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3권 국권회복운동Ⅳ. 항일의병전쟁3. 정미의병2) 중부지역의 의병전황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1. 한반도 중립화 운동
          • 1) 한반도 중립화론의 대두
            • (1) 임오군란 후 일본에서의 한반도 중립화론
            • (2) 거문도사건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 (3) 청일전쟁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 2) 대한제국의 영세중립화 시도
          • 3) 러·일 개전기 대한제국의 전시국외중립 선언
            • (1) 전시국외중립 외교
            • (2) 전시국외중립 선언
        • 2.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한국의 일본보호국화 과정
          • 2) 정부 주도의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반침략 자주 외교의 전개
            • (2) 을사조약 무효화 외교
          • 3) 민간인의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대영·대미 보호국화 저지 외교
            • (2) 대일 보호국화 저지 외교
        • 3. 특사의 헤이그 평화회의 파견
          • 1)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
          • 2) 고종의 3특사
          • 3) 특사의 장외 언론활동
          • 4) 특사 파견의 파문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1. 유생의 상소 투쟁
          • 1) 을사조약 체결 이전의 상소운동
          • 2) 을사조약 반대 상소운동
        • 2. 시민의 투쟁
          • 1) 지방세제의 시행과 시장세 징수
          • 2) 순천·용천 양시의 시장세 반대운동
          • 3) 시장세 반대운동의 전국적 확산
        • 3. 황무지개척권 반대운동
          • 1)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배경
          • 2) 황무지개척권의 요구
          • 3) 한국민의 반대운동
            • (1) 언론·상소 투쟁
            • (2) 농광회사의 설립
            • (3) 보안회의 투쟁
          • 4)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철회
        • 4. 국채보상운동
          • 1)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 (1) 일본의 차관공세
            • (2)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 2) 국채보상운동의 전개
            • (1) 국채보상운동의 확산
            • (2) 여성의 국채보상운동 참여
          • 3) 국채보상운동의 좌절
        • 5. 의사·열사의 항쟁
          • 1)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1) 스티븐스의 친일 외교활동
            • (2)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3) 장인환·전명운 의거의 영향과 의의
          • 2)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 (1) 이토 히로부미 사살 배경
            • (2) 이토 히로부미의 사살과 그 역사적 의의
          • 3) 이재명의 이완용 척살 미수
      • Ⅲ. 애국계몽운동
        • 1. 애국계몽단체
          • 1) 초기의 계몽단체들
            • (1) 보안회
            • (2) 공진회
            • (3) 국민교육회
            • (4) 헌정연구회
          • 2) 대한자강회
            • (1) 대한자강회의 설립과 조직
            • (2) 대한자강회의 계몽사상
            • (3) 대한자강회의 자강독립운동
          • 3) 신민회
            • (1) 신민회의 창건과 목적
            • (2) 신민회의 국권회복운동
          • 4) 대한협회, 기타 학회들
            • (1) 대한협회
            • (2) 계몽학회들
          • 5) 애국계몽단체 활동의 역사적 의의와 그 한계
        • 2. 애국계몽사상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과 형성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
            • (2) 애국계몽사상의 형성
          • 2) 국권회복의 논리
            • (1) 자강독립론
            • (2) 실력양성론과 독립전쟁론
          • 3) 국민국가건설의 논리
            • (1) 국민국가론
            • (2) 입헌군주정체론과 공화정체론
        • 3. 애국계몽운동의 전개
          • 1) 민중계몽운동
            • (1) 신문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
            • (2) 회지·잡지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
            • (3) 강연회·토론회를 통한 민중계몽운동
          • 2) 교육구국운동
            • (1) 근대학교 설립운동
            • (2) 교과서 편찬운동
            • (3) 의무교육 실시운동
            • (4) 실업·상무교육 실시운동
          • 3) 경제구국운동
            • (1) 황무지개간권 반대운동
            • (2) 국채보상운동
            • (3) 부동산침탈 반대운동
            • (4) 민족경제 건설운동
          • 4) 정치구국운동
            • (1) 을사조약 반대운동
            • (2) 고종양위 반대운동
            • (3) 한일합방 반대운동
          • 5) 민족문화운동
            • (1) 국어국문 진흥운동
            • (2) 국사교육 강화운동
            • (3) 민족적 종교운동
          • 6) 독립군기지 건설운동
            • (1) 독립전쟁론의 대두
            • (2) 독립군기지 건설준비
            • (3) 독립운동기지의 건설
        • 4. 105인사건
          • 1) 사건조작 배경
          • 2) 사건조작 경위와 사건 개요
          • 3) 재판 경위와 사건의 허구성
          • 4) 사건 연루자의 수난과 사회경제적 성향
      • Ⅳ. 항일의병전쟁
        • 1. 갑오·을미의병
          • 1) 갑오·을미의병의 배경
          • 2) 갑오의병의 전개
          • 3) 을미의병의 전개
            • (1) 을미사변과 을미의병의 개시
            • (2) 단발령 공포와 을미의병의 확대
          • 4) 갑오·을미의병의 사회적 기반과 성격
        • 2. 을사의병
          • 1) 을사의병의 재기
          • 2) 전국 의병의 활동
            • (1) 경기·강원도
            • (2) 영남지방
            • (3) 호서지방
            • (4) 호남지방
            • (5) 양서지방
          • 3) 을사의병의 의의
        • 3. 정미의병
          • 1) 군대해산
            • (1) 정미7조약
            • (2) 서울 시위대의 해산
            • (3) 남대문 전투
            • (4) 지방진위대의 항전
          • 2) 중부지역의 의병전황
            • (1) 중부지역의 의병전환
            • (2) 남부·북부지역으로의 확전
            • (3) 의병장들의 의병활동
          • 3) 이강년의 의병활동
            • (1) 이강년의 활동
            • (2) 무기와 전술
            • (3) 의병의 조직과 군율
        • 4. 의병전쟁의 발전
          • 1) 서울진공작전의 실패와 근거지문제
            • (1) 13도 의병부대의 서울진공작전
            • (2) 유인석의 지구전론과 근거지 문제
            • (3) 근거지 구상에 나타난 유인석 사상
            • (4) 서울 진공 실패 후의 분산활동
          • 2) 의병전쟁의 새로운 앙양과 평민 의병장들
            • (1) 스티븐스의 저격과 의병전쟁
            • (2) 평민 의병장들의 활동
            • (3) 한국합방안의 결정과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
          • 3) 호남지방의 의병전쟁과 남한대토벌작전
            • (1) 호남지방의 의병전쟁
            • (2) 일본군의 남한대토벌작전
          • 4) 합방 전후의 의병활동
          • 5) 독립군 운동을 위한 근거지 창설
            • (1) 동만·남만의 한인사회
            • (2) 신민회의 근거지 창설
        • 5. 의병전쟁의 특징과 의의
          • 1) ‘전쟁’이라 하는 이유
          • 2) 의병전쟁사의 시기구분 문제
          • 3) 이념상의 특징
          • 4) 조직상의 특징
          • 5) 활동상의 특징
          • 6) 의병전쟁의 의의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남부·북부지역으로의 확전

