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3권 국권회복운동Ⅱ. 범국민적 구국운동5. 의사·열사의 항쟁1)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1. 한반도 중립화 운동
          • 1) 한반도 중립화론의 대두
            • (1) 임오군란 후 일본에서의 한반도 중립화론
            • (2) 거문도사건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 (3) 청일전쟁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 2) 대한제국의 영세중립화 시도
          • 3) 러·일 개전기 대한제국의 전시국외중립 선언
            • (1) 전시국외중립 외교
            • (2) 전시국외중립 선언
        • 2.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한국의 일본보호국화 과정
          • 2) 정부 주도의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반침략 자주 외교의 전개
            • (2) 을사조약 무효화 외교
          • 3) 민간인의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대영·대미 보호국화 저지 외교
            • (2) 대일 보호국화 저지 외교
        • 3. 특사의 헤이그 평화회의 파견
          • 1)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
          • 2) 고종의 3특사
          • 3) 특사의 장외 언론활동
          • 4) 특사 파견의 파문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1. 유생의 상소 투쟁
          • 1) 을사조약 체결 이전의 상소운동
          • 2) 을사조약 반대 상소운동
        • 2. 시민의 투쟁
          • 1) 지방세제의 시행과 시장세 징수
          • 2) 순천·용천 양시의 시장세 반대운동
          • 3) 시장세 반대운동의 전국적 확산
        • 3. 황무지개척권 반대운동
          • 1)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배경
          • 2) 황무지개척권의 요구
          • 3) 한국민의 반대운동
            • (1) 언론·상소 투쟁
            • (2) 농광회사의 설립
            • (3) 보안회의 투쟁
          • 4)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철회
        • 4. 국채보상운동
          • 1)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 (1) 일본의 차관공세
            • (2)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 2) 국채보상운동의 전개
            • (1) 국채보상운동의 확산
            • (2) 여성의 국채보상운동 참여
          • 3) 국채보상운동의 좌절
        • 5. 의사·열사의 항쟁
          • 1)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1) 스티븐스의 친일 외교활동
            • (2)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3) 장인환·전명운 의거의 영향과 의의
          • 2)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 (1) 이토 히로부미 사살 배경
            • (2) 이토 히로부미의 사살과 그 역사적 의의
          • 3) 이재명의 이완용 척살 미수
      • Ⅲ. 애국계몽운동
        • 1. 애국계몽단체
          • 1) 초기의 계몽단체들
            • (1) 보안회
            • (2) 공진회
            • (3) 국민교육회
            • (4) 헌정연구회
          • 2) 대한자강회
            • (1) 대한자강회의 설립과 조직
            • (2) 대한자강회의 계몽사상
            • (3) 대한자강회의 자강독립운동
          • 3) 신민회
            • (1) 신민회의 창건과 목적
            • (2) 신민회의 국권회복운동
          • 4) 대한협회, 기타 학회들
            • (1) 대한협회
            • (2) 계몽학회들
          • 5) 애국계몽단체 활동의 역사적 의의와 그 한계
        • 2. 애국계몽사상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과 형성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
            • (2) 애국계몽사상의 형성
          • 2) 국권회복의 논리
            • (1) 자강독립론
            • (2) 실력양성론과 독립전쟁론
          • 3) 국민국가건설의 논리
            • (1) 국민국가론
            • (2) 입헌군주정체론과 공화정체론
        • 3. 애국계몽운동의 전개
          • 1) 민중계몽운동
            • (1) 신문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
            • (2) 회지·잡지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
            • (3) 강연회·토론회를 통한 민중계몽운동
          • 2) 교육구국운동
            • (1) 근대학교 설립운동
            • (2) 교과서 편찬운동
            • (3) 의무교육 실시운동
            • (4) 실업·상무교육 실시운동
          • 3) 경제구국운동
            • (1) 황무지개간권 반대운동
            • (2) 국채보상운동
            • (3) 부동산침탈 반대운동
            • (4) 민족경제 건설운동
          • 4) 정치구국운동
            • (1) 을사조약 반대운동
            • (2) 고종양위 반대운동
            • (3) 한일합방 반대운동
          • 5) 민족문화운동
            • (1) 국어국문 진흥운동
            • (2) 국사교육 강화운동
            • (3) 민족적 종교운동
          • 6) 독립군기지 건설운동
            • (1) 독립전쟁론의 대두
            • (2) 독립군기지 건설준비
            • (3) 독립운동기지의 건설
        • 4. 105인사건
          • 1) 사건조작 배경
          • 2) 사건조작 경위와 사건 개요
          • 3) 재판 경위와 사건의 허구성
          • 4) 사건 연루자의 수난과 사회경제적 성향
      • Ⅳ. 항일의병전쟁
        • 1. 갑오·을미의병
          • 1) 갑오·을미의병의 배경
          • 2) 갑오의병의 전개
          • 3) 을미의병의 전개
            • (1) 을미사변과 을미의병의 개시
            • (2) 단발령 공포와 을미의병의 확대
          • 4) 갑오·을미의병의 사회적 기반과 성격
        • 2. 을사의병
          • 1) 을사의병의 재기
          • 2) 전국 의병의 활동
            • (1) 경기·강원도
            • (2) 영남지방
            • (3) 호서지방
            • (4) 호남지방
            • (5) 양서지방
          • 3) 을사의병의 의의
        • 3. 정미의병
          • 1) 군대해산
            • (1) 정미7조약
            • (2) 서울 시위대의 해산
            • (3) 남대문 전투
            • (4) 지방진위대의 항전
          • 2) 중부지역의 의병전황
            • (1) 중부지역의 의병전환
            • (2) 남부·북부지역으로의 확전
            • (3) 의병장들의 의병활동
          • 3) 이강년의 의병활동
            • (1) 이강년의 활동
            • (2) 무기와 전술
            • (3) 의병의 조직과 군율
        • 4. 의병전쟁의 발전
          • 1) 서울진공작전의 실패와 근거지문제
            • (1) 13도 의병부대의 서울진공작전
            • (2) 유인석의 지구전론과 근거지 문제
            • (3) 근거지 구상에 나타난 유인석 사상
            • (4) 서울 진공 실패 후의 분산활동
          • 2) 의병전쟁의 새로운 앙양과 평민 의병장들
            • (1) 스티븐스의 저격과 의병전쟁
            • (2) 평민 의병장들의 활동
            • (3) 한국합방안의 결정과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
          • 3) 호남지방의 의병전쟁과 남한대토벌작전
            • (1) 호남지방의 의병전쟁
            • (2) 일본군의 남한대토벌작전
          • 4) 합방 전후의 의병활동
          • 5) 독립군 운동을 위한 근거지 창설
            • (1) 동만·남만의 한인사회
            • (2) 신민회의 근거지 창설
        • 5. 의병전쟁의 특징과 의의
          • 1) ‘전쟁’이라 하는 이유
          • 2) 의병전쟁사의 시기구분 문제
          • 3) 이념상의 특징
          • 4) 조직상의 특징
          • 5) 활동상의 특징
          • 6) 의병전쟁의 의의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5. 의사·열사의 항쟁

