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1. 임시정부의 수립과 초기 활동2) 임시정부의 수립과 통합(1) ‘국민대회’와 국내 정부수립운동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1. 문화정치의 실상
          • 1) 경찰기구의 강화
            • (1) 보통경찰제의 확립
            • (2) 신간부의 선정과 보통경찰의 기능
          • 2) 지방제도의 개편
            • (1) 동화정책하의 참정권 문제
            • (2) 지방제도의 개편과 자문기구의 설치
            • (3) 면제의 운영과 촌락정책의 실상
          • 3) 친일세력의 양성
            • (1) 친일과 협력이란 개념
            • (2) 친일파의 육성과 이용책
            • (3) 친일단체의 조직
        • 2. 수탈체제의 강화
          • 1) 총독부 산업정책의 전환
          • 2) 농업―산미증식계획
          • 3) 공업
            • (1) 식민지 공업구조의 형성
            • (2) ‘민족자본’과 조선인 자본
          • 4) 재정·금융
            • (1) 재정
            • (2) 금융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1. 임시정부의 수립과 초기 활동
          • 1) 임시정부 수립의 배경
            • (1) 세계대전의 종전과 민족자결주의
            • (2) 정부수립운동과<대동단결선언>
          • 2) 임시정부의 수립과 통합
            • (1) ‘국민대회’와 국내 정부수립운동
            • (2) 상해 임시정부의 성립
            • (3) ‘통합’ 임시정부의 출범
          • 3) 임시정부의 초기활동
            • (1) 외교·선전활동
            • (2) 국내조직과 활동
            • (3) 군사외교와 독립전쟁 준비
        • 2. 임시정부와 국민대표회의
          • 1) 국민대표회의 소집론과 ‘정부옹호파’의 반대운동
            • (1) 국민대표회의 소집배경과 참가세력
            • (2) 정부옹호파의 국민대표회 반대운동
            • (3) 제10회 임시의정원
          • 2) 국민대표회의의 전개 과정
            • (1) ‘비공식회의’와 제11회 임시의정원
            • (2) ‘삼방회의’와 국민대표회의의 결렬
          • 3) 국민대표회의에서의 쟁점
            • (1) 국민대표회의의 적법·부적법 문제
            • (2) ‘임정존폐’ 문제와 ‘임정법통론’
        • 3. 임시정부와 유일당운동
          • 1) 유일당운동의 배경과 계기
          • 2) 유일당운동의 추진과 임시정부의 개헌
            • (1) 임시정부 중심의 대당결성 주장
            • (2)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 결성
            • (3) 임시정부 개헌과 한국유일독립당상해촉성회 결성
            • (4) 의열단의 선언과 광동·무한·남경촉성회 결성
          • 3) 유일당운동의 발전과 임시정부 참여
            • (1)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의 결성
            • (2) 전위조직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의 성립
          • 4) 유일당운동의 중단과 임시정부의 여당 결성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1. 독립군의 편성과 국내진입작전
          • 1) 시대적 배경
          • 2) 독립군의 편성
            • (1) 북간도지역
            • (2) 서간도지역
          • 3) 국내진입작전의 전개
            • (1) 독립군의 전력강화
            • (2) 국내진입작전
        • 2. 봉오동승첩과 청산리대첩
          • 1) 봉오동승첩
            • (1) 삼둔자전투
            • (2) 봉오동승첩
          • 2) 청산리대첩
            • (1) 일본군의 간도 침공
            • (2) 독립군의 근거지 이동
            • (3) 독립군의 전투준비
            • (4) 청산리대첩
            • (5) 청산리대첩의 전과와 의의
        • 3. 경신참변과 자유시사변
          • 1) 독립군의 북정
          • 2) 경신참변
          • 3) 자유시사변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1. 통의부의 결성과 활동
          • 1) 통군부의 성립과 남만한족통일회의
          • 2) 통의부의 결성과 활동
        • 2. 3부의 성립과 활동
          • 1) 참의부의 성립과 활동
          • 2) 정의부의 성립과 활동
          • 3) 신민부의 성립과 활동
        • 3. 재만 독립운동단체의 민족유일당운동
          • 1) 민족통일전선운동의 대두
          • 2) 3부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1. 의열투쟁의 의미맥락
        • 2. 의열투쟁 본격화의 배경과 계기
        • 3. 3·1운동 직후와 1920년대의 의열투쟁
          • 1) 3·1운동 직후와 1920년의 의열투쟁
          • 2) 1921년 이후의 의열투쟁 양상과 추이
            • (1) 의열단의 국내외 투쟁
            • (2) 재만 독립군의 국내외 의열투쟁
            • (3) 병인의용대의 의열투쟁
            • (4) 개인 단독의거의 흐름과 사례들
        • 4. 1930년대와 일제말의 의열투쟁
          • 1) 한인애국단의 의열투쟁
            • (1) 이봉창의 동경의거
            • (2) 상해거사의 추진과 윤봉길 의거
            • (3) 국내·만주거사 계획의 추진
          • 2) 재중국 아나키스트들의 의열투쟁
          • 3) 한국혁명당총동맹과 남자현의 의열투쟁
          • 4) 상해와 북경에서의 밀정·친일배 처단 활동
          • 5) 한국독립당과 민족혁명당의 의열투쟁
          • 6) 국내 의열투쟁의 불연속성과 지구성
        • 5. 일제 강점기 의열투쟁의 특징과 역사적 의의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나. ‘경성독립단본부’와 신한민국정부

