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3권 국권회복운동Ⅳ. 항일의병전쟁3. 정미의병3) 이강년의 의병활동(3) 의병의 조직과 군율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1. 한반도 중립화 운동
          • 1) 한반도 중립화론의 대두
            • (1) 임오군란 후 일본에서의 한반도 중립화론
            • (2) 거문도사건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 (3) 청일전쟁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 2) 대한제국의 영세중립화 시도
          • 3) 러·일 개전기 대한제국의 전시국외중립 선언
            • (1) 전시국외중립 외교
            • (2) 전시국외중립 선언
        • 2.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한국의 일본보호국화 과정
          • 2) 정부 주도의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반침략 자주 외교의 전개
            • (2) 을사조약 무효화 외교
          • 3) 민간인의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대영·대미 보호국화 저지 외교
            • (2) 대일 보호국화 저지 외교
        • 3. 특사의 헤이그 평화회의 파견
          • 1)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
          • 2) 고종의 3특사
          • 3) 특사의 장외 언론활동
          • 4) 특사 파견의 파문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1. 유생의 상소 투쟁
          • 1) 을사조약 체결 이전의 상소운동
          • 2) 을사조약 반대 상소운동
        • 2. 시민의 투쟁
          • 1) 지방세제의 시행과 시장세 징수
          • 2) 순천·용천 양시의 시장세 반대운동
          • 3) 시장세 반대운동의 전국적 확산
        • 3. 황무지개척권 반대운동
          • 1)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배경
          • 2) 황무지개척권의 요구
          • 3) 한국민의 반대운동
            • (1) 언론·상소 투쟁
            • (2) 농광회사의 설립
            • (3) 보안회의 투쟁
          • 4)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철회
        • 4. 국채보상운동
          • 1)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 (1) 일본의 차관공세
            • (2)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 2) 국채보상운동의 전개
            • (1) 국채보상운동의 확산
            • (2) 여성의 국채보상운동 참여
          • 3) 국채보상운동의 좌절
        • 5. 의사·열사의 항쟁
          • 1)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1) 스티븐스의 친일 외교활동
            • (2)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3) 장인환·전명운 의거의 영향과 의의
          • 2)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 (1) 이토 히로부미 사살 배경
            • (2) 이토 히로부미의 사살과 그 역사적 의의
          • 3) 이재명의 이완용 척살 미수
      • Ⅲ. 애국계몽운동
        • 1. 애국계몽단체
          • 1) 초기의 계몽단체들
            • (1) 보안회
            • (2) 공진회
            • (3) 국민교육회
            • (4) 헌정연구회
          • 2) 대한자강회
            • (1) 대한자강회의 설립과 조직
            • (2) 대한자강회의 계몽사상
            • (3) 대한자강회의 자강독립운동
          • 3) 신민회
            • (1) 신민회의 창건과 목적
            • (2) 신민회의 국권회복운동
          • 4) 대한협회, 기타 학회들
            • (1) 대한협회
            • (2) 계몽학회들
          • 5) 애국계몽단체 활동의 역사적 의의와 그 한계
        • 2. 애국계몽사상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과 형성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
            • (2) 애국계몽사상의 형성
          • 2) 국권회복의 논리
            • (1) 자강독립론
            • (2) 실력양성론과 독립전쟁론
          • 3) 국민국가건설의 논리
            • (1) 국민국가론
            • (2) 입헌군주정체론과 공화정체론
        • 3. 애국계몽운동의 전개
          • 1) 민중계몽운동
            • (1) 신문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
            • (2) 회지·잡지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
            • (3) 강연회·토론회를 통한 민중계몽운동
          • 2) 교육구국운동
            • (1) 근대학교 설립운동
            • (2) 교과서 편찬운동
            • (3) 의무교육 실시운동
            • (4) 실업·상무교육 실시운동
          • 3) 경제구국운동
            • (1) 황무지개간권 반대운동
            • (2) 국채보상운동
            • (3) 부동산침탈 반대운동
            • (4) 민족경제 건설운동
          • 4) 정치구국운동
            • (1) 을사조약 반대운동
            • (2) 고종양위 반대운동
            • (3) 한일합방 반대운동
          • 5) 민족문화운동
            • (1) 국어국문 진흥운동
            • (2) 국사교육 강화운동
            • (3) 민족적 종교운동
          • 6) 독립군기지 건설운동
            • (1) 독립전쟁론의 대두
            • (2) 독립군기지 건설준비
            • (3) 독립운동기지의 건설
        • 4. 105인사건
          • 1) 사건조작 배경
          • 2) 사건조작 경위와 사건 개요
          • 3) 재판 경위와 사건의 허구성
          • 4) 사건 연루자의 수난과 사회경제적 성향
      • Ⅳ. 항일의병전쟁
        • 1. 갑오·을미의병
          • 1) 갑오·을미의병의 배경
          • 2) 갑오의병의 전개
          • 3) 을미의병의 전개
            • (1) 을미사변과 을미의병의 개시
            • (2) 단발령 공포와 을미의병의 확대
          • 4) 갑오·을미의병의 사회적 기반과 성격
        • 2. 을사의병
          • 1) 을사의병의 재기
          • 2) 전국 의병의 활동
            • (1) 경기·강원도
            • (2) 영남지방
            • (3) 호서지방
            • (4) 호남지방
            • (5) 양서지방
          • 3) 을사의병의 의의
        • 3. 정미의병
          • 1) 군대해산
            • (1) 정미7조약
            • (2) 서울 시위대의 해산
            • (3) 남대문 전투
            • (4) 지방진위대의 항전
          • 2) 중부지역의 의병전황
            • (1) 중부지역의 의병전환
            • (2) 남부·북부지역으로의 확전
            • (3) 의병장들의 의병활동
          • 3) 이강년의 의병활동
            • (1) 이강년의 활동
            • (2) 무기와 전술
            • (3) 의병의 조직과 군율
        • 4. 의병전쟁의 발전
          • 1) 서울진공작전의 실패와 근거지문제
            • (1) 13도 의병부대의 서울진공작전
            • (2) 유인석의 지구전론과 근거지 문제
            • (3) 근거지 구상에 나타난 유인석 사상
            • (4) 서울 진공 실패 후의 분산활동
          • 2) 의병전쟁의 새로운 앙양과 평민 의병장들
            • (1) 스티븐스의 저격과 의병전쟁
            • (2) 평민 의병장들의 활동
            • (3) 한국합방안의 결정과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
          • 3) 호남지방의 의병전쟁과 남한대토벌작전
            • (1) 호남지방의 의병전쟁
            • (2) 일본군의 남한대토벌작전
          • 4) 합방 전후의 의병활동
          • 5) 독립군 운동을 위한 근거지 창설
            • (1) 동만·남만의 한인사회
            • (2) 신민회의 근거지 창설
        • 5. 의병전쟁의 특징과 의의
          • 1) ‘전쟁’이라 하는 이유
          • 2) 의병전쟁사의 시기구분 문제
          • 3) 이념상의 특징
          • 4) 조직상의 특징
          • 5) 활동상의 특징
          • 6) 의병전쟁의 의의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나. 작전과 민간의 지원조직

