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북한지역
함흥지방에서는 평강 출신의 崔文煥이 거의하여 1896년 2월 함흥부를 점령하고 참서관 睦裕信과 주사 皮相國·洪秉瓚을 처단하고 각지에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함흥의병은 특히 일본 상인의 경제적 수탈에 항거하여 일어난 특성을 지닌다. 함흥의병은 민용호의 관동창의군과 연합작전을 펴 9월 함흥을 재점령하기도 하였다. 해주에서는 포수들이 중심이 되어 거의하였다. 원래 이들은 동학군에 가담하여 李祖鉉이 이끄는 친위대에 의해 체포, 구금되어 있었다. 이들은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자 3월 20일 파옥하고 경무관 李敬善 등을 처단하고 관찰사 李鳴善을 감금한 후 거의하였다. 그러나 친위대의 반격으로 패산하였다.
의주에서는 유생 趙尙學이 압록강을 넘나들며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그외 문화군 의병들은 군청을 습격하여 군수 洪在駿을 구금하고, 장연군에서는 의병 11명이 체포되어 희생당하기도 하였다. 평산의 유생들은 의병봉기를 계획하다가 유인석이 의병장에 추대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兪致慶 등은 제천의병에 참여하였으며, 수안의 유생 宋尙奎도 의병을 계획하다가 제천의병에 참여하였다. 이처럼 북한지역의 의병항전은 반개화주의적이면서 근왕적인 특성을 갖고 있기는 하나 남한지역에 비해 해주의 포수군이나 함흥부에서와 같이 반침략성이 두드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