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3권 국권회복운동Ⅰ. 외교활동1. 한반도 중립화 운동3) 러·일 개전기 대한제국의 전시국외중립 선언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1. 한반도 중립화 운동
          • 1) 한반도 중립화론의 대두
            • (1) 임오군란 후 일본에서의 한반도 중립화론
            • (2) 거문도사건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 (3) 청일전쟁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 2) 대한제국의 영세중립화 시도
          • 3) 러·일 개전기 대한제국의 전시국외중립 선언
            • (1) 전시국외중립 외교
            • (2) 전시국외중립 선언
        • 2.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한국의 일본보호국화 과정
          • 2) 정부 주도의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반침략 자주 외교의 전개
            • (2) 을사조약 무효화 외교
          • 3) 민간인의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대영·대미 보호국화 저지 외교
            • (2) 대일 보호국화 저지 외교
        • 3. 특사의 헤이그 평화회의 파견
          • 1)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
          • 2) 고종의 3특사
          • 3) 특사의 장외 언론활동
          • 4) 특사 파견의 파문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1. 유생의 상소 투쟁
          • 1) 을사조약 체결 이전의 상소운동
          • 2) 을사조약 반대 상소운동
        • 2. 시민의 투쟁
          • 1) 지방세제의 시행과 시장세 징수
          • 2) 순천·용천 양시의 시장세 반대운동
          • 3) 시장세 반대운동의 전국적 확산
        • 3. 황무지개척권 반대운동
          • 1)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배경
          • 2) 황무지개척권의 요구
          • 3) 한국민의 반대운동
            • (1) 언론·상소 투쟁
            • (2) 농광회사의 설립
            • (3) 보안회의 투쟁
          • 4)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철회
        • 4. 국채보상운동
          • 1)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 (1) 일본의 차관공세
            • (2)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 2) 국채보상운동의 전개
            • (1) 국채보상운동의 확산
            • (2) 여성의 국채보상운동 참여
          • 3) 국채보상운동의 좌절
        • 5. 의사·열사의 항쟁
          • 1)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1) 스티븐스의 친일 외교활동
            • (2)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3) 장인환·전명운 의거의 영향과 의의
          • 2)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 (1) 이토 히로부미 사살 배경
            • (2) 이토 히로부미의 사살과 그 역사적 의의
          • 3) 이재명의 이완용 척살 미수
      • Ⅲ. 애국계몽운동
        • 1. 애국계몽단체
          • 1) 초기의 계몽단체들
            • (1) 보안회
            • (2) 공진회
            • (3) 국민교육회
            • (4) 헌정연구회
          • 2) 대한자강회
            • (1) 대한자강회의 설립과 조직
            • (2) 대한자강회의 계몽사상
            • (3) 대한자강회의 자강독립운동
          • 3) 신민회
            • (1) 신민회의 창건과 목적
            • (2) 신민회의 국권회복운동
          • 4) 대한협회, 기타 학회들
            • (1) 대한협회
            • (2) 계몽학회들
          • 5) 애국계몽단체 활동의 역사적 의의와 그 한계
        • 2. 애국계몽사상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과 형성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
            • (2) 애국계몽사상의 형성
          • 2) 국권회복의 논리
            • (1) 자강독립론
            • (2) 실력양성론과 독립전쟁론
          • 3) 국민국가건설의 논리
            • (1) 국민국가론
            • (2) 입헌군주정체론과 공화정체론
        • 3. 애국계몽운동의 전개
          • 1) 민중계몽운동
            • (1) 신문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
            • (2) 회지·잡지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
            • (3) 강연회·토론회를 통한 민중계몽운동
          • 2) 교육구국운동
            • (1) 근대학교 설립운동
            • (2) 교과서 편찬운동
            • (3) 의무교육 실시운동
            • (4) 실업·상무교육 실시운동
          • 3) 경제구국운동
            • (1) 황무지개간권 반대운동
            • (2) 국채보상운동
            • (3) 부동산침탈 반대운동
            • (4) 민족경제 건설운동
          • 4) 정치구국운동
            • (1) 을사조약 반대운동
            • (2) 고종양위 반대운동
            • (3) 한일합방 반대운동
          • 5) 민족문화운동
            • (1) 국어국문 진흥운동
            • (2) 국사교육 강화운동
            • (3) 민족적 종교운동
          • 6) 독립군기지 건설운동
            • (1) 독립전쟁론의 대두
            • (2) 독립군기지 건설준비
            • (3) 독립운동기지의 건설
        • 4. 105인사건
          • 1) 사건조작 배경
          • 2) 사건조작 경위와 사건 개요
          • 3) 재판 경위와 사건의 허구성
          • 4) 사건 연루자의 수난과 사회경제적 성향
      • Ⅳ. 항일의병전쟁
        • 1. 갑오·을미의병
          • 1) 갑오·을미의병의 배경
          • 2) 갑오의병의 전개
          • 3) 을미의병의 전개
            • (1) 을미사변과 을미의병의 개시
            • (2) 단발령 공포와 을미의병의 확대
          • 4) 갑오·을미의병의 사회적 기반과 성격
        • 2. 을사의병
          • 1) 을사의병의 재기
          • 2) 전국 의병의 활동
            • (1) 경기·강원도
            • (2) 영남지방
            • (3) 호서지방
            • (4) 호남지방
            • (5) 양서지방
          • 3) 을사의병의 의의
        • 3. 정미의병
          • 1) 군대해산
            • (1) 정미7조약
            • (2) 서울 시위대의 해산
            • (3) 남대문 전투
            • (4) 지방진위대의 항전
          • 2) 중부지역의 의병전황
            • (1) 중부지역의 의병전환
            • (2) 남부·북부지역으로의 확전
            • (3) 의병장들의 의병활동
          • 3) 이강년의 의병활동
            • (1) 이강년의 활동
            • (2) 무기와 전술
            • (3) 의병의 조직과 군율
        • 4. 의병전쟁의 발전
          • 1) 서울진공작전의 실패와 근거지문제
            • (1) 13도 의병부대의 서울진공작전
            • (2) 유인석의 지구전론과 근거지 문제
            • (3) 근거지 구상에 나타난 유인석 사상
            • (4) 서울 진공 실패 후의 분산활동
          • 2) 의병전쟁의 새로운 앙양과 평민 의병장들
            • (1) 스티븐스의 저격과 의병전쟁
            • (2) 평민 의병장들의 활동
            • (3) 한국합방안의 결정과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
          • 3) 호남지방의 의병전쟁과 남한대토벌작전
            • (1) 호남지방의 의병전쟁
            • (2) 일본군의 남한대토벌작전
          • 4) 합방 전후의 의병활동
          • 5) 독립군 운동을 위한 근거지 창설
            • (1) 동만·남만의 한인사회
            • (2) 신민회의 근거지 창설
        • 5. 의병전쟁의 특징과 의의
          • 1) ‘전쟁’이라 하는 이유
          • 2) 의병전쟁사의 시기구분 문제
          • 3) 이념상의 특징
          • 4) 조직상의 특징
          • 5) 활동상의 특징
          • 6) 의병전쟁의 의의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러·일 개전기 대한제국의 전시국외중립 선언