1)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1) 스티븐스의 친일 외교활동

1908년 3월 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 정부의 外交顧問인 미국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가 張仁煥과 田明雲에 의해 射殺되었다. 일제의 한국침략에 앞장서 왔던 스티븐스는 당시 일본특사로 미국을 방문중이었다. 1905년에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일본의 ‘보호국’이 된 한국의 입장에서 이 사건은 이후 항일민족운동의 전개과정에서 ‘義烈鬪爭’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0432)

스티븐스는 변호사 출신으로 1873년 8월에 주일미국공사관 서기관이 되어 일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1878년 10월부터 1879년 5월까지 빙햄(John A. Bingham) 주일공사가 휴가차 귀국했을 때, 스티븐스는 대리공사로 근무하면서 일본 관리로부터 유능한 외교관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일본이 외국과 맺은 불평등한 조약들을 개정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1882년 10월 일본 정부의 고빙제의를 수락하여 주일미국공사관을 사임하고, 11월 1일 일본 외무성 관리로 고빙되었다. 이후 스티븐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앞장서 대변하며 대미외교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스티븐스는 1884년 甲申政變의 수습과정에서 일본측에 외교적인 조언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과의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1885년 1월 3일 일본의 特派全權大使 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는 스티븐스를 대동하고 일본군 2개 대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서울에 들어왔다. 스티븐스는 이노우에에게 갑신정변 때 군대를 동원한 일 등에 대해 사과하지 말도록 했다. 또 한국인은 겁이 많아서 군사적인 위협만 가하면 손쉽게 어떠한 요구 조건도 받아낼 수 있다고 했다. 이노우에는 스티븐스의 건의를 받아들여 조선 정부에 대해 사죄를 요구하고 배상금 15만원 지불을 강요하는 이른바 ‘漢城條約’을 체결하였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에서 러시아세력을 완전히 구축하고, 한국을 지배한다는 對韓政策을 추진하면서 스티븐스의 외교적 수완이 필요하게 되었다. 1900년 4월 1일에 외무성은 스티븐스와 雇續契約을 맺어, 월봉 700원에 1905년 3월 31일까지 雇續하기로 하였다. 그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외교 일선에서 일본의 한반도 침략 계획을 추진, 침략자의 앞잡이 노릇을 충실히 수행했다.0433)

