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1. 농민운동
1) 일제시기 농민운동의 성격
한국은 봉건사회의 지주·소작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채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때문에 한국 농민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수탈체제를 타도하여 민족독립을 달성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舊來의 봉건적 지주·소작관계를 청산하여 농민적 토지소유를 실현해야 하는 두 가지의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일제시기에 이 과제는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중첩되어 있었다. 그것은 일제가 1910년대 조선토지조사사업을 통하여 봉건지주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이들을 식민지 지주로 재편하여 식민지 통치와 수탈의 주구로 삼았던 탓이다.369) 또한 식민지 지주제는 이후 일제의 식민농업정책의 본격적 전개에 따라 더욱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전 인구의 8할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던 일제시기 산업구조 속에서 한국 농민은 일본 제국주의 對 식민지 민중이라는 식민지 사회의 모순구조와 대결구도 아래 민족독립과 사회변혁의 규정적 존재이자 주력군이었다. 따라서 일제시기 농민운동은 민족해방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해방 이후 신국가 건설 방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관건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은 물론이다.370)
일제시기 민족해방운동이 가장 역동적으로 전개되던 기간은 1920년대이다. 물론 그 역동성의 기저에는 3·1운동이 있었다. 3·1운동을 통해 한국 민족은 민족적·계급적 각성을 이루었고, 또 그것을 자신들의 계급적 차원에서 표출하면서 민족해방운동을 발전시켜 간 것이다. 3·1운동 이후 민족해방운동의 이념으로 수용되기 시작한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 그리고 민족주의의 발전 등도 그것을 고조시켜 간 주체적 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다양한 운동 이념과 그것을 지지하는 운동 조직을 기반으로 1920년대는 민족해방운동의 전성기를 이룬 것이다.
그 가운데 핵심은 농민운동이었다. 당시 전 인구의 80%를 차지한 물리적인 측면에서나, 또 민족적·계급적 모순을 동시에 체감하고 있던 화학적인 측면에서도 농민대중은 민족해방운동의 주력군이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일제시기 민족문제는 농민문제라고까지 하였겠는가. 이 글은 그 같은 농민문제에 주목하면서, 1920년대 농민운동의 전개양상과 그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농민대중이 농민운동에 나서게 된 객관적 조건, 즉 1920년대 일제의 식민농업정책과 그에 따른 한국 농민의 처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운동의 주체적 역량인 농민운동 조직의 발전, 농민운동의 전개양상과 그 특징을 추적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