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1. 농민운동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1. 1920년대 국내 민족주의 세력의 동향
          • 1) 1920년대 전반의 ‘문화운동’
            • (1) 신문화건설, 실력양성론의 대두
            • (2) 청년회 운동
            • (3) 학교설립운동
            • (4) 물산장려운동
          • 2) 1920년대 중후반 자치운동의 전개와 민족주의 세력의 분화
            • (1) 자치운동론 대두의 배경
            • (2) 자치운동의 전개
            • (3) 자치론과 반자치론
        • 2. 조선공산당의 성립과 활동
          • 1) 사회주의사상의 도입
            • (1) 사회주의사상의 국내 도입과 수용
            • (2) 국외 전위정당의 결성과 활동
          • 2) 국내 무산계급 운동의 성장
            • (1) 사회주의 분파의 형성
            • (2) 꼬르뷰로 국내부와 화요파의 성립
            • (3) 오르그뷰로와 ‘13인회’
            • (4) 화요파와 민중운동자대회
          • 3) 조선공산당의 창건
            • (1) 조선공산당 1차당대회
            • (2) 조선공산당의 활동과 코민테른의<1925년 9월 15일 결정>
            • (3) ‘1·2차 조선공산당사건’과 조선공산당 2차당대회
            • (4) 조선공산당 3차당대회와 정치노선
          • 4) 조선공산당의 해체와 당재건운동
            • (1) 조선공산당의 해체와<12월테제>·<9월테제>
            • (2) 1920년대 말 당재건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1. 6·10만세운동
          • 1) 융희황제의 승하와 6·10만세운동의 태동
          • 2) 해외의 6·10만세운동 계획과 추진
          • 3) 국내의 6·10만세운동 추진과 발각
          • 4) 학생들의 만세시위 추진
          • 5) 만세시위의 전개와 성격
            • (1) 서울의 만세운동
            • (2) 지방의 움직임과 만세시위
          • 6) 6·10만세운동의 이념
          • 7) 6·10만세운동과 그 영향
        • 2. 신간회운동
          • 1) 창립 배경
          • 2) 신간회의 창립
            • (1) 사회주의자들의 신간회운동론
          • 3) 복대표대회와 신간회의 정비
            • (1) 복대표대회 개최와 규약 개정
            • (2) 복대표대회 선출 간부진의 성격
          • 4) 지회의 설립과 활동
            • (1) 지회의 설립
            • (2) 지회의 성격과 활동
          • 5) 신간회의 해소
            • (1) 신간회 해소론
            • (2) 신간회지회의 해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1. 농민운동
          • 1) 일제시기 농민운동의 성격
          • 2) 일제의 농업정책과 한국 농민의 처지
          • 3) 농민운동 조직의 발전
          • 4) 농민운동의 전개
            • (1) 1920년대 전반기
            • (2)1920년대 후반기
          • 5) 1920년대 농민운동의 특징
        • 2. 노동운동
          • 1) 노동운동 전개의 배경
            • (1) 노동자계급의 상태
            • (2) 사회주의의 보급
          • 2) 노동조합의 조직
            • (1) 전국적 노동조합
            • (2) 지방 노동조합의 조직
            • (3) 산업별 노동조합의 조직
          • 3) 노동조합의 조직 내 사업과 공장 내 활동
          • 4) 노동조합의 후생복지 사업 및 소비자운동
          • 5) 노동조합의 작업부와 생산조합의 조직
          • 6) 노동조합의 문화활동
            • (1) 노동자 교육활동
            • (2) 언론·출판 활동
            • (3) 연예·체육 활동
            • (4) 봉건적 사회제도·문화 타파운동
          • 7) 노동조합의 국내적·국제적 연대
            • (1) 국내에서의 민족·민중 연대
            • (2) 세계 노동자계급과의 동지적 연대
          • 8)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 (1) 1920년대 전반기 파업투쟁
            • (2) 1920년대 후반기 파업투쟁
            • (3) 1929년의 원산총파업
        • 3. 여성운동
          • 1) 국내외 항일여성운동
            • (1) 국내 항일여성운동
