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Ⅰ. 민중세력의 성장2. 민중의 사회적 결속2) 18세기 향촌공동체의 변화와 민중조직의 활성화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1. 신분제의 이완과 민중사회의 성장
          • 1) 사족지배구조의 정착과 신분구조의 변화
          • 2) 17세기 위기 이후 대민 지배정책의 전환
            • (1) 국가의 대민 지배방식의 전환과 ‘여민휴식’정책의 철회
            • (2) 공동납체제로의 전환과 18∼19세기 호적 운영의 변화
          • 3) 사족지배질서의 동요와 민중의 성장
        • 2.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공동체 질서와 민중
          • 2) 18세기 향촌공동체의 변화와 민중조직의 활성화
            • (1) 면리제의 강화와 민
            • (2) 동계의 변화와 분동
            • (3) 민중조직의 활성화
          • 3) 19세기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향회의 활용
            • (2) 민중조직과 농민항쟁
        • 3. 민중운동의 사상적 기반
          • 1) 성리학에 대한 사상적 도전
            • (1) 성리학의 교조화
            • (2) 민중사상의 확산
          • 2) 민중운동의 사상적 특성
            • (1) 민중운동 속의 사상경향
            • (2) 민중사상 전파의 주체
            • (3) 정부의 대응책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과제
          • 1) 민중세계의 각성
          • 2) 유대관계의 강화
          • 3) 향권의 추이
          • 4) 사회세력의 동향
        • 2. 유민과 명화적
          • 1) 유민
            • (1) 유민발생의 배경
            • (2) 유민의 실태와 유입처
            • (3) 정부의 유민대책
          • 2) 명화적
            • (1) 명화적 발생의 배경과 조직체계
            • (2) 활동양상과 그 성격
            • (3) 정부의 대책
        • 3. 여러 지역의 항쟁과 ‘무신란’
          • 1) 18세기 초 민중의 동향과 변산군도
          • 2) 무신란의 발단과 전개
            • (1) 18세기 초 정치정세와 ‘무신당’의 결성
            • (2) 무신당의 반정계획과 지방토호·녹림당의 가세
            • (3) 무신란의 전개와 향촌사회의 동향
            • (4) 무신란의 참가계층과 그 성격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1. 서북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특성과 항쟁의 배경
            • (1) 서북지방의 사회·경제적 특성
            • (2) 매향과 향권의 동향
            • (3) 중앙권력의 구조적 수탈
          • 2) 항쟁의 과정
            • (1) 서북민의 저항과 홍경래 난의 발발
            • (2) 홍경래 난의 전개과정
          • 3) 항쟁의 결과
            • (1) 홍경래 난 전후 향촌지배세력의 변동
            • (2) 반봉기군 ‘의병’의 향권 장악
            • (3) 서북민항쟁의 역사적 의의
        • 2. 삼남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여건
            • (1) 사회경제적 배경
            • (2) 정치적 여건과 지방사회의 운영
          • 2) 항쟁의 과정과 양상
            • (1) 항쟁의 발생 지역
            • (2) 항쟁의 직접적 계기
            • (3) 항쟁의 전개과정
            • (4) 항쟁의 참가층과 주도층
            • (5) 항쟁조직
            • (6) 요구조건
            • (7) 공격대상
          • 3) 정부의 대책과 항쟁의 의미
            • (1) 농민항쟁에 대한 정부의 대응
            • (2) 삼정에 대한 대책
            • (3) 이정책에 대한 반대 논의와 저항
            • (4) 농민항쟁의 평가
        • 3. 변란의 추이와 성격
          • 1) 변란과 민란
          • 2) 변란발생의 배경
            • (1) 사회적 모순의 심화와 ‘저항적 지식인’의 활동
            • (2) ‘양이’의 침공과 ‘이단사상’의 만연
          • 3) 변란의 추이
            • (1) 19세기 전반의 변란
            • (2) 해서, 영남세력의 변란
            • (3) 광양란
            • (4) 이필제란
            • (5) 기타
          • 4) 변란의 성격
            • (1) 변란의 조직과 운동구조
            • (2) 변란의 이념
            • (3) 변란과 19세기 후반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민중조직의 활성화

