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2. 동학농민군의 격전1) 관군의 남하와 황토현·장성전투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1. 청의 간섭
          • 1) 청의 주차관 임명
          • 2) 청의 외교 및 내정간섭
          • 3) 청의 경제이권 확장
          • 4) 경제적 영향
        • 2. 조선의 대외관계
          • 1) 조·일관계
          • 2) 조·미관계
          • 3) 조·러관계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1. 통치기구의 재정비
        • 2. 민씨척족정권의 시정
        • 3. 독립외교의 추진
        • 4. 개화정책의 추진과 좌절
        • 5. 외국인 고문의 고빙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1. 개항 후의 국제무역
          • 1) 불평등조약 체계의 성립
            • (1) 일본에 의한 개항과 무관세무역
            • (2) 청의 속방화정책과 불평등조약체계의 성립
          • 2) 국제무역의 추이(1876∼1894)
            • (1) 개항 이전의 국제무역
            • (2) 일본의 독점무역기(1876∼1882)
            • (3) 청·일 경쟁무역기(1883∼1894)
          • 3) 외국 상인의 침투와 조선 상인층의 대응
            • (1) 일본 독점무역기(1876∼1882)
            • (2) 청·일 경쟁무역기(1883∼1894)
            • (3) 조선상인층의 대응과 변모
        • 2. 국내적 상품유통의 변동
        • 3. 방곡령실시의 사례와 원인
          • 1) 제1기(1876∼1884)
          • 2) 제2기(1884∼1894)
          • 3) 제3기(1895∼1904)
        • 4. 사회신분제의 동요
          • 1) 노비제의 변화
            • (1) 제도적 변화
            • (2) 노비 호구의 변화
          • 2) 중간신분층의 동향
          • 3) 양반 신분의 동향
            • (1) 양반 호구의 변화
            • (2) 양반 신분의 동요와 분화
        • 5. 개항기 지주제와 농업경영
          • 1) 개항 후 농업변동의 요인
            • (1) 통상무역의 확대와 농촌사회
            • (2) 정부 지배층의 농업문제 인식과 농업정책
          • 2) 지주제의 유형과 동향
          • 3) 농업생산과 지대의 변화
          • 4) 1894년 이후 지주제 전망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1. 동학농민전쟁의 사회경제적 배경
          • 1) 개항 이후 미곡수출의 증대와 지주경영의 강화
          • 2) 일·청상의 침투와 제국주의적 상품유통구조의 창출
          • 3) 부세운영의 변화와 농민몰락의 심화
          • 4) 향촌사회의 변동과 농민항쟁의 고양
        • 2. 동학교조 신원운동
          • 1) 동학교단의 조직과 운영
          • 2) 교조신원운동의 전개
            • (1) 공주취회
            • (2) 삼례취회
            • (3) 광화문복소와 척왜양방문 게시운동
            • (4) 보은취회와 금구취당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1. 동학농민군의 봉기
          • 1) 고부민란
            • (1) 고부민란의 배경
            • (2) ‘사발통문’ 거사계획
            • (3) 고부민란의 전개
            • (4) 관권의 대응
            • (5) 고부민란의 농민전쟁으로의 발전
          • 2) 전봉준의 기병과 격문
            • (1) 무장기포
            • (2) 고부점령
            • (3) 백산대회
        • 2. 동학농민군의 격전
          • 1) 관군의 남하와 황토현·장성전투
            • (1) 농민군의 진군과 감영군의 출동
            • (2) 황토현전투
            • (3) 경군의 남하와 농민군의 남행
            • (4) 장성전투
          • 2) 전주성의 점령과 화약
            • (1) 전주성 점령
            • (2) 완산전투
            • (3) 전주화약
        • 3.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 요구
          • 1) 조세수취체제에 대하여
            • (1) 조세수취제도 전반에 관하여
            • (2) 전정에 관한 요구조항
            • (3) 군정에 관한 요구조항
            • (4) 환곡에 관한 요구조항
            • (5) 잡세·잡역에 관한 요구조항
            • (6) 전운영에 관한 조항
            • (7) 탐관오리에 관한 요구조항
          • 2) 무역·상업 문제에 대하여
            • (1) 일본의 경제적 침투에 대하여
            • (2) 국내상업문제에 대하여
          • 3) 기타 정치적 요구조항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1. 집강소의 설치
          • 1) 휴전과 집강소의 설치(5월 8일∼6월 15일경)
          • 2) 집강소 설치의 전면화(6월 15일경∼7월 5일)
          • 3) 집강소의 공인 (7월 6일∼10월)
        • 2. 집강소의 구성과 조직
        • 3. 집강소의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1. 동학농민군의 재기
          • 1) 남접농민군의 재기
          • 2) 북접농민군의 기포
        • 2. 반일투쟁의 전개
          • 1) 반일투쟁의 발발
          • 2) 남·북접 연합과 봉기의 확산
          • 3) 관군 및 일본군의 남하
          • 4) 농민군의 북상과 공주전투
          • 5) 항일연합전선의 추진
          • 6) 농민군의 후퇴와 농민전쟁의 좌절
        • 3. 동학농민전쟁의 역사적 의의
          • 1) 결합의 유대
          • 2) 경제적 지향
          • 3) 국가·민족·국민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동학농민군의 격전