(1) 전시국외중립 외교

1900년 7월 의화단사건의 재발을 계기로 러시아는 16만 대군으로 만주를 재점령하였으나 점차 파병 명분이 퇴색되고 국제적인 여론도 불리하여 마침내 청과 ‘滿洲撤兵條約’을 체결하였다(1902. 4. 8).0070) 그러나 러시아가 이 조약에 따라 1차 철병(1902. 10. 8)을 단행한 다음 돌연 2차철병(1903. 4. 8 예정)을 이행하지 않음은 물론 오히려 압록강 연안에서의 활동을 활발히 함으로써 그들의 동아시아 정책이 더욱 적극적이고 돌발적인 성격을 띠어 갔다. 그들은 이미 1903년 3월경부터 森林會社의 보호라는 구실 아래 군대를 파견하여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거쳐 한국의 항의를 무시하고 용암포에 주둔시키더니(4. 21∼), 이어 砲臺를 구축하고 電線을 가설하고 7월 20일에는 한국을 협박, 租借地 25만 평을 획득하는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러한 러시아의 동향에 대하여 일본의 대응은 신속하였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활동에 대항하여 용암포의 對岸에 해당하는 의주를 開市할 것과 용암포와 함께 의주를 각국 거류지로 해야할 것을 요구하고,0071) 러시아에 대해서는 1903년 8월 12일 協商基礎案을 제출하였는데 이 안에 의하면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 만주에 있어서의 러시아의 우세 또는 특수 이익을 제안하고 있다.0072)