            • (2) 해외 항일여성운동
          • 2) 한국여성운동의 확대와 발전
            • (1) 서울의 여성계몽교육운동
            • (2) 지방의 여성계몽교육운동
            • (3) 기독교 여성의 여성운동: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와 조선여자
          • 3) 여성 경제의식 성장과 경제자립운동
            • (1) 부녀들의 조선물산장려운동
            • (2) 여성의 경제적 자립활동
          • 4)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대두와 확대
            • (1) 조선여성동우회의 조직과 활동
            • (2)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분파적 확대
            • (3)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지방 확대
          • 5) 근우회의 조직과 활동
            • (1) 근우회 조직의 배경
            • (2) 근우회의 창립과 이념
            • (3) 근우회 활동과 그 성격
            • (4) 근우회의 해소
        • 4. 형평운동
          • 1) 형평사의 창립배경
          • 2) 형평사의 창립
            • (1) 형평사의 창립 과정
            • (2) 형평사 창립에 대한 사회의 반응
          • 3) 형평사의 분열과 그 극복
            • (1) 형평혁신동맹의 창립
            • (2) 조선형평사중앙총본부로의 합동
          • 4) 형평사의 조직
            • (1) 중앙본부의 조직
            • (2) 지분사의 조직
            • (3) 형평사 조직의 확대
            • (4) 하위단체의 조직과 활동
          • 5) 형평사의 활동
            • (1) 차별철폐와 인권신장운동
            • (2) 생활생존권 수호운동
            • (3) 형평사원의 교육과 계몽활동
            • (4) 지방순회 활동
            • (5) 상호부조활동
          • 6) 형평사의 해소
            • (1) 사회주의운동계의 방향전환론
            • (2) 형평사내 급진·온건파의 갈등
            • (3) 형평사 해소론의 대두
            • (4) 형평청년전위동맹사건과 형평사의 종언
        • 5. 청년운동
          • 1) 청년운동의 발생배경
            • (1) 청년의 역사적 등장
            • (2) 청년단체의 출현
            • (3) 조선청년의 현실
          • 2) 조선청년회연합회와 초기 청년단체의 활동
            • (1) 조선청년회연합회의 결성과 ‘문화운동’
            • (2) 초기 청년단체의 주요 활동
          • 3) 조선청년총동맹과 청년운동의 조직적 진출
            • (1) 전조선청년당대회와 청년운동의 분화
            • (2) 조선청년총동맹의 결성과 ‘무산계급 청년단체’의 확산
            • (3) 청년단체의 주요 활동
          • 4) 청년운동의 방향전환과 민족협동전선
            • (1) 조선청년총동맹의 ‘신운동방침’
            • (2) 청년단체의 주요 활동
          • 5) 고려공산청년회와 사회주의 청년운동
            • (1) 사회주의 청년운동의 출현
            • (2) 고려공산청년회의 결성과 조직 변화
            • (3) 고려공산청년회의 청년운동 방침과 주요 활동
          • 6) 조선총독부의 청년단체에 대한 대책
            • (1) 조선총독부의 청년단체 지도방침
            • (2) ‘중견청년’의 양성
        • 6. 학생운동
          • 1) 일제하 학생운동의 배경
            • (1) 근대학생운동의 본질
            • (2) 일제하 한국학생운동의 성격
          • 2) 1920년대 이전의 학생운동
            • (1) 개화·애국계몽운동기의 학생운동
            • (2) 2·8학생운동
            • (3) 3·1운동과 3·5학생운동
          • 3) 1920년대 학생운동의 기저
            • (1) 학생단체
            • (2) 동맹휴학
          • 4) 6·10학생운동
            • (1) 6·10학생운동의 사회적 배경
            • (2) 6·10학생운동의 추진
            • (3) 6·10학생운동의 전개
          • 5) 광주학생운동
            • (1) 광주학생운동의 사회적 배경
            • (2) 광주학생운동의 전개
            • (3) 광주학생운동의 전국적 확대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일제의 농업정책과 한국 농민의 처지

