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Ⅰ. 민중세력의 성장1. 신분제의 이완과 민중사회의 성장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1. 신분제의 이완과 민중사회의 성장
          • 1) 사족지배구조의 정착과 신분구조의 변화
          • 2) 17세기 위기 이후 대민 지배정책의 전환
            • (1) 국가의 대민 지배방식의 전환과 ‘여민휴식’정책의 철회
            • (2) 공동납체제로의 전환과 18∼19세기 호적 운영의 변화
          • 3) 사족지배질서의 동요와 민중의 성장
        • 2.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공동체 질서와 민중
          • 2) 18세기 향촌공동체의 변화와 민중조직의 활성화
            • (1) 면리제의 강화와 민
            • (2) 동계의 변화와 분동
            • (3) 민중조직의 활성화
          • 3) 19세기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향회의 활용
            • (2) 민중조직과 농민항쟁
        • 3. 민중운동의 사상적 기반
          • 1) 성리학에 대한 사상적 도전
            • (1) 성리학의 교조화
            • (2) 민중사상의 확산
          • 2) 민중운동의 사상적 특성
            • (1) 민중운동 속의 사상경향
            • (2) 민중사상 전파의 주체
            • (3) 정부의 대응책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과제
          • 1) 민중세계의 각성
          • 2) 유대관계의 강화
          • 3) 향권의 추이
          • 4) 사회세력의 동향
        • 2. 유민과 명화적
          • 1) 유민
            • (1) 유민발생의 배경
            • (2) 유민의 실태와 유입처
            • (3) 정부의 유민대책
          • 2) 명화적
            • (1) 명화적 발생의 배경과 조직체계
            • (2) 활동양상과 그 성격
            • (3) 정부의 대책
        • 3. 여러 지역의 항쟁과 ‘무신란’
          • 1) 18세기 초 민중의 동향과 변산군도
          • 2) 무신란의 발단과 전개
            • (1) 18세기 초 정치정세와 ‘무신당’의 결성
            • (2) 무신당의 반정계획과 지방토호·녹림당의 가세
            • (3) 무신란의 전개와 향촌사회의 동향
            • (4) 무신란의 참가계층과 그 성격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1. 서북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특성과 항쟁의 배경
            • (1) 서북지방의 사회·경제적 특성
            • (2) 매향과 향권의 동향
            • (3) 중앙권력의 구조적 수탈
          • 2) 항쟁의 과정
            • (1) 서북민의 저항과 홍경래 난의 발발
            • (2) 홍경래 난의 전개과정
          • 3) 항쟁의 결과
            • (1) 홍경래 난 전후 향촌지배세력의 변동
            • (2) 반봉기군 ‘의병’의 향권 장악
            • (3) 서북민항쟁의 역사적 의의
        • 2. 삼남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여건
            • (1) 사회경제적 배경
            • (2) 정치적 여건과 지방사회의 운영
          • 2) 항쟁의 과정과 양상
            • (1) 항쟁의 발생 지역
            • (2) 항쟁의 직접적 계기
            • (3) 항쟁의 전개과정
            • (4) 항쟁의 참가층과 주도층
            • (5) 항쟁조직
            • (6) 요구조건
            • (7) 공격대상
          • 3) 정부의 대책과 항쟁의 의미
            • (1) 농민항쟁에 대한 정부의 대응
            • (2) 삼정에 대한 대책
            • (3) 이정책에 대한 반대 논의와 저항
            • (4) 농민항쟁의 평가
        • 3. 변란의 추이와 성격
          • 1) 변란과 민란
          • 2) 변란발생의 배경
            • (1) 사회적 모순의 심화와 ‘저항적 지식인’의 활동
            • (2) ‘양이’의 침공과 ‘이단사상’의 만연
          • 3) 변란의 추이
            • (1) 19세기 전반의 변란
            • (2) 해서, 영남세력의 변란
            • (3) 광양란
            • (4) 이필제란
            • (5) 기타
          • 4) 변란의 성격
            • (1) 변란의 조직과 운동구조
            • (2) 변란의 이념
            • (3) 변란과 19세기 후반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Ⅰ. 민중세력의 성장