이 협상기초안을 접수한 러시아 정부는 10월 3일에 주일 공사 로젠(B. R. Rosen)을 통하여 그 代案을 제출하였다. 러시아측 대안은 한국을 일본의, 만주를 러시아의 각자 세력범위로 하면서도 북위 39°선 이북의 한국영토를 중립지대화하자는 새로운 제안을 추가한 것이다.0073)

일본은 러시아의 중립지대 설정 제안을 일본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10월 14일의 수정안 제출에 이어 10월 30일 다시 확정수정안을 주일 러시아공사 로젠에게 제출하였다. 이 확정수정안에 의하면 한국에 관한 제안은 8월 12일자 원안 거의 그대로이며 다만 만·한 경계에서 그 양측에 폭 50km의 중립지대를 설정하여 비무장화한 다음, 러·일이 각자 청·한과 이미 체결한 조약에 따라 그 안에서의 상업상 이익 및 거주권을 상호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일본은 만주에 있어서의 러시아의 특수이익과 필요조치를 승인함으로써 만주는 일본의 특수 이익에서 제외되고 그 대신 한국은 러시아의 특수이익에서 제외된다고 하였다.0074)

이와 같이 러·일 양국은 만주와 한국을 둘러싸고 이권의 내용과 관할지역의 범위설정에 있어서 한치의 양보도 없이 갈수록 더욱 팽팽한 줄다리기를 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에 戰雲이 감돌게 하였다.

평시에 있어서 영세중립 등 항구적인 중립화가 곤란하였고 더구나 러·일 개전 임박이라는 다급한 상황에서 군비충실책의 조급한 실현마저 불가능하게 되자 대한제국은 남겨둔 최후의 수단으로써 ‘戰時局外中立案’을 채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러·일협상을 전후하여 러일전쟁의 풍설이 점차 유포되어 가자 고종은 만주문제가 발단이 되어 러·일이 개전한다면 한국영토는 반드시 戰場化하여 러·일 兩軍으로부터 유린될 것이므로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러·일 양국에게 한국의 중립을 보장하도록 요청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의도에서 1903년 8월 18일자로 주일·주러 양 공사에게 내린 외부대신 李道宰 명의의 훈령에는 러일전쟁의 경우 한국의 중립을 파괴하지 않고 영토를 유린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각국 정부로부터 속히 얻어내도록 盡力하라는 명령으로 되어있다.0075)

이에 따라 한국은 국외중립의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주한일본공사 하야시가 자국의 고무라 외상에게 연속적으로 보고한 내용을 보면, 1903년 8월 18일자 보고에는 한국 황제가 宮內官으로서 프랑스어에 능통한 玄尙健을 密旨를 휴대시켜 프랑스에 파견하였으며, 그 밀지의 내용은 러·일 관계가 파경에 이르면 프랑스에게 한국의 보호를 의뢰하겠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0076) 19일자 보고에는 현상건의 사명이 프랑스에서 현지 한국공사와 합류한 후 네덜란드로 동행, 만국평화회의 회원과 회견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회견 안건은 ‘러·일 개전의 경우에 한국이 자주독립과 중립유지가 어려워 러·일 양국군에게 국내를 유린당한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그 대책을 미리 강구한다’는 것이고, 그 밖에 주프랑스한국공사 자신도 밀지를 휴대하고 있다고 하였다.0077)