 16∼17세기의 향촌사회에서는 사족들을 중심으로 동계나 동약이 광범하게 실시되고 있었지만 향촌조직이 사족들의 동계나 동약만 존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족지배체제가 강화되는 속에서도 기층 촌락민의 생활문화 기반 위에 존속하던 향도, 음사 등의 촌계류 조직들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물론 그러한 조직이 향촌사회에서 지배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던 사족들에 의해 그 기능이나 역할이 크게 위축되고 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 향촌사회에서 사족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하층민의 요구에 따라 분동이 널리 이루어지면서 민중조직이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게 되었다.

 그간 향촌사회의 운영원리로 작용해오던 동계·동약이 더 이상 기층민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면서 민의 촌계류 조직들이 새롭게 부상하였다. 그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18세기 말, 19세기의 향촌사회에는 각종 조직들이 발달하고 있었다. 19세기 중엽 전라도 무주의 경우에는 다음의 평가가 있다.

우리 東國의 경우에 이르러서는 촌마다 계가 있고 각 집안마다 계가 있으니, 이르기를 科契·筆契·墨契·紙契·洞契·射契라 하여 그 이름이 다단하다. 혹 서로 모여 추렴해서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며 웃고 즐김으로써 한때 비용을 다 써버리고 하룻나절 즐기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오직 宗契와 譜契가 효의 정신에 가까운 것이나 이 또한 순정치 못한 것이다(≪裳谷八里孝稧鄕約節目≫茂州, 철종 7년).

 또한 19세기 전반 李圭景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契라는 것은 王逸少의 蘭亭修契에서와 같이 상서롭지 못한 것을 떨치는 모임이 아니다. 옛날의 里社와 같이 一里가 서로 모여 식리하는 것을 계라고 한다(예를 들면 漁夫契·四亡契·四寸契 등과 같이 일에 따라 이름을 붙인다)(李圭景,≪五洲衍文長箋散稿≫권 36, 香徒辨證說).

 이와 같이 민간에서는 각각의 목적에 따라 각종의 계조직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시기의 자료들은 일반 민들 사이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계가 성행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농사에 관련된 일을 공동으로 수행하기 위해 조직된 農契·農具契·牛馬契, 상례를 치르기 위해 결성된 喪契·喪輿契 등은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이었다. 이 시기의 지역 단위의 계는 사족주거의 동(리) 아래에 예속되어 있다가 조선 후기 촌락의 분화과정에서 독립되어 나온 하위의 마을을 기본단위로 하여 운영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조직이 각 촌락사회에서 갖는 위상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또 구체적 내용이 어떠한 것이었던가는 관련자료가 많지 않아 명확히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당시 일반적으로 계는 구성원들의 요구에 따라 일정한 자금을 마련하고 그것을 취식하는 것을 그 중심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또 동제나 당제 등과 같은 공동체적인 祭儀 역시 계조직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기의 민중조직의 활성화와 관련하여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공동노동조직으로서의 두레이다. 두레조직은 수전농업지역에서 17세기 후반 이후 이앙법이 보급되고 있던 상황에 조응하여 발달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구성의 기본단위를 각 동, 촌락으로 하고 있던 두레는 황두군과 같은 이전의 직파법 아래에서의 공동노동조직이 벼농사 기술의 발달에 따라 새로운 변화를 일으킨 것이었다.

 두레는 조직의 구성에서도 지주층의 참여와 간섭을 배제하고 자작·소작농민을 성원으로 하였기 때문에 농민사회의 자율성을 높이는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자·소작농만을 구성원으로 한 것은 황두군도 마찬가지였지만 두레는 지주와의 관계를 철저하게 賃銀 관계로 처리하여 농업경영으로부터 봉건적·신분제적 강제를 배제하였던 것이다. 신분제적 강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이전의 노동조직도 바라는 것이었을 것이나, 조선 전기에서처럼 그것들이 지방관의 직접적인 통제대상으로 오르거나, 16∼17세기 사족층이 주도하는 동계의 하부조직으로 편입되는 상황에서는 달성되기 어려운 것이었다.062) 그것은 두레 자체의 향상된 경제력을 발판으로 보다 더 공고한 결속을 발휘함으로써 획득될 수 있었다.