1) 관군의 남하와 황토현·장성전투

(1) 농민군의 진군과 감영군의 출동

 갑오년 3월 25일 전봉준을 총대장으로 하는 농민군 부대는 정연한 기율 속에 백산에서 전주성을 향해 진군을 시작했다. 이들의 1차 목표는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성 점령이었다.

 ‘保國安民’과 ‘東徒大將’ 기를 앞세우고 그 뒤에 청·홍·묵·백·황의 오색기를 벌려 각기 방향을 표시했다. 포사의 어깨에는 弓乙을 붙이고 등에는 同心義盟 넉자를 붙였다. 전봉준 대장은 백립·백의 차림에 손에는 염주를 들고 입으로는 ‘三七’주문을 외며 지휘했으며 대오는 삼삼오오 진법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행진했다.0707)

 이즈음 각 고을의 관청은 자체방어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아전들의 상당수가 농민군에 투신했다. 농민군은 3월 28일 태인현 동헌과 내아를 점령하여 군기를 탈취하고 4월 1일 오전 10시경에는 금구현 원평까지 진출하였다.0708) 이들은 원평에서 진을 치고 하루를 묵으며 전주감영의 동향을 살피는 한편 무장을 강화하고 양식을 확보하는 등 전주성 입성 전략을 모색했다.

 전라감사 김문현은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농민군의 심상치 않은 동향을 수시로 조정에 보고하는 한편 감영군을 출동시킬 것을 결심한다. 우선 이서와 군교를 풀어 전주성의 서·남문 경비를 강화하는 한편 농민군을 제압할 감영군을 소집했다. 감영군의 주력은 1893년 설치된 武南營의 병력이었으며 각 고을에서 징병한 향병과 보부상들이 합세했다. 우영관 李璟鎬를 총지휘관으로 하여 영병 7백여 명, 토병 5백여 명, 보부상 1천여 명 등이 진압군으로 편성되었다.0709) 이들은 4월 3일 오전 10시경 농민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금구쪽으로 진출했다.

 감영군의 출동소식을 접한 농민군의 주력부대는 3일 오후 4시경에 재빨리 방향을 바꿔 태인현의 인곡·북촌·용산 등지로 진을 옮겨 버렸다.0710)

 한편 농민군의 일대는 백산에서 곧바로 부안으로 진출하여 그곳에서 봉기한 세력과 하동면 분토동에서 합류했다. 이들은 약 5백명이었으며 홍·백의 ‘保國安民旗’와 부안·고부·영광·무장·흥덕·고창 등의 읍이름을 새긴 소기 등을 내걸고 행진했다. 부안으로 진출한 농민군 중 2백여 명은 4월 1일 부안 현아에 들이닥쳐 옥에 갇혀 있던 사람들을 풀어준 뒤 분토동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아침에는 부안 공형에게 ‘장시에 폐막이 없도록 하라’는 경고문을 보냈으며 일부는 이날 오후 6시경에 분토동에서 서쪽으로 2리 떨어진 서도면 부흥역으로 진을 옮겼다.0711)

 농민군의 주력부대는 4월 3일 밤을 태인에서 지낸 다음 일부 견제병력만을 현지에 남기고 부안으로 이동했다. 4일 오전에는 부안에 진을 치고 있던 농민군 일대와 합세한 농민군 주력부대는 부안 동헌에 돌입하여 현감 李喆和를 감금하고 아전들을 결박한 뒤 군기를 탈취했다.0712) 또한 이날 영광 법성포의 이향에게 다음과 같은 통문을 보내었다.0713)

