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야유회·체육대회·척사대회
한국유교문화의 전통은 여성에게 규문칩거를 강요하였다. 그러므로 한국여성운동을 실현키 위한 첫째 과제가 여성들로 하여금 그 규문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여성개화를 주장하였던 개화주의자들도 여성개화의 첫째는 규문을 개방하고 내외법을 폐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울러 대다수 여성들은 단체훈련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1928년 1월 1일자 ≪동아일보≫에는 각계 여성지도층 인물들의<新年新氣焰>을 게재하였는데, 여기서 황신덕은 여성에게 단체훈련이 부족하고 또 여성들이 경제적·정치적·성적으로 극도의 압박을 받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반항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는 것이 우리 나라 여성운동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하였다.
회원모집 및 친목과 단체훈련을 겸한 척사대회·단오절의 그네뛰기·운동경기대회·원유회·간친회 등 20항 중에서 원유회가 가장 많은 11항이다. 각 신문사 및 여성단체에서 행하였던 부인견학단과 더불어 원유회는 가장 널리 실시되었던 일제하 우리 나라 여성해방운동의 한 방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