 두레는 집약적인 노동력의 필요와 생산력의 발전을 토대로 이전의 공동노동조직들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촌락사회 내에서 위상을 강화할 수 있었으며 그 비중은 18세기에 稻麥 이모작이 보급되면서 더욱 높아져 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두레조직은 기본적으로 마을 단위의 조직이었던 데에다 지주층의 간섭을 배제하고 있었으므로 두레를 통한 공동노동 과정에서 농민들의 자의식은 고양될 수 있었다. 이것은 이후 촌락공동체적 질서체계와 연관관계를 지니면서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다른 마을의 두레와도 연대감을 가질 수 있는 단계에까지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조건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이 시기 민중들이 합법적 공간을 이용하여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명하고, 국가에서도 이에 대한 일정한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대체로 이전까지의 민중저항의 일반양상은 유리, 도망이었고 이것이 가장 강력한 저항 수단이었으며, 조직적인 항쟁을 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농촌에서 유리된 층이 중심이 된 도적이나 명화적의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18세기에도 이같은 현상이 지속되고 일층 강력해지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제 이 시기에 이르면 농촌에 토착해서 사는 농민들을 중심으로 수령이나 감사를 상대로 等訴, 議送을 제출하는 것이 빈번해졌다. 여기에서의 중심 내용은 토지, 부세문제 등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 시기 활발하게 작성되는 목민서에 여러 이유로 제기되는 소장에 대한 처리, 특히 등소 처리에 관한 ‘套書’, 즉 사건의 처리방식에 관한 형식이 실리고 있는 것은 이제 생활기반을 가지고 토착해서 사는 이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집단적으로 표출할 만큼 성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민의 요구가 증가되자 국왕의 입장에서도 16세기 중엽까지 ‘四件事’, 즉 자신이 직접 刑을 받는 일, 父子 관계를 가리는 일, 嫡妾을 가리는 일, 良賤을 분간하는 일 등 4가지의 경우에만 왕에게 직접 호소하는 것을 허락하고 그 밖의 사안은 擊錚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제 그 대상을 확대하여 일반 民隱 전반에 대해 호소함을 허락하여 합법적 공간에서의 민의상달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 하였다.063) 이같은 조치로 인해 일반 민인들이 수령, 감사, 나아가 비변사에까지 자신들의 집단적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 더욱 용이해졌다. 당시 민중은 합법적인 등소 외에도 집단행동을 통한 ‘호소’도 많이 행하였는데, 이같은 방법을 통해 부세감면, 민전침탈, 상업적 이익 등 공동의 문제를 집단적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이같은 등소와 호소를 통한 집단항쟁의 경험이 이후 ‘민란’과 같은 대중투쟁의 토양이 되었다.

 이상과 같이 18세기의 일반 민들 사이에서는 여러 조직이 발전하고 있었고, 민중의 집단적 목소리가 사회 전면에 나타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그것이 변화되는 조건에 상응하여 촌락사회를 이끌어 갈 새로운 운영원리를 제시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틈을 이용하여 관권이 깊숙히 침투하고 있었고, 향촌사회 내부에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기층민들은 각종 목적계나 두레를 자체적으로 결성 운영하면서 자신들의 자치력과 결속력을 다져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획득된 자치력이나 결속력은 이후 사족이나 관권과 갈등이 생겼을 때 자신들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되는 것이었다. 또 계나 두레의 조직은 대중동원을 위한 조직으로 바로 전화될 수 있었다. 때문에 정부측에서는 민인들의 집단행동을 흔히 ‘作契’라는 용어로 표현하였고, 그것이 집단행동으로 나타날 경우 ‘結黨作亂’으로 크게 문제삼게 된다.

