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형평사 창립에 대한 사회의 반응
형평사가 창립되자 당시 각 언론기관과 사회단체에서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격려하였다.596) 이들의 지지 형태는 아직도 존재하는 백정차별에 대한 일반 사회의 각성을 촉구하고, 인도주의적인 형평운동에 대한 지지와 후원의 표명이었다. 그리고 이후 계속하여 형평사 활동을 논하고 각지의 형평지분사 결성 상황을 자세히 보도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역할을 하였다.
또한 당시의 대표적인 잡지인≪개벽≫은 형평운동이 막연히 백정들의 인권해방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그 목표는 궁극적으로 계급해방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597) 이것은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형평운동에 대한 인식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주의자들의 인식을 자신들의 운동논리로 받아들인 형평운동자들은 앞으로의 운동 전개과정에서 운동 노선을 둘러싼 갈등을 야기하였다.
특히 각지의 형평지분사 결성과정에서는 노동공제회 혹은 청년회의 후원 아래 조직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들을 통해 형평운동과 다른 사회운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는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의 지원으로 형평사는 한 지역내에서 사회운동 단체의 일원으로 공인받고 자리잡아 가게 되었다.
형평사 창립에 대해 특히나 노동단체·사상단체·청년단체들이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들 운동단체들이 형평운동을 자신들의 운동과 동일한 계급운동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겠다. 따라서 형평운동의 독자성-백정에 대한 차별학대는 봉건적인 인습의 소산물로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 계급의 착취와는 구별되는 것임에도-을 간과한 채, 그것을 무산계급운동의 일반으로 지도하려 했고 이것은 앞으로의 형평운동의 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