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3. 경신참변과 자유시사변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1. 문화정치의 실상
          • 1) 경찰기구의 강화
            • (1) 보통경찰제의 확립
            • (2) 신간부의 선정과 보통경찰의 기능
          • 2) 지방제도의 개편
            • (1) 동화정책하의 참정권 문제
            • (2) 지방제도의 개편과 자문기구의 설치
            • (3) 면제의 운영과 촌락정책의 실상
          • 3) 친일세력의 양성
            • (1) 친일과 협력이란 개념
            • (2) 친일파의 육성과 이용책
            • (3) 친일단체의 조직
        • 2. 수탈체제의 강화
          • 1) 총독부 산업정책의 전환
          • 2) 농업―산미증식계획
          • 3) 공업
            • (1) 식민지 공업구조의 형성
            • (2) ‘민족자본’과 조선인 자본
          • 4) 재정·금융
            • (1) 재정
            • (2) 금융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1. 임시정부의 수립과 초기 활동
          • 1) 임시정부 수립의 배경
            • (1) 세계대전의 종전과 민족자결주의
            • (2) 정부수립운동과<대동단결선언>
          • 2) 임시정부의 수립과 통합
            • (1) ‘국민대회’와 국내 정부수립운동
            • (2) 상해 임시정부의 성립
            • (3) ‘통합’ 임시정부의 출범
          • 3) 임시정부의 초기활동
            • (1) 외교·선전활동
            • (2) 국내조직과 활동
            • (3) 군사외교와 독립전쟁 준비
        • 2. 임시정부와 국민대표회의
          • 1) 국민대표회의 소집론과 ‘정부옹호파’의 반대운동
            • (1) 국민대표회의 소집배경과 참가세력
            • (2) 정부옹호파의 국민대표회 반대운동
            • (3) 제10회 임시의정원
          • 2) 국민대표회의의 전개 과정
            • (1) ‘비공식회의’와 제11회 임시의정원
            • (2) ‘삼방회의’와 국민대표회의의 결렬
          • 3) 국민대표회의에서의 쟁점
            • (1) 국민대표회의의 적법·부적법 문제
            • (2) ‘임정존폐’ 문제와 ‘임정법통론’
        • 3. 임시정부와 유일당운동
          • 1) 유일당운동의 배경과 계기
          • 2) 유일당운동의 추진과 임시정부의 개헌
            • (1) 임시정부 중심의 대당결성 주장
            • (2)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 결성
            • (3) 임시정부 개헌과 한국유일독립당상해촉성회 결성
            • (4) 의열단의 선언과 광동·무한·남경촉성회 결성
          • 3) 유일당운동의 발전과 임시정부 참여
            • (1)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의 결성
            • (2) 전위조직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의 성립
          • 4) 유일당운동의 중단과 임시정부의 여당 결성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1. 독립군의 편성과 국내진입작전
          • 1) 시대적 배경
          • 2) 독립군의 편성
            • (1) 북간도지역
            • (2) 서간도지역
          • 3) 국내진입작전의 전개
            • (1) 독립군의 전력강화
            • (2) 국내진입작전
        • 2. 봉오동승첩과 청산리대첩
          • 1) 봉오동승첩
            • (1) 삼둔자전투
            • (2) 봉오동승첩
          • 2) 청산리대첩
            • (1) 일본군의 간도 침공
            • (2) 독립군의 근거지 이동
            • (3) 독립군의 전투준비
            • (4) 청산리대첩
            • (5) 청산리대첩의 전과와 의의
        • 3. 경신참변과 자유시사변
          • 1) 독립군의 북정
          • 2) 경신참변
          • 3) 자유시사변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1. 통의부의 결성과 활동
          • 1) 통군부의 성립과 남만한족통일회의
          • 2) 통의부의 결성과 활동
        • 2. 3부의 성립과 활동
          • 1) 참의부의 성립과 활동
          • 2) 정의부의 성립과 활동
          • 3) 신민부의 성립과 활동
        • 3. 재만 독립운동단체의 민족유일당운동
          • 1) 민족통일전선운동의 대두
          • 2) 3부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1. 의열투쟁의 의미맥락
        • 2. 의열투쟁 본격화의 배경과 계기
        • 3. 3·1운동 직후와 1920년대의 의열투쟁
          • 1) 3·1운동 직후와 1920년의 의열투쟁
          • 2) 1921년 이후의 의열투쟁 양상과 추이
            • (1) 의열단의 국내외 투쟁
            • (2) 재만 독립군의 국내외 의열투쟁
            • (3) 병인의용대의 의열투쟁
            • (4) 개인 단독의거의 흐름과 사례들
        • 4. 1930년대와 일제말의 의열투쟁
          • 1) 한인애국단의 의열투쟁
            • (1) 이봉창의 동경의거
            • (2) 상해거사의 추진과 윤봉길 의거
            • (3) 국내·만주거사 계획의 추진
          • 2) 재중국 아나키스트들의 의열투쟁
          • 3) 한국혁명당총동맹과 남자현의 의열투쟁
          • 4) 상해와 북경에서의 밀정·친일배 처단 활동
          • 5) 한국독립당과 민족혁명당의 의열투쟁
          • 6) 국내 의열투쟁의 불연속성과 지구성
        • 5. 일제 강점기 의열투쟁의 특징과 역사적 의의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경신참변과 자유시사변

