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국제무역의 추이(1876∼1894)
(1) 개항 이전의 국제무역
개항 이전 조선의 대외 무역은 청·일본과의 전통적인 통교관계에 의한 公貿易과 私貿易이 있었을 뿐이며, 그것도 엄격한 국가의 감시하에서 행해졌다. 청에 대해서는 조공을 통한 공무역과 국경지역인 義州에서의 柵門開市와 함경도의 會寧·慶源 開市를 통한 사무역이, 일본에 대해서는 倭使의 왕래에 따른 부산 왜관에서의 공무역과 사무역이 있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는 이러한 정규 무역 외에도 광범위하게 밀무역이 행해지고 있었고 특히 책문·왜관을 통해 인삼·우피·곡물의 밀수출이 극성하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양 면직물이나 일반 서양상품의 수입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하여 미곡의 유출, 곡가의 등귀 등이 나타나고 있었다.0262)
개항 직전 조청무역은 대체로 300∼400만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으며,0263) 수출의 경우 금과 은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그밖에 우피·인삼·해삼·虎皮·熊皮 등의 순위로 나타나고 있다. 수입품은 서양 면제품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밖에 고급직물류·약종류·高級皓緞類·寶褥 등의 순위로 나타나고 있다. 즉 봉건지배층의 수요에 의한 소비품 비중이 높고, 金銀 등의 수출은 그에 대한 지불수단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적어도 개항 10년 전인 대원군 집정 초에 이미 ‘요즈음 洋貨가 거의 온 나라에 널리 퍼져 이미 識者들이 우려하고 탄식하는 바가 되었다’고 할 정도였고, 특히 서양면포는 책문무역의 최대 수입품으로 등장하였다.
한편, 개항 직전의 조일무역에서 일본측의 수출상품으로는 솥·주전자·화로·톱·못·가위 등 일용기구와 漆器·縮綿 외에 특히 서양 목면·직물류를 轉賣해서 많은 이익을 올리고 있었으며 조선측의 수출상품은 미곡과 우피·호피·인삼·목면·곡물류 등이었다. 무역액은 1875년에 약 24만 5천원, 1876년에 약 16만원 정도로서 조청무역에 비해 그 규모가 약 12분의 1 내지 8분의 1에 불과한 것이었다.0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