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조세금납 전개의 특질과 한계

　이상과 같이 조선 후기 조세금납의 전개과정과 그 발달 수준은 지불수단(미납·포납)이나 세목(전결세·군역세)에 따라 지역적으로 많은 편차를 보이고 있었다. 지불수단별로 볼 때 조세금납은 포납조세에서 발달하였고, 이를 주도한 세목은 대동목과 군포였다. 반면 미납조세에서의 금납은 주로 전결세미 운송과 관련하여 산군이나 산군과 같이 운송조건이 열악한 일부 연읍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전결세 중에서도 전세미의 금납이 발달하였다. 한편 세목별로 볼 때에는 전결세보다 군역세에서의 금납화과정이 더 빨라 이미 18세기말∼19세기 전반 군역제는 전반적으로 화폐를 매개로 한 신분지배관계로 전환되고 있었다.

　조세금납화과정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양상은 봉건적 토지·농민지배와 국가재정의 요구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봉건정부의 입장과 조세부담자·농민층의 이해관계가 상호 심각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형성된 것이었다. 조세금납화의 動因은 상품화폐유통의 확대를 배경으로 하는 조세부담자·농민층의 봉건수탈에 대한 저항, 그것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조세금납은 증대하였고, 국가재정의 화폐화도 촉진되었다.

　18∼19세기 중엽에 이르는 시기의 중앙상납 조세의 金納量을 추정해 보면, 전결세의 경우＜표 3＞·＜표 4＞와 같다. 호조와 선혜청의 1년 수입 가운데 동전 비율은 양쪽 모두 18세기 중엽까지 전체 수입의 20% 미만,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엽에는 25∼30% 수준에서 등락을 보이고 있고, 19세기를 전후한 시기 동전 수입량은 대체로 60∼70만 냥 정도였다.1103) 군역세의 경우는 수치로서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지만 중앙상납 금납량은 18세기 전반에는 80만 냥 전후, 균역법 이후인 18세기 후반부터는 60∼70만 냥 수준에서 19세기에 계속 증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1104) 그리고 급대안으로 마련된 균역청 수입은 19세기 전반경 대체로 50만 냥 전후를 보이고 있다.1105)

　그러나 조선 후기 전기간에 걸친 경향적 증대라는 일반적 추세에도 불구하고 중앙상납 법정조세의 금납은 18세기말을 분기로 점차 한계에 이르고 있었다. 봉건정부는「국가면포수취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면포수취를 강화하였으며, 이에 따라 포납조세에서의 금납 증가율은 둔화되었다. 또한 전결세미의 금납 허용도 일부 특수지역에 국한하였고, 미곡생산의 중심지인 전라도 전역과 충청·경상도의 광범한 연읍지대는 금납과 완전 차단되어 있었다. 3군문의 군보미와 같이 전면 금납화된 경우에도 이미 금납화된 결전의 일부를 다시 미납으로 전환시킨「結作米」와의 상환을 전제한 위에 실현된 것이었다.

　요컨대 봉건정부는 자급적 현물재정구조를 유지하는 한도 내에서 조세금납을 운영하였다. 더 이상의 금납은 현물재정구조 자체를 위협하였다. 전세미와 군보미의 금납은 봉건적 관료·군사기구의 경제기반을 화폐경제에 편입시키는 것이었다. 조세금납의 제한성은 대동미의 경우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봉건정부는 대량의 대동미를 확보하고 이를 봉건적 유통기구를 통해 소비함으로써 서울의 물가를 조절하고 미곡구매자인 서울인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대동미 확보는 이른바 봉건적 유통정책 이념인「常平」을 실현하는 관건으로서, 대동미 금납은 곧 서울 미곡시장에 대한 국가통제력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1106)

　여기에 봉건정부의 금납 확대를 더욱 어렵게 만든 배경은 상품화폐유통의 발달에 따른 물가상승이었다. 19세기 이후 미·면포의 시가는 정액 작전가의 두배 가량이나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세금납의 확대는 재정구조는 물론 이에 의존한 제반 봉건기구들의 경제적 특권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법정 작전가에 의한 정액금납으로는 재정운영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를 해결하려면 작전가를 인상할 수밖에 없는데, 조세금납을 給災政策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봉건정부는 작전가 조정보다 금납을 제한하는 방향에서 재정을 운영하였다.

　이와 같이「量入爲出」원리에 입각한 봉건정부의 재정정책과 물가상승에 의해 조세금납은 한계에 이르고 있었다. 더 이상의 금납을 위해서는 조세제도와 재정구조, 나아가 이에 기초한 유통정책 전반의 큰 변화가 요구되었다. 이에 지식인 가운데는 그 변화를 적극 추구하여 國富의 증대를 논한 사람도 있었다.1107) 즉 작전가를 현실화하고 조세금납을 전면 실시하는 등 세제개혁·재정개혁을 단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 주도의 부국책을 모색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봉건정부는 19세기 중엽까지도 기존의 재정원리를 완강히 고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