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무
문묘의 佾舞는 동작이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는 단순한 춤으로, 조선 후기에 있어서 제례에 따라 主音이 다르고 작곡도 같지 않았지만 그 주류의 형식은 판에 박은 듯이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일무라고 하여도 변화가 있거나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할 수 없다. 더구나 빈번한 연중제례에 각기 다른 춤사위를 일일이 익혀 임한다는 것도 장악원 악생의 자질로 보아 어려운 일이다.
이는 막중한 종묘의 제향에 있어서도 해당되는 것으로 일무에 대한 조정의 시비가 끊이지 않았으며, 음곡과 달라 일무를 전공하는 악공이 있지도 않아 복잡한 종묘제례악의 고유한 춤을 6일무의 군무로 일제히 하기란 어려움이 많았으리라 추측된다. 그러나 종묘의 일무는 문묘의 일무와는 달리 훨씬 엄격하게 추어졌다. 이는 일무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時用舞譜≫때문인데 이 무보는 보태평과 정대업의 악보에 맞추어 保太平之舞와 定大業之舞(<그림 3>)를 그림으로 표현한 무보이다.
편찬은 장악원에서 맡았을 것이며,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대개 영·정조조 이후로 추정되고, 圖譜는 圖畵署 화공의 솜씨인 것 같다.828)
종묘일무는 종묘의 祭樂처럼 定大業·保太平으로 나뉘는데, 정대업은 祖宗의 무공을 찬미하는 武舞이고, 보태평은 조종의 문덕을 송축하는 文舞로 되어 있다. 문무는 왼손에 籥을 들고, 오른손에 翟을 들고 춤을 추며, 무무는 두 손에 목검 또는 목창 혹은 궁시를 들고 추는 것이 다르다. 그러나≪시용무보≫에서는 오른손에 목검을 들고 추는 그림으로 시종하고 있다.
≪시용무보≫는 역대 장악원에서 종묘제향의 일무 도본으로 더없이 소중한 것이었지만 그 뒤 순조·헌종·철종을 지나는 동안 朝祭의 樂制가 극도로 해이해져≪시용무보≫에 준하지 않았던 것 같다.829) 이는 순조조에서 고종에 이르는 시기가 궁중정재의 절정기였던 것과는 반대로 궁중무이면서도 일무는 쇠퇴의 길을 걷고 있어서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