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1. 국내민족운동4) 혁명적 경향의 민족운동단체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1. 무단통치체제의 확립
          • 1) 총독지배체제의 형성
          • 2) 조선총독 지배하의 탄압기관
            • (1) 헌병경찰체제
            • (2) 사법기관
            • (3) 군대
        • 2. 식민지 수탈구조의 구축
          • 1) 토지조사사업과 토지수탈기반의 마련
            • (1) 토지조사사업의 전사
            • (2) 토지조사사업의 실시와 그 성격
            • (3)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 집적
          • 2) 수탈을 위한 농업정책과 한국농민의 고난
            • (1) 관권의 농사 개입
            • (2) 면화재배의 강요
            • (3) 식민지적 수탈의 강화
            • (4) 몰락 농민의 증가
            • (5) 한국농민의 저항
          • 3) 임야조사사업과 국유림의 창출
          • 4) 광업과 어업의 장악
            • (1) 광업의 장악
            • (2) 어장의 장악
          • 5) 금융·재정의 식민지적 재편
            • (1) 금융의 장악
            • (2) 재정의 재편
          • 6)<회사령>과 기업활동의 억압
            • (1) 한국강점 이전의 일본자본 침투
            • (2)<회사령>의 시행과 기업발흥의 억압
            • (3) 일본자본의 왕성한 침투
            • (4) 노동구조와 노동쟁의
          • 7) 교통·운수·통신의 지배
          • 8) 무역의 대일 종속
        • 3. 식민지 지배체제의 특질
          • 1)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주의
            • (1) 무단통치에 의한 지배체제 구축기(병합∼3·1독립운동)
            • (2) 회유정책에 의한 민족개량화기(3·1독립운동∼중일전쟁)
            • (3) 민족말살을 통한 전시강제동원기(중일전쟁∼패전)
          • 2) 조선 총독의 권력
          • 3) 식민지 통치구조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1. 국내민족운동
          • 1) 1910년대 국내민족운동의 배경과 경향
            • (1) 배경
            • (2) 국내민족운동의 경향과 특징
          • 2) 의병계열의 민족운동단체
            • (1) 대한독립의군부
            • (2) 풍기광복단
            • (3) 민단조합
            • (4) 이증연의 비밀결사
          • 3) 계몽운동계열의 단체
            • (1) 기성볼단
            • (2) 조선국권회복단
            • (3) 조선산직장려계
            • (4) 단천 자립단
            • (5) 영주 대동상점
            • (6) 송죽회
            • (7) 애국창가집 편찬, 배포와 관련된 민족교육투쟁
          • 4) 혁명적 경향의 민족운동단체
            • (1) 대한광복회
            • (2) 선명당
            • (3) 흠치교의 비밀결사
            • (4) 청림교의 비밀결사
            • (5) 조선국민회
          • 5) 1910년대 국내민족운동의 성격
        • 2. 해외민족운동
          • 1) 만주
            • (1) 북간도지역의 민족운동
            • (2) 서간도지역의 민족운동
            • (3) 북만 밀산부지역
          • 2) 러시아
            • (1) 러시아혁명 이전의 독립운동
            • (2) 러시아혁명 이후의 독립운동
          • 3) 중국 관내지역
            • (1) 한인의 이주와 한인사회의 형성
            • (2) 중국혁명세력과의 연대 구축
            • (3) 한인단체의 활동과 독립운동의 기반조성
          • 4) 미주
            • (1) 미주 한인사회의 형성과 한인단체의 결성과정
            • (2) 통일연합기관 설치와 독립군기지 개척운동
            • (3) ‘합병’ 반대투쟁과 군인양성운동
            • (4) 국민국가 수립론과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설립
          • 5) 일본
            • (1) 1910·20년대 재일 조선인의 상태
            • (2) 1910년대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3) 2·8운동
            • (4) 1920년대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Ⅲ. 3·1운동
        • 1. 3·1운동의 배경
          • 1)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국제정세
          • 2) 해방과 평등의 새로운 사조 등장
          • 3) 독립운동의 새 기운
          • 4) 국내 상황
            • (1) 식민지 지배의 압박과 고통
            • (2) 식민지 지배의 모순 격화와 민생 피폐
          • 5) 3·1운동의 태동
            • (1) 상해 신한청년단의 활동과 해외 독립운동가들의 움직임
            • (2) 2·8독립선언
            • (3) 광무황제의 붕어와 인산
        • 2. 3·1운동의 전개
          • 1) 3·1운동의 초기 조직화
            • (1) 민족대연합전선의 형성
            • (2)<독립선언서>준비
            • (3)<독립선언서>의 배포와 최후의 회담
          • 2) 3·1운동의 발발
            • (1) 민족대표의 독립선언
            • (2) 만세시위운동의 시작
            • (3) 국내의 만세시위운동
        • 3. 3·1운동의 해외 확산
          • 1) 중국 만주
            • (1) 북간도의 시위운동
            • (2) 서간도의 시위운동
          • 2) 러시아 연해주
            • (1) 러시아혁명과 연해주 한인들의 독립운동
            • (2) 파리 강화회의 대표파견
            • (3) 전로국내조선인회의
            • (4) 독립선언과 시위운동의 전개
            • (5) 국내진공 계획과 노인동맹단의 독립운동
          • 3) 미주
        • 4. 3·1운동의 영향과 의의
          • 1) 3·1운동에 대한 열강의 반응
            • (1) 중국
            • (2) 미국
            • (3) 영국
          • 2) 3·1운동의 역사적 의의
            • (1) 3·1운동의 민족사적 의의
            • (2) 3·1운동의 세계사적 의의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5) 조선국민회