8월 21일자에는 역시 현상건에 대한 정보보고인바, 현상건이 사명을 띠고 러시아 汽船 편으로 旅順으로 향발, 다시 시베리아 철도로 러시아 수도에 도착할 예정인데 그 사명은 19일자 정보보고와 동일하며 특히 베베르(K. I. Waeber)에게 전달할 고종의 밀서를 휴대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태도를 정탐하라는 것도 명령되어 있다고 하며, 이러한 모든 것은 玄暎運의 渡日목적과 같다고 덧 붙였다.0078)

한국은 일본에 대해서도 똑 같은 노력을 기울였던바, 8월에 접어 들어 우선 황실의 신임을 받고 있던 鐵道院會計課長 현영운 부부를 일본에 파견하여 이토·고노에 등과 접촉, 외부대신 명의의 밀서를 전달하게 하고 그들을 통하여 歐亞情勢의 추이와 일본의 입장을 탐지하도록하는 한편,0079) 8월 25일에는 禮式院參書官 高義誠을 파견하여 주일공사로 하여금 중립실현을 위한 교섭을 개시하도록 명령하였다.0080)

정부의 훈령에 따라 주일공사 高永喜는 9월 3일 한국중립문제에 관하여 일본 정부의 보장을 요구하는 공문을 고무라 외상에게 수교하였는데,0081) 그는 “이는 중대한 안건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숙고한 후에 회답하겠다”고 얼버무리다가0082) 드디어 9월 26일 “帝國政府는 그 傳來의 政綱을 따라 평화유지와 修睦增進에 진력하는 外에 餘念이 없으므로 지금 兵戌이나 중립을 말하는 것은 不吉하며 또 시기에 不適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는 내용의 회답을 고영희 공사에게 보내왔다.

러시아 정부도 역시 한국 정부의 전시중립보장 요청을 완전히 무시하였다. 주러한국공사 李範晋은 10월 21일 러시아 외무차관 오보렌스키(Obolensky)를 방문하여 한국중립 문제를 최종적으로 논의하였던바 오보렌스키가 러·일간의 전쟁 가능성을 완강히 부인함에 따라 회담은 아무런 결론을 얻지 못하였고,0083) 金仁洙로 하여금 旅順의 極東總督 알렉세에프(E. I. Alekseev)에게 宮內大臣 명의의 밀서를 전달토록 한 것도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전시국외중립을 보장받기 위한 한국 정부의 외교적 시도는 끝내 러·일 양국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지만, 11월 23일 한국 정부는 “장차 러일전쟁이 발발하면 본국은 국외중립을 선언하겠다”고 표명하였고,0084) 이에 대한 보장을 요청하는 고종의 친서가 1904년 1월 16일 이전에 이탈리아 국왕에게 전달되었음이 (이탈리아 외상의 제보로) 駐伊 일본공사 大山綱介에 의해 확인되었다.0085) 이것이 국외중립보장을 사전에 요청한 한국 정부의 마지막 외교활동이었다.

고종을 중심으로 한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전시국외중립 외교가 거의 무위로 끝날 즈음에 영국 주재 한국공사관에서 국외중립을 시도한 사례가 있어 주목된다. 주영한국서리공사 李漢應0086)은 1904년 1월 13일·19일 두 차례에 걸쳐 영국 외무성을 방문, 한반도 정세에 관한 長文의 메모와 각서를 수교하였다.0087)

특히 각서에는 “한국의 독립과 주권·영토 및 특권 보존을 위한 새로운 보장을 해 줄 것을 요망한다”라고 大綱을 전제한 다음, 새로운 보장을 포함한 구체적인 요청사항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첫째, 영·일동맹에 의거하여 한국의 독립·주권 및 영토보존을 보장할 것, 둘째, 어떠한 침략적인 국가가 어떠한 수단으로든지 한국 정부를 지배하려는 기도를 할 경우 이를 방지할 것, 셋째, 어떠한 침략적인 국가가 한국 내에 있는 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할 만한 소요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에도 불구하고 韓國內地로 군대를 파병하는 행위를 금지할 것, 넷째, 만약 한국 내에 소요나 폭동 사태가 발생하면 한국 정부가 먼저 그 주권행사에 의거하여 질서를 회복하는 의무를 다할 것, 다섯째, 러일전쟁이 발발할 경우 영국 정부는 어느 쪽이 승리하든 전쟁의 결과에 관계 없이 열강과의 양해를 통하여 한국의 독립·주권 및 영토보존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일 것 등이었다.0088) 이와 같이 이 각서 내용은 정부의 공식입장과 거의 같은 전시국외중립안이었다.

