상의 특징
        • 7. 불교계의 동향
          • 1) 산중승단
          • 2) 산승의 법통
          • 3) 불교신앙의 제형태
            • (1) 정토신앙
            • (2) 밀교신앙
            • (3) 미륵신앙
            • (4) 기타 신앙 및 도교·민속과의 습합
          • 4) 의승군의 조직과 활동
        • 8. 도교와 민간신앙
          • 1) 도교
            • (1) 과의도교
            • (2) 수련도교
            • (3) 도교적 양생론과 의약 연구
            • (4) 수경신(경신수야)
          • 2) 민간신앙
            • (1) 선서와 관제신앙
            • (2) 도인들의 비밀집단
            • (3) 지리도참
      • Ⅴ. 문학과 예술
        • 1. 문학
          • 1) 시가문학
          • 2) 소설과 판소리
          • 3) 한문학
        • 2. 미술
          • 1) 회화
            • (1) 산수화의 제경향
            • (2) 인물화의 경향
            • (3) 동물화와 화조화의 경향
            • (4) 사군자화와 묵포도화의 경향
          • 2) 서예
            • (1) 고법으로의 복귀
            • (2) 석봉체의 유행
            • (3) 초서와 전예의 명가
            • (4) 필적 간행과 금석 수집
            • (5) 한글서체의 필사화
          • 3) 조각
          • 4) 공예
            • (1) 도자공예
            • (2) 금속공예
          • 5) 건축
            • (1) 일반건축양식
            • (2) 도성과 궁궐
            • (3) 읍성과 관아, 객사
            • (4) 유교건축
            • (5) 사찰건축
            • (6) 주택
            • (7) 석탑·부도
        • 3. 음악
          • 1) 궁정음악의 전승과 변화
            • (1) 보태평과 정대업
            • (2) 여민락
            • (3) 보허자와 낙양춘
            • (4) 영산회상
            • (5) 정읍과 동동
            • (6) 유황곡과 정동방곡
            • (7) 생가요량과 쌍화곡
            • (8) 제향아악
          • 2) 단가의 발생과 전개
            • (1) 대엽
            • (2) 만대엽
            • (3) 북전
            • (4) 중대엽
            • (5) 삭대엽
          • 3) 기악풍류의 성립과 발달
            • (1) 다스름
            • (2) 영산회상
            • (3) 보허자
            • (4) 여민락
          • 4) 향악조
            • (1) 향악조의 궁
            • (2) 계면조의 음계변화
          • 5) 음악유산
        • 4. 민속
        • 5. 무용·체육
          • 1) 무용
            • (1) 정재무
            • (2) 일무
            • (3) 나례희와 처용무
            • (4) 광대 소학지희
            • (5) 나례우인
          • 2) 체육
            • (1) 성균관에서의 대사례
            • (2) 향교의 향사례
            • (3) 방희
            • (4) 격구
        • 6. 의식주 생활
          • 1) 의생활
            • (1) 시대배경 및 의생활
            • (2) 의생활 변모의 3단계
            • (3)≪국조오례의≫와≪경국대전≫의 복식
            • (4) 일반 편복 구조
          • 2) 식생활
            • (1) 의례음식의 규범 정립
            • (2) 가정 상비식품의 발달
            • (3) 향토음식의 발달
          • 3) 주생활
            • (1) 주거의 계층적 특성
            • (2) 유교적 생활문화의 확산과 주거 공간의 분화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Ⅳ. 학문과 종교

1. 성리학의 발달

1) 학파의 분화

 성리학이 조선왕조의 통치이념으로 채택되어 점차 보편화되고 그 이해의 심도를 더하여 완전히 정착하게 되는 것은 조선 중기의 명종, 선조대에 이르러서이다.0524) 이 시기에 이르면 성리학적 질서와 가치관이 민간에까지 보편화될 뿐 아니라 성리학에 밝은 많은 학자들이 등장하여 이론적으로도 확고한 틀을 갖추게 된다. 조선성리학의 확립기에 해당되는 이 시기의 이름난 유학자들을 보면 명종대의 晦齋 李彦迪과 花潭 徐敬德을 선구로 하여 영남에는 退溪 李滉, 南冥 曺植이 있었고 호남에는 一齋 李恒, 河西 金仁厚, 高峰 奇大升, 眉巖 柳希春 등이 있었으며 경기에는 蘇齋 盧守愼, 龜峰 宋翼弼, 栗谷 李珥, 牛溪 成渾 등이 있었다. 이들 유학자들의 지역적인 분포만 보아도 당시 성리학의 보편화 정도를 알 수 있다. 이들 유학자들은 각기 일가를 이루어 이후 조선 성리학의 전개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그 중에서도 퇴계와 율곡의 영향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퇴계에 의해서 주자학 중심의 성리학으로 조선성리학이 정리되는 과정에서 이미 양명학을 비롯한 非程朱的 사상은 비판받기 시작했고 이 때 이미 조선성리학은 교조적인 배타성을 띠고 시작되었다 하겠다. 조선 중기 이후 성립되기 시작한 각 학파는 이러한 주자학의 배타성 위에서 각기 자기학파가 주자학의 정통임을 내세우면서 분파를 형성해갔다. 그리고 각 학파간에는 주자학에 대한 태도나 해석의 차이로 말미암아 학문적으로 대립하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것이 정치적인 당파와 결합됨으로써 학문적 대립은 정치적인 대립으로 바뀌어 상대방의 학설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판으로 일관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자학의 해석이 한층 치밀해지고 조선 전기의 주자학 해석이 지녔던 논리적 난점이 재검토되면서 새로운 성리학 조류를 형성해 나가게 된다.

