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 요구
제1차 동학농민전쟁에서 농민군은 무엇을 목표로 싸웠는가? 농민군은 봉기의 시초부터 그들의 요구를 여러가지 형태로 제시해 왔다. 농민군은 창의문, 격문 등을 통해 봉기의 정당성을 널리 알리기도 하였고 전쟁의 상대였던 조선정부에 대하여는 자신들의 구체적인 요구를 담아 ‘原情’, ‘通文’ 등의 형태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정부측에 제시한 농민군의 요구사항들은 일종의 폐정개혁안 내지 사회개혁안의 성격을 띤 것이었다. 여기서는 폐정개혁안의 분석을 통해 농민전쟁 당시 농민들에게 부과되었던 사회적 모순의 성격과 농민전쟁의 목표 내지 농민군의 사회경제적 지향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농민군이 제1차 농민전쟁 기간 중에 조목별로 제시한 폐정개혁 요구안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록은 모두 여섯 가지이다. 4월 4일 부안을 점령한 농민군이 법성포 이향에게 보낸 ‘東學軍通文’ 9개조,0756) 4월 19일 경군을 이끌고 내려온 招討使 홍계훈에게 제시한 ‘湖南儒生原情’ 8개조,0757) 5월 초 전주화약 직전 화약의 조건으로 초토사 홍계훈에게 제시한 27개조 중 14개조,0758) 전주성에서 물러나와 5월 11일경 巡邊使 이원회에게 제시한 ‘全羅道儒生等原情’ 14개조0759)와 5월 17일경 ‘原情列錄追到者’ 24개조,0760) 그리고 5월 20일 경 長城에서 전라감사 김학진에게 제시한 ‘개혁안’ 13개조0761) 등이 그것이다.
물론 농민군은 농민전쟁을 일으킨 당초부터 체계적이고 상세한 폐정개혁조목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농민군은 처음 봉기했을 때에는 간단한 구호에서부터 시작하였고 전쟁을 계속하는 동안 필요에 따라 폐정개혁안을 발표, 제시하였다. 따라서 개혁안은 애초부터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완결된 일정불변의 어떤 조목들이 아니라 집약된 구호에서부터 몇 가지의 구체적인 조목으로 나타났으며, 그것도 모두를 다 기록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가장 긴급하다고 느껴진 조목들이 먼저 제시되었을 것이다.0762) 그러므로 기록에 따라서 조목 수나 내용에 있어서 차이가 발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군이 제기한 요구조항들은 각 개혁안에서 동일한 조항들이 다수 있다.
여섯 가지 개혁안들을 내용별로 보면 1) 조세수취체제와 이에 관련된 탐관오리에 관한 조항 2) 무역·상업문제에 관한 조항 3) 기타 정치적 요구조항으로 분류할 수 있다. 아래의 ‘폐정개혁 요구사항 분류목록’은 여섯 가지 개혁안에 나열된 요구조항들을 같은 내용의 것을 묶어 28개 조항으로 정리한 것이다.
폐정개혁 요구조항 분류목록0763)
(1) 조세수취체제에 관련된 조항
(가) 조세수취체제 일반에 관한 조항
1) 軍政·還穀·田稅 三政은 通編의 예에 따라 준행할 것(續1)
조세를 명목도 없이 더하여 징수하는 것(東)
(나) 田政에 관한 요구조항
2) 田稅는 전과 같이 할 것(全)
3) 흉년의 白地징세를 없앨 것 (續2)
각읍의 陳浮結은 영원히 면세할 것(續1)
起田과 陳田을 막론하고 私田의 白地徵稅를 하지 말 것(日)
4) 均田官이 폐단을 없앤다고 하면서 도리어 폐단을 낳는다 (日)
均田御使를 혁파할 것(大)
均田官이 토지면적을 속여서 세금을 징수하는 것(東)
均田官의 陳結 농간은 백성을 괴롭히는 바가 심대하므로 혁파할 것(續2)
