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Ⅲ. 3·1운동1. 3·1운동의 배경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1. 무단통치체제의 확립
          • 1) 총독지배체제의 형성
          • 2) 조선총독 지배하의 탄압기관
            • (1) 헌병경찰체제
            • (2) 사법기관
            • (3) 군대
        • 2. 식민지 수탈구조의 구축
          • 1) 토지조사사업과 토지수탈기반의 마련
            • (1) 토지조사사업의 전사
            • (2) 토지조사사업의 실시와 그 성격
            • (3)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 집적
          • 2) 수탈을 위한 농업정책과 한국농민의 고난
            • (1) 관권의 농사 개입
            • (2) 면화재배의 강요
            • (3) 식민지적 수탈의 강화
            • (4) 몰락 농민의 증가
            • (5) 한국농민의 저항
          • 3) 임야조사사업과 국유림의 창출
          • 4) 광업과 어업의 장악
            • (1) 광업의 장악
            • (2) 어장의 장악
          • 5) 금융·재정의 식민지적 재편
            • (1) 금융의 장악
            • (2) 재정의 재편
          • 6)<회사령>과 기업활동의 억압
            • (1) 한국강점 이전의 일본자본 침투
            • (2)<회사령>의 시행과 기업발흥의 억압
            • (3) 일본자본의 왕성한 침투
            • (4) 노동구조와 노동쟁의
          • 7) 교통·운수·통신의 지배
          • 8) 무역의 대일 종속
        • 3. 식민지 지배체제의 특질
          • 1)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주의
            • (1) 무단통치에 의한 지배체제 구축기(병합∼3·1독립운동)
            • (2) 회유정책에 의한 민족개량화기(3·1독립운동∼중일전쟁)
            • (3) 민족말살을 통한 전시강제동원기(중일전쟁∼패전)
          • 2) 조선 총독의 권력
          • 3) 식민지 통치구조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1. 국내민족운동
          • 1) 1910년대 국내민족운동의 배경과 경향
            • (1) 배경
            • (2) 국내민족운동의 경향과 특징
          • 2) 의병계열의 민족운동단체
            • (1) 대한독립의군부
            • (2) 풍기광복단
            • (3) 민단조합
            • (4) 이증연의 비밀결사
          • 3) 계몽운동계열의 단체
            • (1) 기성볼단
            • (2) 조선국권회복단
            • (3) 조선산직장려계
            • (4) 단천 자립단
            • (5) 영주 대동상점
            • (6) 송죽회
            • (7) 애국창가집 편찬, 배포와 관련된 민족교육투쟁
          • 4) 혁명적 경향의 민족운동단체
            • (1) 대한광복회
            • (2) 선명당
            • (3) 흠치교의 비밀결사
            • (4) 청림교의 비밀결사
            • (5) 조선국민회
          • 5) 1910년대 국내민족운동의 성격
        • 2. 해외민족운동
          • 1) 만주
            • (1) 북간도지역의 민족운동
            • (2) 서간도지역의 민족운동
            • (3) 북만 밀산부지역
          • 2) 러시아
            • (1) 러시아혁명 이전의 독립운동
            • (2) 러시아혁명 이후의 독립운동
          • 3) 중국 관내지역
            • (1) 한인의 이주와 한인사회의 형성
            • (2) 중국혁명세력과의 연대 구축
            • (3) 한인단체의 활동과 독립운동의 기반조성
          • 4) 미주
            • (1) 미주 한인사회의 형성과 한인단체의 결성과정
            • (2) 통일연합기관 설치와 독립군기지 개척운동
            • (3) ‘합병’ 반대투쟁과 군인양성운동
            • (4) 국민국가 수립론과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설립
          • 5) 일본
            • (1) 1910·20년대 재일 조선인의 상태
            • (2) 1910년대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3) 2·8운동
            • (4) 1920년대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Ⅲ. 3·1운동
        • 1. 3·1운동의 배경
          • 1)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국제정세
          • 2) 해방과 평등의 새로운 사조 등장
          • 3) 독립운동의 새 기운
          • 4) 국내 상황
            • (1) 식민지 지배의 압박과 고통
            • (2) 식민지 지배의 모순 격화와 민생 피폐
          • 5) 3·1운동의 태동
            • (1) 상해 신한청년단의 활동과 해외 독립운동가들의 움직임
            • (2) 2·8독립선언
            • (3) 광무황제의 붕어와 인산
        • 2. 3·1운동의 전개
          • 1) 3·1운동의 초기 조직화
            • (1) 민족대연합전선의 형성
            • (2)<독립선언서>준비
            • (3)<독립선언서>의 배포와 최후의 회담
          • 2) 3·1운동의 발발
            • (1) 민족대표의 독립선언
            • (2) 만세시위운동의 시작
            • (3) 국내의 만세시위운동
        • 3. 3·1운동의 해외 확산
          • 1) 중국 만주
            • (1) 북간도의 시위운동
            • (2) 서간도의 시위운동
          • 2) 러시아 연해주
            • (1) 러시아혁명과 연해주 한인들의 독립운동
            • (2) 파리 강화회의 대표파견
            • (3) 전로국내조선인회의
            • (4) 독립선언과 시위운동의 전개
            • (5) 국내진공 계획과 노인동맹단의 독립운동
          • 3) 미주
        • 4. 3·1운동의 영향과 의의
          • 1) 3·1운동에 대한 열강의 반응
            • (1) 중국
            • (2) 미국
            • (3) 영국
          • 2) 3·1운동의 역사적 의의
            • (1) 3·1운동의 민족사적 의의
            • (2) 3·1운동의 세계사적 의의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해방과 평등의 새로운 사조 등장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 사이 서구 산업사회는 社會進化論이 각종 사회불평등과 인종적 불평등을 합리화하면서 제국주의적 침략과 군국주의적 확장을 뒷받침하였다.580) 이런 사회진화론은 전 세계적인 추세를 이루어 서구 산업국가들에서는 강자의 권리만을 인정하고 약자의 패배를 자연의 법칙으로 설명하는 이데올로기 기능을 하는 반면, 동양의 일본, 한국에서는 그들 국가가 처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입장과 요구에 따라 매우 독특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초기에 문명화의 법칙성과 일본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는 이론으로 환영받았다가 1880년대 들어서면서 근대 자연권 사상과 국민주권론을 부정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면서 국가 유기체설과 결합하여 봉건절대군주인 천황의 권위와 그 관료지배체제를 강화해 주는 이론으로 기능하게 되고, 이것이 후에 ‘가족국가’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면서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확산을 이론적으로 변호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581)