1) 독립군의 북정

 청산리대첩에 참여한 대한군정서 등 여러 독립군 부대는 대첩이 끝난 직후 지체없이 북쪽 중·소 국경 부근의 密山을 향해 대장정에 올랐다. 먼저 대한군정서 독립군은 어랑촌전투를 승리로 이끈 뒤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가며 북정길에 오르기 위해 즉시 부대를 이동시켰다. 사령관 김좌진의 인솔하에 대한군정서군은 야포와 기관총 등 중화기를 비롯해 총기와 탄약을 2량의 우마차에 만재하고 청산리 일대를 벗어나 10월 26∼27일 경에는 화룡현과 안도현의 경계인 黃口嶺村 부근에 도착해 홍범도가 이끄는 독립군 연합부대를 기다렸다. 대한군정서군은 그후 11월 7일 경 황구령을 출발한 뒤 五道楊岔로부터 삼림계곡을 따라 천보산 서쪽 부근을 돌아 15일 경 왕청현 春陽鄕 神仙洞에 도착하였으며, 이어 여러 독립군부대가 집결하던 密山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이를 전후한 시기에 홍범도와 연합하였던 여러 부대 가운데 대한국민군·대한의군부·대한광복단 등의 독립군단도 대한군정서의 행군로와 비슷한 길을 따라 밀산을 향해 북정을 단행하였다.495)

 한편 홍범도가 인솔한 대한독립군과 훈춘한민회 및 대한의민단 등의 독립군 연합부대 600여 명은 고동하곡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청산리대첩을 마무리한 다음 곧바로 안도현 산림지대로 행군하였다. 그리하여 홍범도를 주축으로 한 이들 연합부대는 서간도 유하현 哈泥河의 본영을 떠나 안도현 奶頭山 부근 三人班에서 새로운 병영을 건설하고 있던 池靑天 휘하 400여 명의 서로군정서와 합류함으로써 단일부대를 편성할 수 있었다. 총사령관에 홍범도, 부사령관에 지청천이 각각 취임한 통합군단 역시 곧바로 밀산을 향한 고난의 행군에 들어갔다.

 청산리대첩에 참여한 여러 독립군단과는 달리, 중국측과 근거지 이동에 관한 타협이 이루어진 직후의 장정 초기부터 羅子溝와 밀산 방면을 향해 그대로 북상을 단행한 독립군도 있었다. 최진동 휘하의 군무도독부를 비롯해 대한의군부·신민단·훈춘한민회의 일부 독립군이 그러하였다. 왕청현 나자구에 집결한 이들 독립군 1,000여 명은 이범윤을 명의상 총재로 추대하고 최진동을 사령관으로 하는 大韓總軍府를 조직한 뒤 연해주 방면으로부터 기병대의 내원을 받으면서 일본군과 교전할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그후 대한총군부도 다른 독립군이 밀산 방면으로 북상함에 따라 그곳으로 향하였다.