 모든 운동은 주체적 역량과 객관적 조건에 따라 변화한다. 일제시기 농민운동도 마찬가지이다. 농민의 주체적 역량, 즉 농민의식의 성장과 그에 기초한 운동조직이 농민운동을 이끌어 갔다. 다른 한편으로 일제의 식민농업정책과 그에 따른 생활상의 문제인 객관적 조건이 농민대중을 운동전선으로 내몰았다.

 일제는 1910년대 조선토지조사사업,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초반에 걸친 산미증식계획, 1930년대 중반의 농촌진흥운동,371) 이후의 조선증미계획372) 등의 식민농업정책을 실시하였다. 이같은 농업정책의 기조는 식민지 지주제의 형성과 그를 통한 농업수탈의 감행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일제는 미증유의 산업발전을 이루었지만, 1918년 종전과 함께 불어닥친 경제불황으로 일대 위기를 맞이하였다. 특히 미가폭등으로 일본 각지에서 미곡소동이 일어나는 등 극도의 식량위기에 빠졌다. 이에 일본 내의 유휴자본을 한국에 투입함으로써 경제불황을 해소하고, 또 공업화에 따르는 식량부족 현상을 타개하려는 목적으로 시행한 것이 산미증식계획이었다.373)

 일제가 한국에서 산미증식계획을 실시하여 식량난을 해소하려고 한 데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다. 그것은 식민통치권력을 이용하여 산미증식계획을 강제로 시행할 수 있고, 또 한국농민을 부역의 형태로 동원함으로써 투자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산미증식계획의 기본목표는 토지개량과 농사개량에 의한 미곡 증식과 그 증식미의 일본 반출이었다. 그러나 1920년부터 1925년까지 시행된 제1차 산미증식계획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이유는 민간자본 유치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시기 일본의 산업자본은 산미증식계획과 같은 장기투자보다는 주로 경공업과 식료품 공업에 투입되었고, 한국인·일본인 지주의 자본도 토지개량보다는 농지를 더 구입하는 데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는 농지소유 수익이 토지개량이나 농사개량의 투자수익보다 높았다는 데 그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되자 일제는 1926년부터 官 주도의 제2차 산미증식계획을 실시하여 갔다. 제2차 산미증식계획의 특징은 제1차에 비하여 사업자금 면에서 지주·자본가의 자금, 즉 민간자본의 비중이 42%에서 12%로 대폭 경감된 점에 있었다. 이는 민간자본 유치에 실패한 일제가 관 주도로 제2차 산미증식계획을 시행한 것이고, 또 그 만큼 식민주의적 성격도 강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산미증식계획의 추진기구로 일제는 1920년 11월 조선총독부 식산국에 토지개량과를 설치하였다. 여기에 1926년 제2차 산미증식계획을 실시하면서부터는 수리과와 개간과를 더 두었다. 이와 함께 1926년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토지개량부를 설치하도록 하였고, 또 조선식산은행 산하에 조선토지개량주식회사를 창설하여 토지개량사업을 담당케 하였다. 1927년 5월에는 식산국의 토지개량과·수리과·개간과를 통합하여 토지개량부를 창설하고, 이를 식산국에서 독립시켜 조선총독부 직속 관청으로 만들어 산미증식계획을 총괄하여 갔다.