 중국에서는 일본보다 조금 늦게 1880년대 중엽에 수용되었는데, 중국 지식인 가운데 일본에서 망명생활하는 중에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많았다. 중국의 경우 생존경쟁적 국제사회의 현실 속에서 외부와 경쟁하기 위해 내부적 단합을 최우선시하며, 근대화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수용되었다. 중국에서는 일본과 달리 전제군주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국가주권설과 입헌국가 설립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제한적이나마 民權의 확대를 주장하며,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에서 국가방위를 위한 국민통합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하였다.582)

 한국에서의 사회진화론은 동아시아에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세력확장이 본격화되면서 서구의 부와 물질문명, 강력한 군사력에 강한 충격을 받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항하여 국가의 독립과 부국강병을 이룩하기 위한 방편으로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 한말 한국 지식인들은 서구 부강의 원동력과 한국의 낙후 원인을 밝혀 국가의 독립과 근대화를 위한 이론적 수단으로서 사회진화론을 수용하였다. 그러므로 서구에서 사회진화론이 발전해 온 사상사적 배경과 이론적 문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자의적이고 희망적인 이해와 평가에 따라 변형하여 사회진화론을 해석하고 적용하였다. 따라서 한국에서 사회진화론은 강자의 권리를 정당화하는 서구의 이데올로기에서 약자가 강자가 되기 위한 의식적 행동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변형되어 실력양성운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며, 애국계몽운동을 통해 근대적 국가사상과 민권사상을 보급하는 데 기여하였다.583)

