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약체결 전의 국내외정세
19세기 후반 조선에 대한 서구세력의 개방 압력은 주체와 계기, 그리고 시기적으로 동아시아지역의 청국·일본과 비교하여 공통점과 아울러 상이한 점이 있었다. 조선 연근해에 서양 선박들이 출현했던 시기는 인접국가와 동일한 시기였다. 18세기 중엽 이후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상인들은 중국의 廣東지역과 일본의 나가사키(長崎)에 교역근거지를 확보한 이래 교역활동을 계속하였으나, 조선왕조는 이들과의 접촉을 금지하였다. 조선에 대한 서구의 직접적인 통상개방 요구는 1832년 영국의 동인도회사 소속 상선 로오드 앰허스트(Lord Amherst)호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로오드 앰허스트호가 조선에 대하여 통상을 요구하였던 1832년이라는 시점은 영국정부가 동인도회사의 대중국무역 독점권을 폐지하고 중국시장의 개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던 시기였다. 이 시기 영국산업자본주의 세력이 동아시아지역에서 전개하였던 시장개방 압력의 대상에 조선도 예외일 수는 없던 것이다. 즉 조선에 대한 자본주의 열강의 개방요구는 중국 및 일본시장에 대한 개방요구와 동일한 시기에 시도되었다.
그러나 청국과 일본이 이들의 무력행사에 굴복하여 각기 1842년과 1854년 불평등조약체제를 수용함으로써 국내 시장을 개방하였으나 조선은 다른 경로를 밟기 시작하였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인접지역의 국가와 달리 조선에 대한 서양의 결정적인 개방 압력은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866년과 1871년을 전후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또한 조선에 대한 개방요구는 병인·신미년(1866∼1871) 간의 미국과 프랑스의 무력도발로 시작되었으나, 실제 개항은 조일수호조규(1876) 이후에도 공식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과 1883년 조영수호조약 체결을 통해 비로소 구미자본주의 열강에 대해 조선시장을 개방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조선에 대해 개항과 통상을 요구하였던 세력은 선진자본주의 국가로 이 지역에서 세계최강의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영국이 아니라, 1830년대 내지 1840년대 국내산업혁명을 경험하였던 후발자본주의 국가 프랑스와 미국이었고, 조선을 자본주의 시장체제에 강제적으로 편입시키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동일문명권내의 인접국 일본이었다.
조선이 강화도조약체결을 통해 개항에 이르게 된 배경으로는 첫째, 청정부의 권고 및 운요호(雲揚號)사건 이후 일본의 개항 요구 등 외부로부터의 요구와 둘째,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경험하면서 국내 지식인과 관료 가운데 개항과 통상을 주장하는 세력이 성장하고 있었던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개항의 배경으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의 대조선정책을 먼저 검토하고, 이와 관련하여 조선내 이른바 개항론자들의 대외인식의 변화과정과 조선정부의 대응을 다루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