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3권 국권회복운동Ⅳ. 항일의병전쟁4. 의병전쟁의 발전2) 의병전쟁의 새로운 앙양과 평민 의병장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1. 한반도 중립화 운동
          • 1) 한반도 중립화론의 대두
            • (1) 임오군란 후 일본에서의 한반도 중립화론
            • (2) 거문도사건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 (3) 청일전쟁 전후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 2) 대한제국의 영세중립화 시도
          • 3) 러·일 개전기 대한제국의 전시국외중립 선언
            • (1) 전시국외중립 외교
            • (2) 전시국외중립 선언
        • 2.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한국의 일본보호국화 과정
          • 2) 정부 주도의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반침략 자주 외교의 전개
            • (2) 을사조약 무효화 외교
          • 3) 민간인의 보호국화 저지 외교
            • (1) 대영·대미 보호국화 저지 외교
            • (2) 대일 보호국화 저지 외교
        • 3. 특사의 헤이그 평화회의 파견
          • 1)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
          • 2) 고종의 3특사
          • 3) 특사의 장외 언론활동
          • 4) 특사 파견의 파문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1. 유생의 상소 투쟁
          • 1) 을사조약 체결 이전의 상소운동
          • 2) 을사조약 반대 상소운동
        • 2. 시민의 투쟁
          • 1) 지방세제의 시행과 시장세 징수
          • 2) 순천·용천 양시의 시장세 반대운동
          • 3) 시장세 반대운동의 전국적 확산
        • 3. 황무지개척권 반대운동
          • 1)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배경
          • 2) 황무지개척권의 요구
          • 3) 한국민의 반대운동
            • (1) 언론·상소 투쟁
            • (2) 농광회사의 설립
            • (3) 보안회의 투쟁
          • 4)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철회
        • 4. 국채보상운동
          • 1)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 (1) 일본의 차관공세
            • (2) 국채보상운동의 발단
          • 2) 국채보상운동의 전개
            • (1) 국채보상운동의 확산
            • (2) 여성의 국채보상운동 참여
          • 3) 국채보상운동의 좌절
        • 5. 의사·열사의 항쟁
          • 1)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1) 스티븐스의 친일 외교활동
            • (2)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 (3) 장인환·전명운 의거의 영향과 의의
          • 2)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 (1) 이토 히로부미 사살 배경
            • (2) 이토 히로부미의 사살과 그 역사적 의의
          • 3) 이재명의 이완용 척살 미수
      • Ⅲ. 애국계몽운동
        • 1. 애국계몽단체
          • 1) 초기의 계몽단체들
            • (1) 보안회
            • (2) 공진회
            • (3) 국민교육회
            • (4) 헌정연구회
          • 2) 대한자강회
            • (1) 대한자강회의 설립과 조직
            • (2) 대한자강회의 계몽사상
            • (3) 대한자강회의 자강독립운동
          • 3) 신민회
            • (1) 신민회의 창건과 목적
            • (2) 신민회의 국권회복운동
          • 4) 대한협회, 기타 학회들
            • (1) 대한협회
            • (2) 계몽학회들
          • 5) 애국계몽단체 활동의 역사적 의의와 그 한계
        • 2. 애국계몽사상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과 형성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
            • (2) 애국계몽사상의 형성
          • 2) 국권회복의 논리
            • (1) 자강독립론
            • (2) 실력양성론과 독립전쟁론
          • 3) 국민국가건설의 논리