 조선 중기에 들어서면서 학파라고 부를 수 있는 학자집단이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학문적 특색이 뚜렷하고 학문집단으로서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학파로는 화담학파, 남명학파, 퇴계학파, 율곡학파를 들 수 있다. 이 중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성립한 학파는 화담학파이다. 일찍이 과거공부를 포기하고 화담에 은거하여 독창적인 기일원론에 입각한 성리설을 전개하고 강학에 종사한 서경덕과 그의 문인인 蓮坊 李球, 草堂 許曄, 思庵 朴淳, 瑟僩 朴民獻, 杏村 閔純, 耻齋 洪仁祐, 土亭 李之菡 등이 화담학파에 속하는 학자들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이구, 허엽, 박순 등이 화담의 학설을 잇고 또 퇴계와 율곡의 화담 비판에 대해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학파로서의 성격을 유지했으나 학문적으로는 화담의 학설이 지닌 주정적인 성격과 도덕성을 형이상학적 차원에까지 끌어올리지 못한 기일원론의 한계 때문에 또 정치적으로는 허엽 등은 동인에, 박순 등은 서인에 가담함으로써 단일학파로서의 성격을 계속 지니지 못하고 퇴계학파와 율곡학파에 흡수되었다.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성리설의 탐구와 의리의 실천을 강조하며 평생을 보낸 남명의 문인 省庵 金孝元, 德溪 吳健, 東岡 金宇顒, 萊菴 鄭仁弘, 守愚 崔永慶, 忘憂堂 郭再祐 등으로 이루어진 남명학파는 한때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형성하면서 조선성리학의 일익을 담당했으나 인조반정으로 북인세력이 몰락하면서 퇴계학파에 흡수되었다. 그렇지만 실천궁행을 강조하는 남명의 학풍은 임란 때의 의병운동에 적극 가담하는 등 조선 후기까지 면면히 이어졌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는 조선 중기 성리학의 성과를 집대성한 두 거봉으로 이들의 주자학 해석에 대한 미묘한 차이는 이후 조선성리학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들의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후기에까지 학맥을 이어가면 조선성리학의 중심축을 이룬 학파가 퇴계학파와 율곡학파이다.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는 처음에는 퇴계의 문인과 율곡의 문인으로 이루어진 학문적 집단으로 출발했으나 이들 학파의 중심이 되는 학자들이 남인과 서인이라는 당파의 주축 인물이 됨에 따라 정치적으로 지역적으로 가까운 학자들이 각 학파에 가세하게 되어 마침내는 조선의 성리학자 대부분이 퇴계학파나 율곡학파 가운데 어느 한쪽에 속하게 되었다.

 퇴계학파는 퇴계의 직전 제자인 月川 趙穆(1524∼1605), 西厓 柳成龍(1542∼1607), 鶴峯 金誠一(1538∼1553)과 퇴계·남명 양문을 출입한 寒岡 鄭逑(1543∼1620) 및 북인의 몰락으로 퇴계학파에 흡수된 남명계의 유학자들로 이루어지는데, 이 가운데 학봉·서애·한강은 퇴계문하의 삼걸로 일컬어지며 이들로부터 퇴계학파 내의 여러 분파가 생겨났다. 학봉의 문인들과 서애의 문인들은 서원배향의 위계문제 때문에 일찍이 호파와 병파로 나누어졌고 후에 한강-미수로 이어지는 기호 퇴계학파와 한강-여헌으로 이어지는 학파가 형성됨으로 해서 퇴계학파는 네 분파로 나누어져 발전하게 되었다.0525)