 18세기 ‘결당작란’의 주체는 일반 민인, 아전, 토호 등 다양하였고, 그것에 동원되는 층이 주도자의 족당이나 수하인이 일반적이었지만, 그 가운데 토호가 주체가 된 경우에는 다수의 민인을 동원하고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영조 17년(1741) 밀양부에서 발생한 ‘汨蕫契’사건을 들 수 있다.064) 이는 밀양지방의 토호가 수백 명의 민인과 더불어 돈을 모아 골동계라는 조직을 결성한 후 수령을 바꾸고 향임을 차출하는 등 실력행사를 하여 큰 문제가 되었던 사건이다. 정조 6년(1781) 함창 토호가 수령의 체형에 반발하여 무리를 모아 단체를 결성하고 돈을 거두어 수령축출을 도모한 것065) 역시 마찬가지 사건이다. 토호들이 주도하였던 사건들에서 민인을 모으는 데 계를 이용하였던 것은 당시 계조직이 민중의 결속에 일반적으로 이용되고 있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조직체를 통해 결집된 힘은 수령을 교체할 정도로 향촌사회 내부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촌계류나 두레가 촌락사회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지만, 촌락사회 내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던 부류들이 조직화되고 있던 현상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 후기의 사회변화와 함께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걸치는 기간에는 농지에서 유리되거나 도시로 유입된 하층민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유망민은 어느 시기에나 존재하는 것이지만 이 시기에 오면 그 수가 크게 급증하여 정부 내에서도 유망민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생활근거지를 잃고 도성이나 읍성 주위에서 거주하던 이들은 생계의 수단으로, 혹은 자위적인 집단조직으로 향도계를 조직하여 잡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열악한 조건으로 인해 그들 가운데에는 도적화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특수한 목적의 조직을 구성하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17세기 말 서울 지역의 하층민 중심으로 결성되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劍契’이다. 검계는 유망하여 서울로 흘러들어온 자들이 중심이 된 조직으로서, 여기에는 평민뿐만 아니라 사대부가나 궁가의 종까지도 참여하고 있었다. 이들이 어떤 행동목표를 지니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사로이 군사훈련을 하고 있던 것으로 보아 상당한 조직성을 갖추고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한편 노비들 가운데에는 자기 주인뿐만 아니라 양반 일반을 대상으로 살육과 약탈을 목적으로 하는 ‘殺主契’를 조직하는 경우도 발견되는데,066) 이들의 성격 역시 검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17세기 말부터 시작된 이러한 흐름은 영조 초년의 戊申亂을 거치면서 무신란에 동원되었던 사회세력의 경험과 지배권력에 대한 저항의식이 확산되고, 18세기에 들어 더욱 증폭되는 가운데 明火賊과 같은 보다 대규모적이고, 지속적인 항쟁활동으로 전개되어 나가게 되었다.067) 물론 이들 세력이 사회적 전망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어서 바로 변혁세력의 주체로 부각될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이후 사회변혁세력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17, 18세기에 사족이 주도하던 동계조직의 모순과 한계성에 직면하면서 기층민 조직들은 자체의 새로운 자생력과 진로를 획득하게 되었고, 그것은 이후 기층민이 중세 말기의 변혁주체로서 사회 전면에 나설 수 있게끔 하는 토대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062)李泰鎭, 앞의 글(1989).
063)韓相權,≪朝鮮後期 社會와 訴寃制度-上言·擊錚硏究-≫(一潮閣, 1996).
064)≪英祖實錄≫권 53, 영조 17년 정월 갑술.
065)≪正祖實錄≫권 13, 정조 6년 정월 신해.
066)鄭奭鍾,<肅宗朝의 社會動向과 彌勒信仰>(≪朝鮮後期社會變動硏究≫, 一潮閣, 1983).
067)영조 연간에 전개된 명화적의 성격과 활동에 대해서는 韓相權,<18세기 前半 明火賊 활동과 정부의 대응책>(≪韓國文化≫13, 1992) 참조.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