            • (1) 국민국가론
            • (2) 입헌군주정체론과 공화정체론
        • 3. 애국계몽운동의 전개
          • 1) 민중계몽운동
            • (1) 신문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
            • (2) 회지·잡지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
            • (3) 강연회·토론회를 통한 민중계몽운동
          • 2) 교육구국운동
            • (1) 근대학교 설립운동
            • (2) 교과서 편찬운동
            • (3) 의무교육 실시운동
            • (4) 실업·상무교육 실시운동
          • 3) 경제구국운동
            • (1) 황무지개간권 반대운동
            • (2) 국채보상운동
            • (3) 부동산침탈 반대운동
            • (4) 민족경제 건설운동
          • 4) 정치구국운동
            • (1) 을사조약 반대운동
            • (2) 고종양위 반대운동
            • (3) 한일합방 반대운동
          • 5) 민족문화운동
            • (1) 국어국문 진흥운동
            • (2) 국사교육 강화운동
            • (3) 민족적 종교운동
          • 6) 독립군기지 건설운동
            • (1) 독립전쟁론의 대두
            • (2) 독립군기지 건설준비
            • (3) 독립운동기지의 건설
        • 4. 105인사건
          • 1) 사건조작 배경
          • 2) 사건조작 경위와 사건 개요
          • 3) 재판 경위와 사건의 허구성
          • 4) 사건 연루자의 수난과 사회경제적 성향
      • Ⅳ. 항일의병전쟁
        • 1. 갑오·을미의병
          • 1) 갑오·을미의병의 배경
          • 2) 갑오의병의 전개
          • 3) 을미의병의 전개
            • (1) 을미사변과 을미의병의 개시
            • (2) 단발령 공포와 을미의병의 확대
          • 4) 갑오·을미의병의 사회적 기반과 성격
        • 2. 을사의병
          • 1) 을사의병의 재기
          • 2) 전국 의병의 활동
            • (1) 경기·강원도
            • (2) 영남지방
            • (3) 호서지방
            • (4) 호남지방
            • (5) 양서지방
          • 3) 을사의병의 의의
        • 3. 정미의병
          • 1) 군대해산
            • (1) 정미7조약
            • (2) 서울 시위대의 해산
            • (3) 남대문 전투
            • (4) 지방진위대의 항전
          • 2) 중부지역의 의병전황
            • (1) 중부지역의 의병전환
            • (2) 남부·북부지역으로의 확전
            • (3) 의병장들의 의병활동
          • 3) 이강년의 의병활동
            • (1) 이강년의 활동
            • (2) 무기와 전술
            • (3) 의병의 조직과 군율
        • 4. 의병전쟁의 발전
          • 1) 서울진공작전의 실패와 근거지문제
            • (1) 13도 의병부대의 서울진공작전
            • (2) 유인석의 지구전론과 근거지 문제
            • (3) 근거지 구상에 나타난 유인석 사상
            • (4) 서울 진공 실패 후의 분산활동
          • 2) 의병전쟁의 새로운 앙양과 평민 의병장들
            • (1) 스티븐스의 저격과 의병전쟁
            • (2) 평민 의병장들의 활동
            • (3) 한국합방안의 결정과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
          • 3) 호남지방의 의병전쟁과 남한대토벌작전
            • (1) 호남지방의 의병전쟁
            • (2) 일본군의 남한대토벌작전
          • 4) 합방 전후의 의병활동
          • 5) 독립군 운동을 위한 근거지 창설
            • (1) 동만·남만의 한인사회
            • (2) 신민회의 근거지 창설
        • 5. 의병전쟁의 특징과 의의
          • 1) ‘전쟁’이라 하는 이유
          • 2) 의병전쟁사의 시기구분 문제
          • 3) 이념상의 특징
          • 4) 조직상의 특징
          • 5) 활동상의 특징
          • 6) 의병전쟁의 의의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평민 의병장들의 활동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1908년에 접어들면서 전국적으로 저명한 허위·이강년·민긍호·이은찬 의병장들이 체포되어 일제 침략에 대한 타협없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 주면서 순국했다.

