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1. 동학농민군의 봉기
동학농민전쟁은 한국 근대 민족운동사에서 한 획을 긋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조선 후기 이래 군·현 단위로 전개되어 온 반봉건 농민항쟁의 흐름을 전국적인 규모에서 종합하여 봉건 모순의 척결을 촉구하는 한편, 개항 이후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야기된 민족 모순을 극복하여 근대민족국가를 수립하려는 반제·반봉건 운동이었다.
동학농민전쟁은 대체로 네 단계로 발전되어 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0655) 제1단계는 ‘고부민란’의 단계이다. 고부에서 민란이 발발하여 농민 약 1천여 명이 고부관아를 습격한 1894년 1월 11일(양력 2월 17일)경부터 3월 3일(양력 4월 8일) 신임군수 朴源明의 설득으로 해산하기까지의 시기이다. 제2단계는 ‘제1차 농민전쟁’의 단계이다. 3월 20일(양력 4월 25일) 무장에서 전라도 일대의 농민들이 전봉준·손화중·김개남 등의 지도하에 기포한 때부터 5월 7일(양력 6월 10일) 전주화약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이다. 제3단계는 ‘執綱所 시기’이다. 청군과 일본군의 침략으로 농민군이 정부군과 ‘전주화약’을 체결한 5월 8일(양력 6월 11일)부터 9월 12일(양력 10월 10일)까지 농민군은 전라도 각 군현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농민 통치를 실시하였다. 제4단계는 ‘제2차 농민전쟁’의 단계이다. 농민군이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하여 재봉기한 9월 13일부터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에 패배한 1894년 말까지의 시기이다.
0655) | 신용하,≪동학과 갑오농민전쟁 연구≫(일조각, 1993). 정창렬,≪갑오농민전쟁연구-전봉준의 사상과 행동을 중심으로-≫(연세대 박사학위논문, 1991)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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