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2권 조선 후기의 정치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1. 세도정치의 성립과 운영 구조1) 세도정치의 성립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1. 탕평책 실시의 배경
          • 1) 붕당정치의 위기
          • 2) 탕평론의 대두
        • 2. 영조대 탕평정국과 왕정체제의 정비
          • 1) 탕평책 시행
            • (1) 탕평책의 제기
            • (2) 완론탕평파의 대세 장악과 반탕평파·준론탕평파의 연대
            • (3) 정국의 추이
          • 2) 정치 구조의 변동
          • 3) 기본 법전의 정비
          • 4) 군영 정비와 군주권 강화
        • 3. 정조대 탕평정국과 왕정체제의 강화
          • 1) 준론탕평과 군신 의리
            • (1) 준론탕평론의 적용
            • (2) 정국의 추이
            • (3) 정국운영의 특징
          • 2) 규장각과 왕정
          • 3) 장용영과 군주권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1. 양역의 편성과 폐단
          • 1) 양역의 편성
          • 2) 양역의 모순과 폐단
        • 2. 양역변통론의 추이
          • 1) 양역변통론의 여러 형태
          • 2) 양역변통론의 대두
          • 3) 양역변통론의 전개
        • 3. 균역법의 시행과 그 의미
          • 1) 균역법의 제정 경위
            • (1) 감필
            • (2) 급대재원의 마련
          • 2) 균역법의 내용
            • (1) 감필균역
            • (2) 균역청
            • (3) 군액감축
            • (4) 급대재원 조달
            • (5) 급대
          • 3) 균역법의 의미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1. 세도정치의 성립과 운영 구조
          • 1) 세도정치의 성립
            • (1) 권세가의 권력 독점
            • (2) 왕권의 약화와 붕당의 퇴조
          • 2) 세도정치의 성격
            • (1) 정치 참여층
            • (2) 권력의 주체
            • (3) 국정 인식과 정책
          • 3) 세도정치의 운영 구조
            • (1) 비변사
            • (2) 중앙 군영
            • (3) 언로와 공론
        • 2. 세도정치의 전개
          • 1) 순조대의 세도정치
            • (1) 정순왕후 수렴청정기(순조 즉위년∼3년)
            • (2) 순조 친정 초기(순조 4년∼11년)
            • (3) 순조 친정 중기(순조 12년∼26년)
            • (4) 효명세자 대리청정기(순조 27년∼30년 5월)
            • (5) 순조 친정 말기(순조 30년 6월∼34년)
          • 2) 헌종대의 세도정치
            • (1) 헌종대 순원왕후 수렴청정기(헌종 즉위년∼6년)
            • (2) 헌종 친정기(헌종 7년∼14년)
          • 3) 철종대의 세도정치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1. 삼정의 문란
          • 1) 전세제도의 문란
            • (1) 전결세 항목의 증가
            • (2) 전정의 부실
            • (3) 전정의 폐단
          • 2) 군역제의 해이
            • (1) 군역제의 변화
            • (2) 군역제 개혁
            • (3) 군역제의 문란
          • 3) 환곡제의 변질
            • (1) 환곡제 운영
        • 2. 삼정개혁론의 전개
          • 1) 19세기 전반기의 삼정개혁론
          • 2) 1862년 농민항쟁기의 삼정개혁론
            • (1) 삼정에 대한 책문
            • (2) 삼정개혁방안
          • 3) 삼정이정론의 반영
        • 3. 부세제도 개선의 한계
          • 1) 삼정체제의 구조적 모순
          • 2) 전정이정책과 정책의 추진
            • (1) 전정의 구조적 문제와 이정책 수립
            • (2) 정책 추진의 실상과 한계
          • 3) 군정이정책과 정책의 추진
            • (1) 군정의 구조적 문제와 이정책 수립
            • (2) 정책추진의 실상과 한계
          • 4) 환정이정책과 정책의 추진
            • (1) 환정의 구조적 문제와「파환귀결책」
            • (2) 정책추진의 실상과 한계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1. 청국과의 관계
          • 1) 호란 후 대청관계의 수립
          • 2) 심양에서의 소현세자
          • 3) 1650년대 이후 북벌론과 나선정벌에의 출병
          • 4) 백두산 정계비 문제
          • 5) 조선과 청의 문화적 관계
        • 2. 일본과의 관계
          • 1) 왜란 이후 조일 통교의 회복
            • (1) 17세기 초 국교 회복 교섭과 대일본정책
            • (2) 기유약조의 체결과 통교체제의 확립
            • (3) 통교 회복 직후 조일 교린관계의 실태
          • 2) 17세기 중반 조일 통교체제의 개편
            • (1) 국서개작사건과 통교루트의 일원화
            • (2) 통교체제의 개편
            • (3) 겸대제 실시와 외교 사행의 정비
            • (4) 왜관 중심의 통교·무역과 조일 교섭체계의 형성
          • 3) 17세기 후반 이후 조일 통교양상의 변화
            • (1) 1711년 신묘년 통신사에 대한 의례 변경과 그 의미
            • (2) 17세기 후반 조일 양국민의 접촉과 대일정책
          • 4) 19세기 조일 통교체제의 왜곡
            • (1) 통신사 의례의 왜곡
            • (2) 조일 교린관계의 변화
          • 5) 개항 전후 양국관계의 추이와 전근대 통교체제의 붕괴
            • (1) 개항 전 일본에서의 정치적 변동과 대마번의 조일 통교 대행
            • (2) 왜관 침탈과 조일관계의 변질
            • (3) 조일수호조규 성립과 전근대 조일 통교체제의 붕괴
        • 3. 서양과의 관계
          • 1) 조선과 서세동점
          • 2) 조선 선교의 시도
          • 3) 서양인과의 접촉
          • 4) 이양선의 출현
          • 5) 서양인의 조선 인식
          • 6) 지도 제작과 조선 인식의 확대
          • 7) 조선인의 서양 인식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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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1. 세도정치의 성립과 운영 구조