 朝鮮國民會는 1917년 3월 평양에서 평양 숭실학교와 평양신학교 출신자와 재학생 및 일부 교사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청년학생의 항일비밀결사였다.292) 조선국민회 결성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張日煥은 숭실학교를 졸업한 후 1914년 9월 미주 하와이에서 이 지역 한인사회내에서 독립운동의 중심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가진 박용만을 만났다.

 장일환은 박용만과 협의를 거쳐 국내에 청년단체를 조직하고 국내외가 상호협력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1915년 4월 비밀리에 귀국한 장일환을 1차로 하와이 국민회원으로 활동하다 앞서 귀국한 姜錫奉·徐光朝와 접촉하였다. 이어 1915년 겨울 2차로 안동현에서 활약하고 있던 白世彬을 만나 박용만과 협의된 계획을 전하고 동지로 포섭하였다. 당시 백세빈은 중국 안동현에서 국내와 중국 및 미주지역과의 연결거점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이어 장일환·강석봉·서광조 및 백세빈은 비밀결사조직에 관해 협의하고 일차 계획으로는 우선 운동에 필요한 자금조달방법과 운동근거지를 간도지역에 구축해 장래에 대비한다는 방침을 결정하였다. 이러한 계획을 실천에 옮길 즈음 국내에서 新韓革命黨 관련인사들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므로 이를 잠시 보류하고 회원 각자가 비밀리에 조직확대 및 동지규합에 힘쓰면서 조직기반을 다지는 작업에 주력하기로 노선을 변경하게 되었다.293)

 그 뒤 1917년 3월 23일 평양 신양리에서 장일환 등 10여 명이 모여 조선국민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장일환을 회장으로 선출하고, 조직구성과 그에 따른 임원 선출 및 간단한 시행세칙을 마련하고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조선국민회가 내세운 궁극적인 목적은 구미세력의 동양진출과 더불어 점차 제국주의화하는 일본이 장차 동양침략 즉 중국에로의 침략을 위한 패권쟁탈이 머지않다고 보고 이를 적기로 이용하여 자주독립을 달성하려 함에 있었다.

 조선국민회의 조직구성을 보면 회장에 장일환, 통신겸 서기에 배민수·안동현·백세빈, 경상도·전라도·황해도구역장으로 오병섭·강석봉·노선경을 각각 임명하였다. 체계적으로 정비된 형태는 아니지만 크게 두 가지 점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첫째, 본부격인 평양지역은 회장이 담당하고 그 외 지부적인 성격으로 각지에 구역장을 두어 전국적인 규모의 조직으로 확대 발전시키려 한 면모를 나타낸다. 다음으로 내외통신 즉 국내외의 연락기구 설치에 중점을 둔 기구편성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해외의 독립운동세력 특히 하와이 국민회와의 긴밀한 연계를 주요사항으로 했던 것과 아울러 중국 간도지역에의 조직확대를 계획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간도지역 진출은 초기 조직과정에서 토지매입 및 근거지 구축방안도 시도한 바 있음으로 미루어 이 지역에 장기적 투쟁을 대비한 기지구축포석의 일환으로 보인다.

 회원은 일반회원과 준비회원으로 구분하고 있다. 조직의 운영은 매년 봄에 정기적인 회의를 개최하기로 정하고 조직의 비밀보장을 위해 평양신학교 및 숭실학교가 개교하는 시기를 이용키로 하였다. 조직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각 회원이 갹출하는 회비로 충당하며 그 외 별도로 운동자금모집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회원상호간에 사용할 암호와 비밀문서 작성요령까지 마련해 두었다.

