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2권 조선 후기의 정치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1. 세도정치의 성립과 운영 구조2) 세도정치의 성격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1. 탕평책 실시의 배경
          • 1) 붕당정치의 위기
          • 2) 탕평론의 대두
        • 2. 영조대 탕평정국과 왕정체제의 정비
          • 1) 탕평책 시행
            • (1) 탕평책의 제기
            • (2) 완론탕평파의 대세 장악과 반탕평파·준론탕평파의 연대
            • (3) 정국의 추이
          • 2) 정치 구조의 변동
          • 3) 기본 법전의 정비
          • 4) 군영 정비와 군주권 강화
        • 3. 정조대 탕평정국과 왕정체제의 강화
          • 1) 준론탕평과 군신 의리
            • (1) 준론탕평론의 적용
            • (2) 정국의 추이
            • (3) 정국운영의 특징
          • 2) 규장각과 왕정
          • 3) 장용영과 군주권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1. 양역의 편성과 폐단
          • 1) 양역의 편성
          • 2) 양역의 모순과 폐단
        • 2. 양역변통론의 추이
          • 1) 양역변통론의 여러 형태
          • 2) 양역변통론의 대두
          • 3) 양역변통론의 전개
        • 3. 균역법의 시행과 그 의미
          • 1) 균역법의 제정 경위
            • (1) 감필
            • (2) 급대재원의 마련
          • 2) 균역법의 내용
            • (1) 감필균역
            • (2) 균역청
            • (3) 군액감축
            • (4) 급대재원 조달
            • (5) 급대
          • 3) 균역법의 의미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1. 세도정치의 성립과 운영 구조
          • 1) 세도정치의 성립
            • (1) 권세가의 권력 독점
            • (2) 왕권의 약화와 붕당의 퇴조
          • 2) 세도정치의 성격
            • (1) 정치 참여층
            • (2) 권력의 주체
            • (3) 국정 인식과 정책
          • 3) 세도정치의 운영 구조
            • (1) 비변사
            • (2) 중앙 군영
            • (3) 언로와 공론
        • 2. 세도정치의 전개
          • 1) 순조대의 세도정치
            • (1) 정순왕후 수렴청정기(순조 즉위년∼3년)
            • (2) 순조 친정 초기(순조 4년∼11년)
            • (3) 순조 친정 중기(순조 12년∼26년)
            • (4) 효명세자 대리청정기(순조 27년∼30년 5월)
            • (5) 순조 친정 말기(순조 30년 6월∼34년)
          • 2) 헌종대의 세도정치
            • (1) 헌종대 순원왕후 수렴청정기(헌종 즉위년∼6년)
            • (2) 헌종 친정기(헌종 7년∼14년)
          • 3) 철종대의 세도정치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1. 삼정의 문란
          • 1) 전세제도의 문란
            • (1) 전결세 항목의 증가
            • (2) 전정의 부실
            • (3) 전정의 폐단
          • 2) 군역제의 해이
            • (1) 군역제의 변화
            • (2) 군역제 개혁
            • (3) 군역제의 문란
          • 3) 환곡제의 변질
            • (1) 환곡제 운영
        • 2. 삼정개혁론의 전개
          • 1) 19세기 전반기의 삼정개혁론
          • 2) 1862년 농민항쟁기의 삼정개혁론
            • (1) 삼정에 대한 책문
            • (2) 삼정개혁방안
          • 3) 삼정이정론의 반영
        • 3. 부세제도 개선의 한계
          • 1) 삼정체제의 구조적 모순
          • 2) 전정이정책과 정책의 추진
            • (1) 전정의 구조적 문제와 이정책 수립
            • (2) 정책 추진의 실상과 한계
          • 3) 군정이정책과 정책의 추진
            • (1) 군정의 구조적 문제와 이정책 수립
            • (2) 정책추진의 실상과 한계
          • 4) 환정이정책과 정책의 추진
            • (1) 환정의 구조적 문제와「파환귀결책」
            • (2) 정책추진의 실상과 한계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1. 청국과의 관계
          • 1) 호란 후 대청관계의 수립
          • 2) 심양에서의 소현세자
          • 3) 1650년대 이후 북벌론과 나선정벌에의 출병
          • 4) 백두산 정계비 문제
          • 5) 조선과 청의 문화적 관계
        • 2. 일본과의 관계
          • 1) 왜란 이후 조일 통교의 회복