1) 세도정치의 성립

(1) 권세가의 권력 독점

 19세기 전반의 정치를 전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처음으로 ‘世道’라는 용어가 쓰여진 것은 朴齊炯의 ≪近世朝鮮政鑑≫에서였다.346) 즉 “조선에서는 政權을 世道라고 하며 어떤 사람이나 집안이 그것을 가지는데, 왕이 세도의 책임을 명하면 지니고 있는 관직에 관계없이 의정 판서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고, 국가의 중대사와 모든 관료의 보고를 왕보다 먼저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설명은 대개 그대로 이어져, ‘勢道政治’가 순조·헌종·철종 연간의 정치를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다만 ‘세도정치’의 ‘세도’는 ‘世道’라는 말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勢道’라고 표기하여 趙光祖·鄭仁弘·宋時烈 등의 정치적 역할을 설명하는 데 쓰인 ‘世道’와 질적인 차이를 나타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원래 世道란 세상을 세상답게 하기 위해서 세상 사람이 지켜 가는 길을 가리키는 말로, 조선 건국 이후 유교적 왕정 관념이 강화되면서 국왕이 세도의 책임자로서 더욱 중요해졌다.347) 그러나 16세기 후반 이후 士林이 정치 주도세력이 되자 세도에 대한 책임도 국왕에게서만 구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퍼져나갔고, 특히 유학자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山林’이 정치 운영의 중심축으로 떠올라 제도적으로 그들이 정책 결정권을 나누어 갖는 것을 보장하게 되었다. 나아가 송시열 단계에 이르러서는 세도의 담당자는 ‘義理主人’인 산림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조선 중기의 붕당정치적 질서에서는 勳臣과 더불어 戚臣의 정치 참여가 적극적으로 견제되었다. 그러나 노론의 권력 독점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산림세력과 왕실 외척 가문의 결합을 바탕으로 정권이 유지되는 하나의 정치 형태가 이루어졌다. 붕당 및 정파 사이의 경쟁과 대립이 격화되면서 훈척세력이 兵權을 중심으로 큰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348) 그것은 扈衛大將의 경우 훈척만이 임명될 수 있다는 규정이 새로 만들어진 데 나타나는 바와 같이 공식화되기도 하였다. 특히 척신의 정치적 비중이 점점 커졌고, 사도세자의 장인 洪鳳漢과 영조의 처남 金龜柱를 중심으로 한 영조 말년 왕실 외척 사이의 대립은 순조 즉위 후 貞純王后에 의해 義理를 근간으로 한 정당한 것이었다고 평가될 정도였다.

 정조는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고자 왕권의 강화와 유교적 관료제의 정착을 추구하면서, 국왕 스스로 세도의 담당자이며 책임자로 나섰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의 정치체제로 정립시키지 못한 채 죽음으로써 탕평정치하에서 군주 중심의 정치 운영 질서를 하나의 체제로 정립시키는 데는 실패하였다.