5) 각 宮房의 輪回結은 모두 혁파할 것(續1)
6) 어느 곳을 막론하고 洑를 쌓아 세금을 거두는 것을 革罷할 것(續2)
(다) 軍政에 관한 요구조항
7) 봄 가을 두차례의 戶役錢은 이전 例에 따라 戶마다 2兩씩으로 내려서 配定할 것(大)
洞布錢은 每戶당 春秋 二兩씩으로 정할 것(全)
軍錢을 때도 없이 과다 징수하는 것(東)
姻戚에게 부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것(東)
軍錢은 봄 가을 매호 당 1兩씩 원래대로 정할 것(續2)
8) 各項의 結錢收斂은 平均으로 分排하여 濫徵하지 말 것(大)
나라의 結稅는 더 보태지 말 것(全)
結米는 옛 大同의 예로 復古할 것(續2)
結上頭錢·考錢 등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이를 혁파할 것(續2)
(라) 還穀에 관한 요구조항
9) 臥還은 그 본전을 뽑아버릴 것(日)
환곡의 본전을 회수하고도 이자를 독촉하는 것(東)
환곡은 옛 수령이 그 본전을 거둔 것은 다시 징수치 말 것(續1)
도내의 환곡은 옛 수령이 거둔 것을 다시 민간에서 거두지 말 것(全)
옛 수령이 이미 거둔 환곡은 다시 징수치 말 것(續2)
10) 賑庫는 一道 내 인민의 膏血인 바 곧 혁파할 것(續1)
본 감영의 賑庫錢은 모두 인민의 膏血인 바 이를 영원히 혁파할 것(續2)
11) 오래된 私債를 官長을 끼고 억지로 받아내는 것을 일체 금할 것(續2)
(마) 雜稅·雜役에 관한 요구조항
12) 浦口의 魚鹽稅는 혁파할 것(全)
각 浦의 魚鹽稅는 시행하지 말 것(續2)
鹽田의 市稅는 거두지 말 것(日)
각 浦口의 船主가 억지로 빼앗는 것을 금할 것(日)
13) 沿陸에 새로 생긴 각종 雜稅를 혁파할 것(續1)
14) 각읍의 官況은 원래 수요 외에 더하여 磨鍊하는 것을 모두 혁파할 것(續1)
烟戶雜役을 줄일 것(全)
각종 잡역이 나날이 늘어나는 것(東)
烟戶雜役을 따로 나누어 加斂하는 것을 모두 혁파할 것(續2)
(바) 轉運營에 관한 조항
15) 轉運營의 吏民에 대한 폐단을 혁파할 것(日)
轉運所를 혁파할 것(全)
轉運司를 혁파하고 이전과 같이 각 읍에서 상납케 할 것(大)
轉運營이 加斂하면서도 독촉하는 것(東)
轉運營의 漕運은 해당 읍으로부터 상납하는 예를 복고할 것(續2)
輪船上納 이후 每結당 加磨鍊米가 3, 4 斗나 되었는데 이를 혁파할 것(續1)
각 浦口의 船主가 억지로 빼앗는 일(日)
(사) 貪官汚吏에 관한 요구조항
16) 貪官汚吏는 징계하여 쫓아낼 것(大)
탐관오리는 모두 쫓아낼 것(全)
임금의 총명을 가리어 賣官賣爵하고 국권을 조롱하는 자는 모두 쫓아낼 것(全)
각 관청의 관속들이 강제로 빼앗고 가혹하게 구는 것(東)
각읍의 貪官汚吏는 모두 쫓아낼 것(續1)
殘民을 침학하는 貪官汚吏는 일일이 쫓아낼 것(續2)
奸臣이 권력을 농단하여 國事가 날로 어그러지니 그 賣官하는 것을 懲治할 것(大)
17) 各邑의 守令이 그 地方에서 묘지를 쓰고 田庄을 사들이는 것을 嚴禁할 것(大)
해당 邑의 지방관이 논을 사서 본읍에 묘지를 쓰는 것을 법에 따라 처분할 것(續2)
官長은 자기 경내에 묘지를 쓰지 않고 또 논을 매입하지 말 것(全)
각읍의 수령이 아래로 민인의 山地를 강제로 빼앗아 묘지를 훔치는 것을 금할 것(全)
세력을 가지고 남의 壟土를 빼앗은 자는 죽임으로써 징계할 것(續2)
18) 各邑의 포흠한 吏胥는 千金이상이면 죽이고 일족에게 물리지 말 것(大)
公錢을 포흠한 것이 千金이면 殺身贖罪케 하고 族戚으로부터 거두지 말 것(續2)
19) 各邑 吏胥의 分房할 때 請錢을 받지 말고 쓸만한 사람을 뽑아 任房할 것(大)
各邑의 吏屬을 임명함에 있어 任債하는 일을 嚴禁할 것(續2)
각읍 아전의 任債는 모두 혁파할 것(續1)
각읍의 任房 名色은 모두 혁파할 것(續1)
20) 각읍 관아의 物種所入은 時價에 따라 取用할 것(續1)