            • (1) 17세기 초 국교 회복 교섭과 대일본정책
            • (2) 기유약조의 체결과 통교체제의 확립
            • (3) 통교 회복 직후 조일 교린관계의 실태
          • 2) 17세기 중반 조일 통교체제의 개편
            • (1) 국서개작사건과 통교루트의 일원화
            • (2) 통교체제의 개편
            • (3) 겸대제 실시와 외교 사행의 정비
            • (4) 왜관 중심의 통교·무역과 조일 교섭체계의 형성
          • 3) 17세기 후반 이후 조일 통교양상의 변화
            • (1) 1711년 신묘년 통신사에 대한 의례 변경과 그 의미
            • (2) 17세기 후반 조일 양국민의 접촉과 대일정책
          • 4) 19세기 조일 통교체제의 왜곡
            • (1) 통신사 의례의 왜곡
            • (2) 조일 교린관계의 변화
          • 5) 개항 전후 양국관계의 추이와 전근대 통교체제의 붕괴
            • (1) 개항 전 일본에서의 정치적 변동과 대마번의 조일 통교 대행
            • (2) 왜관 침탈과 조일관계의 변질
            • (3) 조일수호조규 성립과 전근대 조일 통교체제의 붕괴
        • 3. 서양과의 관계
          • 1) 조선과 서세동점
          • 2) 조선 선교의 시도
          • 3) 서양인과의 접촉
          • 4) 이양선의 출현
          • 5) 서양인의 조선 인식
          • 6) 지도 제작과 조선 인식의 확대
          • 7) 조선인의 서양 인식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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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1) 정치 참여층

 세도정치에서의 권력 집중은 여러 사회세력들을 중앙 정치로부터 크게 소외시킨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356) 그러한 상황은 文科의 운영 및 그것을 통하여 중앙 정치로 진출한 文臣들을 계량적으로 분석한 결과에 잘 나타나 있다. 19세기 전반의 문과는 운영상의 여러 폐단에도 불구하고 급제자의 규모가 거의 커지지 않았으며 급제자의 평균 연령도 그다지 변하지 않은 데서 알 수 있듯이 형식적인 틀은 유지되고 있었다. 정치가가 문과에 급제한 때와 중앙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때에는 차이가 있으므로 그 시기를 올려 잡아 정조대부터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 때부터 철종대에 이르기까지 ≪國朝文科榜目≫을 통해 파악되는 문과급제자의 총수는 2,755명이었다. 급제자들의 거주지를 볼 때 式年試의 경우는 평안도가 26.2%, 경상도가 22.2%, 서울이 18.9%, 충청도가 10.3%의 비율로 나타나지만, 別試의 경우는 서울이 53.1%, 경기도가 12.9%, 경상도가 8.6%, 충청도가 8%로서 서울 일원에 대한 집중도가 매우 높았다. 또한 식년시의 경우라 하더라도 서울 출신들은 상위인 갑과와 을과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한 추세는 都堂錄의 운영에도 그대로 나타났다.357) 도당록은 19세기 전반까지는 문과급제자를 대상으로 당상관이 될 일차적인 후보집단을 걸러내는 제도적 장치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조 4년∼철종 연간의 문과급제자 중 도당록에 든 인물들은 모두 871명으로서 그 중 52.8%인 460명이 당상관이 되었던 것에 비해, 도당록에 들지 못한 1,884명의 급제자 중에서는 7.3%인 137명만이 당상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도당록에 든 인물들의 거주지를 볼 때 서울이 75.8%, 경기도가 8.8%, 경상도가 6.8% 순이어서, 서울 일원에 84.7%가 집중되어 있었다. 도당록에 들어 중앙 정치 무대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한 문과급제자의 3/4은 문과 응시 당시에 이미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황해·평안·함경도 지역의 거주자로서 문과에 급제한 인물은 도당록에 한 명도 들어가지 못하였다. 근거지를 서울에 둔 세력과 지방에 둔 세력 사이에 분화가 뚜렷하게 진전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정조∼철종 연간의 문과급제자 수에 대해 도당록 입록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지역별로 따져보면, 서울이 65.9%, 경기도가 27.6%로서 17.4%의 충청도나 15.4%의 경상도에 비교해 확연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강원도의 경우는 30.8%로서 비교적 높은 비율을 보이지만, 급제자수가 65명의 소수에 그쳤기 때문에 그 비율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그 시기 서울 출신 문과급제자 1,042명 중에 당상관에 올랐음이 확인되는 인물은 505명으로서 당상관 승진 비율이 48.5%였음에 비해, 경기도를 포함한 지방 거주 급제자 1,706명 중에 92명이 당상관에 올랐음이 확인되어 그 비율은 5.4%에 불과했다. 서울 출신 급제자의 당상관 승진 비율이 지방보다 9배나 되었던 것이다.