 이들 기관이 주로 산미증식계획 가운데 토지개량 사업을 맡았다면, 농사개량 사업은 주로 조선농회가 담당하였다.374) 일제는 3·1운동 이후 농촌·농민통제의 강화와 제1차 산미증식계획의 지원을 위해 1920년대 초반부터 郡·島농회와 그 상위 조직으로 道농회를 설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에 들어와 소작쟁의가 발생하여 점차 일반적 현상으로 확산되어 갔다. 또 1922년 10월 朝鮮勞動聯盟會와 1924년 4월 朝鮮勞農總同盟의 결성 등 사회주의계열의 농민운동단체, 비록 개량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1925년 10월 천도교계열의 朝鮮農民社 등이 여러 농민계층을 조직화하면서 전국적이며 계통적인 조직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런데 비하여 군·島농회와 도농회, 그리고 ‘任意’ 조선농회·지주회 등이 활동하고 있었지만, 농사개량사업에 대한 이들 단체의 기여는 매우 미약하여 제1차 산미증식계획에서 예기한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따라서 일제는 제2차 산미증식계획을 계획하면서 고양되는 농민운동에 대처하고, 산미증식계획에 대한 농민대중의 참여와 협조를 유도하기 위해 일사불란한 농민통제체제를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농민운동에 의해 도전받는 식민지 지주제의 안정과 확대 재생산을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그 방향은 일본의 제국농회체제를 모방하여 기존의 도농회와 군·島농회 체제를 확대·정비하여 계통적인 조선농회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조선총독부는 1922년 4월 제정·공포된 일본의<농회법>을 모법으로 하여 1926년 1월<조선농회령>과<조선농회령시행규칙>을 제정·반포하고, 그에 의거하여 기존의 농업단체들을 통폐합시켰다. 그럼으로써 ‘군·島농회(1926. 6)→道농회(1926. 10)→조선농회(1927. 3)’로 계선화된 조선농회 계통체제를 완성하였다. 그리하여 이들 농회가 산미증식계획에서 농사개량사업을 담당하면서 농사개량, 저리 자금의 알선·융자 및 회수 사무 등을 맡았던 것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산미증식계획의 양대 사업은 토지개량과 농사개량이었다. 특히 토지개량은 산미증식계획의 기축이고, 일제가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이었다. 일제가 계획한 토지개량사업의 목표는 35만 정보이고, 사업비는 2억 8,000만원으로 총예산의 88%에 달하고 있었다. 또 토지개량에 의한 산미의 증식 계획량은 472만 석으로 총계획량 가운데 58%를 차지하였다.

 토지개량 사업 자금은 조선총독부의 보조금과 일본정부 알선 자금이 주류를 이룬다. 그 중에서도 일본정부 알선 자금의 비중이 가장 높은데, 그 운용은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이 각각 반액씩 관장하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가 관장한 자금은 자체 토지개량부를 통하여, 또 조선식산은행이 관장한 자금은 그 산하 조선토지개량주식회사를 통하여 집행되었다.

 실제 토지개량사업의 추진 상황은 1926년에서 1928년까지는 계획량을 웃돌고 있었으나, 1929년을 고비로 급격히 하락한다. 이는 1929년 세계대공황의 영향으로 일본정부의 알선 자금이 급격히 줄어들고, 또 일본 국내의 미가가 하락하면서 산미증식계획을 중지하라는 요구가 거세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토지개량사업의 시행기구도 점차 폐지되기 시작하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개량부는 1931년, 조선총독부의 토지개량부는 1932년에 폐지되었고, 1934년에는 토지개량사업이 중지되면서 조선토지개량주식회사가 해산되기에 이르렀다.

 농사개량사업은 제1차 산미증식계획에서는 그 자금을 지주와 자작농에게 의존하였다. 그러나 제2차 산미증식계획에서는 4,000만원의 예산을 따로 책정하여 실시하였다. 주로 조선농회를 중심으로 소위 ‘우량품종’의 보급, 화학비료 사용의 확대, 퇴비 등 자급비료의 장려를 강제하면서 추진되었다. 농사개량사업은 세계대공황 이후 토지개량사업이 중지됨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행되었는데, 그것은 이 사업이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 뿐 더러 그 시행효과가 컸기 때문이었다.