또한 1908년이 의병전쟁의 전기간을 통하여 최고조를 이루게 된 데는 평민 의병장들의 역할이 크다. 그들에게 별로 당당한 檄文이나 倡義錄 등이 있는 것은 아니나, 역시 그들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申乭石·金秀敏·洪範圖를 들 수 있다.

경상북도와 강원도가 접경하는 日月山이 신돌석 부대의 활동무대이다. 이와 연결하는 지역이 또한 이강년 부대의 활동무대이다. 그러므로 경상북도·강원도·충청북도가 연결하는 이 지역은 한말 의병전쟁의 가장 유력한 핵심 지역의 하나로 되었다.

신돌석도 이강년과 같이 1896년의 乙未義兵에 참가한 역전의 의병장이다.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고 통감부가 설치되자 그는 1906년 3월 3백 명의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또 다시 궐기하였다.

재기한 신돌석 부대의 주된 근거지는 일월산을 중심으로 한 영덕·영해·평해지방인데, 이 지역에 대한 일본군의 누차에 걸친 포위작전이 실패하고 있다. 그때마다 일본군 기록에는 “단지 구축하는 데 그치고 수괴를 놓쳤다”라고 쓰고 있다.

이와 같이 신돌석부대가 일정한 지역을 떠나지 않고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지역 농민들과의 깊은 연계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즉 우세한 일본군의 포위에 대해서는 의병들을 농민 속에 분산시키고, 정보망을 통해서 파악한 적의 약한 고리에 의병들을 집중시켜서 기습하는 게릴라전법이다.

누차에 걸친 포위 소탕작전에 실패한 일본군은 신돌석의 부하를 매수하여 암살하는 전술을 썼다. 1908년 11월에 월동을 위하여 부대를 일단 해산하고, 자기도 영덕 訥谷에 사는 부하 金相烈의 집을 찾아갔다. 일제에 매수된 김상렬 형제는 술 대접을 받고 깊은 잠에 빠진 그를 도끼로 찍어 살해하였다.

朴殷植은 신돌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신돌석은 경상도 영덕 사람인데 사납고 날쌔어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匹馬單槍으로 적을 무수히 죽이니, 일병들이 온갖 계책을 써서 생포하려 하였으나 잡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많은 현상금을 붙였더니 그 부하의 속임수에 빠져 죽었다(朴殷植,≪韓國獨立運動之血史≫,<各地義兵의 略歷>).

1908년 6월에는 이강년이 체포되고, 11월에는 신돌석이 암살당한 후 강원도와 충청북도를 연결하는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의병활동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으나 그 후에도 주로 이강년 계열의 잔존 부대들에 의한 소규모 활동이 지속되었다.

임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허위 부대와 호응하여 의병투쟁을 전개한 김수민은 한국군이 해산되자 경기도 북부 長湍에서 기병했다.

그 후 김수민은 李鎭龍 부대가 활동하고 있는 황해도 지역에까지 진출하여 경기도 장단으로부터 황해도 瑞興 일대에 이르기까지 임진강을 넘나들면서 신출귀몰의 게릴라전을 전개하였다. 김수민 부대가 능숙하게 게릴라전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농민군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褓負商을 조직하여 적의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데 있다.

박은식은 김수민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김수민은 경기도 장단 사람이다. 그는 힘이 세고 사격을 잘하여 백발백중이 었으며 스스로 탄약을 제조하여 사용하였다. 13도 總都督이 되어 의병 2천 명을 거느리고 장단의 德蔭洞에 웅거하여 군량을 저축하고 보부상들을 모집하여 정찰대로 삼아 원근에 배치하였다. 그리하여 적과 교전해서 누차 승리를 거두었으나 적이 대부대를 이끌고 와서 공격하니 그의 군사는 무너지고 자신은 도망하여 버렸다. 이리하여 재거를 기도하려고 비밀리에 입경하여 인력거꾼 노릇을 하며 적정을 탐지하다가, 마침내 일본 밀정에게 체포되어 1908년 12월 17일에 죽임을 당하였다(朴殷植,≪韓國獨立運動之血史≫,<各地義兵의 略歷>).

경기도에서는 1908년 3월에 이은찬이, 6월에는 허위가 체포된 후에 11월에는 김수민이 서울에서 체포당하여 12월에 처형되었다.

그러나 김수민이 체포된 후에 延基羽는 이은찬 부대의 잔존 병력을 이끌고 경기도 麻田·장단으로부터 황해도의 兎山 지방에 걸쳐서 姜基東 부대와 연계하여 의병투쟁을 계속했으며, 황해도에서도 平山 지방을 중심으로 이진용·韓貞萬 부대들이 각지에 출몰하면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함경도 지방은 산포수가 가장 많은 지방이다. 그들은 화전민으로서 농사도 하지만 수렵이 주된 생업이다. 총포와 화약은 그들의 생활수단이다.

그런데 군대 해산 이후 의병전쟁의 확대를 막기 위하여 일제의 괴뢰가 된 한국 정부는 1907년 9월 6일에<총포 및 화약류 단속법>을 발표하여 민간에 있는 총기와 화약류를 수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산포수로부터 생활수단을 박탈하는 악법이었다.

당시 홍범도는 함경남도 북청군 安山社에서 산포수들의 상호부조 조직인 捕捐隊의 책임자로 있었다. 바로 산포수들에게는 일제를 반대하는 문제와 생활을 지키는 문제가 결부되어 있었다. 홍범도는 車道善과 더불어 산포수를 중심으로 여기에 북청진위대의 해산병까지 포섭해서 의병부대를 조직했다.