 고위 관직자로 진출하는 사람들이 지역적으로 서울에 집중되었던 것과 짝하여, 소수의 유력한 가문에 집중되는 현상이 강하게 드러났다. 정조∼철종대에는 全州 李氏·安東 金氏를 비롯한 15개의 성관 출신들이 문과급제자의 31.9%를, 도당록 입록자의 53%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358) 특히 그들의 거주지는 서울에 집중되어, 문과급제자와 도당록 入錄者들의 압도적인 다수를 점하고 있던 서울 지역 거주자들 중에서 이들 성관의 인물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문과급제자의 54.6%, 도당록 입록자의 60.8%에 달하였다. 또한 이들 성관이며 서울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한 전체 수에 대해 도당록에 오르는 수의 비율도 71.1%라는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또한 그들의 문반 당상관 전체에 대한 비율은 51.8%, 가장 유력한 관서인 비변사 당상 전체에 대한 비율은 63.8%로서 역시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상의 수치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바와 같이, 서울에 사는 유력한 가문 출신이라는 조건이 중앙 정치에 참여하기 위한 매우 유리한 요소가 되었던 동시에, 특정세력에 대한 정치 권력의 집중을 구조화시켰다. 조선의 정치제도가 오래 유지되어 오는 동안, 그 중심부를 장악한 중앙 정치 집단은 그것에 익숙함을 바탕으로 자기의 정치적 재생산을 구조적으로 이루어 내면서 각각 자기 가문의 기반을 넓히고 굳혀 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조선 후기에 토지 소유를 근거로 한 전통적인 양반 지주 사회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사회경제적 변화를 바탕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부의 원천이 생겨남에 따라 지역적으로 서울을 근거지로 하고 있었다.

 세도정치기 정치 권력 담당자의 집중 현상은 그 시기의 당상관들을 분석함으로써 더욱 구체적으로 밝혀졌다.359) 순조∼철종대에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들이 정2품 이상의 고위직으로 집중되었다. 관서로 볼 때 권력 집중의 중심은 비변사였다. 그 구성원은 都提調, 경제관계 堂上, 운영당상, 例兼堂上, 軍門大將의 다섯 부류였는데, 이 중에서 정치적 의미가 별로 없는 단순한 예겸당상과 무반 군문대장을 제외한 나머지 약 300명 정도가 권력을 장악한 정치 집단의 실질적 구성원이었다. 그러한 정치 집단의 구성 요인들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갖게 된 것은 혈연이었다. 실록에 등장하는 문신 당상관 737명 중에서 출신 가계가 확인되는 675명을 검토한 결과, 그들의 성관 전체는 56개였으나 그 중 安東 金, 大邱 徐, 豊壤 趙, 延安 李, 豊山 洪, 潘南 朴氏의 6개 성관이 당상관의 29.9%, 비변사 당상의 40%, 중신(종1품, 정2품) 및 운영당상의 47%를 차지하였다. 그 안에서도 점유율에 심한 편차가 있었고 정치 집단의 핵심부로 갈수록 집중의 정도가 가장 심했다. 구체적으로는 안동 김씨의 점유율이 가장 높았는데, 그 중에서도 金尙憲의 후손 및 金尙容의 후손들 두 가문이 두드러져서, 56명의 안동 김씨 당상관 중에서 김상헌계가 38명, 김상용계가 18명을 배출하였고 비변사당상은 전체 37명 중에서 각각 29명과 8명을 배출하였다. 이렇게 하나의 성관 내에서도 특정 소수 가문에 고위 관직자가 집중된 현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위의 다른 성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356)세도정치기 중앙 정치세력의 구성과 성격에 대한 연구는 남지대,<중앙정치세력의 형성구조>·<중앙정치세력의 성격>(한국역사연구회 19세기정치사연구반, 앞의 책), 129∼198쪽 참조.
357)都堂錄이란 弘文館에서 자체적으로 작성한 弘文錄을 바탕으로 고위관직자들이 참가하는 의정부의 會圈을 거쳐 이루어진 홍문관원의 후보자 명단이다.
358)유력한 성관의 기준은 정조∼철종대 문과 급제자의 1% 이상, 도당록 입록자의 1% 이상을 배출하는 동시에, 그 성관 문과급제자 중에서 도당록에 뽑히는 비율이 전체 평균(33.3%)을 넘는 것으로 하였다. 그것에 해당하는 성관은 全州 李, 延安 李, 韓山 李, 慶州 李, 安東 金, 潘南 朴, 豊壤 趙, 南陽 洪, 豊山 洪, 大邱 徐, 靑松 沈, 坡平 尹, 海平 尹, 東萊 鄭, 平山 申氏들이다(남지대, 앞의 글, 171쪽).
359)세도정치기 중앙 정치집단의 구성과 성격에 대해서는 홍순민,<정치집단의 구성>·<정치집단의 성격>(한국역사연구회 19세기정치사연구반, 앞의 책), 199∼256쪽 참고.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