 조선국민회는 국내에서 조직된 비밀결사이면서도 하와이 국민회나 하와이 국민군단과 깊이 관련된 조직으로서 일면 국내지부적인 성격을 띤다. 실행세칙 중 첫째가 재미국민회와의 연락도모였던 사실과 암호 중 특히 하와이에 대한 암호를 작성하고 있는 점이다. 둘째, 박용만이 주필로 활약하고 있는 하와이 국민회의 기관지≪國民報≫의 배포를 중요활동으로 전개하고 있었던 점이다.

 그런데 하와이 국민회를 이끌던 박용만은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강력한 국가건설을 목표로 하되 필수적 요소로 국민의 2대 의무를 들고 있다. 이런 입장을 독립운동노선에 적용할 때 한인교포의 의무금제와 독립전쟁을 위한 군사의무의 하나로 상무주의 강조로 나타난다. 따라서 하와이 국민회와 연계된 조직으로 보이는 조선국민회도 이와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고 보인다.

 조선국민회의 구성원은 20∼30대 초반이 대부분이고 10대도 4명이나 포함된 독립의식이 확고한 청년들이며 학력은 숭실대학 출신 5명·숭실대학생 2명·숭실학교 출신 4명·숭실학교 학생 4명 그 외 평양신학교 출신자 1명·경성 연회전문학교 학생 1명·군산 영명중학교 학생 1명 등이다.294) 회원 대다수가 숭실학교 관련된 인물로 이들이 조직을 이끌어 가는 데 주된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이처럼 조선국민회는 숭실학교 관련자들이 중심이 되었지만 그 외 평양신학교·경성 연희전문학교·군산 영명학교 학생 등도 함께 참여함으로써 각지 지식청년들을 연합하고자 계획한 면도 참작할 만하다. 또한 회원들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거나 서당교사로 활동한 이도 적지 않아 일선 교육현장에서 구국교육 실현을 통해 민족의식고취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회원 중에 기독교장로·교회助事 등이 있고, 신학교출신자, 기독교계통의 학교인 숭실·영명·연희전문학교 관련자들이 중심인 것으로 보아 대다수가 기독교신자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국민회가 당시 민족적 활동조차 철저히 봉쇄된 국내 현실 속에서 조직결성이 비교적 용이한 학교나 종교집회를 적극 활용한 측면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조선국민회는 동시대에 결성·활동한 비밀결사들과 마찬가지로 전국적 조직을 지향했으나 서북지방 일대가 중심적 거점으로 국한되었던 것, 회원 수도 20∼30여 명으로 나타난 것, 학연·지연 및 종교조직을 통해 조직을 결성한 것 등은 여타 비밀결사와 같다.

 조선국민회의 활동은 근거지 구축과 조직확대 및 교육활동 등으로 전개되었다. 근거지 구축은 조선국민회의 결성 초기단계에서 계획했던 방안으로 간도지역에 토지를 구입하고 회원으로 규합한 동지를 이주시켜 장래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활용하려던 것이었다. 이런 방침에서 일찍부터 국민회 회원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신민회의 국외독립군기지 창설이란 독립운동전략을 계승했음을 엿볼 수 있다. 실제 그 실천단계에서 구상된 자금동원방안이 무모한 측면도 있으나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이란 국제정세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려던 의도가 돋보인다.

 보다 두드러진 활동은 조직확대와 회원모집 등을 통한 세력 강화였다. 즉 국내조직을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하기 위해 평양에 근거를 두고, 경상도·전라도·황해도지역에 지부 성격의 구역장을 설치하고 각 지역에 연고가 있는 회원을 배치하였다. 즉 경상남도 固城郡출신으로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吳柄燮을 경상도 구역장에, 전남 목표출신으로 하와이에서 국민회원으로 활약하다 귀국한 강석봉을 전라도 구역장에, 황해도 재령출신으로 구역에서 회원모집에 노력하면서 그 지역에 국민회 세력을 확대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 결과 전라도 목포·보성일대에 다소 근거가 마련되었다.

 국내뿐 아니라 하와이 국민회와의 연락을 계속하는 한편 국민회 회원을 비밀리에 미주로 파견하려고 계획하였다. 미주지역으로의 파견을 군사양성계획의 일환으로 군사학교에 입학시키면서 일면 국내조직과의 원활한 연락거점으로 활용하려던 의도에서 계획되었다고 보이나 실천에 옮기기 전 조직이 발각되었다. 또한 중국지역으로의 기반확대를 위해 안동에 외국통신원을 배치하였는데 이 지역에서 활동하던 백세빈이 이를 맡게 되었다. 아울러 북경에도 1명의 통신원을 배치, 북경지역과도 연계를 계획하였다. 1917년 7월에는 간도지역과의 연락통신을 위해 추가로 盧善敬을 서간도 三源堡로 파견하기도 하였다.