 이들 학파의 사상적 특색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이들 학파를 이루었던 유학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퇴계학파의 중심을 형성한 학파는 근래까지도 그 학맥을 이어온 학봉의 문파인데 학봉의 퇴계존숭은 敬堂 張興孝를 거쳐 存齋 李徽逸(경당의 외손), 葛庵 李玄逸, 密庵 李裁(갈암의 아들), 大山 李象靖(밀암의 외손)으로 이어졌고, 다시 立齋 鄭宗魯, 定齋 柳致明, 西山 金興洛(학봉의 후손), 深齋 曺競燮, 損齋 南漢朝를 지나 凝窩 李源祚, 寒州 李震相, 俛宇 郭鍾錫 등의 한말 理學者에까지 연결된다. 서애계의 학맥은 愚伏 鄭經世, 修巖 柳袗(서애의 계자), 拙齋 柳元之(수암의 조카), 活齋 李, 息山 李萬敷, 淸臺 權相一로 이어진다. 한강의 문인도 일파를 형설할 정도로 많았는데 畏齋 李厚慶, 樂齋 徐思遠, 朽淺 黃宗海, 眉叟 許穆 등이 대표적인 한강의 제자였다. 이 중 미수 허목에 의하여 기호의 퇴계학파가 성립되었는데 星湖 李瀷, 順庵 安鼎福, 下廬 黃德吉, 性齋 許傳으로 학맥을 잇는다. 한강을 종유한 여헌의 문인으로는 鶴沙 金應相, 雙峰 鄭克後, 修巖 柳袗을 들 수 있다.

 이들 퇴계학파의 네 분파 중 학봉계와 서애계는 퇴계의 학설을 부연설명하여 퇴계의 理氣互發說을 중심으로 하는 성리설을 그대로 잇고 있으나 미수계와 여헌계는 퇴계학파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사상은 퇴계의 학설과 꼭 부합하지는 않는다. 여헌과 미수가 모두 탈주자학적인 경학을 전개한 白湖 尹鑴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도 畿湖南人(기호의 퇴계학파)의 성격과 더불어 흥미있는 점이라 하겠다.

 율곡학파는 율곡의 문인과 율곡의 교우인 우계 성혼과 구봉 송익필의 문인들 그리고 화담계의 유학자 일부가 합쳐져서 형성되는데 당파로는 서인과 연결되며 지역적으로는 기호와 연결된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서인에 속했던 沈義謙·朴淳·金繼輝·鄭澈·尹斗壽·尹根壽 등은 율곡과 우계의 교우였고 趙洽·具宬 등은 우계의 문인이었으며, 趙憲·李貴·黃愼·安邦俊·鄭曄 등은 율곡·우계 양문에 모두 출입했던 학자들이다. 율곡의 학통은 본래 구봉의 문인이었던 沙溪 金長生(1548∼1631)으로 이어지고 그의 아들인 愼獨齋 金集(1574∼1656), 尤菴 宋時烈(1607∼1689), 同春堂 宋浚吉(1606∼1672)을 거쳐 遂菴 權尙夏(1641∼1721), 農巖 金昌協(1651∼1708)으로 이어진다. 송시열대에 와서 율곡학파는 조선성리학의 정통임을 자부하게 되는데 이 무렵 율곡학파는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서인 원로와 尹拯을 중심으로 한 서인 소장학자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말미암아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게 되고 南溪 朴世采(1631∼1695), 拙修齋 趙聖期(1638∼1689), 滄溪 林泳(1649∼1696), 三淵 金昌翕(1653∼1722), 西溪 朴世堂(1629∼1703), 霞谷 鄭齊斗(1649∼1736) 등은 송시열 계통의 고식적 주자학 해석에서 벗어난 새로운 조류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기본적으로는 율곡의 성리학에 동조하면서도 약간 퇴계와 율곡의 절충적인 경향을 띠거나, 한학 혹은 양명학을 수용하여 주자학에서 이탈하게 되는데 그 근원은 퇴계와 율곡 사이에서 유연한 입장을 유지했던 우계 성혼의 학문적 태도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한편 율곡학파의 적통에 해당되는 수암의 문인인 南塘 韓元震(1682∼1751)과 巍巖 李柬(1677∼1727) 사이에 벌어진 人物性同異論爭으로 말미암아 율곡학파는 다시 학문적으로 湖學과 洛學으로 나뉘게 되는데 이 호락논쟁의 여파로 율곡학파의 맥을 잇는 기호의 성리학자들은 다양한 경향을 띠게 된다.

0524)조선 전기 성리학의 이해과정에 관해서는 金恒洙,<16세기 士林의 性理學理解>(≪韓國史論≫7, 서울大, 1981).
0525)李丙燾는 여헌이 한강을 따라 종유했고 서애와 가까웠으므로 여헌과 그 문인을 퇴계학파의 사소문파 중의 하나로 간주했으나(李丙燾,≪韓國儒學史略≫, 亞細亞文化社, 1986, 283쪽), 劉明鍾은 여헌학의 독창성을 강조하여 퇴계학파에 넣지 않았다(劉明鍾,≪韓國思想史≫, 以文社, 1981, 408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