 한편에서 사회진화론은 일본 제국주의와 그 침략을 정당화하는 기능도 수행했다. 친일파들은 진화론을 빌어서 당시의 국제환경을 황인종과 백인종의 인종싸움 시기로 단정하고, 황인종 사이의 반목은 백인종의 아시아 침략과 그 지배를 초래하게 된다는 명목 아래 반일민족운동에 대한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거나 희석시키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나아가 친일적 인사들은 일본을 맹주로 하는 황인종의 단결을 주장하고, 독립보다는 한반도의 근대화가 긴박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일본과의 연대의 필요성을 정당화하였다.584)

 1910년 국권을 상실하게 되면서 사회진화론의 미몽에서 깨어나고자 하는 각성이 일어났다. 신민회를 중심으로 한 애국계몽주의자들은 사회진화론 가운데 ‘근대문화 지상주의’적 입장보다 경쟁을 중시하는 측면에서 사회진화론을 수용하고 자력으로 독립을 쟁취할 것과, 실력양성과 함께 애국정신을 고취하고, 일제의 침략논리인 ‘동양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하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직 사회진화론적 사고와 논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585)

 사회진화론에 대한 더 근본적인 대안으로 모색된 것은 大同思想의 재발견을 통해서였다.≪禮記≫禮運篇의 대동사회에 대한 묘사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사회의 표본으로서 전통적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이를 근대에 들어와 체계화한 것은 淸末 康有爲에 의해서였다. 그의 사상에는≪예기≫예운편의 大同小康說과 더불어 불교의 자비평등설, 루소의 천부인권설, 기독교의 평등자유설, 유럽 사회주의 학설 등 다양한 요소를 받아들여, 한편에서는 진화와 발전을 선전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진화의 비약적이고 혁명적인 발전에 대해 반대하였다. 즉 제국주의 침략에 직면한 중국이 전통적 체제를 유지하는 한도내에서 개량을 통해 중국의 근대화를 추구하였다.586) 강유위의 대동사상은 한말에 梁啓超의 저술을 통하여 부분적으로 국내에 소개되어 한국 지식인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 朴殷植은 1910년 국권상실을 전후한 시기에 강유위의 대동사상의 영향을 받아 優勝에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優勝劣敗의 질서 즉 정치권력적 국제질서에 대해 도덕적 측면에서 사회진화론을 부정하였다. 그는 1909년<儒敎求新論>에서 공자의 대동사상, 맹자의 民爲重說을 통해 전통 유교가 평등적·민주적·민중적 유교로 발전할 것을 주장하며 우승열패·약육강식의 사회진화론적 사고를 부정하였다. 그의 대동사상은 1911년<夢拜金太祖>에서 현재의 민족경쟁·국가경쟁시대에서 하등사회로 하여금 상급사회로 진보케 하는 평등사회를 이룩하는 것이 진화의 공리라 하였으며, 제국주의·강권주의를 정복하여 세계인권의 평등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한국인의 당면과제이며, 한국인은 평등주의의 선봉에 서야한다고 주장하였다.587) 이러한 대동사상에 바탕하여 그는 1909년 9월 李範圭·張志淵·元泳儀·趙琬九 등과 함께 大同敎를 창건하였다. 申采浩나 素昻 趙鏞殷도 대동사상에 입각하여 국가·민족·계급사이의 불평등을 배격하는 평등주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평등주의적 사상의 전개는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사회진화론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588)

 이러한 대동사상은 사회진화론을 극복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는데 그것은 약육강식·우승열패의 원칙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함으로써 사회진화론의 부정은 현실적인 의미를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의식상의 한계는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대동사상이 社會改造·社會改造論과 결합됨으로써 극복하게 되었다.589)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세계 지성계에 큰 충격과 함께 각성을 가져와 힘이 지배하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병폐에 눈을 뜨고, 정의·인도의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로망 롤랑(Romain Rolland),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 등이 사회개조·세계개조론을 제기하며 사회진화론을 비판하고, 정의·인도·박애·자유·평등을 표방하였다. 한국의 지식인들도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에 충격을 받고 사회개조·세계개조의 사상을 수용하기 시작하여, 사회개조·세계개조론이 대동사상과 결합하여 1917년 7월 신규식·조소앙·박은식·박용만·신채호 등에 의해<대동단결 선언>로 나타났다.<대동단결 선언>은 독립과 평등을 성스러운 권리라고 함으로써 강자에 의한 약자의 지배를 부정하였다.590) 1918년 11월 28일 창립되어 3·1운동의 단서를 열기 시작한 상해의 신한청년당 黨綱에서 사회개조와 세계대동을 천명했다.591)

