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Ⅰ. 민중세력의 성장2. 민중의 사회적 결속2) 18세기 향촌공동체의 변화와 민중조직의 활성화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1. 신분제의 이완과 민중사회의 성장
          • 1) 사족지배구조의 정착과 신분구조의 변화
          • 2) 17세기 위기 이후 대민 지배정책의 전환
            • (1) 국가의 대민 지배방식의 전환과 ‘여민휴식’정책의 철회
            • (2) 공동납체제로의 전환과 18∼19세기 호적 운영의 변화
          • 3) 사족지배질서의 동요와 민중의 성장
        • 2.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공동체 질서와 민중
          • 2) 18세기 향촌공동체의 변화와 민중조직의 활성화
            • (1) 면리제의 강화와 민
            • (2) 동계의 변화와 분동
            • (3) 민중조직의 활성화
          • 3) 19세기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향회의 활용
            • (2) 민중조직과 농민항쟁
        • 3. 민중운동의 사상적 기반
          • 1) 성리학에 대한 사상적 도전
            • (1) 성리학의 교조화
            • (2) 민중사상의 확산
          • 2) 민중운동의 사상적 특성
            • (1) 민중운동 속의 사상경향
            • (2) 민중사상 전파의 주체
            • (3) 정부의 대응책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과제
          • 1) 민중세계의 각성
          • 2) 유대관계의 강화
          • 3) 향권의 추이
          • 4) 사회세력의 동향
        • 2. 유민과 명화적
          • 1) 유민
            • (1) 유민발생의 배경
            • (2) 유민의 실태와 유입처
            • (3) 정부의 유민대책
          • 2) 명화적
            • (1) 명화적 발생의 배경과 조직체계
            • (2) 활동양상과 그 성격
            • (3) 정부의 대책
        • 3. 여러 지역의 항쟁과 ‘무신란’
          • 1) 18세기 초 민중의 동향과 변산군도
          • 2) 무신란의 발단과 전개
            • (1) 18세기 초 정치정세와 ‘무신당’의 결성
            • (2) 무신당의 반정계획과 지방토호·녹림당의 가세
            • (3) 무신란의 전개와 향촌사회의 동향
            • (4) 무신란의 참가계층과 그 성격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1. 서북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특성과 항쟁의 배경
            • (1) 서북지방의 사회·경제적 특성
            • (2) 매향과 향권의 동향
            • (3) 중앙권력의 구조적 수탈
          • 2) 항쟁의 과정
            • (1) 서북민의 저항과 홍경래 난의 발발
            • (2) 홍경래 난의 전개과정
          • 3) 항쟁의 결과
            • (1) 홍경래 난 전후 향촌지배세력의 변동
            • (2) 반봉기군 ‘의병’의 향권 장악
            • (3) 서북민항쟁의 역사적 의의
        • 2. 삼남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여건
            • (1) 사회경제적 배경
            • (2) 정치적 여건과 지방사회의 운영
          • 2) 항쟁의 과정과 양상
            • (1) 항쟁의 발생 지역
            • (2) 항쟁의 직접적 계기
            • (3) 항쟁의 전개과정
            • (4) 항쟁의 참가층과 주도층
            • (5) 항쟁조직
            • (6) 요구조건
            • (7) 공격대상
          • 3) 정부의 대책과 항쟁의 의미
            • (1) 농민항쟁에 대한 정부의 대응
            • (2) 삼정에 대한 대책
            • (3) 이정책에 대한 반대 논의와 저항
            • (4) 농민항쟁의 평가
        • 3. 변란의 추이와 성격
          • 1) 변란과 민란
          • 2) 변란발생의 배경
            • (1) 사회적 모순의 심화와 ‘저항적 지식인’의 활동
            • (2) ‘양이’의 침공과 ‘이단사상’의 만연
          • 3) 변란의 추이
            • (1) 19세기 전반의 변란
            • (2) 해서, 영남세력의 변란
            • (3) 광양란
            • (4) 이필제란
            • (5) 기타
          • 4) 변란의 성격
            • (1) 변란의 조직과 운동구조
            • (2) 변란의 이념
            • (3) 변란과 19세기 후반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동계의 변화와 분동

 16∼17세기의 재지사족은 당시 변동하고 있던 사회적 조건 아래에서 그들 중심의 지배체제를 강화, 유지하기 위해서 각종 동계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재지사족 중심의 동계와 그 운영원리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를 거치면서 일정한 변모를 보였다. 그 변화는 우선 洞 재정의 운영면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대체로 이전까지는 동내에서의 상호부조는 구성원들이 그때그때 현물을 수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 관례였다. 洞穀을 마련하는 경우라도 그것의 利殖기능은 상당히 제한적이었으며 그 목적도 동민의 구제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에 들면서부터는 일정한 자금을 확보하여 그 이자를 가지고 비용을 충당한다던가, 경우에 따라서 契畓을 마련하여 거기에서 생기는 賭只로 각종 비용을 충당하는 경향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에 따라 취식의 목적이나 대상도 달라져 나갔는데, 취식의 주대상이 ‘勤實下人’이 된다거나 빈한한 양반은 거기서 제외되고 있던 것은 그 자금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었으며, 그 목적도 이전까지의 동민 구제로부터 洞內補役이라던가 講舍의 설립 등으로 달라져 나갔다.058)