이상에서 보았듯이 정미의병은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먼저 일어났고 이어 남부와 북부지방으로 확대하여 갔다. 즉 1907년 8월 중부 일대를 휩쓴 의병항쟁은 강력한 지방진위대 병사를 주축으로 전개되었다. 화승총과 창검으로 무장한 농민들도 전열을 가다듬었다. 일제는 가혹한 무력탄압으로 이에 응수하기 시작했다. 폭도진압을 빙자하여 일본군은 유례없는 초토화작전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의병들은 월등히 우수한 일본군을 맞이하여 과감한 기습 포위작전으로 일본군의 진출을 저지하였다. 9월에 들어서자 항쟁은 남한 일대를 휩쓸기 시작하였다. 마을마다 격문이 나붙고 왕년의 용장들이 다투어 일어났다. 마침내 항쟁의 불씨는 북부지방으로도 번져갔다.

일제는 항쟁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의병을 폭도시하였다. 그들의 소위≪暴徒編冊≫제30호<暴徒의 梗槪>를 그대로 옮겨 초기 의병항쟁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07년 8월 1일 서울 종로에 시위대 병사들의 망동이 일어나자 강원도 원주진위대가 해산 명령에 불복하여 폭발하였다. 그들은 양민을 해치고 관헌을 습격하였다. (일본군) 토벌대에 潰亂당하자 그들은 四散하여 각지에 잠복하고 불량배와 결탁하여 각지를 횡행하고 민심을 선동함으로써 강원도 지방폭도의 선구가 되었다. 그들의 일부는 다시 충청북도로 들어가 그곳 흉포의 徒를 모아 500명으로 충주성을 습격하였다. 그러나 원래 그들은 오합지중이므로 한번 토벌대와 충돌하면 곧 분쇄 사산하여 감히 완고한 저항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一類는 각도에 침입하였고 동서가 이에 호응 창궐을 極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강화도 한국군 병사의 일부는 황해도에 들어가 북방의병의 선구가 되었다. 7월 중순의 경성 탈영병 폭행 이래 수개월 동안에 그들 一類는 이미 경성·강원도·충청남북도·경상남북도·황해도 각지에 瀰蔓하게 되었다.