 하지만 모든 간도 독립군이 밀산으로 북상한 것은 아니다. 북정한 독립군 가운데 처음부터 본대에서 이탈해 다른 곳으로 향한 병력도 있었으며, 중도에 낙오자도 많았다. 그러나 대체로 볼 때, 북간도의 여러 독립군 부대는 청산리대첩 후 중·소 국경 부근의 밀산을 향해 북상길에 오르게 되었다.

 독립군의 집결지였던 밀산은 1910년 전후부터 민족운동자들이 국외 독립운동기지의 하나로 경영하기 시작한 곳이었다. 청산리대첩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홍범도도 1910년대 중반 이곳 蜂密山 일대에 주둔하며 독립군을 양성하고 있었다. 정태가 밀산을 ‘조선 독립군의 발상지’라고 규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496)

 그러나 밀산은 많은 독립군을 장기간 수용하기에는 현지 한인사회의 재정적 기반이 취약한 곳이었다. 이에 밀산에 주둔한 독립군 지도자들은 러시아 연해주로 넘어가 소모된 전력을 보충 증강한 뒤 새로운 항일전의 방향을 모색하려 하였다. 연해주는 서북간도와 마찬가지로 1910년 전후부터 국외 항일운동의 중추기지로 터전을 닦아오던 곳이었고, 20만에 이르는 대규모 한인사회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독립군의 새로운 활동근거지 개척의 適地로 자연히 부상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당시는 볼셰비키혁명이 시작된 직후로, 볼셰비키 혁명정부가 피압박 약소민족의 해방투쟁에 대한 후원을 공약하던 때였다. 볼셰비키의 이러한 약소민족 해방투쟁 원조 약속은 만주 독립군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연해주 이동을 재촉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 독립군단의 지도자들은 회의를 열어 연해주로 이동할 것을 결정한 뒤, 하나의 통합된 독립군단으로 당당히 진군키 위해 大韓獨立軍團을 편성하였다.

 대한독립군단은 한 개 여단 밑에 3개 대대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1개 대대는 3개 중대, 1개 중대는 3개 소대로 각각 구성되었고, 1개 소대의 구성원은 27명으로, 총병력이 3,500여 명에 달하였다. 대한독립군단의 총재는 대한군정서의 지도자였던 徐一이 맡았으며, 부총재에는 청산리대첩의 명장인 홍범도와 김좌진·曺成煥 등이 선임되었다. 그리고 총사령에는 金奎植, 참모총장에는 李章寧, 여단장에는 서로군정서 사령관이던 池靑天이 각각 선임되었으며, 金昌煥·趙東植·尹擎天·吳光鮮 등이 중대장을 맡았다.497)

 대한독립군단 편성에 합류한 중요 부대로는 서일을 총재로 한 대한군정서를 비롯해 홍범도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그리고 대한국민군·훈춘한민회·대한신민단·군무도독부·대한의군부·血誠團·野團·大韓正義軍政司 등이었다. 그리하여 단일편제의 독립군 연합체인 대한독립군단은 1921년 1월초 러시아의 연해주 이만으로 넘어가 자유시로 향하는 새로운 장정을 시작하였다.498)

 만주 독립군이 청산리대첩 직후부터 장정길에 올라 자유시로 이동하기까지의 행군은 실로 고난에 찬 여정이었다.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 등 이들 독립군이 겪은 고통과 고단한 형세는 1921년 9월 대한독립군 북만주 통신부 ‘리중실’이 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에게 보낸 보고서인<알려드리는 글>에 다음과 같이 생생히 나타나 있다.