 동계는 위와 같이 그 운영에 있어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 역시 달라져 가고 있었다. 16∼17세기의 동계는 上, 下契員을 모두 그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었지만 이제 18세기에 이르면 상계원들만의 조직으로 크게 제한되어 폐쇄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는 물론 상계원 자체 내의 갈등, 예를 들면 嫡庶 간의 갈등이나 빈부차의 격화 등이 그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을 터이지만, 그보다는 소농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취해진 정부의 향촌사회통제책, 즉 공동납의 강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지주제가 발전하고 소농경제가 성장하는 가운데 토지소유관계나 동내의 계층 구성이 변화함에 따라 정부는 이제 기존의 재지사족을 매개로 해서만은 부세제도를 원활하게 운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에 따라 정부는 효과적인 수세행정의 일환으로 기존의 동계를 하나의 수세 단위로 재편하고, 그 내부의 구성원리를 유지시킨 채 공동납을 강화하였던 것이다. 숙종 37년(1711) 법제화된 ‘里定法’은 전세에서의 比摠制, 환곡에서의 里還, 잡역세에서의 공동납 등과 일련의 관련을 갖고 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과정에서 사족들이 중심이 된 洞契, 洞約 조직들이 부세의 단위로 활용되어 17세기 말, 18세기에 있어서 동계는 수취체계의 하부 단위로 고정되어 갔다.

 공동납의 실시는 어느 단계까지는 효과적일 수 있었지만 과거의 전통적인 촌락기반 위에서 유지될 수 있던 촌락간의 유대를 근본으로부터 변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공동납은 신분제, 지주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수취를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농경제가 발전하고 그로 인해 사회 계급관계가 변질되고 복잡해짐에 따라서 원만하게 운영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동납의 강화가 기존 향촌사회 자치조직이라 할 동계를 하나의 수세 단위로 고정시켜 나가게 되었을 때, 그것이 어느 단계까지는 구속력을 가질 수 있었지만, 결국은 향촌사회 내부의 구성원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되는 것이었다. 즉 동계조직 내에 묶인채 잠재되어 있던 상·하민간의 대립, 촌락 간의 대립 등과 같은 다양한 갈등이 표면화되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동민간의 갈등은 인적 조직으로서의 동계조직의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17세기까지만 하더라도 ‘上下合契’의 형태로 조정할 수 있었던 동계가 이제 18세기에 들어오면서는 下契를 포섭할 수 없게 되었던 사실이 그 점을 단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동계에서 하계원의 참여 기피나 下契案이 없어지는 현상이 일반적인 것이 되었으며, 지역에 따라서는 하계가 동계의 통제권 밖에서 존속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18세기에 재지사족의 영향력이 촌락사회에서 곧바로 상실된 것은 아니었다. 위와 같은 변화를 기초로 정부에서 관주도의 향촌통제책을 강화시켜 나가는 가운데서도 사족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고 하였던 것은 아직도 이들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당시 재지사족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기존의 체제를 고수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또다른 자구책을 강화해 나갔다. 17세기 말, 18세기 관주도의 향약에 그들이 참여했던 것이 전자의 예라고 한다면, 동족촌락을 형성하고 족계·문계·학계 등을 강화하거나 義莊을 설치하고 자신들의 족적 결합을 다지고자 했던 것은 후자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사정이 달라지게 된다. 동약의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였던 대구 夫仁洞 洞約이 18세기 말에 이르러 하민들의 요구에 의해 그 기능이 축소, 상실되어 갔던 것은 그 단적인 예를 보여준다.059) 이러한 사정은 관에서 주도하였던 동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이 시기의 각 동(리)은 사족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은 18세기 후반, 특히 광범위하게 작성되고 있던 牧民書類의 하나인≪七事問答≫의 文狀條에 ‘分洞’이 하나의 항목으로 포함되고 있던 데에서도 잘 나타난다.060)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었겠지만 사족지배질서가 유지되던 16∼17세기의 촌락은 대개 일정한 지연적 공동체로서 수개 또는 10여 개 자연촌락들이 하나의 연합체로 묶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사족들이 집거하거나 영향력 있는 사족이 거주하는 ‘洞’과 ‘里’가 중심촌락으로 이들의 전체명칭으로 불려지고 있었다. 리와 동에 집거하였던 사족들은 동계나 동약 등을 통해 거의 常賤民으로 구성되어 있던 것으로 보이는 하위의 수개 또는 10여 개의 마을을 지배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 광역의 리 밑에 묶여 있던 자연촌들이 바로 18세기 후반 이후 독자적인 조직과 규모를 지니면서 독립된 마을로 분화되기 시작하였다.061) 이같은 촌락사회 구조상의 변모가 야기된 데에는 상품경제의 발달, 화폐경제의 진전과 같은 여러 요소가 지적될 수 있지만 주목되는 사실은 촌락 분화과정에서 하민들의 分洞 요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이제 일반 민들이 사족들이 주도하던 향촌지배체제의 모순과 한계성에 직면하면서 자신들의 진로를 모색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사족지배체제의 굴레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동질감을 확인하고 또 자신들의 요구가 수용되었을 때에는 구체적인 삶의 공간에서 결속력을 강화하여 나가게 되었다. 이는 이후 민인이 변혁의 주체로 기능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토대가 되는 것이었다.

058)金仁杰,<조선후기 鄕村社會統制策의 위기-洞契의 성격변화를 중심으로->(≪震檀學報≫58, 1984).
059)鄭震英,<朝鮮後期 鄕約의 一考察-夫仁洞洞約을 中心으로->(≪民族文化論叢≫7, 1982).

―――,<18, 19세기 士族의 村落支配와 그 해체과정-대구 부인동 동약의 분쟁을 중심으로->(≪조선후기 향약연구≫, 민음사, 1990).
060)≪七事問答≫文狀 二十八條.
061)李海濬, 앞의 글(1990).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