1907년 12월에 이르러 경북의 폭도는 점차 남하하여 전라남북도에 미치고 또 그 일부는 경상남도에 출몰하였다. 황해·강원도의 폭도는 점차 북상하여 평안남도 동부와 함경남도 남부에 이르렀다. 더욱이 11월 하순 함경남도 북부 북청지방의 포수와 지방무뢰의 도당이 일진회원의 전횡에 분개하고 총기 압수에 불복하여-일본 병사, 순사를 습격살해-작년(1907년) 3, 4월에는 그 여파가 마침내 평안북도 일부 순창·희천군 지방에까지 미쳤다. 또 최근에는 함경북도의 종성·무산군 지방에도 봉기하기 시작하였다(≪暴徒編冊≫30, 暴徒의 便槪).

이처럼 1907년 8월부터 확대 발전한 항쟁은 놀라운 속도로 전국을 휩쓸었다. 이것은 이미 이전의 의병항쟁의 단순한 연속 또는 재발로만 볼 수 없었다. 당시의 농민들은 이 항쟁을 한일간의 ‘戰役’ 즉 전쟁으로 보았지 단순한 난리로 보지 않았다. 농민들만이 아니라 의병들 자신이 당당한 독립군으로 자처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이인영·허위·이강년·민긍호 등 여러 의병장의 부대 1만 명이 양주에 당도 서울 탈환을 꾀할 때 13도창의대장 이인영은 명백히 그들이 국제법상의 교전단체임을 천명하였다. 의병의 서울탈환 계획은 그 후에도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국권회복은 의병들의 궁극적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의병전쟁은 1908년 이후 1910년까지 3년간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1908년과 1909년의 의병전투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의<표 1>·<표 2>와 같다.1243)

도 별 전 투 횟 수 (%) 전 투 의 병 수 (%)
전 남

강 원

황 해

전 북

충 남

경 북

경 남

충 북

평 남

함 남

경 기

평 북

함 북
274

273

232

219

217

158

153

113

108

99

78

41

11
(13.9)

(13.8)

(11.7)

(11.1)

(11.0)

(7.9)

(7.7)

(5.7)

(5.5)

(5.0)

(4.0)

(2.1)

(0.6)
10,544

18,599

7,998

9,960

7,666

5,702

3,328

6,815

1,391

6,438

1,453

2,590

283
(12.7)

(22.5)

(9.7)

(12.0)

(9.2)

(6.9)

(4.0)

(8.0)

(1.7)

(7.8)

(1.8)

(3.1)

(0.3)
합 계 1,976 (100) 82,767 (100)

<표 1>1908년 각도 의병의 전투상황

도 별 전 투 횟 수 (%) 전 투 의 병 수 (%)
전 남

전 북

경 기

경 북

충 남

강 원

황 해

충 북

경 남

평 남

평 북

함 남

함 북
547

273

165

161

138

124

111

66

61

61

17

14

(31.5)

(15.8)

(9.5)

(9.3)

(7.9)

(7.2)

(6.4)

(3.8)

(3.6)

(3.6)

(0.5)

(0.9)

17,579

5,576

3,453

3,667

1,003

2,468

2,148

832

934

540

123

270

(45.6)

(14.5)

(9.0)

(9.5)

(2.5)

(6.4)

(5.5)

(2.2)

(2.4)

(1.4)

(0.3)

(0.7)

합 계 1,738 (100) 38,593 (100)

<표 2>1909년 각도 의병의 전투상황

위의 통계는 일본 경찰이 낸 무성의한 숫자이지만, 이를 통해 대체의 추세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위의 통계로 미루어 제2차 의병전쟁은 주로 강원·경기 이남(전투횟수가 전체의 75.5%(1908) 내지 88.6%(1909)를 차지하고 있다)에서 전개되었고, 북한에서는 산발적으로 일어났던 것을 알 수 있다. 황해·평남북, 그리고 함남북의 의병은 1908년에 총전투횟수의 24.3%, 1909년에는 11.4%를 차지한 데 불과한 것이다.