홍범도·차도선 의병부대는 1907년 11월에 일진회원인 안산사 면장 朱道翼을 처단함으로써 의병전쟁의 봉화를 올렸다. 이어서 의병부대는 厚峙嶺에서 총포를 수거하여 북청으로 운반하는 호위부대를 습격하여 노획한 신식무기와 탄약으로 무장을 강화하였다. 험준한 산악과 민첩한 행동, 그리고 사격술에 능숙한 홍범도 의병부대는 각지에 신출귀몰하면서 1908년 12월에 노령 연해주로 넘어갈 때까지 위력을 발휘했다.

박은식은 홍범도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홍범도는 평안도 陽德 사람인데, 이사하여 함경도 甲山에 우거하면서 사냥꾼 노릇을 하였다. 그는 체격이 훤칠하고 의지와 기개가 헌거로왔으며, 비록 글은 배우지 못하였으나 천성적인 의협심이 있어, 남을 도우는 일을 급무로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많이 따랐다. 1907년 겨울에 차도선·宋相鳳·許槿 등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북청의 후치령 전투에서 일본 장교 미야베(宮部)의 중대를 섬멸시켰으며 잇따라 黃水院·三水 등지에서도 대소의 교전이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역부족으로 패배하고 江北(간도지방)으로 들어가서 사냥을 생업으로 삼았다. 1919년에 우리 겨레의 독립운동이 있게 되니, 범도는 그 동지와 함께 다시 의병의 기치를 들고 나와 鳳梧洞의 대첩이 있었다(朴殷植,≪韓國獨立運動之血史≫,<各地義兵의 略歷>).

이상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08년에 종래 의병전쟁의 전반적인 추세를 좌우할 정도로 규모가 큰 의병장들이 의병전쟁의 대열에서 떠나게 되었다. 그 결과 별로 지명도가 없는 평민 의병장들이 인솔하는 소규모의 의병부대들이 각지에 분산하여 일본군경을 교란시키는 게릴라전을 전개하고 있다. 일제의 문헌에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전년(1908)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사이에 매월 출동한 폭도의 총수는 시종 약 3천 명인데, 적의 세력이 거의 대체로 고정된 景況을 보이며, 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동은 때가 지남에 따라 점점 교묘함을 극하며 그 첩보, 근무 및 경계법 등은 점점 교묘히 도가 높아졌고, 행동은 점점 민첩해져서 때로는 우리 토벌대에 대하여 우롱하는 듯한 태도로 나오기도 한다. 그 세력은 때에 따라 성쇠가 있지만, 아직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며 평정이 언제 끝날 것인지 우려하기에 이르렀다.

1908∼1909년에 걸쳐서 의병장의 압도적인 대다수가 평민 의병장이 차지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1908∼1909년의 의병장과 副將의 계층별 구성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1263) 일본군, 헌병, 경찰이 조사한 의병장 및 부장 430명 중 직업과 신분이 분명한 사람이 255명이다.

255명 중에서 유생·양반이 64명(25%), 농업이 49명(19%), 士兵이 35명(14%), 무직 및 火賊이 30명(12%)으로 되어 있으며, 기타 포군(13명), 광부(12명), 主事·서기(9명), 장교(7명), 군수·면장(6명), 상인의 순으로 되어 있다.

또한 1908년에 귀순하거나 투항한 의병장 및 부장 28명 중 8명(28%)이 양반 출신이고 나머지 21명(72%)이 평민 출신이다. 뿐만 아니라 의병의 경우에는 2,198명 중 양반이 겨우 57명(2.7%)인데 비하여 평민이 2,141명(97.3%)이다.

의병부대원의 압도적인 대다수가 평민이라 하더라도 의병장이 유생·양반출신인가 평민 출신인가에 따라 그 지도사상과 부대 내부의 階序질서에 현격한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의병장의 계층별 구성이 평민화될수록 비록 의병부대가 소규모화·분산화되더라도 그 활동은 민첩하게 될 것이며 군중과의 연계가 강화되어 상호간의 변신이 자유롭게 되기 마련이다.

1263)朴成壽,<1907∼10년간의 의병전쟁에 대하여>(≪韓國史硏究≫1, 1968).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