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1. 문화정치의 실상3) 친일세력의 양성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1. 문화정치의 실상
          • 1) 경찰기구의 강화
            • (1) 보통경찰제의 확립
            • (2) 신간부의 선정과 보통경찰의 기능
          • 2) 지방제도의 개편
            • (1) 동화정책하의 참정권 문제
            • (2) 지방제도의 개편과 자문기구의 설치
            • (3) 면제의 운영과 촌락정책의 실상
          • 3) 친일세력의 양성
            • (1) 친일과 협력이란 개념
            • (2) 친일파의 육성과 이용책
            • (3) 친일단체의 조직
        • 2. 수탈체제의 강화
          • 1) 총독부 산업정책의 전환
          • 2) 농업―산미증식계획
          • 3) 공업
            • (1) 식민지 공업구조의 형성
            • (2) ‘민족자본’과 조선인 자본
          • 4) 재정·금융
            • (1) 재정
            • (2) 금융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1. 임시정부의 수립과 초기 활동
          • 1) 임시정부 수립의 배경
            • (1) 세계대전의 종전과 민족자결주의
            • (2) 정부수립운동과<대동단결선언>
          • 2) 임시정부의 수립과 통합
            • (1) ‘국민대회’와 국내 정부수립운동
            • (2) 상해 임시정부의 성립
            • (3) ‘통합’ 임시정부의 출범
          • 3) 임시정부의 초기활동
            • (1) 외교·선전활동
            • (2) 국내조직과 활동
            • (3) 군사외교와 독립전쟁 준비
        • 2. 임시정부와 국민대표회의
          • 1) 국민대표회의 소집론과 ‘정부옹호파’의 반대운동
            • (1) 국민대표회의 소집배경과 참가세력
            • (2) 정부옹호파의 국민대표회 반대운동
            • (3) 제10회 임시의정원
          • 2) 국민대표회의의 전개 과정
            • (1) ‘비공식회의’와 제11회 임시의정원
            • (2) ‘삼방회의’와 국민대표회의의 결렬
          • 3) 국민대표회의에서의 쟁점
            • (1) 국민대표회의의 적법·부적법 문제
            • (2) ‘임정존폐’ 문제와 ‘임정법통론’
        • 3. 임시정부와 유일당운동
          • 1) 유일당운동의 배경과 계기
          • 2) 유일당운동의 추진과 임시정부의 개헌
            • (1) 임시정부 중심의 대당결성 주장
            • (2)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 결성
            • (3) 임시정부 개헌과 한국유일독립당상해촉성회 결성
            • (4) 의열단의 선언과 광동·무한·남경촉성회 결성
          • 3) 유일당운동의 발전과 임시정부 참여
            • (1)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의 결성
            • (2) 전위조직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의 성립
          • 4) 유일당운동의 중단과 임시정부의 여당 결성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1. 독립군의 편성과 국내진입작전
          • 1) 시대적 배경
          • 2) 독립군의 편성
            • (1) 북간도지역
            • (2) 서간도지역
          • 3) 국내진입작전의 전개
            • (1) 독립군의 전력강화
            • (2) 국내진입작전
        • 2. 봉오동승첩과 청산리대첩
          • 1) 봉오동승첩
            • (1) 삼둔자전투
            • (2) 봉오동승첩
          • 2) 청산리대첩
            • (1) 일본군의 간도 침공
            • (2) 독립군의 근거지 이동
            • (3) 독립군의 전투준비
            • (4) 청산리대첩
            • (5) 청산리대첩의 전과와 의의
        • 3. 경신참변과 자유시사변
          • 1) 독립군의 북정
          • 2) 경신참변
          • 3) 자유시사변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1. 통의부의 결성과 활동
          • 1) 통군부의 성립과 남만한족통일회의
          • 2) 통의부의 결성과 활동
        • 2. 3부의 성립과 활동
          • 1) 참의부의 성립과 활동
          • 2) 정의부의 성립과 활동
          • 3) 신민부의 성립과 활동
        • 3. 재만 독립운동단체의 민족유일당운동
          • 1) 민족통일전선운동의 대두
          • 2) 3부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1. 의열투쟁의 의미맥락
        • 2. 의열투쟁 본격화의 배경과 계기
        • 3. 3·1운동 직후와 1920년대의 의열투쟁
          • 1) 3·1운동 직후와 1920년의 의열투쟁
          • 2) 1921년 이후의 의열투쟁 양상과 추이
            • (1) 의열단의 국내외 투쟁
            • (2) 재만 독립군의 국내외 의열투쟁
            • (3) 병인의용대의 의열투쟁
            • (4) 개인 단독의거의 흐름과 사례들
        • 4. 1930년대와 일제말의 의열투쟁
          • 1) 한인애국단의 의열투쟁
            • (1) 이봉창의 동경의거
            • (2) 상해거사의 추진과 윤봉길 의거
            • (3) 국내·만주거사 계획의 추진
          • 2) 재중국 아나키스트들의 의열투쟁
          • 3) 한국혁명당총동맹과 남자현의 의열투쟁
          • 4) 상해와 북경에서의 밀정·친일배 처단 활동
          • 5) 한국독립당과 민족혁명당의 의열투쟁
          • 6) 국내 의열투쟁의 불연속성과 지구성
        • 5. 일제 강점기 의열투쟁의 특징과 역사적 의의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친일단체의 조직