 국민대회 당일 서울 종로 일대에 배포된 문건은<임시정부선포문>·<국민대회취지서>·<선포문>의 3종이었다.209) 앞의 두 문건은 국민대회 추진세력이 배포한 것이고<임시정부선포문>은 ‘조선민족대회’의 명의로 배포된 것으로<임시정부령>제1호와 제2호가 附記되었다. 문건을 작성하고 배포한 주체가 서로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임시정부선포문>이 어떤 경위로 국민대회 당일 한성정부 문건들과 함께 배포되었을까. 여기서 이 문건이 1919년 4월 15일 경 평안북도 철산·선천·의주 일대에 살포된 ‘신한민국정부’의 선포문건과 함께 배포되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신한민국정부 관계 선포문건으로는<신한민국정부 선언서>,<각원명단>,<경제적 공약>,<약법>(미 발견) 등이 있는데,210) 이 중 각원명단은 다음과 같다.

집정관 李東輝, 국무총리 李承晩, 내무부장 (미정) 차장 曺成煥, 외무부장 朴容萬, 차장 金奎植, 재정부장 李始榮, 차장 李春塾, 교통부장 文昌範, 차장 李喜儆, 노동부장 安昌浩, 차장 閔瓚鎬.

 이들 신한민국정부의 문건이 4월 23일 국민대회에서 한성정부의 문건을 배포할 때 학생조직에게 전해지고 있음은 흥미롭다. 국민대회 사건으로 체포된 이춘균에 대한 공판에서 검사는 1919년 3월 30일 경 학생조직의 리더인 김유인의 지시에 따라 ‘임시정부에 관한 불온문서’을 수령하러 갔었는지를 추궁했다.211)

 이춘균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신의주를 갔었던 것은 사실이고 또 국민대회 당일 시위투쟁의 한 당사자인 장채극이<임시정부선포문>을 이춘균에게서 받아 김유인에게 주었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검사의 추궁은 어느 정도 사실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가 이를 부인한 것은 의주에서 자신이 가져온 문건 가운데 국민대회 당일 배포되지 않은 문건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바로 신한민국정부의<각원 명단>과<7개조의 약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김유인이 이춘균으로부터 받은 문건 속에는 국민대회 당일 배포된<임시정부선포문>외에도 신한민국정부의<각원명단>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전자만 배포하고 후자는 배포하지 않았다. 배포한 문건도 이춘균이 장채극에게 준 것을 김유인이 받아 바로 인쇄한 것이 아니라 시기를 기다려 국민대회 당일에 임박해서야 인쇄,212) 한성정부의 문건과 함께 배포했던 것이다. 이들이 임시정부의 각원명단을 배포하지 않은 것은 한성정부 추진세력과 신한민국정부 추진세력 사이의 협상이 결렬되었기 때문이었다.213)

 국민대회 당일 한성정부 선포문건과 별도의<임시정부선포문>을 배포한 주체가 신한민국정부 수립을 주도한 세력과 동일하다는 사실은 이들이 단순한 전단정부가 아님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이들은 누구이고, 이들이 국민대회에 개입하는 경위는 어떠한가.

(1919년) 4월 8일 임시관제를 발포하다.