1. 신분제의 이완과 민중사회의 성장

1) 사족지배구조의 정착과 신분구조의 변화

 임진왜란은 조선 건국 이래 오랫동안 안정을 구가하던 당대인들에게 엄청난 심적·물적 피해를 안겨주었고, 급격한 인구 감소, 국가 행정체계의 마비와 같은 수많은 문제점을 한꺼번에 노정시킨 일대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7년여에 걸쳐 전개된 임진왜란 종결 이후 복구사업이 신속하게 추진되었다. 전후 몇 년 동안은 영농에 적합한 기후가 지속되었으며 지주와 작인을 불문하고 영농욕구가 거세었으므로, 복구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국가의 적극적인 勸農政策에 힘입어 복구사업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이 때 복구사업을 주도한 계층은 兩班層이었다. 그들은 임진왜란 발발 이래 義兵 활동에 참여하는가 하면 納粟政策에도 적극성을 보이는 등, 전란 초기 일본 정규군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던 조선측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행정체계를 수습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양반층은 복구사업을 주도할 수 있는 명분을 획득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 이유에서 전후 복구사업의 진행 단계에 비례하여 양반층의 사회적·경제적 생활 또한 회복추세에 있었다. 각종 이권에 대한 양반층의 지나친 관심과 확대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될 정도로, 양반층이 주도한 복구사업은 활기를 띠어갔다.

 당시 양반층이 복구사업을 주도하게 된 데에는 전후 국가의 대민 지배정책의 방향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 당시 국가정책은 민간경제와 생활에 대해서 국가의 작위적인 공권력 개입을 가급적 억제하는 정책, 곧 ‘與民休息’정책을 기조로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반층은 개간전에 대한 조세징수의 유예라는 권농정책의 틈을 이용하여, 혹은 국가 공권력의 개입 유보라는 ‘여민휴식’정책의 기조와 관련하여, 개간 혹은 소유 토지의 量案 등재를 기피하거나 보유 노비들을 호적에서 고의로 누락시킴으로써 전세 및 가호세의 징세 대상으로부터 제외되었다. 그렇지만 양반층의 이러한 행위는 국가가 파악할 수 있는 實結數 및 家戶數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부분은 국가의 공권력 행사 영역이었다. 양안과 호적이 양반층의 조직적인 이탈, 탈루 상황에서 제대로 작성되지 않으면서, 국가에서 정상적으로 지출하는 경상지출 부분에 대한 세입의 총량이 항상 부족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왕실 및 중앙 각 아문은 긴축재정을 실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양반층의 성장, 그리고 그들의 사회세력화의 추세는 국가의 운영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셈이다.001)

 이 시기 양반층의 사회세력으로서의 성장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사건으로는 그들의 군역 면역층으로의 전환과 호적, 號牌 기재 양식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우선 양반층의 군역 면역층으로의 전환과정을 살펴보자. 조선 초기 이래 군역은 양인층의 仕宦權 곧 양인층의 보편적인 권리로 인정받았다. 그렇지만 16세기 전반 이래 國役體制의 해체과정에서 良賤制的 신분구조는 무너져 갔으며, 良人皆役制에 입각한 군역 동원 방식 또한 변질되고 있었다.002) 임진왜란 시기 관군이 일본 정규군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한 것은 양인 상층, 곧 양반층을 군역에 동원시켜 국방력을 유지하려 한 조선 초기 이래 누적되어온 국방정책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계기였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이후에는 양인층 이외에도 賤人層이 군역에 편성되는가 하면 국가에서 재정을 지원하는 訓鍊都監이 새롭게 설치되는 등 군역 및 군제운영에서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양인층만이 군역을 져야 한다는 양인개역제 원칙과 兵農一致 방식에 의한 군제운영 방식으로부터, 군역편성의 대상이 천인층까지 확대되고 養兵制 방식으로 군제를 운영하는 것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군역 및 군제의 이와 같은 변화는 군역의 주요 대상층으로 간주되던 양반층의 면역 가능성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16세기 이래 양반층의 면역추세는 대세를 이루었지만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그 대세를 추인받기에 이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에서는 여전히 양반층을 군역의 주요 대상층으로 파악하는가 하면 그들을 充軍시키고자 노력했다. 물론 국가의 이러한 정책은 양반층의 저항에 부딪쳐 번번히 무산되었다. 광해군 초반과 인조 초반에 각각 시도되었던 호패법과 校生考講政策이 실패로 끝난 것이 그러한 예이다. 이후 양반층은 면역층으로서의 지위를 국가로부터 부여받았으며, 살아서는 幼學을, 죽어서는 學生이란 직역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003)

 두번째 변화는 호적·호패 기재 양식이었다. 조선 초기 이래 국가의 인민 지배 방식은 양천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지만 양반층의 사회적 성장이 이루어지던 상황 아래에서 점차 그 규정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군역의 주요 대상층으로 파악되던 양반층이 면역층으로서의 합법성을 획득해 갔으며, 국역 면제층으로 간주되던 천인층이 새롭게 군역에 편제되어 가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국역편성과 관련하여 ‘有役者=良人’, ‘免役者=賤人’으로 전체 인민을 구분하던 조선 초기의 양천제적 신분구조로부터 ‘兩班=免役者’, ‘常民=有役者’로 구분하는 방식, 곧 班常制를 용인하는 형태로 신분구조가 전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변화는 호적과 호패의 기재양식에도 영향을 끼쳐 여성의 稱氏 대상자 혹은 角牌 착용 대상층이 양반으로 국한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축차적으로 진행되면서 양반층은 사회구조, 관습 전반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확대시켜 갔으며, 사회 전반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양반층이 주도하는 이 시기의 사회구조를 士族支配構造라 부를 수 있다.