일본은 러일교섭이 진행중이던 1903년 10월부터 비밀리에 주한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가 매수공작금을 투입하면서 친일파 李址鎔·李根澤 등을 조종하여 韓日議定書 체결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영일동맹의 체결과 미국의 지지를 배경으로, 일본 각의는 1903년 12월 30일에 여하한 경우에도 실력으로 한국을 일본의 지배하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무단적인 ‘對韓方針’을 결의하고 착수시기만을 노렸다.

일본은 1904년 2월에 러일전쟁을 도발하고 1월에 체결하려다 실패한 한일의정서 체결을 강요하였다. 일본은 2월 23일 한일의정서를 체결케 하였다. 러시아와의 전쟁상황이 일본에 유리하게 전개되자, 일본은 한일의정서에 규정된 ‘內政改善’을 구실삼아 이른바 韓日協約, 즉<韓日外國人顧問 傭聘에 관한 協定書>를 강제로 체결케 하였다. 그 협정서의 내용은 일본 정부가 추천하는 일본인 1명을 행정고문으로, 외국인 1명을 외교교문으로 하여 재무와 외교의 주요 사안에 대해 그의 의견을 따르도록 한 것이다.

일본은 이 협정에 의하여 大藏省 主稅局長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를 재정고문에, 스티븐스를 외교고문에 각각 취임시켰다. 일본은 이들을 통해 외교와 재정을 감독·정리한다는 이름 아래 한국의 외교권과 재정권을 침식해갔다. 일본은 이러한 임무를 충분히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을 傭聘契約書에서 부여하였다.0434)

외교고문의 임무는 세 가지로 규정하였다. 첫째, 한국 정부가 타국 정부 혹은 타국 인민과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외교상 및 기타 안건에 관하여 심의·입안할 책임을 가진다. 둘째, 한국의 외교에 관한 일체의 왕복문서 및 모든 안건은 사전에 반드시 외교고문의 동의를 구하고 또한 의정회의에 참여하여 외교에 관한 제의를 할 수 있다. 셋째, 외교에 관하여 한국 황제를 알현하여 외교상 의견을 올릴 수 있다.0435)

특히 고문의 권한은, 한국 정부가 자의로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는 부수조건을 조약문에 명시하였다. 이 용빙계약에 의하여 한국의 주권은 한일의정서보다 더욱 가중한 제약을 받게 되었다. 일본은 두 고문의 용빙을 전후하여 한국 정부의 각 부에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고문을 두게 하여 이른바 ‘고문정치체제’를 확립시켜 나갔다. 일본이 스티븐스를 한국 정부의 외교고문으로 선임한 것은 스티븐스가 20여 년간 일본에 고용되어 충성을 바친 인물이므로, 그들의 침략정책을 수행하는데 알맞은 인물이었으며, 친일정책을 고수하던 미국 루즈벨트의 對韓정책과도 합치되었다. 또한 한국의 親美감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외상 고무라 쥬타로(小村壽太郞)는 워싱턴에서 친일외교 행각을 벌이던 스티븐스에게 한국 정부의 외교고문을 맡을 것을 요청했다. 이를 수락한 스티븐스는 10월 14일에 동경에 도착하여 일본 정부로부터 勳1等 瑞寶章을 수여받았다. 일본외무성은 한국 정부와의 사전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스티븐스 傭聘契約草案을 작성하면서, 그를 한국 외교고문으로 추천하는 이유를, “제국 정부는 20년간 계속 제국을 위해 진력을 다한 귀하의 재능과 충실함을 십분 신용하고 있으며, …”라고 설명하였다.0436)

일본은 스티븐스를 주한일본공사 하야시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외교첩자로 만들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외무성이 작성한 계약안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스티븐스의 月俸을 1,000원으로 하고 한국 정부가 800원을 지급하게 하였다. 스티븐스는, 일본 정부가 작성한 용빙계약안을 가지고 12월 11일에 서울에 도착, 24일에 고종을 알현하고 27일에 외부대신 李夏榮과 정식으로 외교고문 용빙계약을 체결하였다.