동일 경성독립단본부 姜大鉉은 이동휘를 집정관으로 한 각원명부 및 임시정부헌법 초안을 휴대하고 상해에 도착하다(外務省警察史 支那之部,≪朝鮮民族運動史(未定稿)≫제1권, 고려서림 영인본, 1989, 87쪽;國史編纂委員會,≪韓國獨立運動史 資料4:臨政編Ⅳ≫, 1968, 207∼208쪽;桂奉瑀,≪朝鮮歷史≫卷之三 원고본, 1952, 67∼68쪽).

 이 기사는 서울에 이승만을 ‘집정관총재’로 한 한성정부가 아닌 이동휘를 집정관으로 하는 다른 정부가 이미 조직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앞서 본대로 3·1운동 뒤 국내에서 선포된 임시정부 가운데 신한민국정부만이 이동휘를 집정관으로 한 정부였다. 따라서 姜大鉉이 상해로 가져왔다는<각원명단>과 <헌법초안>은 신한민국정부의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서 문제는 강대현이 상해로 가져왔다는<각원명단>이 신한민국정부와 동일한지의 여부이다.

獨立新報 號外 기원 4252년 4월 10일

京城電, 昨日 下午 10시에 來한 特電을 據한즉 경성셔 우리 臨時政府가 如左히 組織되얏다더라.

집정관 李東輝, 총리 李承晩, 내무총장 安昌浩, 차장 曺成煥, 외무총장 朴容萬, 차장 金奎植, 재무총장 李始榮, 차장 李春塾, 교통총장 文昌範〔차장 玄楯〕(≪獨立新報≫제9호, 1919년 4월 10일, 號外;日本外務省史料館,≪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ノ部新聞雜誌≫, 국사편찬위원회 마이크로필름, 분류번호 4門-3類-2項-2-1-1).

 강대현이 상해로 가져온<각원명단>이 이것과 동일하다는 사실은 1919년 4월 11일 상해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이루어진 각원 선출과정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獨立新報≫호외에 실린 이 각원명단은 4월 22일 북간도에서 발행된≪우리들의 편지≫(제12호)에도 全文이 게재되었다.214)

 문제는 경성독립단본부가 왜 4월 23일의 국민대회가 있기도 전에 서둘러 정부가 수립된 사실과 각원의 명단을 공표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한민국정부의 각원명단과 이것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강대현이 소지한 경성독립단본부案과 신한민국정부안이 다른 점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신한민국정부의 내무부장이 공석인 반면 경성독립단본부안은 ‘내무총장’이 안창호로 되어 있다. 둘째 신한민국정부에서 교통차장은 이희경인데 경성독립단본부안은 현순으로 되어 있다. 셋째 신한민국정부는 노동부장에 안창호, 차장에 민찬호인데 경성독립단본부안에는 노동부가 없고 신한민국정부의 노동부장 안창호는 경성독립단본부안에 내무총장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강대현이 가져온 경성독립단본부의<각원명단>은 신한민국정부안을 토대로 만든 것으로 판단된다. 신한민국정부에 공석인 내무부장은 후자에 안창호로 補任되고 있으므로 안창호가 부장으로 되어있는 신한민국정부의 노동부는 직제 자체가 폐지된 것이다. 남은 문제는 신한민국정부의 교통차장 이희경이 여기서는 현순으로 바뀌어 있다는 점과 신한민국정부 각원의 직명이 ‘부장’과 ‘총장’으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전자와 관련하여 이춘숙의 행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신한민국정부와 강대현이 상해로 가져온<각원명단>에 공통적으로 재무(재정)차장에 올라 있다. 더욱이 각원명단의 인물중 국내에 있었던 인물은 이춘숙 밖에 없었다. 그는 국민대회 직전까지 서울에서 임시정부 수립운동에 참여하고 한성정부 조직을 주도한 이규갑·홍면희·한남수 등에 한발 앞서 상해로 건너간 뒤215) 임시의정원의 성립에도 관여했다. 이 점은 신한민국정부와 경성독립단본부 명의의 수립주체가 동일하다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그의 활동은 文昌範·尹海 등 노령지역 민족운동 세력과도 연계되었다. 이춘숙은 이들과의 약속에 따라 국내에 들어와 일본유학생 출신들과 접촉하였고, 洪濤를 표면에 내세워 활동했다.216) 홍도는 국내에서 이봉수와 접촉했다. 이봉수는 함남 홍원 출신으로 명치대학 상과에 재학중이었고 홍도와는 명치대학의 선후배 사이였다.217) 이봉수는 상해와 국내를 오가며 독립임시사무소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이들은 신숙을 통해 국민대회 쪽과 통합을 시도했다.218)