 1920년대 일제는 산미증식계획에 의한 생산량의 증대를 빙자하여 미곡의 본격적인 수탈에 나섰다. 이는 산미증식계획의 목적이 한국 미곡의 수탈에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산미증식계획 기간에 토지개량과 농사개량으로 미곡의 단위당 수확량과 연평균 생산량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연평균 생산량은 1915∼1917년 평균 13,106,446석에서 1925∼1927년 평균 15,790,898석으로 17% 정도, 단보당 수확량은 1915∼1917년 평균 0.89석에서 1925∼1927년 평균 0.99석으로 11% 정도 증가하였다. 이에 비하여 미곡의 대일 반출량은 1915∼1917년 평균 1,573,503석에서 1925∼1927년 평균 5,658,902석으로 무려 360% 증가하고 있다. 수확량은 산술적으로 증가한 반면에 반출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더구나 연평균 미곡생산량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1인당 미곡소비량은 1917∼1921년 평균 0.68석에서 1927∼1931년 평균 0.49석으로 감소하였다. 이는 분명 한국 농민의 식량을 약탈하여 일본인들의 배를 채우는 제국주의 식량수탈정책의 표본이었고, 또한 일본의 선진 공업화를 위한 저미가 정책의 희생양이 한국 농민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의 일환으로 시행된 토지개량사업은 대지주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수리조합 설치비용을 중소지주·자작농·자소작농, 심지어 소작농민들에게까지 전가함으로써 이들의 경제적 몰락을 촉진시켰다. 따라서 1920년대 농민층은 아래<표 1>과 같이 자작농→자소작농→소작농·화전민으로 하층분해되어 갔다.

연 도 지주 자작농 자소작농 소작농 화전민
1920 3.5 19.4 37.4 39.8  
1921 3.6 19.6 36.6 40.2  
1922 3.6 19.7 35.9 40.8  
1923 3.7 19.5 35.2 41.6  
1924 3.8 19.4 34.6 42.2  
1925 3.7 19.9 33.2 43.2  
1926 3.8 19.1 32.4 43.3 1.3
1927 3.8 18.7 32.7 43.8 1.0
1928 3.7 18.3 31.9 44.9 1.2
1929 3.8 18.0 31.4 45.6 1.2
1930 3.6 17.6 31.0 46.5 1.3

<표 1>1920년대 농민층의 하층 분해 상황 (단위 : %)

*朝鮮總督府 編,≪朝鮮ノ小作慣行≫下(1932), 74∼75쪽.

 소작농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지주의 고율소작료 부과와 마름의 횡포였다. 소작인은 지주의 지시에 따라 소작계약서를 제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소작계약서에는 소작료의 납입방법과 기준, 계약기간 설정 등이 명시되어 있다. 이 기준에 의하면 소작인이 부담해야 할 소작료는 地代와 토지개량비, 영농에 필요한 자재비, 공과금을 포함한 것이다. 그밖에도 소작인들은 소작료 운반비와 종자대·수리조합비·비료대까지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따라서 소작인들은 수리조합 구역 내에서는 수확량의 7∼8할까지도 소작료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마름은 지주를 대신한 소작지 관리인으로 농민들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이들은 소작계약 체결권을 악용하여 소작인들의 경작권을 위협했고, 소작료를 증액하며, 소작인들의 선물증여 등 물품공세 여부에 따라 소작권을 이동하는 등 각종 폐해를 자행하였다. 그 외에도 소작인에게서 받는 소작료와 지주에게 납부하는 소작료 사이의 차액을 가로채고, 추수 종사원들의 접대비를 소작인에게 전가시키며, 소작인에게 금전이나 곡물을 고리대로 빌려주거나 물자를 고가로 팔아 폭리를 취하는 등 횡포는 끝이 없었다.

 따라서 1920년대 농촌은 산미증식계획에 따른 수리조합 건설비의 부담과 고율 소작료 등으로 농민층은 경제적으로 몰락하여 갔고, 거기에 더한 마름의 횡포로 인해 소작농민의 궁핍화는 만연되어 絶糧 농가가 속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371) 지수걸,<1932∼1935년간의 조선농촌진흥운동>(≪한국사연구≫46, 1984).
372) 최유리,<일제말기 ‘조선증미계획’에 대한 연구>(≪한국사연구≫61·62, 1988).
373) 신용하,<식량의 증산과 약탈>(≪한국사≫21, 국사편찬위원회, 1976).

河合和男,≪朝鮮における産米增殖計劃≫(未來社, 1986).
374) 김용달,<朝鮮農會의 계통체제 수립과 초기사업(1926∼1932)>(≪한국근현대사연구≫4, 1996).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