1904년 한국 정부의 외부고문으로 선임된 스티븐스는 한국 외부의 모든 왕복외교문서를 열람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어 있었다. 이것은 스티븐스가 한국 외부대신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스티븐스는 의정부회의에 참석할 수 있고 언제든지 고종황제를 알현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결국 스티븐스가 한국정치의 최고 감독자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와 같은 스티븐스의 권위에 대해 헐버트(H. B. Hulbert)는 “한국의 대외관계는 스티븐스에 의해 전적으로 일본의 이익을 위해 요리되고 있다”고 개탄하였다.0437)

한국 정부는 스티븐스를 고빙하면서 그에게 큰 기대와 희망을 걸었다. 특히 고종은 스티븐스를 만날 때마다, 朝美條約의 거중조정 공약을 들어 미국이 한국을 구제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오히려 한국의 미국에 대한 신임을 이용하여, 한국 정부가 거중조정에 바탕을 두고 서울 주재 구미열강의 외교대표들에게 벌이고 있는 구원호소 비밀계획을 사전에 봉쇄하는데 주력했다. 고종이 미국·러시아·프랑스에 밀서를 전달하려는 시도도 일본 첩자와 스티븐스의 친일 외교활동으로 좌절되었다. 이와 같은 스티븐스의 친일행위는 在韓 미국 실업인들도 “스티븐스는 일본 관리 자신들보다도 더 친일적 행동을 자행하고 있다”고 혹평했을 정도였다.0438)

그는 한국 정부로부터 거액의 봉급을 받으면서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하지 않고 오히려 일본의 대한침략을 위해 친일외교를 감행했으며, 첩자비밀외교를 통해 일본의 보호국 수립계획을 적극 추진하였다. 1905년 강제적인 을사조약 이후 스티븐스는 한국 외부고문에서 통감부고문이 되었고, 1906년 의정부고문으로서 일제의 통감정치를 도왔다.

이후 일본은 만주에서 군사점령정책을 시행하면서 英·美 실업인의 활동을 제한하는 등 영·미 두 나라와 공약한 아시아 문호개방정책을 폐기하였다. 이로 인해 양국으로부터 엄중한 외교적 항의를 받았다. 미국에서는 일본인 배척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러한 반일감정을 무마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스티븐스를 미국에 파견하였다. 즉 스티븐스의 미국행 임무는 문호개방문제의 해명과 일본인 배척운동을 해결하고 또한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는 정당성을 미국에 널리 인식시키는 것이었다.

0432)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에 관해서는 다음의 연구가 참고된다.

李德周,<스티븐스 암살사건>(≪韓國基督敎史硏究≫11, 1986).

金源模,<서울에서의 스티븐즈의 親日外交活動>(≪鄕土서울≫46, 1988).

―――,<張仁煥의 스티븐즈 射殺事件 硏究>(≪東洋學≫18, 1988).

尹炳奭,<歐美에서의 義烈鬪爭-李相卨의 遺文과 李儁·張仁煥·田明雲의 義烈>(≪國外韓人社會와 民族運動≫, 一潮閣, 1990).

Andrew C. Nahm, “Durham White Stevens and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The United States and Korea(The Center For Korean Studies, Western Michigan University, 1979).
0433)金源模,<서울에서의 스티븐즈의 親日外交活動>, 67∼73쪽.
0434)尹炳奭,<을사5조약의 신고찰>(≪일본의 대한제국 강점≫, 까치, 1995), 27∼40쪽.
0435)≪日本外交文書≫37-1, 374∼376쪽.
0436)金源模,<서울에서의 스티븐즈의 親日外交活動>, 82∼84쪽.
0437)Hulbert, The Passing of Korea, p. 212.
0438)Lee Houchins and Chang-su Houchins, “The Korean Experience in America, 1903∼1924," Pacific Historical Review, 43(November, 1974), pp. 556∼558.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