 홍도와 이봉수 등은 신한민국정부案을 토대로 홍면희·이규갑 등 국민대회측과 통합, 이를 선포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교섭 과정에서 이들은 국민대회의 배후에 현순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교통차장이 이희경에서 현순으로 바뀐 것은 국민대회쪽을 의식한 결과였다. 각원 명칭에서 ‘부장’이 ‘총장’으로 바뀐 것도 한성정부와 타협의 소산이었다.

 그러나 통합 협상은 국민대회 개최일자에 대한 이견으로 결렬되었다. 한성정부 추진세력은 4월 8일 경에 열 것을 주장한 반면, 홍도는 그 이후를 고집했다.219) 홍도의 주장은≪독립신보≫호외의 보도일자(1919. 4. 9), 혹은 강대현의 상해 도착일자(1919. 4. 8)와 관련하여 주목을 끈다.

 이봉수의 행적도 주목된다. 독립임시사무소의 대변인을 자임했던 이광수는 3·1운동 지도자들이 남겨놓은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이봉수를 서울에 파견했다. 이봉수는 홍도와 국민대회와의 접촉 직전에 상해로 돌아와 자신은 ‘경성독립단본부’의 파견으로 “가정부를 조직하라”는 사명을 띠고 상해에 온 것이라고 했다. 이에 독립임시사무소에서는 이봉수에게 “ⓛ (경성독립단) 본부로서 (임시정부를) 조직함이 가한 것과 ② 파리대표에게 신임이 긴급함과 ③ 국민통일 관계로 정부를 속히 조직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이봉수를 다시 서울로 보냈다.220)

 그가 다시 서울에 도착한 것은 4월 3일의 협상이 결렬된 직후였다. 협상이 결렬되었음을 확인한 홍도와 이봉수는 4월 8일 이전에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홍면희·한남수 등이 국민대회를 4월 8일 전후로 계획해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강대현이 ‘경성독립단본부’의 임시정부<각원명단>과<헌법초안>을 가지고 서둘러 한성정부측보다 먼저 상해로 건너간 것이다. 강대현은 4월 8일에 상해에 도착할 수 있었다.

209)<獨立運動에 關한 不穩文書 發見의 件>, 1919년 4월 24일, 騷密第783號(국회도서관,≪韓國民族運動史料≫三一運動篇 其三), 323쪽.
210)姜德相 編,≪現代史資料≫26:三一運動編二(みすず書房, 1972), 70쪽.

金正明 編,≪朝鮮獨立運動≫Ⅱ:民族主義運動編(原書房, 1967), 22쪽.
211)<公判始末書>4 (國史編纂委員會 編,≪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19), 23쪽.
212)<覆審公判 公判始末書>, 59쪽.
213)<公判始末書>5(國史編纂委員會 編,≪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19), 34쪽.

申肅, 앞의 책, 50쪽.
214)姜德相 編,≪現代史資料≫27, 朝鮮三:獨立運動一(みすず書房, 1970), 51∼52쪽.

李智澤,<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第28話:北間島 21>(≪中央日報≫, 1972년 11월 4일).
215)李炳憲, 앞의 책, 1,016쪽.

金東成,<祖國光復에 바친 一生-晩悟 洪震先生의 16周忌를 마치고->(≪京鄕新聞≫, 1962년 9월 27일).
216)洪濤는 洪震義의 가명이며 洪鎭義로도 쓴다. 1894년 함경도 함흥 태생으로 명치대학을 졸업했다(<在外鮮人新運動團體と其中心人物>1927年 5月條〔未定稿〕,≪齋藤實文書≫10:民族運動二, 고려서림 영인본, 281쪽).
217)<本年度卒業生一覽>(≪學之光≫17, 1919), 81쪽.

<在日京 우리 留學生界의 消息>(≪學之光≫20, 1920), 62쪽.
218)申肅, 앞의 책, 39·48쪽.
219)<公判始末書>5(國史編纂委員會 編,≪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19), 34쪽.
220)國史編纂委員會 編,≪韓國獨立運動史≫資料4:臨政篇Ⅳ, 27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