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5. 개항의 역사적 의의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1. 19세기 중반기의 동아시아 정세
          • 1) 한·중·일의 정세
            • (1) 화이사상과 중국의 조공제도
            • (2) 조선왕조와 청조:청한 종속관계
            • (3) 조선왕조와 일본:‘교린’관계
            • (4) 화이질서하의 한국과 일본
          • 2) 서세 동점과 동아시아 제국
            • (1) 서방제국의 동방진출
            • (2)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동방진출
            • (3) 일항 무역:전통적 동서무역 제도
            • (4) 화란과 영국의 진출
            • (5) 중영 무역의 변천:차에서 아편으로
          • 3) 동서 신국제관계의 성립:불평등조약 체제
            • (1) 중영 아편무역 분쟁
            • (2) 중영 개전과 남경조약의 체결
            • (3) 애로우전쟁과 천진조약 및 북경협정
          • 4) 일본의 개항과 미국
        • 2. 구미 열강의 통상요구
          • 1) 러시아의 통상요구
          • 2) 프랑스의 통상요구
          • 3) 영국의 통상요구
          • 4) 미국의 통상요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1. 개화사상의 형성
          • 1) 개화사상의 형성과 배경
          • 2) 개화사상의 형성
          • 3) 1866년 개화사상 비조들의 활동
          • 4) 최초의 개화사상
        • 2. 동학의 창도와 동학사상
          • 1) 동학 창도의 배경
          • 2) 동학의 창도 과정
          • 3) 동학사상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1. 흥선대원군의 집권
        • 2. 대원군의 내정 개혁
          • 1) 대원군의 인재등용
          • 2) 서원 철폐와 경복궁 중건
          • 3) 재정, 군사제도의 개혁
          • 4) 민란 대책
        • 3. 대원군의 대외정책
          • 1) 러시아의 남하 방어책
          • 2) 천주교 탄압:병인사옥
          • 3) 병인양요와 대응책
          • 4) 신미양요와 대응책
          • 5) 대일 강경책
        • 4. 대원군 정치의 성격과 의의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1. 강화도조약과 개항
          • 1) 조약체결 전의 국내외정세
            • (1) 메이지유신과 일본의 조선정책
            • (2) 고종친정과 대외정책
          • 2) 강화도조약의 체결
            • (1) 운요호사건과 조선정부의 대응
            • (2) 조일수호조규의 내용과 성격
          • 3) 개항 이후 조선정부의 대내외정책
            • (1) 수신사파견과 개화정책의 모색
            • (2) 조일수호조규 부록 및 통상장정
        • 2. 개항 초기의 조청관계
          • 1) 청국 북양대신 이홍장의 서양 각국과의 수교권고
          • 2) 제2차 수신사의 파견과 주일청국사절의 연미론
        • 3. 조미조약의 체결
          • 1) 조·청·미 3국의 조미조약 체결 교섭과 속방조관
          • 2) 조미조약의 성립과 속방조회
        • 4. 유럽 각국과의 조약체결
          • 1) 한·영 수호통상조약의 체결
          • 2) 한·독 수호통상조약의 체결
          • 3) 한·러 수호통상조약의 체결
          • 4) 한·불 수호통상조약의 체결
          • 5) 기타 유럽국가들과의 조약체결
        • 5. 개항의 역사적 의의
          • 1) 강화도조약과 자본주의 세계체제
          • 2) 불평등조약체제의 수립과 그 영향
          • 3) 초기 개화정책의 추진배경과 그 성격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1) 강화도조약과 자본주의 세계체제

 ‘西勢東漸’은 역사적으로 서구의 동양진출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서세의 동점현상은 16세기 이래 선교사를 비롯한 종교의 전파를 시작으로, 상인의 진출에 의한 시장권의 확보 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서세의 동아시아 진출과 그 성격은 전근대사회의 그것과 판이한 것이었다. 19세기 후반 서구열강의 동아시아 진출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주체와 계기, 그리고 외압의 질적인 차이점이라 할 것이다.