 한편 세계대전이 총력전의 양상으로 전개됨에 따라 연합국과 동맹국들은 여론의 강력한 지지를 유도하기 위해 전쟁의 목표를 보다 숭고하고 고원한 이념으로 승화시켜 제시하기에 바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을 ‘민족적 존립’을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선전하였으며, 미국의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은 1916년 5월 27일부터 항구적인 평화를 위한 국제기구의 필요성과 함께 “모든 국민은 그들이 속해 살 주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민족자결주의를 제시하기 시작하였다.592) 1917년 2월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혁명으로 제정러시아가 붕괴하자 연합국들은 이 대전을 민주주의와 군국주의적 전체주의의 대결로 규정할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 볼세비키 정권은 1917년 말 무병합·무배상에 기초한 공정하고 민주적인 강화와 러시아 내 소수민족의 자결선언, 비밀외교 폐지를 주장하여 참전국 국민들과 피압박 민족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593) 이런 볼세비키 정권의 외교정책에 대항하여 연합국측의 ‘평화의 원칙’을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14개조 평화원칙>을 공표했다. 여기에는 공개적인 평화조약, 비밀조약의 폐지, 군축, 해양자유의 원칙, 국제통상의 평등주의, 민족자결, 국제연맹의 창설 등이 포함되었는데, 이러한 원칙은 연합국측의 이념으로서 전세계에 선전되었다. 그러므로 러시아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 붕괴, 주축국 오스트리아·독일·터어키 등 전체주의적 군국주의 국가의 패전과 연합국측의 민족자결주의 등으로 세계는 바야흐로 해방·자유와 평등·민주주의가 세계를 풍미하게 되었다.594)

 이 가운데 제국주의적 국제질서를 부정하고, 약소국의 민족자결을 주장하자 사회진화론적 사고에서 탈피하고자 하고 있던 한국인들은 ‘세계개조의 신시대’가 눈앞에 전개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개조·세계개조론’은 가장 먼저 발표되었다고 알려진 만주에서의<대한독립선언서>에도 반영되어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을 부정하고, 대동사상에 입각하여 모든 사람이 평등한 대동사회를 건설할 것”을 주장하였으며,595) 서울에서의 민족대표<독립선언서>에서 “신천지가 眼前에 전개되도다. 위력의 시대가 去하고 도의의 시대가 來하도다 … ”고 표명하게 된 것도 이러한 세계 사상계의 변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580) 전복희,≪사회진화론과 국가사상≫(한울 아카데미, 1996), 185쪽.
581) 전복희, 위의 책, 186쪽.
582) 전복희, 위의 책, 187책.
583) 전복희, 위의 책, 188∼189쪽.
584) 전복희, 위의 책, 189쪽.
585) 李浩龍,≪한국인의 아나키즘 受用과 展開≫(서울대 박사학위논문, 2000), 20∼21쪽.
586) 이호룡, 위의 책, 24쪽.
587) 이호룡, 위의 책, 25쪽.
588) 이호룡, 위의 책, 26쪽.
589) 이호룡, 위의 책, 27쪽.
590) 이호룡, 위의 책, 30쪽.
591)≪신한청년≫창간호(1920년 3월),<신한청년당>, 78쪽.

≪독립신문≫, 1920년 2월 5일.
592) 이만열,<민족운동과 민족자결주의>(≪한민족독립운동사≫11, 국사편찬위원회, 1992), 263쪽.
593) 이만열, 위의 글, 264쪽.
594) 이만열, 위의 글, 265∼266쪽.
595) 이호룡, 앞의 책, 32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