 조선총독부에서는 시정일반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인을 선별하여 또는 조선인 단체를 선별하여 지원금을 대여하고 그들을 육성하였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조선인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동화·친일정책은 매우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3·1운동 직후≪京城日報≫에서 발간한≪朝鮮騷擾の眞相≫에서는 “조선인의 광범위한 저항은 총독정치, 식민지 통치에 대한 조선인의 무지와 이를 알리기 위해서는 온건한 인물을 키워 새로운 정치의 이해를 꾀하여야 한다”고 하였다.127) 이러한 가운데 일제는 개인의 효용성과 단체의 효용성을 두고 후자가 좀더 조직적인 친일활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일진회와 같은 각종 친일단체를 설치하였다. 친일단체란 식민지 한국에서 조선총독부 및 일본정부의 사주·지원으로 조직된 어용적·반민족적 결사를 말한다. 총독부가 친일단체의 조직에 관심을 보인 것은 사이토가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부터이다.

당국의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만으로는 흑백을 가리기 어렵고 또한 흑백이 선명하게 가려지지 못한 결과로 압박정치라는 따위의 비난이 높아가는 것은 본의가 아니다. 따라서 이 기회에 일반 인민의 거취를 분명히 밝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믿을 수 있는 민간 유지를 시켜 은밀히 조선인 가운데 우리와(일본)와 같은 이상과 정신을 지니고 신명을 걸고 일을 해줄 핵심인물을 골라낸다. 다시 이 인물로 하여금 귀족·양반·유생·갑부·실업가·교육가·종교가 등에게 각 계층과 사정에 따른 각종 친일단체를 조직하게 하고 이에 얼마간의 편의와 원조를 주어 충분히 활동하게 한다(朝鮮總督府,<朝鮮民族運動に對する對策>,≪齋藤實文書≫4).

 이러한 친일단체를 조직하게 된 것은 조선인의 저항을 미연에 방지하고 폭넓은 지지세력을 만들기 위함이었다.128) 즉 식민지 각계각층에 침투하여 조직적으로 동화정책을 시행하는 데 친일단체는 매우 유용하였다. 이렇게 해서 조직된 단체는 국내의 國民協會·矯風會·大東同志會·大正親睦會·維民會·小作人相助會·大東斯文會·商務社·相愛會·甲子俱樂部·同友會 등이며, 국외 특히 만주에서는 保民會·朝鮮人民會 등이 활동하였다. 이 가운데 조선총독부의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으면서 친일행위를 전개한 대표적인 단체는 국민협회이다.

 국민협회는 1919년 8월 1일 閔元植이 세운 協成俱樂部를 개칭하여 친일단체로 전환한 것이다. 1920년 1월 경무국 사무관 마루야마 쓰루기치(丸山鶴吉)의 지원으로 조직되었다. 회장 민원식은 일본 수상 하라의 내지연장주의에 기대어 조선의 자치청원운동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면서 친일여론을 조성하였다. 특히 민원식은 참정권 청원운동에 진력하면서 일본의 자금혜택으로 친일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가장 먼저 처단할 인사로 민원식을 지목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행위는 친일의 전형적인 형태로 표출되었다.129) 이른바 신일본주의를 주창하면서 일제의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고 나아가 조선인의 각성을 촉구하는 등의 행위를 하였다.130) 하지만 국민협회도 민원식이 梁槿煥에게 암살당한 이후 그 활동은 급격하게 퇴조하였다.131) 당시 국민협의의 대표적인 구성원은 金明濬·鄭丙朝·金甲淳·韓永源·李炳學·金錫永·申錫雨·朴鳳柱 등이었으며, 후일 有志聯盟의 조직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다음으로 평양에 본부를 두고 활동한 大東同志會를 들 수 있다. 평안남도 지방은 일본에 대한 저항의식과 저항운동이 강한 지역이므로 일제로서는 이 지역에 대한 잠재적인 저항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전 통감부 간도파출소 핵심인사였던 평남지사 시노타 지사쿠(篠田治策)의 지원 아래 선우순과 羅一鳳·金興健 등에게 대동동지회를 조직케 하였다.132) 대동동지회의 친일행위는 주로 강연과 선전에 의존하였다. 즉 친일여론을 모으기 위하여 조선민중이 최후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일본 통치에 달려있다고 하는 조선총독부의 新政을 알리는 데 주력하였다.133) 하지만 평양에 본부를 두었기 때문에 그 이외의 지방에까지 세력을 넓히는 일은 어려웠다.

