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ML파’의 당재건운동
1929년 5월 31일 구‘ML파’ 멤버들인 한해·이경호·한빈·양명·고광수·한위건 등은 길림에서 ‘조선공산당재조직중앙간부회’를 결성하고 조선공산당을 재건하려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 그룹은 1929년 모스크바 공산대학을 졸업한 화요파 출신인 박용선을 국내에 파견한다. 박용선은 부산에 도착하여 부산방적공장·부산瓦電주식회사·竹梁철도공장·부산철공조합 등에 프랙션을 두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들은 부산 시내에 비밀연구반을 두고 일본 좌익잡지≪인터내셔널≫·≪戰旗≫·≪산업노동시보≫등을 탐독하며 다른 지방의 파업투쟁 등이 일어났을 때 물질적·정신적 원조를 하였다.216)
이들의 활동은 한해·한빈·고광수 등의 체포로 중단되고 말았지만 양명·한위건 등이 중심이 되어 상해에서 기관지≪계급투쟁≫을 발행하고 동경에서 상해로 합류한 고경흠 등과 당재건 방향을 협의하여 1931년 2월 무렵 ‘조선공산당재건설동맹’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조선공산당재건설동맹도<12월테제>의 해석을 둘러싼 당재건방침의 차이로 1931년 4월 해산하고 1931년 7월에 조선공산주의자재건협의회를 만들었다. ‘협의회’는 중앙집권주의를 강조하고 전국 각지에 적색노조·농조·독서회·사회과학연구회·반제동맹 등 조직체를 만들고 활동하다가 1932년 3월 권대형 등 18명이 구속되면서 와해되었다.
216) | 최규진, 위의 책, 17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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