 하지만, 순조 초년까지는 국정에서 훈척의 의미를 중시하는 인식과 함께 훈척의 정치 참여를 경계하는 전통적인 인식도 강하게 존속되고 있었다. 金祖淳은 국구가 되기 전인 순조 즉위년(1800)에 壯勇大將職을 사양하는 상소에서 훈척 양면으로 근거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장용대장과 같은 군문대장의 경우도 훈신 또는 외척으로서의 신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김조순은 이조판서를 사직하면서도 같은 논리를 개진한 바 있다. 그러나 반대로 순조 즉위 직후의 논의에서 沈煥之는 김조순을 두고 순조의 외조부인 朴準源과는 처지가 다르므로 조정의 논의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외척의 국정 참여에 한계를 두는 입장에서 나온 말이다. 이러한 모순은 순조 즉위 직후 僻派세력이 주도권 장악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을 당시에 대왕대비가 박준원·김조순을 戚里 또는 척리에 준하는 위치 때문에 서용하지 않을 수 없으면서도 정조 연간에는 척리를 쓰지 않았음을 강조한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척신의 공식적인 정치참여가 점점 자연스러운 것으로 굳어져 갔다.349) 순조 17년에 죽은 朴宗慶에게 붙인 史評에서는 그의 氣槪와 더불어 국왕 외조부의 아들이었다는 점을 근거로, 단시간에 정경에 승진하고 훈련대장[元戎]을 맡은 것을 당연시하였다. 한편 척신의 비공식적인 활동까지도 당연한 것으로 칭송되었다. 헌종 2년(1836) 潘南 朴氏 朴周壽가 죽었을 때에도 대왕대비는 그가 안에서 담당한 역할은 밖에서 다 알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하여 내밀한 활동을 추켰던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당시 정권을 잡았던 척신들 대부분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였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순조·헌종·철종대에 정권을 장악한 외척은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의 가문, 순조 친모의 아버지인 박준원의 가문, 孝明世子의 처가인 趙萬永 가문 등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순조대, 특히 순조 11년의 홍경래란 이후로 김조순이 정권을 오로지하고 있었음은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사실이며, 김조순 사후 헌종 6년까지는 金逌根이, 헌종 친정기에는 趙寅永 및 趙秉龜가, 헌종 11년에 조병구가 죽은 뒤로는 趙秉鉉이, 철종대에는 金左根이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당시 권력가들이 세력을 행사하던 양상은≪근세조선정감≫의 내용을 통해 잘 알려져 있지만, 다음과 같은 순조 당시의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이기에 관작을 홀로 거머쥐고 맑고 화려한 관직[淸華職]들을 주무르기를 내가 아니면 아무도 안된다고 하며, 일이 권한에 관계된 것이면 자기의 물건으로 여기고, 사방에 근거를 굳혀 한 몸으로 모두 담당하려 합니까? 세간에서 칭하는 바 문관의 권한, 무관의 권한, 인사의 권한, 비변사의 권한, 군사의 권한, 재정의 권한, 토지세의 권한, 주교사의 권한, 시장 운영의 권한을 모두 손안에 잡아 득의양양해 하며 왼손엔 칼자루를, 오른손엔 저울대를 쥐어 거리낌이 없습니다(≪純祖實錄≫권 16, 순조 12년 11월 병자).

 이것은 순조 12년(1812) 趙得永이 박종경을 공격한 내용의 한 부분으로, 정적에 대한 개인의 평가이기는 하지만 그 이후 이른바 ‘權奸’들에 대한 설명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여기에 나타난 권세가의 행태는 김조순을 비롯한 집권 외척의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19세기의 권력자는 비변사를 주도함으로써 일반 국정을 장악하되 대신직에 있는 측근 관료로 하여금 주요 정사를 처리하도록 하였으므로 스스로 전면에 나서서 활동할 필요는 별로 없었다. 다만 국가에 특별한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공개적으로 정상의 권력을 행사하곤 하였다. 예를 들어 순조 11년에 홍경래란이 일어나 그 토벌군 지휘관을 뽑아야 할 때와 같은 경우 김조순은 빠지지 않고 나타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외척 권력가가 막후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었음은 정국의 중요한 고비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되기도 한다. 순조가 孝明世子로 하여금 대리청정을 하도록 명령을 내릴 때에 김조순은 이미 왕명에 앞서 측근 관인들을 불러 모아 의견을 조정하였다. 또 효명세자가 죽은 후 그 시기에 세력를 모았던 인물들에 대한 공격이 가해질 때 김조순은 세자의 지문을 쓰면서 자기 딸인 왕비의 말을 빌어 자기 세력의 활동을 정당화하고 관인들의 활동을 조종하였다.

346)세도정치에 대한 기존 연구성과에 대해서는 윤정애,<정치사 연구의 동향과 과제>(한국역사연구회 19세기정치사연구반,≪조선정치사 1800∼1863≫, 청년사, 1990), 37∼57쪽 참고.
347)이하 세도의 개념과 주체에 대해서는 박광용,<정치운영론>(한국역사연구회 19세기정치사연구반, 위의 책), 688∼693쪽 참고.
348)洪順敏,<肅宗 初期의 政治構造와 「換局」>(≪韓國史論≫15, 서울大, 1986), 129∼199쪽.
349)이하 세도정치기의 정국운영과 정책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은 오수창,<권력집단과 정국 운영>(한국역사연구회 19세기정치사연구반, 앞의 책), 575∼633쪽 참조.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