 임진왜란은 양반층의 사회적 성장 못지 않게 국가의 대민 지배방식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16세기 이래 사회적 현실관계를 반영하는 반상제가 국가의 주요 대민 지배방식이었던 良賤制的 신분구조를 밀어내고 중요한 사회신분구조로서 자리를 잡아갔다. 그렇지만 양반층과 상민층의 사회경제적, 정치사상적 차이가 노골적으로 표출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양반층은 관군이 궤멸적 패배를 당하고 있던 전란 초기 상황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투에 임하는가 하면 향토방위를 위해서도 노력했으며, 전쟁의 소강기에도 納粟 혹은 軍功을 통해서 국가와 운명을 같이하는 계층으로서의 그들의 소임을 다했다. 반면 상민층은 일본군의 대대적인 침입으로 국가의 공권력이 와해된 상황에서 평소에 축적되어 오던 국가와 양반층에 대한 적대의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임진왜란은 양반층과 상민층 양자의 지향과 생활방식이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시켜준 계기로 작용했다.

 따라서 임진왜란 이후 국가의 신분정책 또한 이러한 상황에 조응하여 전환되지 않을 수 없었다. 양반층에 대해서는 사회를 주도하는 특권층으로 인정해 주는가 하면 ‘封建的 存在’로서의 그들의 특수성을 부여해 주었다. 반면 상민층에 대해서는 村氓, 無識·無賴輩라고 폄하하는 경향이 늘어가다가 사족지배구조가 정착되는 추세에 비례하여 常漢(상놈)이란 호칭으로 고정되었다.004) 그리하여 양반층 주도 아래 전후복구사업이 완료되어간 17세기 전반 이후 전체 인민은 양반층과 상민층, 양 세력으로 재편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차별적인 인민 편제방식은 각종 受敎類에도 반영되는 등 국가의 준법제적 규정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005) 현전하는 호적을 중심으로 전형적인 사족지배구조가 확립된 17세기의 신분별 인구 구성을 검토해 보면<표 1>과 같다.

  양 반 중 인 양 인 천 인 기 타 합 계


산음 1606 13.75   40.92 41.66 3.67 100% 
1630 15.85   43.01 34.53 6.61 100% 
단성 1606 18.15   14.54 64.37 2.93 99.99%
울산 1606  2.4   50.5 47   100% 
서울 1663 17.0 7.6 22.5 52.9   100% 

<표 1>17세기 경상도 및 서울의 신분별 인구 구성비006)

 대체로 17세기 전반∼중반에 이르기까지 신분별 인구구성은 양반이 10% 내외, 상민층 가운데 양인층 40%, 천인층 50% 내외였다고 생각된다. 특히 현종 4년(1663)에 작성된 서울 북부호적은 전체 신분을 顯, 作, 賤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분은 양반층을 顯으로, 상민층 가운데 양인을 作으로, 천인을 賤으로 표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전체 인민에 대한 이와 같은 3구분법은 종래 양인과 천인으로 2구분하던 양천제로부터 양반(顯)과 상민(作·賤)으로 2구분하는 반상제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양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반상제는 이처럼 17세기의 호적 기재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001)金盛祐,≪朝鮮中期 士族層의 성장과 身分構造의 변동≫(高麗大 博士學位論文, 1997).
002)金盛祐,<16세기 國家財政 수용의 증대와 國役體制의 해체>(≪韓國史硏究≫97, 1997).
003)崔永浩,<幼學·學生·校生考-17세기 身分構造의 변화에 대하여->(≪歷史學報≫101, 1984).
004)李元翼,≪梧里集≫<別集>1, 引見奏事 인조 2년(1624) 2월 24일.
005)≪受敎輯錄≫刑典 奸犯 康熙 辛亥(현종 12년;1671)承傳.
006)盧鎭英,<17世紀初 山陰縣의 社會身分構造와 그 變動>(≪歷史敎育≫25, 1975).

韓榮國,<朝鮮 中葉의 奴婢結婚樣態(上·下)-1606년의 蔚山戶籍에 나타난 事例를 중심으로>,≪歷史學報≫75·76, 77, 1978, 1979).

韓基範,<17世紀初 丹城縣民의 身分構成-戶籍分析을 中心으로->(≪湖西史學≫10, 1982).

조성윤,<17세기 서울 주민의 신분 구조>(≪鄕土서울≫54, 1994).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