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1. 문학
18세기부터 19세기 전반기까지의 기간은 문학의 활기가 매우 융성하였다. 17세기 이래의 사회적 변동은 종래의 이념·제도·문화의 균형을 뒤흔들면서 새로운 문학의식과 창작, 유통의 바탕을 조성했다.
이 시대의 문학적 변화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양상은 국문문학의 성장과 활발한 유통이라 말할 수 있다. 15세기에 訓民正音이 창제된 이후 관찬문학과 여성 중심의 생활기록문학을 통해 점차 성장해 오던 국문문학이 17세기에는 좀더 창작, 소통의 폭을 넓혔고, 18세기에 이르러서는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시조 향유층의 확대와 가집편찬, 歌辭의 다양한 분화, 국문소설의 발달과 坊刻本 소설출판의 성행, 국문 기록문학의 성장 등은 그 주요 양상이다.
이처럼 국문문학이 활기를 띠게 된 데에는 평민층의 사회경제적 성장과 문화적 욕구의 증대, 한글해독 인구의 증가, 상업적 출판 및 서책유통업의 대두, 市井文化의 확산에 따른 唱樂예술의 발전 등이 직접·간접적인 연관을 맺으면서 작용했다. 사회 전반의 생산력 증가와 상당수 평민층의 생활수준 향상은 문자해독 인구의 증가를 가능하게 했고, 실용적 방면과 문학분야 양면에서 문자문화에 대한 수용능력을 높였다. 국문문학의 발전은 이러한 시대적 조건의 산물로서, 순환적으로 그 사회적 확산과 질적 성장을 촉진하는 구실을 했다.
한문이라는 문자상의 제약 때문에 문학적 욕구의 구현이 어려웠던 평민층에게 국문문학은 작품의 창작·소통 및 수용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국문문학은 평민층의 체험·의식·감정과 국어의 풍부한 언어적 자산을 흡수함으로써 한문문학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세계를 확대했다.
이 시대의 한문문학에 나타난 변화도 넓고 깊은 것이었다. 성리학 이념 지배의 쇠퇴, 실학정신의 문학적 표출, 古文의 규범을 넘어선 새로운 문학의 추구, 그리고 중인층 한문학의 성장 등을 그 주요한 모습으로 들 수 있다.
17세기에 이미 선구적 문학인들에 의해 회의적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성리학적 문학의식은 이 시기에 와서 더욱 힘을 잃었다. 문학을 심성 수양의 수단으로 보면서 道文일치를 내세우던 내면주의적 미의식은 여전히 그 관습적인 명제를 견지했으나, 문학을 움직이는 시대정신은 이를 벗어나서 다양한 모색을 시도하였다. 종래의 관념적 학문태도를 비판하고 새로운 현실적 사상을 제창하며 등장한 실학파 지식인들이 여기에 크게 기여했다. 朴趾源·洪大容·李用休·李家煥·丁若鏞 등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은 실학 일반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을 뿐 아니라 문학에 관한 새로운 의식의 성장에도 기여했다. 특히 박지원과 李鈺은 고문의 규범에 얽매인 종래의 문학의식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참다운 문학이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체험을 진실하게 그려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이를 창작으로써 구체화한 대표적 인물들이다. 정약용·李學逵 같은 이들은 민중들의 생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담긴 시를 많이 썼다.
중인층에서 다수의 한문학 문인들이 배출되고 詩社라는 동인집단의 활동이 활발히 전개된 점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중인들은 조선 초기 이래 독자적인 문학집단 활동을 벌이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17세기 이후 중인층의 사회경제적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한시·시가·음악·서화 등 각 방면에 걸쳐 예술활동이 나타났고, 18세기 이래로는 더욱 활발한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閭巷人들의 한시집인≪六家雜詠≫(숙종 11:1685),≪海東遺珠≫(숙종 38),≪昭代風謠≫(영조 13:1737),≪風謠續選≫(정조 21:1797)의 간행이 우선 그 문학적 징표이다. 17세기에 劉希慶·白大鵬 등에 의해「風月香徒」라 자처하는 시사가 생겨난 이후 18·19세기에는 洛下詩社·松石園詩社·西園詩社·稷下詩社 등 수많은 여항인 시사가 결성되어 활동을 벌였다.604)
한편 상업의 발달과 시정문화의 성장은 민속극·판소리와 여러 가지 연행예술이 성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탈춤·꼭두각시놀음과 男社堂 같은 전문적 놀이패의 예능은 상당히 오랜 기원을 가지는 것이지만, 상업과 교통의 발달로 전국 각지에 도시적인 생활공간이 많이 생겨나면서 더 널리 演戱될 수 있었다. 판소리는 이러한 하층민 예술로부터 출발하여 점차 예술적 세련을 성취하면서 상하층의 청중 모두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연행예술로 발전해 갔다. 특히 판소리는 문학과 음악이 결합된 창악예술로서, 口碑演行文學으로서의 탁월한 성취를 이룩했을 뿐 아니라 그 사설의 문헌 정착과 유통 및 개작을 통해 판소리계 소설이 발전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604) | 尹在敏,≪朝鮮後期 中人層 漢文學의 硏究≫(高麗大 博士學位論文, 1990)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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