 조선국민회는 조직기반을 확대해 가는 한편 회원간의 단결을 강화시키고 장차의 독립쟁패기회에 대비하여 무력준비계획도 수립해 두었다.

 특히 회원들간의 단결의지를 공고히 하면서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의지를 표명코자 혈서를 써서 맹약하는 이들도 다수 있었다. 즉 배민수·김형직·노덕순 등은 食指를 잘라 ‘대한독립’이라 혈서하고 어떤 이는 ‘決死’라고 혈서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또한 의지강고한 청년을 뽑아 회원으로 가입시켰으며 이후 이들을 항일투쟁의 역군으로 육성키 위해 중국 각지의 무관학교에 입학시킬 것을 계획하고 1차로 배민수를 중국 무관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중국지역으로 파견하였다. 군사학교에의 입학추진계획과 아울러 무기구입 및 군자금조달을 위한 계획도 별도로 세웠다. 조선국민회의 중심인물들은 우선 무기를 구입키 위한 자금마련의 방안으로 각지의 유지를 물색한 후 회원으로 가입시킨 뒤 그에게 군자금을 출자케 하여 그 자금의 일부로 권총을 구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목적달성 이전에 조직이 발각됨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무력기반조성계획이 비록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으나 무기구입계획, 암호를 사용한 비밀결사인 점, 그 암호가 독립군적 성격인 점, 회원들을 무관학교에 진학케 한 것들로 미루어 보면 이 조직이 계몽주의적 성격의 결사가 아니라 무력에 의한 항일투쟁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밖에 항일독립정신을 학생 및 일반인들에게 심어주려고 노력하였던 바 하와이 국민회의 기관지≪국민보≫의 배포활동과 교육현장에서 종사하던 교사들을 통한 민족교육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국민회의 활동을 통해 볼 때 이들이 지향한 운동방략은 계몽주의적 측면도 나타나지만, 독립군적 성격의 암호를 사용한 점, 무기구입 등 무력양성계획을 수립한 점, 독립전쟁론을 일관한 박용만과 협의해 조직된 청년단체인 점등으로 보아 독립전쟁론적 방략이 주된 흐름이었다.295)

 조선국민회는 1918년 2월 경 일제당국에 발각되어 중국으로 도피한 사람도 있었으나 그 중 25명은 체포되었으며 장일환 등 12명의 중심인물은 재판에 회부되어 최고 3년형까지 받게 되었다. 비록 조선국민회가 일체측에 의해 발각되어 해산되기는 했으나 그 결사의 조직기반은 잔존하여 3·1운동 당시 평양중심의 시위운동에서 주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후 1919년 9월에는 朴仁寬이 중심이 되어 大韓國民會란 비밀결사를 조직하기도 하는 등, 회원 각자가 독립운동에 헌신, 활동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292) 姜德相,≪現代史資料≫25, 35∼39쪽.

國史編纂委員會編,≪韓國獨立運動史≫2(1968).

강영심,<朝鮮國民會硏究>(≪한국독립운동사연구≫3,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9).
293) 강영심,<신한혁명당의 결성과 활동>(≪한국독립운동사연구≫2,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8).

金正柱,<朝鮮保安法違反事件>(≪朝鮮統治史料≫5, 韓國史料硏究所, 1970), 629∼671쪽.

신한혁명당은 1915년 3월 상해에서 상해지역 독립운동단체인 同濟社의 중추인 신규식과 박은식 등이 중심이 되어 이상설, 북경지역의 세력, 북간도의 이동휘, 해산된 간민회세력 등과 연결하여 독립전쟁론을 실현코자, 각각의 운동노선과 이념차이를 극복하고 광무황제란 상징적 존재를 당수로 추대하여 독립전쟁론의 실현을 목표로 결성한 항일투쟁조직이다. 동당은 결성 직후 1915년 초 성낙형 등 당원 일부를 국내로 잠입시켜 광무황제를 알현하고 독일과 체결할 군사조약에 대한 황제의 인준을 확보하려는 계획을 실천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국내 관련인사 다수가 보안법위반으로 피체되었던 것이다.
294) 숭전대학 80년사편찬위원회 편,≪崇田大學校 80年史≫(1979).
295) 趙東杰,<1910년대 독립운동의 變遷과 特性>(앞의 책), 377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