… 또 우리가 오늘 의거한 것은 위로 宗社를 보존하고 아래로 백성을 편안하게 할 것을 죽음으로써 맹서하였으므로 두려워 동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차례로 살펴 보건대 앞으로 고쳐야 할 문제들로서, 전운영이 吏民에게 폐단이 된 것, 균전관이 폐단을 제거한다면서 폐단을 만드는 것, 각 시정에서 금전으로 나누어 세금을 거두는 것, 각 포구의 선주들이 강제로 빼앗는 것, 외국의 潛商들이 고가로 사들이는 것, 염전에 대한 시장세, 여러 물품을 도매하여 이익을 취하는 것, 起田과 陳田을 막론하고 私田에 백지징세를 하는 것, 오래된 환곡의 본전을 뽑는 것 등등 폐막을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농공상의 네 가지 업에 종사하는 백성들은 한 마음으로 협력하여 위로 국가를 돕고 아래로 빈사상태에 있는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면 어찌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濟衆義所

 이 통문은 폐정개혁에 대한 농민군의 구체적인 요구조항들이 처음으로 제시된 것으로서 영광 법성포 뿐 아니라 당시 농민군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고부·부안·흥덕·태인·정읍·장성·무장·함평 등의 수십 개 고을에 발송되었다고 생각된다.

 4월 6일 오전 농민군의 주력부대는 부안을 떠나 고부를 향해 진군을 계속했다. 태인쪽의 잔여세력들도 진을 풀고 고부쪽으로 향했다. 이들의 합류목표지점은 도교산이었다.0714) 도교산은 황토산이며, 황토산은 곧 황토현이다.

 감영군은 농민군의 뒤를 쫓아 원평을 지나 백산쪽으로 진군해 왔다. 부안의 농민군을 압박해 가던 감영군은 6일 죽산쪽으로 진출해 있던 일대와 백산에서 합류하여 고부쪽으로 향한 농민군 주력을 추격했다. 감영군은 농민군을 추격하면서 연도에서 닥치는대로 노략질을 일삼아 백성들의 빈축을 샀다. 농민군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던 黃玹은 관군과 농민군의 행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관군은 서쪽으로 진군하면서 향병과 영병이 뒤섞여 행군하였다. 행군을 하게 되면 연도에서 닥치는대로 노략질하였고, 점포를 망가뜨리고 상인들의 물건을 겁탈하는가 하면, 마을로 가득 몰려가니 닭이나 개가 남아나는게 없었기에 백성들은 한결같이 이를 갈면서도 겁이나 피했다. (중략) 적(농민군-필자)은 관군의 소행과는 반대로 하기에 힘써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게끔 명령을 내려 조금도 이를 어기지 않으면서 쓰러진 보리를 일으켜 세우며 행군하였다. 이때 관군이나 도적들 양 진영은 모두 양식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만 민간으로부터 먹을 것을 구하여 힘들게 옮겨와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적들의 진영에는 음식을 담은 광주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관군은 굶주린 기색이 얼굴에 나타났다.”0715)

0707)崔琉鉉,≪侍天敎歷史≫,≪東學思想資料集≫3(아세아문화사, 1978), 616쪽.
0708)≪오하기문≫, 75∼76쪽;≪주한일본공사관기록≫1, 2쪽.
0709)鄭碩謨,<甲午略歷>(≪동학란기록≫상), 63쪽.
0710)洪啓薰,<兩湖招討謄錄>(≪동학란기록≫상), 163쪽;≪오하기문≫, 78쪽.
0711)≪남유수록≫, 甲午 4월 1일;<양호초토등록>(≪동학란기록≫상), 163쪽.
0712)≪남유수록≫, 甲午 4월 5일;<양호초토등록>(≪동학란기록≫상), 163쪽.
0713)<동비토록>(≪한국학보≫3, 一志社, 1976, 여름), 244쪽.

≪주한일본공사관기록(번역본)≫1, 20쪽.
0714)<양호초토등록>(≪동학란기록≫상), 163쪽.
0715)≪오하기문≫, 79∼80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