1907년 8월 의병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은 전국의 민간이 소유한 총포 화기를 압수했다. 함흥관내에서는 압수된 신식 소총이 3,144정, 화승총이 1,939정으로 집계되어 있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총기를 압수당했다. 이 지방에는 호랑이를 잡는 포수가 가장 많았고 신식 소총 역시 가장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북한 포수들은 의병봉기에 시기를 놓친 것으로 추측된다.

위의 통계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제2차 의병전쟁의 중심지가 전남·강원·전북·황해·충남·경북·경남 등지였다는 것이다. 특히 강원도 의병은 1908년에 가장 강력했고, 1909년에는 전남 의병이 가장 강성하였다. 이 통계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특징은 1908년의 전투의병수가 1909년의 그것보다 2배 이상이나 많았는데, 전투횟수는 거의 비슷하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1년 사이에 1회의 전투당 평균 의병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즉 초기에 의병은 대부대가 행동을 같이 했는데, 뒤에는 소부대로 분산되어 활동한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의병이 이처럼 적은 병력으로 분산 활동한 이유는 일본군의 소위 攪拌작전 때문이었다고 추측된다. 교반작전이란 토벌군을 세분하여 한정된 국지에 포위하여 수색을 실행하고, 전후좌우로 몇 번이나 되풀이 왕래되거나 기병적 수단을 써서 의병을 현혹시키는 교란작전을 말한다. 이같은 일본군의 작전에 대응하여 의병들은 부대를 소조로 나누어 유격전을 벌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초기에 의병의 대부대가 지방의 중요 시읍을 공격, 점령하는 데 성공한 데 반하여, 후기에는 차차 산간벽지로 물러서서 일본군을 기습하는 작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의병전쟁이 장기전으로 돌입하자, 1909년 7월 극비리에 한국을 병합하기로 결정한 일제는 전쟁을 하루속히 종식시킬 필요를 느꼈다. 그 일환으로 그들은 그 해 9월 남한 대토벌작전을 개시한 것을 비롯하여, 이듬해 봄 황해도와 강원도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실시하였다. 특히 남한 대토벌작전은 전남 의병에 대한 대규모의 지리산 포위 수색작전으로 잔인무도한 살육작전으로도 유명하였다. 1909년 5월 목포 일본인 상업회의소가 통감부에 호소한 바에 다르면, 전남 각지의 의병으로 말미암아 “일본인은 10리 길도 안전하게 걸어갈 수 없으며, 험악의 도가 오히려 이전보다 배가되어 생명과 재산의 피해가 수백 건에 이르고, 교통은 두절되고, 농사와 상업이 위축되어 직간접의 피해가 막대하다”고 할 정도였다.

남한 대토벌은 전남 전체를 육로와 행상으로 완전포위하여 동남으로 ‘그물질하듯 빗질하듯’ 좁혀 들어가는 작전으로 일찍이 일본군이 대만 독립군을 진압하는데 사용했던 수법이었다. 일본군은 모두 한복으로 변장하였고, 모든 도민은 출입을 금지하여 위반자는 가차없이 살상하였다. 약 2개월간에 걸쳐 감행된 이 도살작전에서 沈南一 등 의병장이 사살당하고, 朴道京 등 의병장이 체포되어 처형되었으며, 이어 전개된 강원도와 황해도 대토벌로 전국의 의병부대가 섬멸당하였다. 그리고나서 일제는 1910년 8월 한일합방을 선언하였으니, 무력정복에 의한 병합이었다.

1243)필자가 이용한 일본측 통계는 첫째<폭도에 관한 제통계표>(1909년 경무국조사)이다.<표 1>에 보는 바와 같이 이 통계는 1908년 전후반기를 통틀어서 집계한 (엄격히 말하면 1907년 12월부터 1908년 12월 말까지의 13개월간) 도별 통계이다. 둘째는<표 2>에 보듯이 1909년 전반기(2월부터 6월까지의 5개월간)에 관한 도별 통계<暴徒事件彼我損害調査>로서 역시 경무국 고등계 조사이다. 그러므로 전자는 13개월간의 交戰數와 交戰義兵數이지만 후자는 단 5개월간의 숫자이다. 이 두 통계에 나온 숫자를 합하면 1907년 12월부터 1909년 6월까지의 약 1년 반 동안(1909년 1월 제외)에 의병이 일본경찰과 교전한 횟수는 무려 3,714회에 이르고 있으며 연인원 121,360명의 의병이 이에 참전하고 있다. 일본경찰의 통계가 일반적으로 사실을 과장하기보다 줄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숫자가 보여준 전쟁의 양상은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컸던 것을 알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