가) 속오작대

운강 이강년의 속오작대법은 의병부대의 기본편제를 거의 완벽하게 보여주는 실례로 주목된다.1248) 속오작대법에 따르면 먼저 병사 10명이 좌우 2열 종대로 서고 선두에 隊長 1명, 후미에 小兵 1명이 서는 것이 의병군 최하 단 위의 기본대형이다. 이것이 곧 隊이다.

각 대는 각각 셋으로 묶어 3개대 36명을 1旗로 하여 旗總 1명이 이를 통솔한다. 이 36명 단위의 旗는 다시 셋씩 묶어서 3기가 1哨로 편성되며 哨長 1명이 이를 통솔한다. 따라서 1초는 모두 108명이 되며 기총 3명과 초장 1명을 포함한 112명이 1초의 총원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병군의 하부 단위인 초는 3대 3기 즉 3. 3의 원칙으로 편성되는데, 그 위의 상부 단위는 5. 5의 원칙에 따라 조직된다. 즉 5哨 5營의 원칙에 따르는 것인데, 초는 中哨와 左右哨 그리고 전후의 5초이며 이들 5초를 1營으로 묶어 營司 1명이 이를 지도하되 營 역시 중영과 좌우영 그리고 전후영의 다섯으로 나누어 5영이 된다. 즉 5초 5영이라는 5. 5형식이 상부 편대의 원칙이었으며 하부 편대는 3대 3기였으니 3. 3형식이었다.