각읍 관아의 物種所入은 時價에 따라 排用하고 常定例는 혁파할 것(續2)
21) 京·營邸吏의 料米는 옛날 예에 따라 삭감할 것(續2)
(2) 무역·상업문제에 관련된 조항
(가) 제국주의 세력의 경제적 침투에 관한 조항
22) 다른 나라의 潛商이 쌀값을 올리는 것을 금할 것(日)
각 浦口에서 사사로이 쌀을 사고 파는 것을 엄금할 것(大)
각 浦口 潛商의 쌀거래를 엄금할 것(續2)
각 浦口의 貿米商을 모두 금단할 것(續1)
大同상납 전의 각 浦口에서의 潛商의 쌀거래를 금지할 것(全)
23) 各國 상인은 各 港口에서만 買賣케 하고 都城에 들어와 設市치 못하게 하며 各處에서 任意로 行商치 못하게 할 것(大)
(나) 국내 상업문제에 관한 조항
24) 각읍 市井의 각 물건에 대한 分錢收稅와 都賈 名色은 혁파할 것(續2)
각종 물건을 매점매석하여 이득을 취하는 것을 금할 것(日)
25) 각 市廛이 分錢收稅하는 것을 금할 것(日)
보부상의 폐단이 크니 이를 혁파할 것(大)
보부상의 작폐를 금단할 것(全)
보부상·雜商의 작당행패를 영원히 혁파할 것(續2)
(3) 기타 요구조항
26) 電報는 민간에 폐단이 심하므로 철폐할 것(續1)
電報局은 민간에 폐가 가장 심하므로 혁파할 것(續2)
27) 東學人으로 무고하게 살륙되고 갇힌 자는 일일이 伸寃할 것(續2)
28) 大院君이 국정에 관여한즉 民心은 얼마간 바라는 바가 있을 것이다(大)
0756) | 이것은 농민군이 古阜 점령 당시에 法聖浦 吏鄕에게 보낸 통문인데, 일본 상인들이 공사관에 보낸 甲午년 4월의 정황보고 속에 들어 있다.≪주한일본공사관기록≫1, 20∼21쪽;伊藤博文,≪秘書類纂 朝鮮交涉資料≫(秘書類纂刊行會, 1936), 332∼33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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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7) | ≪오하기문≫, 88∼89쪽;<東匪討錄>, 353쪽. |
0758) | 이것은 전주화약 때에 招討使 洪啓薰에게 제시한 것으로 모두 27개조로 되어 있었는데 전봉준 판결문에는 14개조만이 실려 있다.<全琫準判決宣言書>,≪韓國學報≫39집, 1985, 188∼189쪽. |
0759) | 이것은 전라도 儒生등(농민군)이 巡邊使 李元會에게 폐정개혁을 原情한 것으로 다음의 ‘原情列錄追到者’와 함께 실려 있다. 金允植,≪續陰晴史≫上(國史編纂委員會, 1971), 322∼323쪽. |
0760) | <東匪討錄>,≪韓國學報≫3집, 264쪽;金允植,≪續陰晴史≫上, 323∼325쪽.<東匪討錄>에는 巡邊使 앞으로 보낸 ‘所願列錄’ 23개조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은≪續陰晴史≫의 ‘原情列錄追到者’ 24개조의 내용과 일치하되 그 중 1개조(軍錢 春秋每戶一兩式 元定事)만이 누락되어 있다. |
0761) | 이것은 농민군이 長城에 퇴거하여 전라감사 金鶴鎭에게 제시한 것이다. 鄭喬,≪大韓季年史≫上(國史編纂委員會, 1971), 86쪽. |
0762) | 한우근,<동학군의 폐정개혁안 검토>(≪역사학보≫23집, 1964), 61쪽. |
0763) | 각 항의 끝에 ( )하여 적어 놓은 것은 각 요구조항이 있는 출전을 가리킨다. (日)은 東學軍通文 9개조가 실려 있는≪日本公使館記錄≫, (東)은 湖南儒生原情이 실려있는<東匪討錄>, (全)은 湖南儒生原情 14개조가 실려 있는<全琫準判決宣言書>, (續1)은 全羅道儒生等原情 14개조가 실려 있는≪續陰晴史≫上, (續2)는 原情列錄追到者 24개조가 실려 있는≪續陰晴史≫下, (大)는 長城 改革案 13개조가 실려 있는≪大韓季年史≫를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