이에 대한 영국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영국은 1902년의 영·일동맹에 따라 이미 한반도에 있어서의 일본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였으며, 그 결과 한반도에 관한 중요한 결정은 일본에게 미루어 왔다. 이것은 영국이 한반도 문제를 두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0070)이 조약에 의하면 “본 협약 조인 후 6개월 간에 盛京省 西南部 遼河에 이르는 지방의 러시아 군대를 철수하고 또 철도를 淸에 반환할 것, 다음 6개월 간에 盛京省 殘部 및 吉林省에 있어서의 러시아 군대를 철수할 것, 또 다음 6개월 간에 黑龍江 所在의 러시아 군대를 철수할 것”으로 되어 있다(≪日本外交文書≫35, № 78∼81, 96, 99∼100, 203∼233쪽).
0071)≪日本外交文書≫36-1, № 410, 458쪽.
0072)≪日本外交文書≫36-1, № 9∼12, 11∼14쪽.

沼田市郞,≪日露外交史≫(大阪:屋號書店, 1943), 161∼162쪽.
0073)≪日本外交文書≫36-1, № 25, 22∼23쪽.

沼田市郞, 위의 책, 162∼163쪽.
0074)≪日本外交文書≫36-1, № 28∼31, 25∼28쪽.

沼田市郞, 위의 책, 163∼164쪽.
0075)≪日本外交文書≫36-1, № 695 附屬書, 720∼723쪽.
0076)≪日本外交文書≫36-1, № 690, 718쪽.
0077)≪日本外交文書≫36-1, № 691, 718쪽.
0078)≪日本外交文書≫36-1, № 692, 719쪽.
0079)市川正明 編,≪日韓外交史料≫9(東京:原書房, 1981), 256∼259쪽.
0080)≪日本外交文書≫36-1, № 694, 720쪽.

중립보장 요청을 위하여 주러·주일 양공사에게 내린 훈령은 고종의 비밀 명령으로 總稅務司에서 기초되었다는 사실이 주한 영국 공사를 통하여 주한 일본공사 하야시에게 탐지되었다(같은 문서 694의 附記, 695 및 附屬書).
0081)≪日本外交文書≫36-1, № 697, 723쪽.
0082)≪日本外交文書≫36-1, № 698, 723∼724쪽.
0083)≪日本外交文書≫36-1, № 702, 726쪽.
0084)≪高宗實錄≫, 1903년 11월 23일.
0085)≪日本外交文書≫37-1, № 331, 310쪽, № 359, 324쪽.

梶村秀樹, 앞의 글, 344쪽.
0086)李漢應(1874∼1905)은 官立英語學校를 졸업한 후 成均館進士·漢城府主事·관립영어학교 교관 등을 거쳐 1901년 3월에 駐箚英義兩國公使館 3등 參書官으로 런던에 부임하였다. 1904년에는 서리공사로서 동년 8월에 체결된 ‘제1차 한·일 협약’의 내용이 외교고문·재정고문 등의 초빙협정으로 되어 있는 데에 반발, 각국 주재 한국공사들에게 공동 대책의 강구를 호소하였고, 1905년에는 영·일 동맹의 갱신 움직임에 반발하여 영국정부에 항의하였다. 그러나 대세가 이미 기울어져 국권의 상실이 불가피함을 예견하고서는 유서를 남기고 동년 5월 12일 현지에서 음독 자결하였다(孫世昌 編,≪殉國烈士李漢應先生遺史≫, 文藝弘報社, 1959, 27∼42쪽).
0087)Yi Haneung to Foreign Office, 1904. 1. 13, 1904. 1. 9, F.O. 17/1662.

具汏列,<李漢應과 韓·英관계-그의 韓半島中立化案을 中心으로->(≪省谷論叢≫16, 省谷學術文化財團, 1985), 511쪽.
0088)具汏列, 위의 글, 511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