속담의 3. 3. 5. 5라는 말은 삼사인 또는 오륙인이 떼를 지어 가는 모양을 말하나 그 실은 군중을 3대, 3기, 5초, 5영으로 묶어 조직화한다는 군대편성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1초는 112명이므로 5초는 560명이다. 이 560명이 1영이 되고 560명으로 구성된 영을 다시 다섯으로 묶으면 5영의 총병력이 2,500명이나 된다. 이 2,500명을 총지휘하는 자가 營將이다.

의병의 인사계통을 살펴보면 영장은 먼저 5명의 영사를 선발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선발된 영사로 하여금 각각 예하의 다섯 초장을 선발케 한다. 선발된 초장은 다시 각자가 세 명의 기총을 선발하고 기총은 또 세 명의 대장을, 대장은 11명의 병사를 선발하는 것으로 인사의 모든 차례가 끝난다.

그러나 선발할 때 유의할 일은 서로 의지와 기상이 부합하는 사람들로 짝지어 대를 편성해야 한다는 것이며, 영사와 초장 그리고 그 아래 기총까지는 각각 認旗를 수여하여 깃발에다가 그 성명을 기입하도록 한다. 즉 主將旗(총대장기)에는 5영사의 성명을 기입하고, 營司旗에는 5초장의 성명을 기입하도록 한다. 또 哨長旗에는 3기총의 성명을 기입케하고, 旗總旗에는 3대장의 이름을 기입하도록 하여 대원들로 하여금 제각기 자기 소속이 어딘지를 알게 하였다.

이와 같이 편대가 끝나면 여러 서기들로 하여금 군안을 작성하여 성문화하고 교령(명령)의 하달을 시험하고 징과 북 등을 쳐서 알리는 신호와 눈으로 보고 아는 표시를 주지시켜야 한다.

이 자료는 그 밖에도 행진법과 金鼓令을 기술하고 있으며, 作隊, 행진, 金鼓의 법은 “모름지기 수만 번의 연습을 통해 자기 몸과 팔을 다루듯 하고 손가락을 움직이듯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허다한 절목과 기관을 어찌 한 폭의 종이에 그리겠으며 기록할 수 있겠는가”라고 끝맺고 있다.

이강년은 무과 출신이므로 민병을 조직화하는 데 있어서 옛날 속오군의 편제를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 본질에 있어서 향군이었던 속오군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통해 전국적으로 실시되어 오다가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19세기 초 정약용이 民堡議를 제창하고 1867년 申觀浩가≪民堡輯說≫을 써서 다시 이 제도의 부활이 강조되었던 것이다.1249)

신관호의≪민보집설≫에 보면, “무릇 堡는 5인으로서 伍로 하고 2伍로서 隊로 하고 3대로서 旗로 한다”고 하면서, 기는 公·小·中·大·元의 5기로서 堡로 삼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보는 軍旅이므로 반드시 절제가 있어야 하는데, 만일 귀천을 같은 伍에 있게 하면 貴者는 편하게 일하고 賤者는 고역을 맡게 되므로 일을 고루 나누어 하기 위해서는 귀족은 귀족끼리 編伍하고 천족은 천족끼리 편오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병의 기본편제와 대동소이함은 물론 儒軍과 民軍이 따로 편성되었던 초기 의병의 편성이 민보체제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1250)

나) 의 조

의병은 스스로 군율을 제정하여 약탈 토색질을 엄금하고 있다. 그것은 따로이 군자금 조달의 정당한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운강창의록≫말미에 나오는 將任錄 가운데 좌종사 100명이 곧 군자금의 조달자였고 그 중 60%가 양반, 40%가 평민이었다.1251)

지금도 민병에 군자금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의병 후손들이 많이 있으나 대개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李冑承(1868∼1946, 충북 제천 寒所 北壹里)의<義助>(1902. 12)에 따르면 의병의 군자금이 동계(촌계) 형식으로 거출되고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1252)

<의조>에 기록된 사람의 인원은 모두 123명인데 각각 12냥에서 1냥까지 의조금을 내고 있다.1253) 구체적으로 말하면 10냥이 3명, 5냥이 9명, 4냥이 3명, 3냥이 17명, 2냥이 19명, 나머지 72명이 1냥씩 내고 있다. 또한 職銜이 있는 사람이 총 123명 중 43명이고 나머지 80명은 직함이 없다.1254) 또 이와는 별개의 대장(연대미상)에는 소를 팔아 군비에 충당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 ‘以軍備賣牛’라고 명기된 것 이외에는 ‘入用放賣’ 등의 암호로도 표시되어 있다. 이 자료가 연대미상인 점에 아쉬움이 남으나 소 팔아 의병댔다는 소문이 적지 않았는데 그것이 사실임이 드러났다.