 18세기 중반부터 산업혁명을 거쳐 면업 중심의 산업 근대화를 급속하게 추진하였던 영국은 19세기에 접어들어 중상주의 국가에 의한 독점무역의 폐지와 자유무역 등을 주장하면서 본격적인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 그 결과 세계무역시장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급격히 높아져 1800년 경에는 세계무역의 33%를 차지함으로써 이른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1830년대 이후 프랑스·독일을 비롯하여 미국과 러시아 등 후발자본주의 국가들의 산업화가 급속히 진척되면서 해외에서의 시장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제2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서구의 산업은 석탄과 철에 기초한 산업에서 철강·석유·화학·전기에 기초한 산업으로 재편되었고, 새로운 산업의 기초는 비서구지역으로부터 원료와 에너지원을 끊임없이 공급받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때문에 비서구지역에 대한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쟁은 불가피한 것이었고, 1873년 이후 세계경제가 대공황에 직면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서구 자본주의 열강의 무역정책 기조도 자유무역에서 보호주의 혹은 신중상주의 정책으로 변화하면서 경쟁과 갈등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같은 경제부문의 변화는 그 질과 양이 증폭되면서 이른바 신제국주의 현상이 등장하였다. 신제국주의는 19세기 전반기의 자유무역에 근거한 제국주의와는 현저하게 다른 성격을 지닌 것이었는데, 대부분의 국가들이 보호무역 정책으로 전환하였으며, 영토확장이 전 세계적 규모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강화되었으며, 자본주의 국가들내의 지배엘리트, 군부, 그리고 제국주의적 단체들 사이에 국가자원의 조직화 등을 강조하는 세계관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산업구조의 재편과 변동의 시기에 영국의 대응은 그렇게 효과적이지 못하였고, 독일·미국 등 후발자본주의 국가들이 두각을 나타냈으며, 19세기 후반기에 들어 일본이 이들 국가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448) 19세기 중후반 동아시아지역에 대한 서구의 진출은 이와 같은 서구자본주의 국가들간의 경쟁을 배경으로 진행된 것이었다.

 19세기 중후반 서구세력의 동아시아지역에 대한 개방 압력은 그 시기와 계기, 그리고 주체에 따라 상이하게 가해졌고, 이러한 차이는 결국 조선·청국·일본 3국이 각기 다른 근대화의 길을 걷게 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우선 영국정부는 1757년 이래 朝貢貿易의 원칙과 방식에 입각한 제한무역의 형태로 실시되어 왔던 이른바 중국과의 廣東무역체제를 청산하기 위해 1832년 동인도회사의 대중국무역 독점권을 폐지하고 중국시장의 개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영국은 압도적인 군사적 우세를 바탕으로 아편전쟁(1839∼42)에서 승리하였고, 그 결과 南京條約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내용에는 홍콩의 할양, 광동·上海 등 5항구 개항, 公行의 독점무역 폐지 등이 들어 있었고, 이어 협정관세제, 영사재판권, 최혜국조관, 개항장의 군함정박권 등이 추가되었다. 한마디로 이 조약은 중국의 관세자주권과 사법권을 박탈하고, 중국에 대한 특권을 균점할 뿐 아니라 군함을 임의로 파견할 수 있는 권리 등을 규정한 전형적인 불평등조약이었다. 이러한 불평등조약은 미국·프랑스·스웨덴·러시아 등과도 잇따라 체결되었다.

 그러나 남경조약 체결 이후에도 기대했던 것만큼 중국에 대한 수출이 증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은 시장을 지속적으로 개방·확대시키기 위해 또다시 砲艦外交를 강행하였다. 1856년에 애로우(Arrow)호사건을 빌미로 영·불 연합군은 廣州와 天津을 점령하고 천진조약을 맺었으며, 1860년에는 이 조약의 비준을 중국이 거절하자 급기야 北京을 침략하여 북경조약을 체결하였다. 두 조약을 통해 서구 열강은 개항장을 증가시켰고, 아편무역을 공인토록 하였으며, 九龍반도를 할양받는 등 그 이전에 미처 확보할 수 없었던 각종 특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중국의 주요 지역이 서구 열강에 개방됨으로써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급속하게 편입되었다.

 한편 일본에 대한 개방 압력은 1848년 스페인으로부터 캘리포니아를 할양받아 태평안 연안 국가로 등장하였던 미국에 의해 시도되었다. 특히 미국의 일본진출은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개발되고, 아메리카 서해안으로부터 중국을 연결하는 태평양 정기항로 개척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구체화되었다. 미국은 1853년 페리(M. C. Perry) 파견하여 무력시위를 벌이면서 개항을 요구하는 국서를 제시한 후, 다음해 1월 9척의 군함을 동원하여 조약체결을 요구하였고 3월 조약체결에 성공하였다. 이 조약에는 시모다(下田)·하코다테(箱館) 2항구의 개항, 음식료·땔감 등의 공급, 조난선원의 구제 등이 규정되었고, 나아가 일방적인 최혜국조관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와 거의 동일한 내용의 조약이 영국·러시아·네덜란드 등과도 체결되었다.

 1858년에는 양국간에 본격적인 통상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미일통상조약이 조인되었다. 이 조약을 맺게 된 직접적인 배경에는 영·불 연합군의 천진 점령을 내세워 일본에게도 무력을 행사하겠다는 미국의 위협이 깔려 있었다. 이 조약은 요코하마(橫浜)·나가사키(長崎) 등 4개 항구의 추가 개항, 에도(江戶)·오사카(大坂)의 개시, 협정관세제, 영사재판권, 거류지 설치 등이 규정된 불평등조약이었으며, 관세율만 달랐을 뿐 같은 해 체결된 천진조약과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로써 일본도 중국에 이어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되기에 이르렀다. 이제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조선만이 유일하게 서구 열강에 의해 개방되지 않은 나라로 남게 되었다.