 한편 일제는 대지주 및 기업가를 포섭하고 보다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維民會를 설치하였다. 또한 지역 유생들을 친일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대동사문회·儒道振興會를 설치하였다. 유도진흥회는 1920년 1월 16일 서울 및 지방 유림 88명이 서울에 모여 조직한 단체이다. 이 단체는 양주·남양·장단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지회가 설치되었으며, 각 도지사 역시 적극적인 지원을 하였다. 유도진흥회의 설립목적은 “유도를 진흥해서 피폐된 유풍을 되살리고 동양도덕의 진원을 발휘하여 민심의 안정”을 꾀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이는 조선총독부의 식민통치와 부합되는 것으로 金榮漢 등을 중추원의 참의로 우대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단체는 친일유생을 이용하여 각 지역의 민중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134)

 또한 일제는 보부상 단체인 商務社를 이용하여 식민지인에 대한 민간 감시체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한국 근대사에서 보부상 집단은 주로 어용적·반민족적·전근대적 존재로 인식되었다. 이에 사이토 총독은 보부상을 상무사로 바꾸어 대민감시를 강화하였던 것이다. 당시 인물로는 李寅榮·金光熙·李址鎔·구연수 등이었다. 그러나 이 단체에 대한 민중의 반감은 매우 격렬하였으며 활동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1920년대 국내에서는 민족주의세력과 사회주의세력이 성장하면서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일제는 이 대항책으로서 탄압과 회유를 목적으로 위축된 친일파 연합을 추진하였다. 이렇게 하여 조직된 각파유지연맹은 1924년 1월 발기인대회를 통해 4월 11일 경성호텔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135) 즉 국민회의·조선소작인상조회·유민회·동광회·노동회·조선경제회·교풍회·노동상애회·대정친목회·동민회·유도진흥회·청림교 등 12단체가 연합하여 친일단체를 조직하였다. 이 연맹은 일본과 조선의 융합에 힘쓰며 한일합병의 대원칙하에 두 민족이 영원한 행복, 발전을 위해 일치단결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서는 과격사상의 배격, 총독정치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야 한다고 하였다. 이들 단체는 사회주의 사상의 만연과 이를 통한 식민지인의 저항이 광범위하게 전개될 것을 우려한 일제에 의해 조직된 허수아비 단체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많은 조선인들은 허울좋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매몰되어 자기 민족을 가혹한 식민통치의 수탈구조에 고착시켰다.

 일본제국주의는 이러한 친일단체를 통하여 조선민중에게 민족개량주의 사상을 침투시켜 식민지 지배에 협력시키려고 하였다. 이 부르주아 상층부는 식민지 지배의 달콤한 유혹에 현혹되어 독립시기상조론 및 독립불능론을 주장하면서 적극적인 저항운동은 펼칠 수 없었다.136)

<尹海東>

127)加藤房藏,≪朝鮮騷擾の眞相≫(京城日報社, 1920), 100∼101쪽.
128)친일단체에 대해서는 姜東鎭, 앞의 책, 220∼264쪽.
129)姜東鎭, 위의 책, 221쪽.
130)≪新韓民報≫, 1920년 7월 22일,<소위 신일본주의파의 망동>.
131)민원식이 양근환에게 피살된 사건은 일부 일본 지도자의 동정을 받았으며, 同和에 종사하는 친일파의 중대한 위협이라고 강조하였다(≪帝國議會衆議院議事速記錄≫4, 153쪽).
132)朝鮮總督府,≪朝鮮統治秘話≫, 143쪽.

姜東鎭, 앞의 책, 223쪽.
133)≪新韓民報≫, 1921년 6월 23일,<양적의 백두활동>.
134)姜東鎭, 앞의 책, 227∼230쪽.
135)발기인대회 참석한 인물은 金明濬·李炳烈·姜麟祐·南相一·金丸·李東雨·이희간·고희준·박병철·김동진·나홍석·이철호·이동혁·채기두·이풍재·유병룡·문택·박해원·유문환·유병필·김중환·정홍진·예종석·천영기·신석린·김상우·박춘금 등이다(姜東鎭, 위의 책, 248∼249쪽).
136)朴慶植, 앞의 책, 210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