다시 말해서 의병은 민군이기 때문에 국고의 지원이 전혀 없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민이 스스로 부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부담원칙은 각호의 재력에 따라 분배한다는 것이었다. 이 원칙에 따르게 되면 부민이 군자금을 대고, 빈민이 민병으로 나아간다는 결과가 된다. 물론 이것은 외형상 신분적인 향촌규제에 따른 것으로 불응자에 대해서는 군율에 따라 처단하였다. 일제는 의병의 이같은 향촌기반을 파괴하기 위해 헌병보조원제를 채택하여 분열정책을 썼다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의병의 향촌조직과 민병조직을 재건하여 군정부를 수립하려던 운동이 곧 大韓獨立義軍府였다. 일제의 무단통치에 대항하여 지하 의병왕국을 건설하려던 이 계획은 돈헌 임병찬에 의해 계획, 실천되었다. 이 운동은 1912년 9월 고종의 밀칙을 받아 전라도순무총장으로 임명받음으로써 시작되었다. 그의 조직과 방략은<管見>·<定等>에 잘 요약되어 있다.1255)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의병의 편제와 향촌조직의 결합은 전통적인 향군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의병은 강력한 항쟁력과 끈질긴 지구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본다. 또한 의병의 이같은 조직원리는 1910년 이후의 간도의병으로 계승되었으며 독립군 또한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따라서 대한독립의군부에서 볼 수 있는 군정부체제는 그대로 독립군 계열단체에 계승되면서 단지 그 정치이념을 바꾸어 나간 데 지나지 않다고 보는 것이 의병에서 독립군으로의 이행과정이라 할 수 있다.

<朴成壽>

1248)이 자료는 필자가 운강의 증손 李麟揆로부터 제공받은 것으로서 말미에 운강의 자필서명이 붙은 귀중한 의병의 留陣, 行進, 號令法指針書(모필수사본)이다. 그러나 乙未, 丁未 어느 시기에 작성된 것인지 분명치 않다.
1249)車文燮,≪朝鮮時代軍制硏究≫(檀國大出版部, 1973).

許道善,<鎭管體制復舊論硏究>(≪國民大論文集≫, 1974).

鄭景鉉, 앞의 글 참조.
1250)朴周大,≪羅嚴隨錄≫(國史編纂委員會, 1980), 66∼74쪽.
1251)朴成壽, 앞의 책.
1252)李冑承은 1895년 을미의병 때 아우 李肇承을 유인석 의군의 종사로 보내고 자신은 이강년 부대의 좌종사로 군자금을 갹출한 인물이다(≪雲崗倡義錄≫將任錄 참조). 그리고 후손의 증언에 따르면 1910년 이후에도 계속 간도로 자금을 송금한 것으로 되어 있다. 본<義助>는 1902년의 것이므로 의병전쟁과 직접 관계가 없다. 그러나 이것을 통해 의병 군자금 모금방법이 어떤 것이었는지 유추할 수 있다고 본다.
1253)이 의병 명단 속에는 유인석·이강년 등 유명인이 포함되어 있고 각각 5냥과 1냥을 내고 있다.
1254)內譯하면 幼學이 24명, 主事 5명, 進士 3명, (前)郡守 2명이며, 同知 郞廳 參奉 中軍 都正 閑良 宣傳이 각 1명 씩이다.
1255)林炳瓚,≪義兵抗爭日記≫(韓國人文科學院, 1986).

申圭秀,<大韓獨立義軍府에 대하여>(≪邊太燮博士華甲記念 史學論叢≫, 三英社, 1985).

李康五,<한말전북지역의 의병활동>(≪전북지역독립운동사≫, 광복회 전라북도지부, 1989).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