 영국의 상선 로드 앰허스트호가 조선에 대하여 통상을 요구하였던 1832년이라는 시점은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영국정부가 동인도회사의 대중국무역 독점권을 폐지하고 중국시장의 개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던 시기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영국산업자본주의 세력이 동아시아지역에서 전개하였던 시장개방 압력의 대상에 조선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조선에 대한 자본주의 열강의 개방 요구는 중국 및 일본시장에 대한 개방 요구와 동일한 시기에 시도된 것이었다.

 그러나 청국과 일본이 영국과 미국의 무력행사에 굴복하여 각기 1842년과 1854년 불평등조약을 체결,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되었지만 조선은 이들 국가와 다른 경로를 밟았다. 인접국가인 청국·일본과는 달리 조선에 대한 서양의 개방 압력은 시기적으로 20여년이 지난 1866년(병인양요)과 1871년(신미양요)을 전후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가해졌다. 군사력을 앞세운 개방 요구는 후발자본주의 국가들이었던 미국과 프랑스의 무력도발로 나타났다.

 그러나 조선은 1860년대 이후 두 차례의 양요를 치르면서 서구 열강의 우월한 군사력을 직접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척화비를 세우는 등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하였다. 당시 서구 열강은 거대 시장인 중국의 개방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데다가 국내문제로 말미암아 조선의 개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 이 틈을 타서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국가권력의 집중화를 시도하던 일본이 서구 열강의 직간접적인 지지를 받아 조선의 개항에 앞장섰다. 쇄국을 견지했던 대원군정권이 붕괴하고 고종이 친정체제를 출범시킨 후 일본에 대한 유화정책을 펼치자 일본은 이른바 ‘征韓’으로 내부의 모순을 외부로 돌리는 동시에 국권 확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1875년 운요호(雲揚號)사건을 일으킨 뒤 다음해 서구 열강의 포함외교를 모델로 불평등조약을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조일수호조규에 뒤이어 조인된 각종 문서에는 부산·원산·인천 등 3항구의 개항, 영사재판권, 연안측량권, 일본화폐 유통, 미곡의 자유로운 수출, 최혜국조관, 그리고 무관세무역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19세기에 접어들어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원료공급지, 상품판매시장, 그리고 자본투하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과 갈등을 연출하면서 전지구적으로 확대되었던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조선의 개항에 의해 비로소 전지구적인 연결망 구축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선은 강화도조약으로 자본주의 세계체체에 편입되었으나 실제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직접적으로 개방되었던 것은 강화도조약 이후 6년이 지난 뒤 시도되었던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과 1883년 조영수호조약을 통해서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청국·일본과 달리 조선이 자본주의 시장체제에 편입되었던 19세기 후반은 1780년대에 이미 자국의 산업혁명을 일단락지었던 영국과 1830, 40년대에 산업혁명을 수행했던 후발자본주의 국가들이 동아시아지역에서 그들의 세력권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던 시기였다. 조선에 대해 개항과 통상을 요구하였던 세력은 선진자본주의 국가로 이 지역에서 세계최강의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영국이 아니라, 1830년대 내지 1840년대 국내 산업혁명을 경험하였던 후발자본주의 국가 프랑스와 미국이었으며, 실제로 조선을 자본주의 시장체제에 강제적으로 편입시키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세력은 동일문명권내의 인접국 일본이었다.

 그 결과 1876년 당시 조선이 직면했던 외압의 규모와 성격은 1840, 50년대 초반 열강들간의 견제나 간섭이 없는 가운데 영국과 미국에 의해 개항된 청국·일본이 외부로부터 받았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특히 개항의 직접적 계기가 자본주의 열강과 불평등조약 체계 아래 있었던 같은 문명권의 일본에 의해 주어졌다는 사실이 이후 조선이 새로운 국제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데 커다란 장애를 초래하였다.

 개항 이후 조선의 국제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동아시아지역에서 중국 중심의 전통적인 華夷질서가 무력을 앞세운 서양열강의 침략으로 해체되어 서구 중심의 萬國公法的 국제질서에 편입되어 가는 과정,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가운데 조선과 청국, 조선과 일본의 관계와 역할이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하는 점에 대해 다양하게 분석을 시도하여야 할 것이다.

448)김기정,<19세기 후반기제국주의와 동아시아>(≪1894년 농민전쟁연구 3≫, 역사비평사, 1993), 1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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