삼가 따로 쓴 두장과 함께 사뢰나이다. 남북만주 여러 군단이 성립됨이 이미 삼년이라 요량함이 없음은 아니오나 자랑할 만한 열매를 얻지 못함은 깊이 유감되는 바인가 하나이다. 지남으론 선령의 뜻을 잇고자, 지금으론 이십조의 동포를 건지고자, 다음으론 억만대 자손에게 복록을 주고자 하는 우리 독립군의 두 어께가 이미 무거웠으며 따라 한 두 해에 이룰 바가 아닌가 하나이다. 조선에게는 열어주신 낙원을 잃은 죄, 제 몸에게는 배달겨레의 본뜻과 본승을 나타내지 못한 죄, 자손에게는 씻지 못할 부끄럼을 끼친 죄, 슬프다. 이것이 어께총 받들어총 하는 독립군의 죄 뿐이냐. 묻노니, 형제여, 형제의 죄도 있거든 함께 받고자 하나이다. 밤과 낮을 이어 전전긍긍하는 바는 동포의 도와주시는 뜻, 깊이 바라시는 뜻을 저버릴까, 최후의 일인까지 견디지 못할까 함이오니 … 저희는 이뿐으로 최후의 마음을 결정하였나이다. 때는 일기가 혹독히 추운 겨울이라 몸에는 솜을 붙이지 못하고 발에는 홋감발에 미투리뿐인 그 모양이 어떠하오리까. 할 일 없어 중동선 북으로 향하여 첫째는 군인의 얼고 줄임을 면코자 하며, 둘째는 여러 군대를 모으고자 하니 먼 데는 수천리요, 가까운 데는 칠팔백리 되는 험한 산골 빽빽한 산림을 지나는지라, 이 일이 어찌 쉽소오리까. 더구나 중동선 북에는 우리 동포의 집이 드물어서 몇백명 군인의 의복과 양식도 공급할 수 없으므로 이 또한 사세에 의지하며 다시 아령 이만으로 가게 되었나이다. 아령 이만으로 간 뒤에 여러 군단이 합하여 전날 명의를 모두 작소하고 대한독립군이라 이름하여 한 기관 아래에 지휘를 받게 되었더라. 이만은 일·아 사이에 이른바 완충의 땅이므로 적의 교섭이 심하여 다시 아령 흑하편으로 가게 됨에 전부가 다 그곳으로 가면 첫째 내, 외지에 교통이 편치 못하고 또는 모두 볼셰비키됨이 우리 독립운동에 편치 못한 일이 많으며, 겸하여 후방의 수습으로 말미암아 중요 임원 모모는 중령에 있게 되었나이다. 후방의 수습이라는 것은 여러가지 곤란함이 많아 열에 아홉이 뜻과 같지 못한지라, 간도에 있어서는 작으나 크나 무기를 사며 사관을 가르치는 경비는 모두 간도 사시는 동포의 의연으로 썼거니와 한번 간도를 떠난 뒤에는 한푼의 경비가 극히 어렵고 어디어디서 약간의 구제비를 보내주셔서 가이없이 감격하나, 이것이 불피어나는 화로에 눈송이 집어넣기라. … 슬프다, 물없는 웅덩이의 고기요, 불붙는 기둥위의 제비라. 이를 뉘 능히 구하며, 뉘 능히 살게 하리요. 많으나 적으나 우리 동포가 아니면 그 뉘라서 돌아보오리까. 감히 비옵나니 밑없는 구덩이에 빠지 무리를 건져주시옵소서. 아령 자유시에 있는 이천의 군대는 입고 먹는 것을 모두 아인이 공급하오니 비록 나라가 다르면 인종이 각빛이나 이와 같이 보호하여줌이 또한 감사한 일이오며 아직까지는 별일없이 지내나이다(≪雩南李承晩文書≫7, 561∼568쪽).

495)姜德相 編,≪現代史資料≫28, 406∼408쪽.

≪獨立新聞≫, 1921년 1월 21일.
496)朴敏泳,≪大韓帝國期 義兵硏究≫(한울, 1998), 221∼223쪽.
497)蔡根植,≪武裝獨立運動秘史≫(공보처, 1947), 99쪽.
498)尹炳奭,≪獨立軍史≫(지식산업사, 1990), 208∼211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